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26)
* * *
네리스 선배는 조금 긴장했는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우, 우선 ‘행렬’은 아카데미와 그 주변을 한정해도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예정되어 있는 행렬이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 말을 듣는 내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하나밖에 없다는 말은, 곧 모든 가능성을 조사해 보았단 뜻이었다. 말마따나 며칠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내 입에서는 자연스레 반문이 뒤따랐다.
“하나밖에 없다?”
“네, 하나뿐입니다. 아카데미의 연례행사인 ‘귀향제’에서 으레 이루어지는 그 행진입니다.”
‘귀향제’,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에서 벼락이 쳤다.
그래, 잊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아카데미는 성적 발표 때까지 약 2주 간의 여유기간을 가진다.
이후 성적이 발표되면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열을 이룬다. 그리고 아카데미부터 시내를 행진하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귀향제’였다.
이 귀향제를 끝으로 아카데미의 한 학기는 공식으로 종료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성적이 발표되면 낙제생들도 발표되기 마련이고, 이들은 정든 아카데미를 떠나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낙제생들과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아카데미의 추억을 되짚는 기회였다. 그와 더불어 각 학부의 수석과 차석들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기도 했다.
이처럼 중요한 행사이다 보니, 귀향제 때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다수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심지어 아카데미부터 시내까지 이어지는 길목은 대로였다.
그 행진도 하나의 ‘행렬’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편지를 보고 귀향제를 곧바로 떠올리지 못한 까닭은 존재했다.
설령 암흑교단이라 해도, 그토록 탁 트인 공간에서 그 무시무시한 전력의 행렬을 습격하리라는 발상은 떠올리기 힘들었다.
무려 수천에 이르는 아카데미 재학생과 교수들이 참가하는 행진이 아닌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하나의 군단과 맞붙더라도 열세는 아니었다.
그만한 규모의 행렬을 습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막대한 전력이 필수불가결 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의 문제였다.
만약 네리스 선배의 정보에 틀림이 없다면, 편지를 보낸이가 지녔다는 ‘용의 눈’이 그에 필적하는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내 눈빛이 깊어지자 네리스 선배는 재빨리 말을 이어붙였다.
“그리고 토굴에 대한 정보는 마땅히 없습니다. 최근 시내 외곽에서 몇몇 정체불명의 굴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그나마 유의할 만합니다.”
“그 규모는요?”
네리스 선배는 내 의도를 읽어내려는 듯, 흘깃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곧장 대답을 내놓았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는 되지 못합니다.”
눈치 하나만큼은 빨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듣고 쯧, 하고 혀를 차야 했다.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그 토굴 안에서 나와 편지를 보낸 사람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던 듯했다.
따라서 편지에 나온 ‘토굴’이라면 그 규모가 사람이 들어갈 만한 수준은 되어야 했다.
애초에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는 크기의 토굴이라면야,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 낯빛이 다시 심각해졌다. ‘토굴’이 중요한 정보 같은데, 정작 이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네리스 선배는 내 심기가 불편해지자 더욱 쩔쩔 매는 기색이었다.
물론 네리스 선배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조금 더 정보를 특정할 수 있는 조건을 달아주었다면 더 효율이 나았을 터였다.
나는 뒤늦게나마 조건을 덧붙였다.
“토굴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찾아. 그리고 요즘에 새로 생긴 것뿐만 아니라, 숨겨져 있든 공개되어 있든 토굴이라면 싹 다 찾아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네리스 선배는 내 말에 토 달지 않고 곧장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숫제 내 부하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했지만 말이다.
고개 숙인 네리스 선배의 눈빛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더니,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 마지막 정보를 꺼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용의 눈’에 대한 정보 말인데…….”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네리스 선배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처음에는 왜 그러나 싶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인기척이었다.
나름대로 조심스레 온다고 오고 있지만, 첩보부에 속한 네리스 선배나 최근 들어 유독 예민해진 내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숫자는 둘, 네리스 선배는 한 술 더 떠 그 정체까지 추리해냈다.
