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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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제5황녀, 시엔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느닷없이 연이어 폭음이 터져 나오더니,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채 울부짖는 소리가 들떠 있던 대기를 죽죽 찢어발겼다. 부상자들이 속출하며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가 황녀를 휩쓸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공포.
황녀의 호흡이 일순 멈췄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이토록 기습적인 감정 변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엔이 지닌 ‘눈’은 모든 종류의 감정을 읽어내기 때문이었다.
단지 사람의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생명을 가진 그 무엇의 속내라도 황녀는 어렴풋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적의나 살의 또한 그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아무리 예상치 못한 습격이더라도 황녀는 이를 미리 알아챘어야 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일찍,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가 폭발하는 그 순간까지 적의나 살의의 편린조차 느끼지 못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죽음을 앞두고 그토록 태연할 수는 없었다. 마치 고양이 마수들은 육체와 감정이 분리되어 있는 듯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황녀의 몸이 절로 떨렸다.
폭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호위기사들이 하나둘씩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만약 호위를 보강하지 않았다면, 황녀 또한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으리라.
어쩌면 다가왔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떠올린 황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들오들 떨던 그녀의 뇌리에, 문득 누군가의 뒷모습이 스쳤다.
검은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를 가진 사내.
그는 황녀에게 호위를 늘리라고 조언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내에게서 느껴지던 감정은 하나같이 진심에서 우러난 걱정뿐이었다.
설마 그 사내는 이 습격을 예견하고 있었던 말인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가설을 현실에 대입하자 그동안 의문이었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졌다.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불현듯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황녀의 눈빛이 멍청해지기에 충분했다. 그만큼이나 그 발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또 다른 의문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한 질문을 떠올린 황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래서는 안 됐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제국 황실조차 습격을 모르고 있었는데 일개 시골 자작가의 차남이 이를 미리 눈치 채고 있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물며 제 평판을 깎고 주변까지 희생해 가며 황녀를 구하려 들다니.
이상했다.
황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믿는 것은 오직 욕망뿐이었다.
지금껏 그로부터 벗어나는 인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안 또한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무런 욕망도 없이 순수한 호의로 희생을 자처하고, 타인을 구해?
몽상이었다. 황녀는 그렇게 애써 이안의 선의를 부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그녀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아이린의 목소리였다.
“화, 황녀 전하… 도주하셔야 합니다.”
흔들리는 음성이 아이린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만만하고 듬직하던 옛날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린은 최대한 황녀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 결론이 바로 도망치자는 것이었다.
워낙 정신이 없었던 터라 황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몇몇 학생들이 대응에 나서고 있긴 했지만, 예고 없는 습격에 방진을 구성하기 위해선 반복적인 훈련과 수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누군가 습격을 미리 알고 대비했다면 몰라, 그렇지 않다면 난전 속에서 희생당할 공산이 너무나 컸다.
도망쳐야 한다.
아이린의 판단에는 틀림이 없었고, 다만 황녀의 마음에 걸리는 지점은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떠나면 호위기사들도 이탈한다.
당연히 전력에서는 커다란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재학생들의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한 황녀의 걸음이 주춤거렸다.
그러나 호위기사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직 황녀뿐이었다.
그들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황녀는 도주를 시작했다. 황녀를 끌어안은 채 내달리는 아이린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전하, 베르라타 궁 지하에 대피로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빠져나가겠습니다.”
일차적으로는 황녀에게 전하는 말이었지만, 이는 나머지 호위기사들과 시녀장에게 하달하는 지시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고개가 곧장 끄덕여졌다. 그때까지도 황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뒤에서 또 다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울분에 가득 찬 비명 소리, 금속과 금속이 마주치는 날카로운 소음이 황녀의 고막을 송곳처럼 찔러댔다.
눈을 뜨면 그들의 감정이 또 다시 보일 것만 같아서, 황녀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
전장을 이탈해서, 아카데미 쪽으로 향하며 깨달은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 행렬을 습격하는 마수들이 주력이긴 했으나 아카데미 쪽을 노리는 마수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아카데미 쪽으로 내달리는 존재들만 보더라도 그랬다.
