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44)
* * *
황녀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호위기사들을 대동하고, 황족들만이 알고 있다는 비밀 대피로로 진입했음에도 그랬다.
베르라타 궁의 지하에 위치한 토굴은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건재했다. 은은한 주홍빛을 발하는 발광체들이 말간 조도(??)를 흩뿌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늘어진 조명만 수백에 이르렀다.
얼마나 제국 황실이 이 토굴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 일원인 시엔조차도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고작해야 토굴이 아닌가.
만약 비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면 보다 본격적인 공사를 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조성한 공간이라기에는, 곳곳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수백에 달하는 마수들이 아카데미를 들쑤시는 중이었다.
한가한 고민에 빠져 있을 틈은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녀는 습관처럼 불안을 호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애초에 수백이 넘는 마수들이 아카데미 주변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이상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게다가 귀향제의 행렬을 습격한 마수들은 통상적인 마수와 결이 달라 보였다.
처음에는 길고양이인 척을 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자폭을 하거나 몸집을 키워 사람을 덮치는 마수들이라니.
온갖 정보를 다 접하는 황녀라지만, 그러한 마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마수들에게서는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이 느껴지긴 하는데 적의나 살의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감정 제어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습격 직전에는 그 공격성을 드러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를 습격한 마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습격 직전의 전조를 보이기는커녕, 전투를 하는 중에도 어떠한 감정의 파문도 엿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 길고양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발톱을 휘두르고 있는데, 정작 그 마음만큼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황녀는 그 점이 못내 두려웠다.
자고로 시각은 권력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관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볼 수 있는 것은 제어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소유할 수 있다. 그래서 시엔은 제 눈을 지독히 원망하면서도 사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남들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막 그 능력의 한계가 노출된 참이었다.
갑작스러운 습격과 더불어 황녀가 제정신일 수 없는 까닭이었다. 늘 당당하던 그녀는, 도무지 불안감을 벗어던질 수가 없었다.
발작적으로 시엔의 연회색 눈동자가 주위를 훑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를 둘러싼 감정의 파도가 느껴졌다.
긴장감과 초조함, 그리고 황녀를 향한 호의와 묘한 내적 갈등까지도 흐릿하게나마 시야에 잡히고 있었다.
이것이 정상이었다.
적어도 이중에는 황녀를 향한 적의를 드러내는 인물이 없었다. 그녀는 애써 헛된 걱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믿을 만한 사람들만 두기 위해 고르고 고른 인물들이었다.
혹여 황녀를 배신할 걱정은 없었다.
그러한 시엔의 불안을 눈치 챈 것인지,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미모의 여기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 무언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질문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양 일행의 시선이 황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들도 내심 황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차였다. 그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고, 이곳에서 가장 고귀한 피를 이은 여인이었으니까.
옅게 배어나오는 그 불안감에 황녀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윗사람이 돼서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 버렸다.
앞으로는 최소한 티는 내지 않기로 작정하며, 시엔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으응, 아니… 조금 놀란 것뿐이야. 그보다, 얼마나 더 가야 될 것 같아?”
오랜 시간 황녀를 보필해 온 아이린은 조금 미심쩍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 호위기사에게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그녀는 이내 눈을 감고 지나온 거리를 가늠했다.
아이린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올 때까지는 얼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삼분지일 지점까지는 온 것 같습니다. 원하신다면 이대로 쭉 나아가셔도 되고, 휴식을 취하셔도 됩니다. 혹여 토굴 바깥에도 마수 잔당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황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어차피 이 토굴의 위치는 비밀이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5대 귀족 가문의 후계자들이나 존재를 귀띔 받은 바 있을 터였다.
마수들이라고 한들 이곳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다면 만일을 대비해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너무 일찍 토굴을 벗어나 봐야, 바깥의 혼란에 휩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수들이 많긴 해도 아카데미의 전력은 만만치 않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분명 사태가 진정되리라는 판단이 섰다.
결정을 내린 황녀의 입이 침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쉬자. 너무 오래는 말고, 잠깐 숨 돌린 다음에 출발해야겠어.”
그 말에 호위기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내뱉는 숨에서 단내가 느껴지던 차였다. 고속으로 아카데미까지 향하는 길을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수들까지 썰어낸 그들이었다.
아무리 익스퍼트에 이른 강자들이라 하더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제국 황실의 첩보요원이었지만, 이제는 은퇴한 지 오래된 시녀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지친 낯빛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아이린이었다.
두 사람은 황녀의 최측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둘이서 의견을 취합한 뒤 황녀에게 건의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또한 상하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
부하들이 회의를 해서 안을 정하고, 황녀는 그 안건의 가부만을 결정한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황녀는 이내 그 두 사람으로부터 신경을 꺼버렸다.
그랬다.
그래서 시엔의 인지는 한동안 현실로부터 동떨어지고 말았다.