“……제5황녀 전하와 그 호위기사인 것 같습니다.”
제5황녀라면 시엔, 그리고 그 호위기사라면 ‘아이린’이라는 기사일 터였다.
둘 다 나와는 악연이었다.
솔직히 그 둘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지만, 지금 나와 황녀는 대립하는 중이었다. 얼굴을 마주치기 껄끄러운 사실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리스 선배는 어떡하겠냐는 듯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굳이 그녀가 말하지 않더라도, 선택지가 둘뿐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용혈 문자를 보여주고 신분을 밝히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속이고 넘어가겠느냐.
내 입이 꾹 다물어졌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자는 당장 이 모든 문제를 일소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용혈 문자를 밝히고 그날 있었던 일이 사실은 황녀를 위한 일이었음을 설명한다면, 오해를 풀리고 나를 향하던 칼날들은 모두 거두어질 터였다.
하지만 전자를 고르기엔 걸리는 지점이 둘이나 있었다.
일단 하나, 내가 용혈 문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
특히 황녀는 더욱 위험했다.
네리스 선배와 달리, 보고체계를 거치지 않더라도 황제에게 직통으로 문의가 가능한 신분이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편지에 따르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 말도 없이 오해와 오명을 견뎌냈다고 했다.
도대체 왜?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리란 추론이 합리적이었다.
내가 그렇게 고민에 잠긴 사이, 네리스 선배는 재촉하듯 내게 말을 건넸다.
“이안 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당한다면, 그 정체를 의심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피하거나…….”
“이미 늦었어.”
나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내 기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미 저쪽은 우리가 향한 방향에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숨겨봐야 도리어 의심만 더 살 뿐이었다.
그러자 네리스 선배는 망막에 의혹을 새긴 채 내게 재차 물어왔다.
“하지만 황녀 전하가 아닌 이안 님께 신문부가 붙었다는 사실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알려지면…….”
“그럴 만한 이유를 만들어 주면 되지.”
굳이 황제의 대리인이 아니라도, 신문부가 내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
네리스 선배의 표정이 멍청해지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네리스, 혹시 비명 잘 지르나?”
“네? 그게 무슨 소리…….”
황녀와 그 호위기사의 인기척이 어느덧 지척에 이른 것은 그때였다.
네리스 선배는 화들짝 놀라 나를 재촉했다.
“이안 님! 자리를 어서 피하셔야…….”
“네리스.”
그리고 황녀와 호위기사가 수풀 속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그 순간.
으득, 하고 도끼날이 생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리스 선배는 그 갑작스런 일격에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 끄, 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비틀거리며 주저앉는 여인의 몸, 네리스 선배의 눈동자에는 어느덧 선명한 공포가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그녀를 위해, 무릎을 굽히며 시선을 맞추었다.
“……의문을 가지지 말랬잖아.”
언젠가 던졌을 그 한 마디에, 네리스 선배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곧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의 입에서 덜덜 떨리는 음색이 흘러나왔다.
“부, 부디 용서를…….”
훌륭한 연기였다.
나는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네리스 선배의 연기력은 발군이었다. 마치 진짜로 나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도끼를 찍기 전에 언질도 줬고, 도끼날도 연골을 깨부술 만큼 깊이는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쓸 만한 사람이라고, 나는 네리스 선배를 향한 평가를 내 안에서 한 단계 상향했다.
앞으로 자주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
네리스는 끅끅거리는 울음소리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지난날의 악몽들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불타는 몸에 부어지던 알콜의 알싸한 향기, 걸레 빤 물을 뒤집어 쓴 채 고개를 조아리던 굴욕, 그리고 단숨에 어깨 관절을 박살내 버리던 손도끼까지.
네리스는, 이안이 싫었다.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죽여버리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암살이라도 해버리고 싶었지만, 상대는 용혈문자의 소유자였다. 네리스에게 반항은 불가능했다.
그것이 지독한 무력감을 선사했다.
네리스는 이안이 싫었다. 진심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