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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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이 휩쓸고 지나간 시내의 풍경은 처참했다.
곳곳에 폭심으로 추정되는 구덩이가 패여 있었고, 그 주위로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만 수십이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인파는 셀 수도 없었다.
아카데미의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내의 수많은 일반인들도 참가하는 행사였다.
그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습격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던 나조차도 당황하고 있는 판이었다.
설마 자폭하는 마수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란 모름지기 생존 욕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법이었다. 스스로의 생명을 대가로 폭발을 일으키는 동물이란, 아무리 마수라 하더라도 상식에 위배됐다.
차라리 악의적인 목적에 의해 조작된 생명체라면 모를까.
하물며 나조차도 이러고 있을진대,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벌써 주위는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다짜고짜 도망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책이었다. 당장 자리를 피한다고 해서 습격이 끝날 리는 없었다.
그러한 내 예상을 증명하듯 몇몇 고양이들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마치 수포처럼 증식하기 시작한 살점은, 이내 고양이의 크기를 몇 배나 키워버렸다.
혹을 덕지덕지 단 고양이의 몰골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그르릉거리는 울음소리조차 탁하게 들끓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십에 이르는 전력이었다.
물론 귀향제의 행렬에는 비전투 인원뿐만 아니라 검술학부나 마법학부 소속도 많았다.
아무리 오합지졸이더라도 그들은 하나같이 재능을 검증받은 아카데미 재학생들이었다. 합을 맞추어 대응에 나서면 마수가 수백인들 당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부족한 실전 경험과 피와 살점이 흩날리는 끔찍한 광경이 문제였다.
3학년이나 4학년 중에는 곧바로 무장을 뽑아 대응하는 무리가 있었지만, 1학년이나 2학년은 소리를 내지르며 도망치는 인원이 태반이었다.
나는 매섭게 짓쳐드는 고양이 마수 하나의 머리에 손도끼를 박아 넣었다.
파각, 하고 골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와 뇌수가 질척하게 터져 나왔다. 마수의 머리통을 으깬 손도끼는 곧장 파공성을 일으키며 하늘을 날았다.
팍, 팍, 하고 쓰러진 부상자들을 덮쳐들던 고양이 마수 두 마리의 안면이 차례로 강타당했다. 괴물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 나는 고함을 내질렀다.
“도망치지 마! 부상자부터 수습해!”
내 우렁찬 지시에 몇몇 재학생들이 주춤거리며 부상자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아직 얼떨떨한 모양이지만, 그들도 곧 깨닫게 될 터였다. 내가 내린 지시가 최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대로 내달려 땅에 떨어진 손도끼를 줍고, 검을 들어 고양이 마수들에게 응수했다.
이미 손도끼에 안면을 찍힌 두 마리였다. 핏물이 줄줄 흘러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은 고양이 마수는, 단지 마구잡이로 앞발을 내지를 뿐이었다.
당연히 숙련된 검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반항이었다.
단 한 걸음, 고양이 마수의 앞발이 잘리고 내 검이 그 지척까지 파고들었다. 치켜들어진 검이 단두대처럼 고양이 마수의 목을 절단했다.
서걱, 하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고양이 마수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몸이 곧바로 역방향으로 회전하며 남은 고양이 마수를 처리했다.
마수의 수준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문제는, 그 자폭을 하는 고양이 마수가 몇 마리가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마력으로 강화된 육체라도 그만한 위력의 폭발을 온전히 견뎌낼 수는 없었다. 이는 이미 땅바닥을 구르며 신음하는 몇몇 재학생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1학년과 2학년은 부상자들을 수습한다! 신학부의 사제들은 부상자들 치료하고, 마법학부는 후방에서 지원 시작해. 고학년 검술학부는 당장 뛰쳐나와, 당장! 시민들 대피시키고!”
델핀 선배는 내가 일전에 언질을 준 대로 신속한 대응에 나서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모두에게 미움 받는 시골 자작가의 차남보다야, 유르디나 가문의 후계자가 지시를 내리는 편이 그림이 좋기도 했다.
과연 그 효과가 있는 듯, 델핀 선배가 몇 번 더 고함을 치자 그제야 학생들의 움직임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이미 델핀 선배의 무리에 속한 몇몇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폭발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인구 밀도를 낮추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나는 그제야 조금 안심하고 전장을 누빌 수 있었다.
종횡무진 마수와 마수 사이를 스쳐지나갈 때마다 내 몸에는 핏자국이 튀었다.
골통을 깨부수고, 목을 절단하고, 심장을 찌르고, 핏물과 뇌수와 골편이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릴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가차 없는 폭력에 몇몇 학생들이 섬찟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정도였다.
감탄과 동경, 그리고 공포가 조금씩 섞여 있는 그 시선들.
대부분은 실전 경험이 일천한 저학년들이었다. 나는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그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뭘 봐, 새끼들아. 당장 검 안 휘둘러?”
내 말이 전기충격이라도 되는지, 후배들은 경기를 일으키며 곧장 검을 들었다. 빠릿빠릿한 움직임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후우, 하고 숨을 내뱉었다.