수없이 많은 고양이 마수들이 사지를 내뻗으며 질주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느닷없이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행인들에게 습격을 가하는 개체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녀석들은 내 눈에 띄는 즉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두 번째, 마수들은 행렬 주위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았다. 길고양이를 가장하여 시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아무리 도주가 빠르더라도 도중에 마수 몇 마리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 탓에 몇몇 학생들은 소수라도 모여 고양이 마수들을 맞상대해야 했다.
그러나 고양이 마수의 숫자는 많았고, 그러므로전투가 지체될수록 가담하는 마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모르긴 몰라도 벌써 사망자가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특히 도망친 학생들은 저학년이나 비전투 인원이 대다수라서 더욱 걱정이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전력으로 땅을 박차야 했다.
그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 듯했다.
몇 마리의 마수를 참살하고, 아카데미 쪽으로 달려가던 내 눈에 아카데미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띄었다.
그들은 고양이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전투를 개시한 지 시간이 꽤 지났는지, 그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고양이 마수들은 끊임없이 충원되는 중이었다.
외통수였다.
고양이 마수들을 쓰러트리는 시간보다, 새로운 고양이 마수들이 전투에 가담하는 시간이 더 빨랐다. 암담한 미래를 그리는 그들의 낯빛이 거무죽죽했다.
마침 고양이 마수 하나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도약, 마수가 노리는 사내는 이미 또 다른 마수를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것이 뻔했다.
그러한 판단이 채 내려지기도 전, 내 팔은 이미 척수반사처럼 허공을 내리긋고 있었다.
팡, 하고 반탄력이 공기를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빛살이 쏘아졌다.
무시무시한 파공성이었다.
멈춘 시간을 관통하는 은빛 직선이 정점에 이른 고양이 마수의 이마를 직격했다. 으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핏물과 함께 뇌수가 튀었다. 고양이 마수가 허공에 떠오른 그대로 뒤로 넘어가자, 마수들을 맞상대하던 일행의 시선이 멍하니 나를 향했다.
그러든 말든, 나는 이미 검을 뽑아든 뒤였다.
마수들의 본능은 곧장 나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모양이었다.
슬금슬금 일행의 빈틈을 노리던 고양이 마수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리고 즉시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달려드는 마수가 한 마리.
그 뒤를 따라 내게 쇄도하는 마수가 두 어마리였다. 첫 번째 희생양의이마에 틀어박힌 손도끼가 되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콱, 하고 손도끼가 제일 앞에서 달려오던 고양이 마수의 뒤통수를 직격했다.
마수는 곧바로 단말마를 내지르며 엎어졌다. 그 뒤를 따르던 고양이 마수들은 당황해서 그 몸뚱아리를 뛰어넘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 중에 곡예를 부린 대가는 참혹했다.
오러를 덧씌운 내 검이 고양이 마수 하나의 머리를 양단했다. 양옆으로 갈린 머리에서 핏물이 터져 나오며 때 아닌 핏빛 강우를 내렸다.
철퍽이며 떨어진 두개골이 그 내용물을 쏟아냈다. 그제야 막 착지한 고양이 마수 하나는 악에 받혀 내게 손톱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내가 고양이 마수의 품을 파고든 뒤였다.
몸을 뒤로 젖히자 자연스레 고양이 마수의 팔이 내 어깨 위로 얹어졌다. 나는 그 힘을 이용해서 그대로 고양이 마수를 메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 마수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내질렀다.
척추가 으깨진 것이다. 나는 게거품을 무는 고양이의 고통을 끝내주기로 했다.
마수의 목덜미에 칼날이 틀어박혔다.
그 직후, 마수의 입에서 부글부글 끓던 새하얀 기포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잦아드는 경련이 생명의 불꽃 하나가 스러져 가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칼날을 뽑아내자 푸슉, 하고 핏물이 뿜어져 나오며 시체가 마지막으로 한 차례 떨렸다. 내 몸은 마수의 피로 덥혀진 지 오래였다.
