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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177화 (177/649)

〈 177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41)

* * *

내 앞에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몇 명의 학생들이 서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 망막에 비치는 내 모습이 섬뜩해 보이긴 했다.

마수의 핏물로 젖은 머리카락과 제복, 그리고 잉걸불처럼 전의를 태우는 금빛 눈동자.

심지어 손에는 피 묻은 손도끼까지 들려 있었다. 영락없는 살인마의 몰골이었다.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단 일격에 뻗어버린 사내도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데 한몫했다. 일행의 행동대장쯤 되는 위치가 아닐까 싶었다.

그는 내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 도끼질 한 방에 꿈나라로 간 상태였다.

물론 나는 본격적으로 이들을 응징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우선은 당장 시간이 없다는 점이 가장 컸다.

황녀의 뒤를 쫓고 있는 와중이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황녀를 찾아내야 할 판에 이들의 잘못을 일일이 교정해줄 시간은 없었다.

또, 괘씸하기는 해도 레토에게 후유증이 남을 만한 위해는 가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량을 발휘해서 그 벌은 직전까지 겪었던 생명의 위기로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난생 처음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터다.

무섭고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들의 눈가에는 아직도 물기가 맺혀 있었으니까.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시간을 써가며 폭력을 가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시는 나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다만, 그들은 내가 위협을 가할 것도 없이 내 존재만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울먹이던 일행 중 여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더듬거리는 애원이었다.

그녀의 다리가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후들후들 떨렸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허탈한 마음에 허, 하고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껏 내가 죽인 사람이라곤 길포드 씨 하나뿐이었다. 그조차도 마인이었으니, 순수한 인간을 죽인 적은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외에는 고작해야 팔다리를 몇 번 날린 정도?

솔직히 조금 심한 대응이긴 했다.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나름 자제심은 남아있었던 덕인지, 절단면만큼은 깔끔했다. 재활도 순조롭다는 소식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잠시 황당한 마음이 앞섰지만, 나는 이내 가슴을 가라앉혔다.

그래, 오해를 할 수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그 오해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내 손도끼가 곧장 하늘을 날았다.

“으, 꺄아아아아아악!”

새된 비명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러나 그 공포가 무색하게도 도끼는 여인의 옆에 틀어박혔을 뿐이었다.

지반에 틀어박힌 손도끼가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일행의 눈에 맺힌 두려움이 더더욱 짙어졌다.

죽을 위기를 피하니 또 다시 죽을 위기, 절망적이긴 했다.

물론 나는 그들을 죽일 생각은커녕 심도 있는 육체의 대화를 나눌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들의 공포를 그대로 두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황녀의 행방뿐이었다.

내 낯빛이 진지해졌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단숨에 내리깔렸다.

“……황녀 전하는 어디에 계시지?”

내 스산한 물음에 히이익, 하고 일행 중 하나가 숨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는 더듬거리며 내게 반문했다.

“도, 도대체 황녀 전하를 어떻게 하려고…….”

팍, 하고 지반에 틀어박혀 있던 손도끼가 다시금 내 손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쓰던 정중동(?中?)의 묘리였다. 이미 나아간 궤도를 급격히 꺾어 버리는, 만변의 이치가 손도끼의 궤도를 자유자재로 꺾어 버렸다.

아직 숙달이 덜 된 탓에 내가 궤도를 꺾을 수 있는 횟수는 단 한 번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도 사내의 짧은 용기를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두 글자만을 내뱉었다.

“……대답.”

그 한 마디에 공포에 젖은 사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을 읊어냈다.

“아, 앞서가셨습니다! 호위 기사들이 마수들을 썰어버리고 있으니 벌써 아카데미에 도착하셨을 거예요!”

그제야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호위기사를 보강하라던 내 조언이 효과가 있었던 듯했다.

마지막으로 레토를 건드린 대가 삼아 그들을 몇 번 손봐주려 했던 나는, 정보를 제공한 공헌을 인정해 그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렇게 길을 떠나려던 내 눈에, 문득 덜덜 떨고 있는 일행의 상처가 들어왔다.

얕은 상처가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조금 심각한 부상도 있어 보였다. 아카데미 재학생인 만큼 지혈도 하고 응급처치를 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후유증의 위험이 있었다.

내 낯빛에 잠시 망설임이 어렸다.

어차피 선을 넘은 녀석들이었다. 걱정해 봐야 나만 손해였다.

건드린 놈은 박살내 버린다는 내 성미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나는 혀를 차며 물약 주머니를 열었다. 최후의 힐링 포션 한 병이었다.

툭, 하고 땅 위로 힐링 포션이 내던져졌다.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정적에 잠긴 대기를 울렸다. 다시 한 번 일행의 눈빛이 멍청해졌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심각한 부상에만 써라. 후유증 생기면 다음 학기 퇴학 1순위니까.”

그 말과 함께 떠나가려던 내 걸음이 멈칫했다.

마침 그들에게 남겨야 할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땅을 박차기 직전, 나는 아직도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 이들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그리고 너희, 레토한테 제대로 사과해… 만약 그러지 않으면, 알고 있지?”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이만하면 알아들었겠지, 하고 걸음을 내딛자 단숨에 공간이 좁혀졌다.

송곳처럼 정면을 중심으로 풍경이 색색의 직선으로 찢어졌다. 그 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얼핏 귓가에 닿은 것은 그때였다.

“……네, 넷!”

일행의 답변이었다.

그 목소리는, 단지 공포에만 차 있지 않았다.

