〈 156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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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룻바닥이 부서지며 먼지가 일었다.
어깨를 찔렸기 때문인지 몸에 더욱 부하가 간 느낌이었다. 네리스 선배를 전력으로 내리꽂은 나는, 비틀거리며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내 손이 어깨에 꽂힌 단검을 거칠게 뽑아 던졌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넘쳤고, 내 잇새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시야가 흐릿했다. 마취약의 효과가 생각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가 않았다. 약효도 점점 더 빠르게 번지는 느낌이었고, 나는 헐떡이며 바닥에 떨어진 손도끼를 주웠다.
이대로 끝을 내야 했다. 아마 네리스 선배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네리스 선배는, 의외로 유쾌한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아하하하하핫! 푸흐, 크, 푸, 푸흐흣…….”
내 모골이 송연해졌다.
더듬거리는 기색이 남아있긴 하지만, 웃음을 터트릴 수 있다는 건 그새 정신을 되찾았다는 소리였다.
‘달 뒤집기’의 충격량은 무시무시해서, 일단 당하는 순간 한동안 몸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신의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리스 선배는, 비틀거리긴 했지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리스 선배는 쿨럭, 하고 핏물을 한 차례 더 뱉어냈다. 그래봐야 미량에 불과했다.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흥미로운 빛을 품었다. 마치 독으로 이루어진 연못을 마주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어, 얼마나… 얼마나 오랜만에 당한 거지? 머리가 어질어질해! 그래서 아주 상쾌한 기분이야, 후배님.”
나는 흐, 하고 되다 만 웃음을 흘렸다. 일단 일어난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내 눈빛이 멍청해졌다.
네리스 선배는 싱긋, 웃으며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또였다.
나는 그제야 그 단검이 어디서 나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공간 확장 주머니? 그딴 걸 제복에 달아둔 겁니까?”
헛웃음과 함께 뱉어진 목소리에, 네리스 선배는 묘한 웃음을 떠올릴 뿐이었다.
통짜 주머니로 만들어도 비싸서 어지간한 귀족들은 쓰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걸 저 자그마한 제복 속주머니에 설치해 놨다니, 어렴풋이 계산해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했다.
제국 황실에 돈이 썩어 넘친다는 증거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네리스 선배는 다시금 여유를 되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검은 아직 백 자루도 넘게 남아있어, 후배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묘하게 몸이 무거웠다. 시야가 더욱 흐릿해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고,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네리스 선배가 쇄도한 것은 그때였다.
그녀의 단검이 칠흑의 단선을 그으며 내리꽂혔다. 나는 손도끼를 이를 쳐내려 했다.
그러나 카각, 하고 이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손도끼가 튕겨나가듯 미끄러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한 그 순간.
퍽, 하고 네리스 선배의 발차기가 내 명치에 틀어박혔다.
내 몸이 곧바로 허공을 날았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일순 정신을 잃었을 정도였다.
어느새 내 몸은 네리스 선배가 집무를 보던 책상에 처박혀 있었다. 정신이 유독 어지러웠다.
하아, 하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나는 천천히 팔을 들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내가 원하던 완력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익숙한 감각이긴 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의 느낌이었다.
“남부 대수림에 사는 독충의 독이야.”
친절하게도 네리스 선배는 그렇게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내 눈이 멀거니 들려졌다.
“마력의 흐름을 방해해서, 한동안 마력을 쓰지 못하게 만들지. 대단하지 않아? 어떻게 자연적으로 진화한 생물이 이렇게 정밀한 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독을 참 좋아하시는군요.”
단순한 감상이었다.
마력 흐름을 방해하는 독이라니,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값은 어마어마했다. 고작해야 시골 자작가의 차남을 상대할 때 쓸 만한 독은 아니었다.
그리고 유독 내 상태가 나빴던 탓도 있었다.
마력의 흐름이 묶이면, 지금껏 마력으로 억누르고 있던 마취 기운도 동시에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 정신이 특히나 몽롱한 이유였다.
네리스 선배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응, 좋아해. 비열하지만, 상대를 짓밟아 버릴 때 좋잖아? 특히 나는 콧대 높은 귀족을 잘근잘근 밟아대는 걸 즐기는 편이거든.”
비틀거리면서,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어떻게든 결착을 봐야 했다. 그러한 승부욕으로만 움직이는 몸뚱아리였다.
하지만 내가 꿈틀거리는 그 순간, 단검 한 자루가 다시금 내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단지 칼날이 살갗을 찢고 들어왔구나, 라는 단순한 감상만이 들었다.
