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3. 용의 눈, 인간의 마음(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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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수백에 달하는 입이 다물어졌다.
퍽, 퍽, 퍽!
이안의 주먹과 발이 서슴없이 황녀를 가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얼굴을 치는가 싶더니, 그 다음은 몸을 일으켜 황녀를 발로 차버렸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연약한 소녀의 팔을 사내는 연이어 짓밟아버렸다.
비명을 지르던 황녀는 목이 쉬어버렸는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다만 사내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그저 감내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얼이 빠질 만큼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어떻게 황족을 이처럼 팰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황족의 명예를 걸었다고 하더라도 과한 감이 있는 대처였다. 높은 확률로 황실에 불려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몇몇 학생들이 이를 말리려고 입술을 뗐지만, 이내 곧 다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가하는 폭력은 무기질적이었다.
은근한 감정이 담겨 있어 보이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황녀를 폭행하는 이안의 태도는 냉정했다. 어디까지나 계산대로 행하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를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어떠한 계산을 끝마쳐야 그럴 수 있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폭행이 이어질수록 황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만 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군중들의 생각과는 달리, 황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프지 않아……?’
그야말로, 아프지 않았다. 물론 도끼가 어깨에 틀어박혔을 때는 절로 비명이 나올 만큼 아프고 괴로웠다.
그리고 안면을 주먹으로 강타 당했을 때도 아팠다. 놀란 가슴에 계속 비명을 내지를 만큼은 그랬다.
황녀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상을 눈치 챈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점점 더 무뎌지던 감각은, 이내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둔감해졌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신체를 후려치는 느낌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이 통각을 자극하지 않았다. 황녀는 압박감만이 느껴지고 아프지는 않은 묘한 감각을 체험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 까닭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시엔의 정신이 곧 몽롱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태를, 황녀는 얼마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마취독이었다.
이곳은 아카데미의 중앙대로였다. 당연히 이안이 황녀를 기절시켜 납치하려고 마취독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이안은, 황녀가 아프지 않도록 일부러 마취독을 쓴 것이다.
아마도 어깨에 틀어박힌 도끼날에 독액이 묻어 있었던 듯했다. 돌이켜 보면, 이안이 날붙이를 사용한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이안은 폭행을 하되 황녀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통상적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서 울분을 해소하고 원한을 응징하는 수단이 바로 폭행이었다. 그런데 이안의 행동은 정반대였다.
폭력을 행사해서 얻는 불이익은 그대로고, 이익은 없애 버렸다.
시엔은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어 멍하니 이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에게서는 흐릿한 감정만이 전해져 올 뿐이었다. 그 마음속에서는 답답함이나 미안함, 그리고 걱정까지도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시엔은 한창 폭행을 당하는 와중에도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어냈다.
이안은 황녀에게 별다른 원한이 없었다. 그 사실을 실감하자마자, 황녀는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이안은 스스로를 희생해서 황녀를 돕고 있었다.
이는 주위를 둘러싼 감정의 파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때 시엔을 향한 적의로 가득 찼던 공기는, 어느덧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버렸다. 시엔을 향한 인식이 실시간으로 뒤바뀌고 있는 셈이었다.
건장한 사내에게 폭행당하는 연약한 소녀.
그리고 시엔이 이상해져서 제국 황실이 그들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그 묘한 불안감이 또 군중을 자극했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이유를 찾고 있었다.
예전에 그랬듯이, 황녀를 증오하는 대신 걱정하고 보살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래야만 그들은 최소한 제국 황실의 분노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특히 이안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행동은 그들에게 점점 더 ‘제국 황실’의 존재를 선명히 각인시키고 있었다.
저러다간 제국 황실의 진노가 닿을 텐데,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제국 황실에 의해 처분당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시엔은 그래서 왈칵 눈물이 나왔다.
지금도 이안에게서는 아무런 욕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시엔을 구해주기 위해 이안은 악역을 자처했다.
그 점이 못내 고마우면서도 죄스러웠다.
여타의 황족이었다면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황족을 대로변에서 폭행해서 망신을 주냐는, 그러한 분노가 일었을 터였다.
하지만 시엔은 달랐다.
