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43)
* * *
마수의 목이 잘린 자리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내렸다.
뜨끈한 온기가 대지를 적셨다. 뒤이어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날카로운 파공성을 일으키는 도끼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빙글 돌아가는 그 궤적.
그 도끼의 흔적이 그려낸 핏빛 커튼의 사이로, 사내 하나가 비쳤다. 그는 마수 하나의 미간에 칼날을 박아 넣는 중이었다.
고양이 마수 하나가 그 뒤를 덮쳐가고 있었다.
느닷없는 기습에도 사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제 어깻죽지 사이로 칼날을 찔러 넣자, 입을 쩍 벌리고 있던 마수의 입천장에 은빛 검신이 틀어박혔다.
뇌까지 관통당하는 깔끔한 찌르기, 오러가 없다면 불가능한 기예였다.
그는 당황해서 하악질을 하는 마수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쇄도했다. 사내의 검이 빛을 뿜을 때마다 여지없이 고양이 마수 한 마리씩이 쓰러졌다.
탁, 하고 그의 손에 돌아온 손도끼는 곧바로 수직 곡선을 그리며 마수 하나의 골통을 으깨버렸다.
핏물과 뇌수가 튄다. 살점과 뼛조각이 폭우를 맞이한 강물처럼 터져 나오는 그 풍경은,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덧 루페시아 영애조차도 멍하니 그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하다.
얼마 전까지 검술학부 3학년 중에서도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던 사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임기응변과, 차라리 선정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노골적인 폭력이 두 여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수들의 비명 소리는 주변에 있던 또 다른 마수들을 불러왔다.
몇 마리의 고양이 마수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소리를 흘렸다. 그러든 말든, 핏물에 흠뻑 젖은 사내는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하늘 위에서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가 떨어져 내린 것은 그때였다.
그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빙글 회전했다. 엠마는 그 마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안, 조심……!”
그러나 고양이 마수가 자폭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빛과 열의 폭풍이 사내를 휩쓸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자, 이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마수들이 뛰쳐 들어갔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은빛 오러가, 횡으로 그어진다.
전력을 다한 가로베기는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오러까지 덧씌워져 있다면, 그 절삭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번에 두 마리의 고양이 마수가 양단되었다.
썰린 짚단처럼 철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체 두 개가 땅바닥 위로 흘렀다.
그러나 큰 동작은 큰 틈을 만드는 법, 이를 본능적으로 깨달은 마수들의 쇄도가 이어졌다.
사내가 횡베기와 함께 검을 내던져 버렸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는 도약한 고양이 마수 중 하나를 역으로 덮쳐 그 위를 깔고 앉았다. 무자비한 도끼질이 이어졌다.
팍, 팍, 팍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핏물이 튀었다.
마수의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도끼 자국이 남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빈자리를 덮친 마수들의 두 번째 쇄도를 맞이해야 했다.
대응을 포기하고 앞구르기, 대신 비로소 정면에 마수들을 둔 사내는 손도끼를 다시금 투척했다.
마수 하나의 목에 틀어박히고, 또 다시 도끼는 직각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며 남은 한 마리의 목숨마저 빼앗아 버렸다.
이는 오히려 깔끔한 죽음에 속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고양이 마수는, 사내와 난데없는 맨손박투를 벌여야 했다.
도구가 없다면 짐승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마수에게 달려드는 이안은 마수보다도 더 야성이 넘쳤다.
폭발의 잔흔이 여실한데도 그는 지체 없이 마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내리찍듯이 주먹으로 마수의 안면을 강타하는 주먹.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마수의 몸이 지반과 충돌하며 한 차례 튀어 올랐을 정도였다.
그 다음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폭력이 이어졌다.
주먹질이 가해질 때마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처럼 소름 끼치는 소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수의 몸이 한 차례 경련하고, 아무런 미동조차 없어졌음에도 그랬다.
처음에는 감탄과 동경이 어려 있던 루페시아 영애의 눈동자가 점차 공포로 물들었다.
강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잔혹했다.
그것이 저 사내가 품고 있는 본질이었다. 이를 다시금 깨달은 루페시아 영애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핏물과 살점, 사내의 거친 호흡이 걸쭉하게 어우러졌다.
그 금빛 눈동자가 살의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질을 계속했다.
누군가 그의 뒤로 다가올 때까지는 그랬다.
상반신을 끌어안는 그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사내가 원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안은 그러지 못했다.
그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가, 너무나 따스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이안, 이제 괜찮아.”
괴물의 호흡이 그제야 멎었다.
**
나는 왜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하는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 뇌리를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모든 감각은 전투에 집중되어 있었고, 내 몸은 상대를 죽이기 위해 가장 적확한 판단만을 내리고 있었다.
오로지 의식만이 그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했다.
부유하는 사고가 몇 가지 장면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타는 대수림.
스승과 사매를 그곳에서 잃었다. 그날 이후로 사내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고원.
지평선을 뒤덮은 살덩어리들이 보였다. 북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금사자들조차 그를 당해내지 못했다.
북부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가문이 멸문했다.
그리고 대지를 뒤덮은 살점 둥지들과 정체불명의 마수들까지.
