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28)
* * *
아이린 루페미온은 이안 페르쿠스가 싫었다.
두렵다고 해야 할지, 꺼려진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무튼 그녀는 이안 페르쿠스가 싫었다.
그를 싫어해야 할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몇 개나 댈 수 있을 정도였다.
첫 번째,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이린이 모시는 주군에게 물을 끼얹어 모욕을 주었다.
충성스러운 기사로서 참을 수 없는 불의였다. 하물며 그녀의 주군인 시엔은 단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 아닌가.
혀로 시작된 문제는 혀로 푸는 것이 관례였다.
굳이 제국의 귀족과 황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말을 나누는 도중에 느닷없이 물을 끼얹는 것은 중대한 무례였다.
그리고 두 번째, 그는 그만한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도 뻔뻔하기까지 했다.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양 당당한 태도였다. 도리어 검을 뽑으려 들던 아이린을 제지하는 여유까지 부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아카데미 3학년 주제에, 뭐?
후회하기 싫으면 검에서 손 떼라니, 난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모욕이었다.
아이린이 그를 응징할 당위성은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섰던아이린은 그에게 처참히 패배했다.
단 한 번의 공방에 불과했다.
그것만으로도 실력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검로가 틀어지고, 단숨에 그녀의 세계가 뒤집히자 아이린은 실감했다.
이길 수 없다.
정신조차 제대로 차리지 못했는데, 그녀는 땅바닥에 처박힌 채 끊어진 호흡을 가까스로 이어가며 그렇게 생각했다.
사내를 맞상대하기 직전부터 느꼈던 기묘한 불안감의 정체를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상대는 인간이라기보다 괴물에 가까웠다.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는 그 기술, 그리고 망설임 없이 황녀의 근위기사를 메다꽂는 그 배짱까지.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이린에게는 결기라는 것이 남아있었다.
제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군이 모욕을 당했고, 그녀는 단 일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단 한 방이라도 먹여주지 않는다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아이린의 어깨에 도끼가 꽂힌 것은 그때였다.
덜컥, 하고 뼈 사이를 파고드는 도끼날은 그 속력에 비례해 위력 또한 무시무시했다.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그후에는 악몽이었다.
핏물이 튀기고, 뼈가 반파되고, 그 사이로 골수가 노출됐다.
아프다는 감각쯤은 진작에 마비된 지 오래였다. 단지 그녀는 흐릿해진 정신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선명히 느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 더욱 강렬하게 아이린의 심장을 파고들었던 것은, 바로 이안이 툭툭 내던지는 평가들이었다.
“호위기사들의 수준이 처참하군요. 정신 교육이 필요하겠습니다.”
“호위라는 자들이, 주군을 뒤에 두고 망설이기까지 해?”
“네 주군이 당해야 했던 몫이다.”
사내가 내뱉는 무심한 목소리 한 마디 한 마디가 칼날처럼 가슴에 틀어박혔다.
기사로서 자부심이 넘치던 아이린 루페미온에게 있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평가였다.
그녀의 주군이 다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순전히 사내가 자비를 베푼 덕이었다.
아이린을 비롯한 호위기사를 대신 벌해주는 선에서 끝내주었단 점에서, 아이린은 사내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모욕처럼 느껴졌다.
호위로서도, 기사로서도 실격이었다.
상대의 자비를 기대하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자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아양을 떠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한 생각이 반복될수록 아이린은 더욱더 자괴감에 휩싸여야 했다.
실격이었다.
호위로서도, 기사로서도 그랬다.
당연히 아이린은 한동안 병실 신세를 져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린의 우울증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이를 눈치 챈 시엔이 자주 찾아와 담소를 나누었음에도 그랬다.
도리어 시엔의 호의가 더 무서웠다.
그 호의에 걸맞은 호위 기사로 남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녀는 함량 미달이 아닌가.
아이린은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신전을 나설 수 있었다.
차라리 그녀 정도면 나은 수준이었다. 이안에게 팔이 잘린 호위기사 제로스는 한동안 전투 불능 판정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럼에도 퇴원한 아이린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그 기사야?”
“검술학부의 이안 선배한테개털렸다던데.”
“우리 선배라던데, 진짜 존나 쪽팔리겠다.”
아이린에게 가해지는 조롱과 조소는 아카데미 재학생들 사이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놓고 실망했다는 티가 팍팍 나는 근위기사단으로부터 온 우편은 물론이고, 가문의 위신과 명예를 걱정하는 가문으로부터의 편지도 날아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실망시켜 본 적이 없는 아이린이었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린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호위기사 넷이 단번에 당했다면, 그 상대가 예상 이상의 강자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올발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사고하지 않는다.
이안 페르쿠스가 예상 외로 강하다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와 동시에 아이린을 비롯한 호위기사들이 예상 외로 약해빠졌다는 평가도 함께 내리곤 했다.
그것이 상식 속에 현실을 끼워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탓이었다.
루페미온 가문의 자랑스러운 여식이자, 제5황녀의 최측근에 머무르던 아이린은 그렇게 방구석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시엔은 유독 그녀를 포기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방문을 두드리고 몸소 설득에도 나섰던 것이다.
충심도 있지만, 사실은 황녀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는 속물적인 계산으로 시엔을 대했던 아이린이었다. 그 진심에는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린은 방밖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방밖에는 세상이 존재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롱과 비난을 들어야 하고, 그녀에게 실망했다는 내용을 보다 고급스럽게 포장한 내용의 우편물들이 끊임없이 날아오는 세상.
나가고 싶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그녀를 또 다시 바깥으로 끄집어 낸 것은, 아이린이 존경해 마지않는 주군 시엔이었다.