이안이 용혈 문자의 소유자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용혈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가 황제의 대리인이라는 뜻이었다. 황제가 황녀를 폭행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내에 황족을 위한 슬픈 결단이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엔은 감격했다.
역시나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이안은 늘 그녀를 진심으로 대해준다. 유일한 ‘진짜’였다.
물론 사내는 얌전히 희생양으로 매달릴 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이나 폭행을 이어가던 이안은, 헐떡이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의 옷 곳곳에는 이미 황녀의 몸에서 튄 핏자국이 여럿이었다. 피에 젖은 금빛 눈동자가 주위를 날카롭게 훑었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내리까는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막 나가는 이안이 두려웠던 탓이었다.
그들의 뇌리에는 얼마쯤 잊고 있던 이안의 별명이 되살아나는 중이었다.
‘아카데미의 미친개’.
그래,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이안 페르쿠스는 통제불능이었다. 그러한 인물에게 모욕을 당했다면 황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욕했던 그 모든 행위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새삼스럽지만 중대한 깨달음이었다.
“……뭘 봐?”
씹어뱉듯이 내뱉어진 그 살기등등한 어조에, 군중들은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마치 이안과 눈을 마주치면 다음 희생양이라도 된다는 듯.
“너희도 똑같잖아. 날 건드린 사람이 황녀 전하뿐이던가?”
그 날카로운 지적에 몇몇 학생들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주로 이안과 그 주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혔던 이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야.”
그리고 파공성이, 허공을 찢으며 날아들었다.
마치 빛살처럼 쏘아진 손도끼가 구경꾼들의 앞에 틀어박혔다. 석재 바닥이 진흙이라도 되는 양 푹 틀어박힌 그 날붙이는, 군중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없다. 명심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안은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곧장 탁, 하고 손도끼가 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정중동의 묘리를 응용한 기술이었다.
미리 정해둔 궤적을 따르는 손도끼는 회수하기도 간편했다.
이안은 그렇게 떠나갔다.
폭풍과도 같은 사내가 지나간 현장에는, 흐느끼는 소녀와 침묵을 지키는 구경꾼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눈치를 살피던 구경꾼들 중 몇몇이 슬금슬금 황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면서, 다친 곳 투성이인 황녀를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좀 무서운 사람은 맞는 것 같아.”
“황녀 전하, 괜찮으세요?”
오랜만에 듣는 따스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황녀는 더욱 흐느끼다가, 아직 마취 기운이 가시지 않아 몽롱해진 눈빛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연회색 눈동자에는, 기쁨이 가득 차올라 있어서.
황녀를 부축하던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든 말든, 황녀는 꿈꾸는 소녀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멋있어, 이안 경…….”
시엔을 부축하던 학생들을 포함해서, 그 멍한 읊조림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금 멍청한 표정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한 여인이 내뱉었다곤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잘못 들었나?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아하면,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황녀는 확인사살을 하듯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무 멋져, 최고야… 역시, 내겐 이안 경밖에 없어…….”
결국 대중들은 늘 그렇듯이 사건을 그들의 기준에 맞춰 이해하고 말았다.
망가졌구나, 황녀 전하.
그들의 눈에 슬픈 연민의 기색이 어렸고, 황녀는 몽롱한 표정으로 이안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렇게 편지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사내는 모든 것을 매듭지었다.
물론 이안이 이전처럼 욕을 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으며, 또 그토록 용기 있는 학생들은 아카데미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다만 ‘이안 페르쿠스’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하면, 아카데미의 구성원들은 으레 한 마디씩을 뱉을 뿐이었다.
“미친개죠.”
아군으로 두면 한없이 든든하지만, 적으로 두면 그보다 두려울 수 없는 존재.
당연히 그를 굳이 적으로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황녀조차도 그의 상대는 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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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종막은, 곧 새로운 이야기의 서막으로 이어지는 법이었다.
다음날, 이안을 찾아온 네리스는 폭탄 발언을 남겼다.
“저, 이안 님? 제국 황실에서 이안 님을 뵈러 며칠 후 고위 인사를 파견할 예정이라고…….”
“이런 씨발.”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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