사랑해 마지않던 여인의 마지막 숨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는 숨이 막혔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고동치는 심장이 외치고 있었다.
죽여야 해.
그러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수없이 되뇌었던 후회의 목소리가 갯골의 밀물처럼 차올랐다.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미친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번에도마찬가지였다.
이미 피로 젖은 주먹이 높이 치켜들어졌다.
마수에 물린 상처에 더불어, 폭발의 후유증 탓인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에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뼈와 맞부딪히며 살갗이 까진 지 오래였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이제 안면이라고도 부르기 뭐한 곤죽을 내리치기 직전.
훅, 하고 따스한 온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렸다.
호흡이 멎는다. 일순 멈칫거린 내 귓가에, 여인의 속삭이는 소리가 맞닿았다.
“……이안, 이제 괜찮아.”
무엇이, 라고 묻고 싶었다.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세상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델피렘과 그녀가 이끄는 암흑교단이 남아있는 한 반드시.
그러나 그러한 의문을 채 내뱉기도 전에, 내 의식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아.”
낮은 탄성.
내 입이 잃어버렸던 언어를 되찾았다. 헐떡이는 숨소리를 가라앉히며 나는 서서히 주먹을 내렸다.
내 상반신을 껴안은 여인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래봐야 미약한 힘에 불과했지만, 나는 등으로 느껴지는 온기를 더욱 명확히 느꼈다.
울먹임마저 섞인 목소리가 척추를 찌르르 타고 울렸다.
“나, 나는… 나는 괜찮아. 이안, 그러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너는, 살리는 사람이잖아.”
후우, 깊은 숨이 내뱉어졌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까마귀 마수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이 습격은 마수를 죽인다고 끝나지 않는다.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군세였다. 하지만 마수는 이성이 없었고, 그렇다면 이처럼 조직적인 습격은 반드시 누군가가 배후에 존재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원흉을 제거해야 했다. 마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누군가.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응?”
애절한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내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엠마의 말대로였다.
목적을 착각해선 안 됐다.
폭력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도 엠마는 나를 껴안은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엠마.”
내 호명에 소녀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나는 살그머니 힘을 주어 내 가슴팍을 감싼 여인의 팔을 풀었다.
뒤돌아서자, 붉은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내 손이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 위로 얹혀졌다.
“괜찮아?”
처음에 엠마는 화들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제야 스스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듯했다. 점차 그녀의 새하얀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눈치를 피하던 엠마의 입이 겨우겨우 열렸다.
“……응.”
그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져서, 나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 웃음소리가 길어질수록 엠마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졌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그럼 됐어.”
그래, 엠마의 말대로였다.
나는 살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내겐 살려야 할 사람이 하나 남아있었다.
제국의 5황녀, 시엔.
아무 말 없이 검과 도끼를 챙겼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나를 막아서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어째서 구한 거죠?”
금빚 머리카락에 벽안을 지닌 귀족 여인, 루페시아 영애였다.
그녀는 아직도 두려움을 지우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용케 비틀비틀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흔들리는 동공이 나를 향했다.
“에, 엠마는 평민 계집애고… 설령 구하더라도 난 죽게 둬도 됐잖아요! 오히려 후환도 없어질 텐데…….”
횡설수설에 가까운 말이었다.
나는 애초에 루페시아 영애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엠마를 구하다 보니 어쩌다 그녀도 구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미쳐서 마수를 썰던 도중에 루페시아 영애를 덮치던 녀석을 죽인 것도 같고.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올 때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러한 의문보다도 먼저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루페시아 영애.”
여인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내가 또 다시 그녀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동자였다.
그러든 말든, 나는 조금 슬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루페시아 영애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단지 눈을 부릅뜬 채로, 그녀는 토막난 의문성을 내뱉을 뿐이었다.
“……네, 네?”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루페시아 영애.”
생명의 위기를 넘긴 사람, 그리고 내 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여인에게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이었다.
그러나 루페시아 영애는 내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 동그랗게 뜨인 눈이 당혹감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나마 대답했다.
“괘, 괘, 괘… 괜찮은데요…….”
“그럼 됐습니다.”
나는 슬쩍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그것이 끝이었다.
아직 내겐 가야 할 곳이 남아있었다.
그러한 내 손을 붙잡는 것은, 늘 그랬듯 걱정이 넘치는 엠마뿐이었다.
“이, 이안… 어디를 가려고?”
“사람 구하러.”
담백한 한 마디였다.
그 몇 음절로 엠마의 걱정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내 입에서는애써 태연함을 가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걱정 마, 네가 준 물약들도 있잖아.”
그러면서 나는 보란 듯 물약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새 부피가 많이 줄어든 주머니를 보며 엠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짧은 작별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사실 몸이 더럽게 아팠다.
자폭 공격에만 두 번을 당했고, 마수에게 팔을 물린 상처도 완치되지 않았다. 여러모로 엉망진창이었지만 나는 가야만 했다.
베르라타 궁의 지하 토굴.
그곳에 이 모든 이야기의 종막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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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르라타 궁의 지하 토굴.
“으, 아, 으… 꺄, 꺄아아아아아악!”
그곳에서는 황녀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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