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01화 (201/649)

〈 201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65)

* * *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처음으로 맞이한 손님은 네리스 선배였다.

물론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성녀를 마주친 것이 더 먼저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신전의 상주인원이었으니, ‘손님’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따라서 날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은 네리스 선배가 되었다.

다만, 네리스 선배는 그 영광을 차지하고도 그다지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도리어 공포마저 느끼고 있는 모양새였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대외비로 해달라는 부탁을 전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성녀와 네리스 선배 둘 다에게.

네리스 선배는 그 까닭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이유라 해봐야 어차피 별 것 아닌 사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야 했다.

“왜 그래요?”

“아니, 저… 그…….”

네리스 선배는 내 물음에도 다소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한참이나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결국 각오를 다졌는지 눈을 질끈 감은 채 물었다.

“어, 어째서! 소, 손도끼를 던졌다 받았다 하고 계신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눈이 허공으로 던져진 손도끼를 향했다.

직선을 그리며 올라간 손도끼는, 곧장 하강하며 다시금 내 손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하늘 위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나는 손의 감각을 되찾는 중이었다.

그 정도야 침대에서 상반신만 일으키더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속했으니까.

아무래도 네리스 선배는 그 점이 의아했던 듯했다.

그래서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야, 곧 써야 하니까요.”

네리스 선배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 눈에 맺힌 공포의 기색이 점점 더 짙어지더니, 이내 네리스 선배는 바들바들 떨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흐릿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소, 송구합니다. 부디 그간 잘못한 일이 있었다면 기탄없이 말씀을…….”

“무슨 소립니까?”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지만, 네리스 선배는 여전히 흘깃흘깃 내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내 입에서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리스 선배가 이토록 무서워하니 감을 되찾는 것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될 듯 싶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손이 도끼를 탁자 위에 내려놓을 때 쾅, 하는 소음이 울려퍼진 이유였다.

네리스 선배는 히끅, 하고 울상을 지으며 딸꾹질을 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좀 진정했기를 바라면서, 굳이 그녀를 불러온 사정을 설명했다.

“황녀 전하,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 그것이…….”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화들짝 놀란 네리스 선배가 진정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더듬거리면서 이어진 네리스 선배의 설명은, 결국 성녀에게 들었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나한테 한 짓이 있으니 미안해서 전부 뒤집어 씌웠다?”

“네, 네, 그렇습니다.”

“황녀 전하는 또 그 말에 영향을 받아서 지 잘못인 줄만 알고?”

“네, 아마도…….”

내 손이 절로 이마 위로 얹어졌다.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개판이네.”

사실 황녀의 죄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물론 내 주변 사람까지 건드린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행동이긴 했다. 그러나 제국의 황족을 하급귀족이 건드렸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레토나 셀린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지 않기도 했고.

황녀는 이제야 갓 성인이 된 소녀였다.

어린 시절에 상처도 많고, 인간불신도 심했다. 당연히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럴수록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미숙함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세상에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고꾸라질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다만 황녀가 내게 잘못을 저지른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네리스 선배는 그 점을 염려했는지, 곧 내 눈치를 살피며 물어왔다.

“그, 여동생 분의 상단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늘 아침 받아든 편지봉투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여동생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리가 없던 네리스 선배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심코 사정을 설명하려던 내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굳이 지금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나는 더욱 힘을 주어 재차 말했다.

“제 여동생은,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보다 네리스 선배… 예전에 저한테 썼던 그 마취독 말입니다.”

느닷없이 꺼낸 과거의 기억에 다시금 네리스 선배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뻣뻣이 몸을 굳힌 채로 식은땀을 흘리다가, 이내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고작 아카데미 학생 하나에게 제국 첩보부의 지부 하나가 박살이 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네리스 선배는 또 다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네. 그때 감히 주제도 모르고 그러한 독을…….”

“그거 독침에 발라서 사용하는 겁니까?”

네리스 선배의 말이 우뚝 멎었다.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조심스레 내 낯빛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내 속마음이 읽힐 리는 만무했다.

그야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어본 질문이었으니까.

네리스 선배는 여전히 경계의 기색을 지우지 않으며 말을 이어갔다.

“물, 론… 그렇지 않습니다. 대수림에 사는 ‘돌고치 거미’라는 희귀한 생명체에게서 채집한 독입니다. 우선 체내에 꽂아 넣기만 하면 금세 효과가 돌죠. 마비는 물론이고, 주된 독효는 아무래도 체내 마력의 응고화…….”

처음에는 흐릿한 목소리로 시작된 설명이었지만, 워낙 독을 좋아하는 네리스 선배는 곧 신이 나서 온갖 정보를 늘어놓고 있었다.

열의가 넘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야만 했다.

“그거 하나만 주시죠.”

그러자 네리스 선배는 울상을 짓고 말았다.

“그, 무척 귀한 거라 첩보부 내에서도 한정된 인원이 소량만…….”

“하나 주세요.”

결국 네리스 선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야만 했다.