시엔은 이 기회에 아이린이 가진 공포를 털어냈으면 하는 듯 보였다.
수군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지만, 황녀의 보무는 여전히 당당했다. 마치 아이린이 부끄럽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 사실에 깊은 위로를 받으며 아이린은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황녀 전하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리라.
그러한 굳은 각오를 다진 지 단 몇 시간.
아이린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내의 도끼질을 본 직후부터였다.
그 날렵한 연계동작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어 보였다.
그 당시와 똑같았다. 저 사내는 여전한 괴물이었다.
긴장감으로 아이린의 손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들어 갔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사내가 황녀의 도발을 이기지 못하고 도끼를 꺼내들었을 때,
아이린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칼을 뽑아들었다.
지금이야말로 그 모든 굴욕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호위 기사답게, 당당히 두려움과 싸워 이기고 주군을 지키리라.
그러한 일념으로 뽑아든 아이린의 칼이 날카로운 금속성을 퍼트린 그 순간.
‘아이린 경… 검에서 손 떼, 후회하기 싫으면.’
그날에 들었던 무심한 목소리 하나가.
쿡, 하고 아이린의 척추 신경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녀의 몸이 섬찟 굳어버렸다.
그래봐야 아주 짧은 순간의 망설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고수들의 승부에서는 때때로 찰나만이 전부였다.
아이린이 채 검을 뻗기도 전에, 사내의 도끼날은 이미 서늘한 예기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황녀의 어깨 바로 위였다.
느껴지는 묵직한 살의에 황녀의 몸이 덜덜 떨렸다. 경악을 담아 가득 뜨인 그 연회색 눈망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끼를 직시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선이 그녀의 공포를 대변했다.
사내는 그조차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 숙여 속삭였다.
“……그래서, 그 바깥세상이 지금 황녀 전하를 구해줄 것 같습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사내가 당장 황녀의 어깨를 내려찍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물론 그와 마찬가지의 이치로 황녀의 목을 날릴 수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래서 시엔도, 아이린도, 단지 얼어붙은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내리깔린 목소리로 계속해서 속삭였다.
무게감 있는 미성이었지만, 분위기 탓인지 스산함을 주는 음색이었다.
“진짜 세상은 아카데미 안에도, 아카데미 밖에도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보고 듣는 눈앞의 현실만이 진실이죠.”
마치 이 손도끼처럼요, 그러면서 이안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황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곧 닫혔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지만 감히 입을 열 수가 없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린의 눈동자가 황망해졌다.
또다.
또 실망시켜 버렸다.
아이린이 그러든 말든, 사내는 오들오들 떠는 황녀의 몰골을 잠시 감상했다.
그리고 곧 도끼를 거두어 버렸다.
황녀의 의아하다는 눈빛이 이안을 향했다. 무어라 쏘아붙이고 싶은 모양인데,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입술이 헛된 개폐를 반복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이안은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불쌍한 사람은 도끼로 찍지 않습니다. 제가 도끼로 찍는 사람은, 그럴 만한 사람들뿐이라서.”
다시 말해 황녀는 도끼로 찍을 가치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그 까닭은 모르겠으나, 일단 불쌍하니까.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 동정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감정이 아닌가.
황녀가 당장 벌컥 화를 내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울컥한 눈빛이 일순 이안을 향했다.
그러나 그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시엔은곧바로 시선을 내리까는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말에 반박해 봐야 도끼에 찍히고 싶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 자존심 강한 시엔은, 지금 막 사내의 손도끼 앞에 꺾이고 말았다.
아이린은 더욱 참담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마저도 호위 기사인 그녀의 무능 탓으로 느껴졌다. 사내가 아이린에게 비로소 시선을 던진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호위기사. 당신… 그러니까…….”
이안은 그렇게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누구였더라? 아무튼, 마지막에 망설여서 아쉬웠어요.”
사내는 그러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누구였더라’라는 그 말이, 아이린의 심장 깊숙한 곳을 찌른지도 모른 채.
사내에게는 이름조차 기억할 가치가 없는 상대라는 뜻이 아닌가.
지난번까지는 ‘아이린 경’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었는데도 말이다.
사내는 그러한 아이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그의 손이 몇 번 아이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망설이지만 않았다면, 막아낼 수 있었을 텐데.”
투둑, 하고 동앗줄이 끊어지듯 아이린의 마음속 어딘가가 끊어져 내렸다.
사내는 그렇게 떠나갔고, 단 둘이 남은 시엔과 아이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엔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으며, 아이린은 절망감으로 숨조차 헐떡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이린은 생각했다.
실패했다.
저 사내의 말이 맞았다.
그래, 그녀는 결함품이었다. 결코 저 사내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저 사내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누가 그녀를 인정해주겠는가.
그의 앞에서는 영원한 패배자로 남을 뿐인데.
귀벌레처럼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이 아이린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기사단과 가문이 보낸 책망의 편지들이 줄글로 흩어져 절망으로 잠긴 심장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사실이 너무나 숨이 막혀서, 아이린은 제 목을 틀어쥐고 비명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안 페르쿠스, 이안 페르쿠스, 이안 페르쿠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아이린의 낯빛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감이 드러나 있었다.
이겨야 해, 아니면 인정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마지막 가정 끝에는 차마 아무런 말도 붙이지 못했다.
무의미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했다.
지금껏 지켜온 기사로서의 자부심이든, 그녀의 삶이든, 그 무엇이든 전부 다.
아이린의 눈빛이 절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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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앞에서 기묘한 소문을 들은 것은 그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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