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14화 (214/649)

〈 214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7)

* * *

네리스가 의문을 입에 담은 직후, 대회의실은 고요해졌다.

신문부원들은 저마다 시선을 피하거나, 마른침을 삼키거나,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어질 결과가 무엇일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사내의 타오르는 금빛 눈동자가, 무심히 네리스를 향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웃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희미한 울음기가 섞인 그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시, 실수였어요… 겨, 결코! 의심한 것이 아니에요. 단지 어쩌다 보니 나온 말이었어요…….”

그렇게 네리스는 애원했다.

“제, 제발… 윽, 크.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물론, 아무런 보람도 없는 시도였지만 말이다.

손도끼를 던져 네리스의 나머지 어깨까지 으깨버린 이안은, 말없이 손을 들어 다시 손도끼를 회수했다.

네리스는 이제 땅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 입에서 새어나오는 울음과 신음소리만이, 그녀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공포를 짐작케 했다.

아주 잠깐 동안 그 비참한 몰골을 지켜보고 있던 이안은, 신문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직 의문이 남아있는 사람?”

당연히 입을 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제야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떠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요청한 정보는 내일까지 조사해 오도록. 그리고, 네리스 지부장은 신전으로 데려가고.”

그렇게 이안이 떠난 뒤에도 대회의실에는 한동안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 안에서 소리를 내는 존재라고는, 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리는 네리스뿐.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느덧 아카데미 지부의 실습생들은 한 가지 철칙을 배우게 되었다.

결코 의심하지 말라.

의문조차 품지 않고, 단지 따라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게 되었으니까.

누구인지 모를 실습생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어, 음… 그, 그렇군요.”

네리스 선배의 기나긴 이야기를 들은 내가 보일 반응은 그것뿐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국 황실의 인정을 받고 아카데미 지부에 정식으로 부임했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 과정에서 꽤 잔인한 짓을 저질러 버렸지만 말이다.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물으면 왜 그러한 질문을 던지냐는 반문이 돌아와야 마땅함에도, 네리스 선배는 머리를 조아린 채 몸만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꾸만 말버릇처럼 덧붙였다.

“의,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겨, 결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불타죽을 위기까지 처했는데, 그 이후 또 다시 폭력을 가하니 두려움이 배가된 모양이었다.

심지어 나는 네리스 선배로서는 반항할 수 없는 상관에 속했다.

내가 주먹으로 패면 맞아야 했고, 도끼로 찍으면 찍혀야 했다. 그 무력감이 네리스 선배의 공포를 부채질하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곤란했다.

미래의 ‘나’는 무슨 목적이 있어 보였지만, 정작 방학 내내 네리스 선배와 함께해야 할 사람은 내 쪽이었다. 이처럼 불편한 관계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란 말인가.

불평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또라이가 내 말을 들어먹을 턱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오자, 네리스 선배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 죄, 죄송합니다! 다, 당장 잘못을 시정…….”

“……뭘 잘못했는데요?”

내 이어지는 반문에 네리스 선배는 호흡조차 잊은 채, 안색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물기 어린 암녹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언어폭력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나는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 잘못 안했으니까, 너무 떨지 마세요. 그보다 페르쿠스 영지의 실종 사건이라뇨?”

미래에서 온 내가 요청한 정보였다.

분명 곧 벌어질 사건과 무관한 내용은 아닐 터였다.

네리스 선배는 여전히 나를 꺼려하는 기색이었지만, 곧 충실하게 더듬더듬 조사해 온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그, 그것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랬다.

얼마 전부터 페르쿠스 영지와 그 주변에서 실종사고가 다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시점은 약 한 달 전쯤으로, 내가 고아원을 다녀온 직후의 일이었다.

물론 마수도 있고 온갖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대륙이었다. 마을 사람 한둘이 실종되는 것쯤이야 흔한 사고에 불과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페르쿠스 영지를 비롯한 다른 곳에서도 손을 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네리스 선배가 조사를 이어가다 보니, 실종 사건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존재했다.