푸슉, 하고 핏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녀는 일순 그 청각적 자극에 반응하지 못했다. 단지 무슨 일이 있나, 하는 나른한 시선을 그 진원지로 던졌을 따름이었다.
아니, 황녀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둘러앉은 모두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어깨에 단검이 틀어박힌 아이린조차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멍하니 제 앞의 여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친 낯빛을 한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
그녀의 눈빛에서는 아무런 적의나 살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한 불일치가 황녀를 비롯한 일행의 현실감각을 거세시키고 있었다.
삐걱이며 움직이는 그 손에는, 어느덧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이 맺혀 있었다.
“시, 녀장……?”
아이린은 제 어깨를 움켜쥔 채로, 그렇게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녀와의 인연은 제법 오래 되었다. 벌써 수년은 됐을 터였다.
아이린은 알았다. 시녀장이 얼마나 황녀에게 애정과 충심을 품고 있는지.
시녀장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네, 아이린 경? 무슨 일이죠?”
그 태연한 태도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다.
아이린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제 어깨를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금 시녀장을 바라보았다. 시녀장은 어떠한 이상도 느끼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아이린은 느닷없는 한기를 느껴야 했다.
본능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린은 곧장 남은 손을 검 손잡이로 가져갔다. 그리고 아직도 멍하니 앉아 있는 호위기사들에게 일갈했다.
“당장 제압해! 전하를 피신시켜!”
“네? 그게 무슨 소리…….”
여전히 시녀장은 아이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든 말든 아이린은 단숨에 칼을 뽑아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닮은 청색의 오러가 허공에 궤적을 남겼다. 시녀장은 마치 물 위에 뜬 부평초처럼 그 검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실들의 윤무.
시녀장의 몸이 두 차례 회전하자 두 손에 맺힌 마력의 실들이 복잡한 움직임을 보였다. 반탄력을 타고 일어난 백색의 끈이 뱀처럼 아이린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처음 보는 기술이었지만 아이린은 그 뿌리를 대강이나마 짐작해냈다.
제국 첩보부는 온갖 기기묘묘한 무장들을 다룬다. 개중에는 무장조차 없이 싸우는 법을 통달한 요원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이는 시녀장이 한창 현역이던 시절의 실력이리라.
그러나 이미 몇 년 전에 익스퍼트에 오른 아이린의 신체능력은 절정이었다. 은퇴한 요원 따위에게 밀릴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 분명 그래야 했다.
하지만 마력의 실이 그녀의 검을 휘감은 순간, 아이린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혈도를 타고 흘러야 할 마력의 흐름이 정체되어 있었다.
어째서,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
스르륵 검을 타고 휘감기던 마력의 실이 그녀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으깨지는 감각이 뇌리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끄으, 크으으으윽!”
“아이린 님!”
이를 악물고 아이린이 비명을 참아내는 사이, 태세를 정비한 호위기사들이 곧바로 쏘아졌다.
단련된 기사들의 돌진은 대포알과도 같았다.
특히 다수의 기사들이 복잡한 검망을 구성하며 내달린다면, 그 연격을 막아낼 수 있는 실력자는 얼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녀장은 해냈다.
그 수단은 간단했다.
꿈틀거리며 솟아오른 마력의 실 하나가 호위기사 중 하나의 발목을 건드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발목을 중심으로 호위기사의 몸이 우락부락 부풀기 시작했다. 호위기사는 제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기사들의 쇄도가 채 시녀장에게 닿기도 전에, 토굴 안을 빛과 열의 폭풍이 휩쓸었다.
쾅, 하는 폭음이 뒤늦게 고막을 뒤흔들었다.
비명과 함께 호위기사들이 나가떨어졌다. 폭탄의 매개가 된 기사는 한 줌의 핏물로 화해 후두둑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도 시녀장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그녀의 손이 몇 개의 독침을 쏘았다.
파바박, 하고 신음하는 호위기사들의 혈도에 틀어박히는 독침.
“끄, 끄으으…….”
아무리 폭발을 정타로 맞아도 슬슬 일어나야 정상이었지만, 독침을 맞은 호위기사들은 움찔거리기만 할 뿐 도저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린의 의식이 점차 흐릿해졌다.
마력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시야에 시녀장을 담으며,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 슨 짓을… 한 거야…….”
그럼에도 시녀장은 두어 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이린 경, 왜 그러세요? 왜 다들 누워 있고… 황녀 전하?”
시녀장의 눈동자가 흘깃 시엔을 향했다.
황녀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대로였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으로 보더라도, 시녀장의 심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걱정마저 묻어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마치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과 그 안에 들어간 인격이 별개의 인물인 것처럼.
아카데미를 습격한 마수와 마찬가지의 양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황녀의 등줄기에 섬찟한 한기가 흘렀다.
마수들의 목표는 귀향제의 행렬이나 아카데미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리고 시녀장은 황녀의 경악 어린 시선을 마주한 채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 괴리가, 시엔은 견딜 수 없을 만치 두렵게 느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