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70화 (170/649)

〈 170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34)

* * *

‘제국 황실의 혈통에는 용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대륙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소문이었다. 다름 아닌 제국 황실이 자인하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용’이란 먼 옛날 지상 위를 살아가던 지혜로운 존재들이다.

천신 아루스가 빚은 첫 번째 자식인 그들은 질서와 균형의 수호자였다.

온갖 이종족들과 괴물이 넘쳐나던 신화의 시대에, 인류는 홀로 나약했다. 천신의 대리인이자 약자를 사랑했던 용들이 인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이유였다.

그래서 용들은 인류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었다.

첫 번째 선물은 불꽃이었다.

인류는 불을 다루게 되면서 수많은 변혁을 맞이했다.

요리를 시작했으며, 두터운 털가죽 없이도 겨울을 나게 되었다. 불씨를 지키기 위해 주거지를 옮기는 주기가 길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불꽃은 야금술도 탄생시켰다. 그 이전까지 원시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던 인류의 농업은, 불로 말미암아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두 번째 선물은 문자였다.

구어나 그림으로 지식을 전달하던 인류에게 문자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온갖 지식들이 기록되어 후속 세대로 이어졌고, 연약한 몸뚱아리를 가진 인간들은 지혜를 무기 삼기로 했다.

문자의 탄생과 함께 인류는 드디어 여타의 이종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선물은 마법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도 술식의 기원은 바로 용이었다.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았던 그들은 오래 전부터 세계의 진리를 탐구했고, 그 수단으로 마도를 추구해 왔다.

용에게 마법을 전수받은 인간은 이를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시켜 나갔다.

그 갈래로 오러 연공법이 창안되었고, 연금술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들이 퍼져 나갔다.

지금 인류가 누리는 전성기의 뿌리가 마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 약소종족에 불과했던 인류는 이로써 대륙의 지배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최초의 인류는 이처럼 천신과 용의 총애를 받긴 했으나, 그 힘을 함부로 남용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는 ‘죄’라는 개념이 없었던 덕이었다.

인류는 용에게 받은 선물들을 이종족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대륙은 나날이 발전했고 풍요로워졌다.

델피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류를 배신하고 악신을 추종한 그는 일곱 가지 죄악을 범했다. 이를 바탕으로 악신에게 힘을 내려 받은 그는 수많은 제물을 악신에게 공양했다.

각 종족의 왕과 여왕.

대륙 제일의 부호들과 음유시인들.

그리고 용까지 악신에게 공양함으로써, ‘죄’라는 개념이 없던 인류에겐 죄성이 싹 텄고 세계에는 죽음이 번졌다.

수백 년에 이르는 신마대전 시기에 용들은 모두 멸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간혹 용과 인간의 금지된 사랑으로 인해 그들의 피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는데, 그 증거 중 하나가 ‘용의 눈’이었다.

정의와 질서를 사랑하던 용들은 선천적으로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용의 눈’은 그중 하나로, 타인의 감정이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힘이었다.

용들은 이를 바탕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를 명쾌히 풀어내곤 했다. 사람의 마음마저 꿰뚫어보는 그들은 더욱 신성한 존재로 숭상 받았다.

그들은 강하고 위대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어느 어리고 여린 소녀가 ‘용의 눈’을 타고난 것은, 그래서 불행이었다.

암청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는 어여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때때로 그 연회색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국 황실의 고귀한 피를 타고난 아이였다.

심지어 아름답기도 아름다웠으니, 그 미래가 얼마나 창창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착각이 수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얼마 필요하지 않았다.

그 시작은 시녀 중 하나였다.

시녀는 그날도 황녀의 침소를 청소하고 있었다. 유독 말을 깨우치는 게 빨랐던 황녀는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다.

그러지 않아도 얼마 전 시녀장에게 꾸중을 들었던 터라, 시녀의 행동거지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불과한 황녀였기에 ‘침소’라 해봐야 놀이방에 가까웠다. 온갖 놀잇감들을 정리하던 시녀는, 문득 수상쩍은 시선을 느꼈다.

황녀였다.

그 초점이 맞지 않는 연회색의 눈동자가 시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채자마자 시녀는 섬뜩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공이 살짝 세로로 찢어진 듯했다.

시녀는 다소 머뭇거리다 물었다.

“저, 전하? 혹시 제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시녀장이 괴롭혔구나?”

훅, 하고 들어오는 말에 시녀의 몸이 곧바로 경직됐다.