벌써 열 마리가 넘는 마수를 베었다. 이만한 활약이면 조금 숨을 돌릴 만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재빨리 태세를 정비한 덕에 피해는 많지 않았다.
특히 몇몇 학생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나는 물론이고, 세리아나 셀린 또한 침착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델핀 선배 또한 지휘관이자 한 사람의 검사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엘시 선배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화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빛이여, 범람하라!”
새하얗게 달아오른 지상의 전하가 마구잡이로 타올랐다.
파직거리는 소음이 고막을 연달아 후려쳤다. 캬아아아아악, 하는 고양이 마수들의 울부짖음이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 탄내를 풍기며 풀썩 쓰러지는 몇 마리의 고양이 마수들.
엘시 선배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반색하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 잘했지?’라는 말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만약 그녀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겠지.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며 헛된 상상을 갈무리했다. 델핀 선배 쪽도 나와 눈을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조금 이상한 선배들이긴 했지만, 전장에선 누구보다 든든했다. 한동안 이쪽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다만 아직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남아있다면, 민간인 쪽이었다. 아카데미 재학생들과 달리 그들은 전투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행렬의 안쪽으로 민간인들을 밀어 넣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슬슬 여유가 생기는 것을 보니, 그들을 보호할 여력도 충분해 보였다.
물론, 그 착각은 곧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위화감을 눈치 챈 것은 나였다.
푸드덕, 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유독 크고 잦게 들려왔다. 본능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내 눈이 멍하니 하늘 위를 향했다.
새떼가 날고 있었다. 검은 깃털에 핏빛 눈동자를 가진,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괴조(??).
유독 발달한 그 발톱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발에 하나씩 들린 자그마한 생명체가 느닷없이 내 시야 속에서 확대됐다.
고양이었다.
툭, 하고 자그마한 고양이 하나가 떨어져 내린다.
수직으로 이어지는 궤적이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진의 중앙, 성녀를 비롯한 사제들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 입에서는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씹…….”
그러나 그 소리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 채로,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렇게 인파를 밀치고 타넘으며 성녀의 곁으로 다가갔을 때는, 이미 몇 초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성너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떨어져 내린 고양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빙글, 하고 회전하는 동공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내딛은 발을 축 삼아 검면으로 고양이를 쳐냈다. 하늘 위로 다시금 솟구치는 고양이의 자그마한 육체.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나는 성녀와 그녀가 돌보고 있는 환자를 최대한 감싸 안았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둔탁한 충격이 등을 강타했다.
속이 뒤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폭발을 피해 몸을 날리는 대신 누군가를 감싸기를 택한 대가였다. 중상까지는 아니라도 부상은 확실했다.
울컥, 하고 핏물마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성녀가 감내해야 할 충격까지 받아낸 내 몸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땅바닥을 굴렀다.
삐 하는 이명 소리가 들렸다. 일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감각을 되찾았을 때, 처음으로 내 고막을 때리는 소리는 비명이었다.
“꺄, 꺄아아아아악!”
떨어져 내리는 고양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성녀에게 떨어지던 고양이를 제외하고도, 연이어 몇 마리의 고양이가 낙하한 모양이었다.
미친듯이 내달리는 나를 보고 몇몇 학생이 사태를 짐작해낸 듯했지만, 피해를 완전히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방이 엉망진창이었다. 비전투원들이 몰려 있던 방진의 중앙은 너무나 취약했다.
특히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할 사제들의 이탈이 뼈아팠다. 지금 주위를 구르고 있는 이들 중 대다수가 사제 혹은 기존의 부상자들이었다.
몇몇 이들은 영구적인 후유증을 얻을지도 몰랐다. 아니, 목숨을 잃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 암담한 미래를 떠올린 내 눈이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방심했다. 설마 고양이가 아니라 새까지 마수였을 줄은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막아낼 수 있었을 텐데.
절망에 빠진 내 정신을 일깨운 것은, 내 어깨를 마구잡이로 흔드는 손길이었다.
멍하니 시선을 돌리니 울먹이는 여인의 얼굴이 그 자리에 있었다.
성녀였다. 덜덜 떨리는 그녀의 손이, 핏물을 흘려내는 내 입가를 향했다.
“괘, 괜찮아요?! 어, 어,어떡해… 지, 지금 치료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내, 내가 당장 치료해야만…….”
“성, 커헉! 서, 성녀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핏물을 뱉어내야 해서 불가능했다. 더듬거리는 내 목소리를 들은 성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신성력을 일으켰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빛의 세기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력을 다해 나를 치료하려는 모양이었다.
고마웠지만, 나는 곧장 마주치려던 성녀의 두 손 중 하나를 붙잡았다.
당황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부, 부상자… 부상자부터 챙겨요.”
나를 바라보는 성녀의 눈동자가 일순 멍해졌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라는 듯 쓴웃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미, 미쳤어요?! 지금은 당신이 부상자잖아요!”
퍽, 하고 성녀의 손바닥이 내 등을 강타했다.
내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온 것은 동시였다.
당연하지만, 내 허세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황녀가 방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몇 분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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