마수들을 맞상대하고 있던 일행의 시선은 못 박힌 듯 나를 향해 있었다. 단숨에 마수 세 마리를 제압한 내 무위에 공포마저 느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아직은 전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 사이, 그들의 등 뒤로 자그마한 고양이 두 마리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몸집이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했다.
“엎드려!”
그렇게 외쳤는데도 그들은 어어, 하고 당황한 듯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손에 쥔 검을 내던졌다.
핑그르르 회전하던 칼날이 팍, 하고 고양이 마수 중 하나의 두개골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아직 하나는 남아있어서, 나는 내달리던 기세 그대로 학생 하나를 밀쳐야 했다.
드러난 이빨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방은 내주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팔뚝을 치켜들기로 했다.
으득, 하고 뼈와 뼈가 마찰하는 소리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맹렬한 통증에 내 이가 절로 악물어졌다.
내던지듯 내 팔을 문 고양이 마수를 팽개쳤다. 쿵, 하는 충격음이 들렸음에도 고양이 마수는 끝까지 내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곧장 드러누운 고양이 마수 위로 올라탔다. 내 주먹이 몇 번이고 고양이 마수의 안면을 강타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검사의 주먹질은 차라리 망치질에 가까웠다.
팍, 하고 거친 타격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핏물과 살점이 허공을 날았다. 고양이 마수의 안면이 완전히 주저앉을 때까지는 단 1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고양이 마수의 눈동자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바르르 떨리던 고양이 마수의 턱 근육은, 그제야 내 팔을 뱉어냈다.
엉망진창이었다.
팔을 못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힘을 주면 경련이 일었다. 나는 혹시 몰라 준비해 두었던 힐링 포션 한 병을 팔 위에 부었다.
살점 자체는 금방 차올랐다.
아직도 근육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문제지,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마수 시체에 박혀 있던 검과 손도끼를 주섬주섬 회수했다.
오늘 운신에 장애를 일으키는 부상만 벌써 두 번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황녀를 노리고 있을 암흑교단의 진정한 전력을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검을 칼집에 수납하고, 손도끼를 든 내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마수를 맞상대하던 일행의 존재를 떠올린 것은 그때였다.
내 시선이 자연스레 일행을 향했다. 그리고 의례적인 안부 인사가 뒤따랐다.
“야, 너희 괜찮…….”
“……왜 구했어?”
구명지은을 입은 사람이 보일 반응으로는 꽤 참신했다.
두 주먹을 꽉 쥔 채, 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꼴이라니.
내 표정이 일순 멍청해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러고 있는 사람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행들은 입술을 짓씹거나,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 눈빛에 어린 기묘한 열기만큼은 한결같았다.
그 감정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우, 우리는… 우리는 너와 네 친구들을 괴롭혔다고! 그런데 왜 우리를 구한 거야?! 네 팔 한짝까지 내놓으면서!”
그것은 부끄러움과, 후회와, 죄의식이 뒤섞여 만들어낸 적의였다.
미안함이 극에 달하다 보니 차라리 분노로 배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괴롭혔던 상대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다고 하는 현실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이내 쓴웃음을 머금었다.
잠자코 기억을 되짚어 보니 생각이 났다.
레토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뒷골목을 낄낄거리며 나서던 녀석들, 우스운인연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돌려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 그냥 놔둬도 됐잖아…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생각이야?! 우, 우리는 너한테 이미 커다란 잘못을 했……!”
콱, 하고 목덜미에 뭉툭한 둔기가 틀어박히는 소리.
손도끼의 뒷면이 휘감기듯 사내의 뒷목 부근을 강타했다. 사내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더니, 곧 그의 몸이 풀썩 땅바닥 위로 쓰러졌다.
이제 그의 일행들이 멍청한 눈빛을 할 차례였다.
그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걸렸다, 야.”
설마 자진해서 죄를 고백할 줄이야, 이만하면 모범수로 쳐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일행의 눈망울이 두려움으로 물들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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