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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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베르라타 궁의 입구부터 난관이었다. 그곳은 사시사철 아카데미의 위병들이 지키고 서 있던 탓이었다.
나와 황녀의 관계가 틀어졌단 이야기는 아카데미 내에서 널리 알려진 바 있었다.
당연히 내 출입이 허가될 리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용혈 문자를 보여주며 비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한테나 보여주기에는, 내 용혈 문자에 얽힌 사정이 복잡했다.
내가 용혈 문자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뭐.”
내 말에 안심했다는 듯 위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마수들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데, 아카데미 내에서 ‘미친 개’라는 인식이 박힌 내가 날뛸까 걱정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혹시 몰라 타이르듯 몇 마디를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낙 요즘 시국이 흉흉하다 보니…….”
그러나 위병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팍, 하고 그의 관자놀이에 도끼가 틀어박혔기 때문이었다.
비록 날이 서지 않은 모서리라지만, 금속덩어리는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흉기로 기능할 만했다.
위병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더니 사내가 하나가 철푸덕 쓰러졌다.
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동료 위병 하나가 창을 내찌르며 외쳤다.
“미친 새끼! 이럴 줄 알았……!”
그러나 기사도 아니고 위병 수준에서 나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내찔러지는 창의 궤적을 타고,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내 몸이 빙글 회전했다.
선공을 가한 쪽은 위병이었다.
하지만 정작 선수는 내가 취하고 있었다. 창대를 타고 회전하듯 내 몸이 품을 파고들자, 위병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반응이었다.
원심력을 타고 휘둘러진 손도끼가 다시 콱, 하고 위병의 옆머리를 강타했다. 그는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창을 내지르던 자세 그대로 엎어졌다.
오랜만에 써보는 회절(回?)이었다.
그동안 감이 죽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위병이 내찌른 창의 속도가 워낙 느려 본능적으로 쓰고 말았다.
실전을 대비한 연습용으로는 적당한 상대였다.
그러나 위병의 두려움은 개개인의 실력에 있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위병이란 실력보다는 그 숫자로 압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 증거로 내 앞에 네 명의 위병이 주춤주춤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과연 황족이 머무는 기숙사다웠다.
지금 바깥이 난리가 났는데도 아직 여섯 명이나 남아있다니, 심지어 베르라타 궁 내에는 이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텐데 말이다.
토굴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지라 아직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내저으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창이 달려들자 나는 손도끼로 창대를 후려쳤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창대는 일격으로 부러지지 않았다.
다만 캉, 하는 소리를 일으키며 막대한 떨림을 전달했을 따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위병은 어, 어, 하는 얼빠진 소리를 내더니 손에서 창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로 쇄도하는 두 자루의 창.
교차하듯 내질러진 창날은 내 좌우를 겨누고 있었다. 내 손도끼가 노리고 있던 곳은 그 두 자루의 창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매서운 속도로 내리쳐진 손도끼가 두 개의 창날을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급격히 하강한 두 창대의 교차점을, 내 발길질이 다시 한 번 후려쳤다.
두 번에 이르는 고도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두 자리의 창이 하늘을 날았다. 마지막 한 명은 주춤거리고 있었다.
겁이 많은 사내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공포심을 줄여주기로 했다.
콱, 하고 내던져진 도끼가 위병의 이마에 직격했다.
힘을 조절했으니 두개골에 상흔이 남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 충격량만으로도 뇌를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풀썩 하나가 쓰러지고, 맨손이 된 내가 창을 놓친 위병들 사이를 누볐다.
팔꿈치로 명치를 하나, 발길질로 명치를 또 하나, 남은 하나는 주먹으로 턱뼈를 후려쳤다.
툭, 툭, 툭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세 사람의 몸이 땅바닥 위로 쓰러졌다.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떨어져 있던 손도끼를 주워 들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위병이 쓰러질 때까지는 채 몇 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익스퍼트 못지않은 무위라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내 검에 맺히는 오러의 광채는 아직도 미약하기만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경지가 높아도, 실전에는 수없이 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단순히 마력이나 오러의 수준만을 두고 섣불리 승부를 점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못내 답답해하는 까닭은, 어느덧 그 ‘익스퍼트’라는 벽이 잡힐 듯 말 듯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이 벽을 넘어서 강자의 반열에 들어선다. 반면 누군가는 평생 이 벽을 넘지 못하기도 한다.
당연히 나는 그중 전자가 되고 싶었다.
‘익스퍼트’에 도달하는 것은, 단순히 오러가 강해졌다는 증명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심상이 구체화되며 오러가 현실을 왜곡하는 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리아처럼 익스퍼트에 막 오른 검사들은 아직 오러의 특성을 개화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세리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의 심상을 가다듬으리라.
그러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얻게 되는 셈이었다.
오러의 힘은 예측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실전에서도 어마어마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네리스 선배와의 일전을 벌일 때처럼.
그때는 참 고생이 많았다. 솔직히 말해 패배 직전까지 몰렸었으니까.
그만큼이나 오러 활용에 능숙한 상대와 겨루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답잖은 고민을 계속하던 나는, 문득 데렉 교수님의 말을 떠올렸다.