그 눈동자에는 흐릿한 물기마저 맺혀 있었다.

그렇게까지 독이 좋나, 나는 속으로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제국 황실을 위해서였으니까.

네리스 선배를 떠나보낸 직후, 나 또한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신전을 나섰다.

물론 성녀에게 허락은 받지 않은 채였다.

나중에 한참은 잔소리를 들어야 할 듯 싶었다.

**

황녀를 찾아 떠난 내 여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찾아가 보니,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쓰러진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황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몇 번 가슴을 두드리며 헛구역질을 해대는 황녀의 모습은 얼핏 보기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다가오는 사람마저 핏발 선 눈으로 쳐내기까지.

수군거리는 말소리에는 황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대개는 황녀를 욕하는 말이었고, 아니면 황족이 돼서 체신머리가 없다는 한탄이 대다수였다.

물론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사실은 하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황녀가 저토록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을 이들은 모른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용의 눈’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한 기억이 있었다. 어머니마저 목을 졸랐으니, 그 상처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다시 왕따를 당하고 있으니, 황녀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심지어 암흑사제에 조종당하는 시녀장에게 살해당할 뻔하기도 했다. 일평생을 함께한 측근이었는데 말이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욕받이였으니까.

그럼에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치닫자, 그들의 눈빛에도 서서히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황녀의 뒷배는 제국 황실이었다. 이토록 딸이 망가졌다면, 황제의 진노가 아카데미를 덮칠 수도 있다는 묘한 공포감이 학생들 사이로 번져나갔다.

결국 누군가는 해결을 해야만 했다.

황녀의 아픔도, 극한까지 치달은 이 상황까지도.

내 입에서 후우, 하고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자 나를 알아본 몇몇이 주춤거리며 비켜서기 시작했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그 틈새로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내 모든 인파가 갈라졌다.

대로변에는 나와 주저앉은 황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리던 황녀는, 그제야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울음소리가 그친다.

다만 황녀의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은 더욱 많아졌다. 비틀비틀, 황녀는 마치 기어가듯이 내게 매달렸다.

소녀는 울며 애원했다.

“이, 이안 경… 내, 내가 잘못했어요. 많이 못됐죠? 그동안, 그동안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잘난 척해서 미안해요… 흐윽, 흑…….”

수많은 사죄의 말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 이안 경을 괴롭히려 그래서 이렇게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 여동생… 아아,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어, 어떻게든… 어떻게든 했어야 하는데.”

나는 침묵했다.

“제발, 제발 용서해 주세요. 이안 경… 무엇이든, 무엇이든 할게요. 용서만 해준다면… 그, 그래! 제국 황실의 명예를 걸고, 무엇이든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을게요.”

내 입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제국 황실의 명예를 걸고 말입니까?”

나지막하지만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적어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귀에 말소리가 내리꽂힐 정도는 됐다. 사태가 무언가 흥미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군중들이 다시 소란을 일으켰다.

제국 황실의 명예.

제국의 귀족들은 명예 때문에 목숨을 건다. 귀족들이 이럴진대, 황족이라면 그 정도는 더욱 심했다.

당연히 일개 황녀 따위가 내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 황실은 오롯이 황제만이 대표할 수 있었다. 다만 황족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온 이상, 또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무슨 짓을 하더라도 대놓고 수작을 부리긴 힘들었다.

물론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다면 암암리에 소환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나는 이미 용혈 문자의 소유자라는 점만으로도 제국 황실에 불려가야 할 판이었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황녀의 입단속을 시키지 못했단 점에서 이는 확정적인 미래였다.

황녀가 나를 치료하기 위한 신물을 요청할 때 그 소리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다시 말해 내게는 딱히 추가로 짊어져야 할 위험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네, 네… 물론이에요. 단지, 용서만 받을 수 있다면…….”

“……용서만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요?”

나는 마지막으로 황녀의 말을 가로채 재차 물었다.

황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이 주위의 인파를 훑었다.

그들은 어느덧 다시 수군거리던 입을 다문 채 나와 황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내가 어떻게 나올지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이었다.

참으로 나쁜 인간들이었다.

괴롭힐 때는 간단히 가담하더니, 또 전세가 역전당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황녀를 욕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니 아무도 나서지 않고 떨고만 있다가, 이제는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고를 남기고자 했다.

새하얀 궤적이 허공에 그어진 것은 그때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내 손이 허리춤을 더듬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손도끼가 뽑혀 나와 황녀의 어깨에 작렬했다. 연골이 으스러질 만큼 깊이 박힌 일격이었다.

황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졌다.

이는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크게 떠졌다.

핏물이 튀기고, 황녀의 몸이 휘청이며 뒤로 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입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몇 대만 맞읍시다.”

다시 허리춤에 손도끼를 매단 직후, 내 몸이 날랜 맹수처럼 황녀의 몸 위로 얹혀졌다.

그리고 콱, 하고 황녀의 뺨에 틀어박히는 주먹질.

“꺄으, 아악… 아팟, 꺄아아아아악!”

주위가 단숨에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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