우선 노린 것처럼 외곽에 거주 중인 주민들이 사라진다는 점.

중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치안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목숨 하나나 둘이 왔다갔다 하더라도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또 외곽에 머무르는 주민 중에서도, 유독 먼 곳으로 외출한 주민들만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수상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없어져도 되는 사람’들만 노리는 이들의 소행처럼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다만 조사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결정적인 물증은 잡아내지 못했다. 또 그 배후도 알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 네리스 선배의 설명이었다.

그야 고작해야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네리스 선배는 보고를 이어가는 내내 불안한 눈빛으로 내 눈치를 흘깃흘깃 살폈다. 내가 불만족스러워 할까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그 일련의 행동만 보더라도, 네리스 선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칭찬을 짜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잘 조사했네요. 시골 영지라 쉽지 않았을 텐데, 이만하면 됐습니다. 자세한 조사는 페르쿠스 영지에 가서 시작하고, 일단은 몸부터 추스르세요.”

내 지시에 네리스 선배는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여전히 불신의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어서, 내 입에서는 끄응,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금이라도 미안했다고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단 하루만에 태도가 휙휙 달라지는 상관은, 일관적으로 나쁜 상관보다 최악이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겐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 나는, 품속을 뒤적였다. 황녀가 선물해 준 공간 확장 주머니는 고급품이라 더 많은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연고였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네리스 선배에게로 다가섰다. 암녹빛 눈동자가 공포로 물드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해야 했지만,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탁, 하고 네리스 선배의 손에 연고가 쥐여졌다.

얼떨떨한 눈빛을 한 네리스 선배에게,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몸 관리 잘하시라고요.”

물론 네리스 선배는 독을 다루는 만큼 나보다 좋은 의약품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는 고작해야 내 마음을 가볍게 하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네리스 선배는 이 친절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술을 떼고 닫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더 있어봐야 네리스 선배의 두려움만 자극하겠다 싶었다. 내 입이 이별의 말을 읊은 것은 그러한 판단이 내려진 직후였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네리스 선배가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나는 그러든 말든 손을 흔들며 떠나갈 뿐이었다.

내 가슴 속에는 이제 몇 가지 의문만이 남아있었다.

페르쿠스 영지의 실종 사건은, 암흑교단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무얼 꾸미는지는 몰라도 결코 선의에 의한 계획은 아닐 터였다.

살점 둥지와 미트람에게 개조당한 시녀장의 모습이 차례로 뇌리를 스쳐지나가자, 나는 다소 조급해졌다.

이제 귀향길에 오를 시간이었다.

**

당장 페르쿠스 영지로 갈 채비를 마치려던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인물이었다.

엘시 선배였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스러운 외모를 한 그녀는, 내 방 앞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만에 보는 얼굴이라 나는 반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엘시 선배!”

지난번에는 오해가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나는 걸음을 멈칫하는 수밖에 없었다.

엘시 선배의 복장이 특이했다. 늘 고깔모자에 아카데미 제복만 입고 다니던 그녀였는데, 오늘은 제법 화사한 옷을 입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외출복이었다.

당황한 내가 주춤한 사이, 엘시 선배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엘시 선배 또한 나를 보자마자 만만찮게 놀란 기색이었다.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피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엘시 선배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 내게 외쳤다.

“데, 데이트!”

실로 오랜만에 듣는 반말로, 엘시 선배의 제안이 이어졌다.

“단 둘이서…어, 어디 나가지 않을래……?”

엘시 선배는 그렇게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제대로 꽃단장을 마친 엘시 선배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몇 번이고 엘시 선배를 봐왔던 나조차도 무심코 설레일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가까스로 짜낸 대답은, 한 마디.

“오늘은바빠서 힘들 것 같은데요."

엘시 선배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