통각이 둔했다. 벌써 마취 기운이 전신으로 번졌다는 증거였다.
내 몸이 다시 책상에 기대진 채 주르륵 미끄러졌다.
“나는, 평민으로 살면서 온갖 못 볼 꼴을 봐왔거든… 참 꼴같잖아, 특히 귀족들은 말이야. 그런데 제국 첩보부에 발탁되면서 내 신세가 역전됐지.”
저벅저벅 걸어, 네리스 선배는 살짝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나란히 했다. 조소가 맺힌 그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 손을 들 수가 없었다.
네리스 선배의 눈동자에서는 숨길 없는 희열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그 추악할 몰골들… 수집하고, 분류해서, 협박도 했지. 물론 황실을 위해서였지만, 기분이 아주 좋더라고. 얼마 전까지 평민이라고 멸시하던 인간들이 내 앞에서 빌빌 기기 시작하는데… 푸흐, 얼마나 보기 좋겠어?”
마력이 굳어진다. 점점 더 정신줄을 붙들기가 힘들었다.
툭, 하고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이 느낌.
그러든 말든 몽롱한 귓전을 네리스 선배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요즘 그 유명하다는 손도끼 공자님께서는, 어떤 비명을 내지를까? 많이 기대되네… 도대체 누구한테 우리 지부에 대한 정보를 들었는지도. 혹시 유르디나? 라이넬라는 아직 우리 지부를 알기에는 급이 딸리고…….”
중얼중얼 이어지는 이야기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내 고개가 푹, 하고 떨어졌다. 그렇게 나른한 잠에 빠져들려던 그때.
“……이안 페르쿠스.”
엄숙한 노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나는 고풍스러운 침실 안에서 무릎을 꿇은 채였다.
내 맞은편에는 호화스러운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에서, 메마른 노인이 가까스로 상반신을 일으킨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핼쑥한 얼굴은 볼이 움푹 들어가 더욱 볼품없었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팔조차도 앙상했다. 누가 봐도 그를 바라보는 순간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형형했다.
노인의 모든 생명력이 그 눈동자로 빨려 들어갔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어둑한 조명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청색의 동공.
태생적인 지배자였다. 그 위엄에 내 고개가 절로 푹 꺾였다.
“……예, 폐하.”
제국의 황제,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 노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최근의 전선은 어떻던가?”
“아시다시피,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코 최후의 방어선만은 뚫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놈들이 대성벽을 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대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말이지…….”
내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 이상은 장담할 수 없었다.
세계는 이미 멸망 직전이었다.
무려 여섯이나 되던 마스터가 모두 사망했다. 델피렘이 이끄는 오메로스의 군대는 대성벽을 포위한 채 몇날며칠이고 침공을 계속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후후… 우습도다, 수백 년 제국의 역사가 이대로 끝난단 말인가? 아니지, 아니야. 인류의 역사가 끝날 날이 머지않았구나.”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헛된 희망은 죽음보다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노인의 눈이 다시금 나를 향했다.
“이안 페르쿠스… 인류 최후의 마스터, 그리고 나의 충신아.”
그의 입에서 뱉어지는 목소리가 점차 갈라졌다. 이제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꺼져 가는 생명의 흔적이 그 노구에서 느껴졌다.
이를 느낀 내 눈빛이 구슬픈 깊이를 만들었다.
“그대에게 용혈 문자를 전수하겠다.”
“하오나, 폐하. 용혈 문자는 황제의 특권입니다. 차기 황제에게 전수하셔야…….”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느냐.”
다급히 뱉어진 낱말들은 그 한 마디에 곧바로 흩어져 버렸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찬란한 위세를 자랑하던 제국과 그 정점을 상징하는 권좌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고 말았다.
노인은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대신, 그대에게 부탁을 하나 남기고 싶구나.”
나는 입이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노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형형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에 심상이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수백 년에 달하는 제국의 역사를 짊어진 권좌의 주인은, 그렇게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이안 페르쿠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신하로서 군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예우였다.
노인은 죽는 순간까지 황제여야 했다. 최소한 사내에게는 그랬다.
타오르는 청색 눈동자와 함께, 끝끝내 가슴에 틀어박혀 빠지지 않을 목소리가 귓전에 틀어박혔다.
“……세상을 구해라.”
그 담백한 한 마디를 끝으로, 흐릿한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
내 의식이 현실로 부상한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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