다소 화색마저 도는 외침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힐링 포션, 델핀 선배한테 받은 건데.

아무래도 다음에는 몇 병 더 받아놔야 할 듯 싶었다.

**

시내의 혼란은 곧장 아카데미까지 퍼져 나갔다.

소식이 닿아서가 아니었다. 아카데미 또한 마수의 습격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주된 전력이 귀향제의 행진에 참가한 상태였다.

아카데미 내부는 마수에게 대응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의 부지는 넓고 개방적이었으며, 그에 반해 마수들은 많고 길고양이로 위장해 있었다.

하물며 하늘 위에서는 까마귀 마수들까지 고양이 마수들을 떨구고 있었다. 그렇게 침투한 고양이 마수들은 일일이 추적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아카데미에 남아있던 비전투 인원들은 건물 안으로 대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교수를 비롯해 여러 사정으로 아카데미 내에 남은 전투인원들은, 비전투인원들이 피신한 건물들을 중점으로 마수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경비를 서던 병력들은 부지 내로 퍼져 나간 마수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재학생들을 거점이 되는 건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기나긴 아카데미의 역사를 찾아보더라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제국의 위대한 정복황제 아이달로스조차 아카데미 내부로는 병력을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 내에는 수백에 달하는 마수들이 날뛰고 있었다.

심지어 이토록 대규모의 마수를 동원한 습격은, 비단 아카데미가 아니더라도 근래의 예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만한 규모의 마수가 습격한 마지막 기록은 신마대전 당시가 끝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수 중 몇몇은 그러한 사실에 흐릿한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장 달려드는 마수들을 틀어막기도 급급한 판이었다.

고민은 나중에 하더라도 늦지 않았다.

그 전장의 한복판에, 내가 섰다.

아카데미의 부지 안을 날뛰던 마수 몇몇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검을 두어 번 휘두르면 정리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마수의 수는 많았지만 그 위계는 높지 않았다.

잘 쳐줘도 중급 마수였다. 그것도 종종 있는 개체일 뿐, 대다수는 아카데미 1학년도 마음만 먹으면 처리가 가능한 하급 마수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수가 수백에 달하면 유형의 위험을 이루기도 했다.

아무리 하급 마수더라도 비전투인원이나 부상자들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수없이 많은 위병들이 뛰어다니는 까닭이 그것이었다.

설마 아카데미까지 습격할 줄은 몰랐던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엠마는?

당장 떠오른 얼굴이 그랬다. 엠마는 한동안 공방과 기숙사, 신전을 왔다갔다하며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루페시아 영애 일당이 다친 것이 그녀의 탓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죄가 있더라도 내게 있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엠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안의 탓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네 짐이 아니니까.”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를 떠올린 내 발걸음이 홀린 듯 신전을 향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편지도, 황녀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엠마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엠마를, 엠마를 구해야 했다.

다시는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다.

내가 편지의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창백한 얼굴로 병상 위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았을 때부터 그렇게 다짐했다.

또 다시 눈물 짓는 약초꾼을 보고 싶지 않았다.

파리한 안색으로, 앙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느닷없이 시작된 내 질주는 끝없이 이어졌다.

처음은 기숙사.

“엠마?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 어떡하지?”

그 다음은 공방.

“엠마의 공방은 지금 비어 있어. 기숙사에도 없었단 말이야?”

점점 더 내 심장이 조여 왔다. 초조함으로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달리는 걸음걸이가 점점 더 빨라졌다. 숨이 거칠어졌고, 심지어는 마수의 습격도 있었지만 나는 모조리 무시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신전뿐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천신께 기도를 올렸다.

제발, 제발 엠마가 그곳에 있게 해주세요. 부디 늦지만 않게 해주세요.

그 기도가 닿았던 것일까.

드디어 보였다.

엠마는 이미 땅을 굴렀는지 옷이 흙으로 지저분했다. 찢어진 자국도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그럼에도 두 팔을 벌리고 두 마리의 마수를 막아섰다.

그 뒤로는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보였다. 풍만한 몸매가 인상적인 그녀는, 주저앉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더라, 루페시아 영애?

관심조차 없었다. 내 눈에는 엠마를 덮쳐드는 두 마리의 고양이 마수만이 보일 뿐이었다.

정지한 시간 속.

뽑아든 손도끼가 쾌속의 행진을 시작했다. 차라리 빛이 쏘아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고속의 쇄도였다.

도끼날이 돌며 원반과도 같은 궤적을 그렸다.

서걱, 하고 허공에 뜬 고양이 마수의 목이 절단됐다.

마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연이어 그 옆에서 날아들던 마수의 목이 절단될 때까지도 그랬다.

피분수가 폭발하듯 뿜어져 내렸다.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던 고양이 마수들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내달리던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은 채, 나는 고양이 마수의 턱뼈에 발차기를 갈겼다.

콰득, 하고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마수의 머리가 멋지게 치켜들어졌다.

마치 모발세정제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그 품속으로 내가 파고든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마수를 드러눕힌 나는, 안면에 무자비한 주먹질을 가했다.

아니, 주먹질도 필요가 없었다. 그제야 검의 존재를 떠올린 내 손이 곧장 마수의 미간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캬, 캬오오오오오옹!

탁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단말마처럼 울려 퍼졌다. 내 몸이 다시금 뜨끈한 핏물로 후끈 달아올랐다.

당황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나는 반쯤 정신줄을 놓은 뒤였다.

헐떡이면서, 내 입이 한 마디를 뱉어냈다.

“……감히, 엠마를 건드려?”

어느새 시야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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