부릅뜬 눈이 황녀를 향했다. 그러나 시엔은 호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싱긋,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시녀는 더더욱 황녀가 자신과 동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시녀는 곧바로 더듬거리며 변명을 주워섬겼다.

“오, 오해입니다! 황녀 전하, 어디서 들으신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시녀장 님 사이에서는 아무런 일도…….”

“들은 게 아닌데.”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보이는 거야. 방금 전까지 시녀장을 속으로 욕하고 있었지?”

시녀의 낯빛이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툭, 하고 그녀가 들고 있던 빗자루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든 말든 황녀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리 어마마마도 욕하고, 사탕을 내밀 때는 내게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잖아. 그리고 지금은… 으응?”

황녀의 고개가 갸웃갸웃 기울었다. 그렇게 소녀의 머리가 진자운동을 반복할 때마다 시녀의 몸에 이는 떨림은 짙어져만 갔다.

“질척하고, 어둡고… 으응, 기분 나빠. 이 감정은 도대체 뭐…….”

“……화, 황녀 전하.”

더듬거리면서, 시녀는 가까스로 그렇게 한 마디를 짜냈다.

“저,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시녀는 허둥지둥 떠나갔고, 곧 낙향했다.

그 후에 시녀들 사이에서는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린 황녀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낭설이었다.

황녀는 딱히 제 능력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모양이었고,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던 일도 반복되니 곧 의혹은 경계심이 되었다.

누구나 제 속내를 밝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숨기고 싶은 비밀은 하나쯤 있는 법이었고, 그 내밀한 심리까지 완전무결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다만 사회생활을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감정을 여과시킬 뿐이었다.

그러나 황녀 시엔의 앞에서는 그러한 행위조차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숨기고 싶은 진실, 추악한 욕망, 그리고 시시콜콜한 사생활들과 인간관계들까지.

애정과 존중이 가득하던 시선이 싸늘하게 식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적의와 공포는, 어린 황녀의 마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눈은 감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각화된 감정들이 하나둘씩 어린 황녀의 가슴을 도려내었다. 그 전까지는 사랑받고 지내던 황녀라서 더더욱 그랬다.

너무나 어린 나이였기에, 황녀는 설마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토록 적의를 살 일인지를 알지 못했다.

태어난 이후부터 쭉 누군가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시엔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설마 그것이 잘못일 줄은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나름대로 다시 사랑을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먼저 다가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마다, 당사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발작하듯 외쳤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그렇게 황녀를 내려다보는 시녀의 눈동자는,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하나둘씩 사용인들이 그만두기 시작하며 어느덧 시엔이 머무는 궁은 적막에 잠겼다.

그쯤 되니 시엔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공포를 불러일키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시엔이 사람의 속내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은 이미 황궁 내에서 퍼질 대로 퍼진 지 오래였고, 시엔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혐오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 질척한 감정의 격류에 시엔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

건장한 성인조차 이를 견디기는 힘들었다. 하물며 아직 제대로 자라나지조차 못한 어린아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시엔은 나날이 수척해져 갔고, 점차 말수가 적어졌다.

증오가 해맑던 아이의 감정을 찌르고 도려내어 그녀의 심정은 도리어 무감해졌다.

단지 언제나 우울한 낯빛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수록 함께 마음고생을 하는 건 그녀를 낳은 어머니였다.

제4황후는 시엔이 그렇게 된 이후 눈물을 찍어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은 제 딸을 품에 꼭 안은 채로,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오, 불쌍한 내 딸… 세상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해 너를 미워하는구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소녀의 낯빛은 여전히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어조였다.

“어쩔 수 없어요, 사실 사람들은 모두 욕심쟁이니까. 진심으로 저를 좋아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 따위는 없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내 딸아…….”

울먹이면서, 황후는 진심을 다해 제 딸을 위로했다.

“나만큼은, 나만큼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어… 나야말로, 네 유일한 편이다.”

눈물에 젖은 절절한 목소리에도 황녀의 얼굴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참 뒤에, 시엔이 되물었을 뿐이었다.

“……정말요?”

“그럼, 나는 네 어머니잖니.”

그러자 다시 내려앉는 정적, 한참이나 흐느끼며 제 딸의 등을 쓰다듬고 있던 황후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의아함을 품고 제 딸을 내려다보았다.

그 연회색 동공은 초점이 없었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듯이, 시엔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뚝, 하고 황녀의 등을 쓰다듬던 황후의 움직임이 멎었다.

황후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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