‘일념(一?)’을 깨우쳐야 한다고 했던가.
아직은 알 수 없는 말이라, 내 걸음걸이는 베르라타 궁의 지하로 이어졌다.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내달려 그를 마주친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여인의 옷을 입은 암흑사제, 미트람.
그가 홍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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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 안의 상황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호위기사들이 여럿이었다. 심지어 그들의 몸에는 폭발의 잔흔이 남아있었다.
폭심지로 추정되는 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
본래 통상적인 폭탄이라면 그곳에 그을린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남은 폭발의 흔적이라고는, 한 줌의 핏물과 사방으로 튀긴 육편과 골편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곧장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냈다.
자폭하는 고양이 마수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다만 그 크기로 보아 고양이 마수 정도로 작은 크기는 아니었고, 아마 호위기사 중 하나가 폭발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아무리 암흑교단이라지만 사람을 폭탄으로 쓰다니.
미소 짓고 있는 묘령의 여인을 응시하는 내 시선이 깊어졌다. 점점 더 노골적인 색채를 띠는 내 적의에, 그녀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침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안 페르쿠스… 아차차,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했던가요? 제 이름은…….”
“미트람.”
불현듯 떠오른 이름이었다.
레토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고아원의 장부에 암흑사제의 이름이 남아있었다고.
몰려드는 마수들을 보며 살점 둥지와 살점 씨앗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토록 생명체를 멸시하듯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드물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내 앞에, 그 원흉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서 있었다.
잠시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던 여인은, 이내 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답입니다. 과연, 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나요?”
“고아원 때부터 신세 많이 졌어.”
미트람은 내 말을 듣고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다 얻어걸린 것에 불과했지만, 미트람은 일련의 대화를 통해 모종의 확신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그때부터 저를 뒤쫓고 있었군요… 이럴 수가. 제국에 이만한 인재가 남아있다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살점이 곧 잘려나간 미트람의 두 팔을 복원했다. 그녀는 여유로운 태도로 흘깃 제 뒤에 엎어진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암청빛 머리카락에 연회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풀린 지 오래였다. 아무리 봐도 마취독에 당한 모습이었다.
아직까지 정신줄을 붙들고 있는 것이 용할 정도였다.
‘용의 눈’은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힘을 부여해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용의 혈통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 마법적 재능과 독에 대한 저항력도 강할 터였다.
그리고 미트람의 옆에 쓰러져 있는 여기사도 마찬가지겠지.
호위기사 중에 최고 책임자라고 들었다. 당연히 최고의 실력자이기도 할 터였다.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시원한 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미모의 여기사란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부류에 속했다.
지금으로서는 그 둘이 정신을 잃지 않은 마지막 인물들인 듯했다.
물론 딱히 도움은 되지 않을 듯하여, 나는 그들의 안전에 유의하며 슬쩍 미트람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입가에는 노골적인 조소가 맺혀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토록 훌륭한 인재를 이 위대한 용의 후예께서 박대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말이죠, 이… 쓰레기가!”
팍, 하고 여인의 발이 엎어진 황녀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황녀의 얼굴이 곧장 흙바닥에 틀어박혔다. 숨이 막히는지 그녀는 옅은 몸부림을 쳤다.
“으부웁! 읍, 으으읍!”
마취가 도는 와중에도 생존 욕구는 남아있는 듯했다.
황녀가 탁탁 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쳤지만, 미트람은 그 정수리를 잘근잘근 짓밟을 뿐이었다. 푸른 머리카락의 여기사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들었다.
그러나 반쯤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이내 그대로 풀썩 엎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강한 독에 당하면 끝이었다.
일반인보다 오래 버틸 수는 있어도 자체적으로 독을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기사들은 해독제를 상비하곤 했다.
지금 보니 그 해독제를 마실 시간도 없이 당한 듯했지만 말이다.
내 눈이 침착하게 미트람을 향했다.
그가 황녀를 진심으로 죽일 생각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자극하기보다는, 최대한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인질의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이, 이… 쓰레기, 쓰레기! 하나같이 온실 속의 화초들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안 페르쿠스?! 당신도 귀족이지만, 그만큼 사선을 걸어 나왔으니 알겠죠!”
한동안 황녀의 머리를 짓밟고 있던 그는 팍, 하고 황녀의 머리를 차버렸다.
황녀의 몸이 뒤집히며, 켈록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입에 머금은 흙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1학년을 상징하는 순백의 망토도 흙먼지로 더러워진 지 오래였다.
황족이 당할 만한 꼴은 아니었다.
“진정한 위기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권력을 앞세워서, 제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에만 급급하죠! 이 여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빛을 잃은 황녀의 연회색 눈동자에 이슬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내 한 줄기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공포와 후회,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인 한 방울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미트람의 분노를 받아들였다.
“당신이 아무리 애써도 보답 따위는 없어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까닭을 찾기 마련인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푸흡, 이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드릴까요?”
흐으, 흐으, 하고 숨을 들이키던 황녀의 눈동자에 절박한 감정이 어렸다.
제발 그만하라는 눈빛, 그러나 미트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이 이어질수록 황녀와 여기사의 눈에 어린 절망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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