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18)
* * *
처음 만난 사이에는 늘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일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로 성녀와 엘시 선배, 세리아가 유독 페르쿠스 저택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 셋은 다소 긴장한 낯빛이었다.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이안과 레토, 그리고 셀린뿐이었다.
이안이야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고, 레토나 셀린 또한 어린 시절부터 제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
편안하지 않으면 이상했다.
심지어 리아는 이안의 걱정과 달리 보자마자 핀잔을 퍼붓지도 않았다.
잔뜩 바가지를 긁힐 것을 염려했던 이안의 얼굴은 더욱 해맑아질 수밖에 없었다.
짧은 인사를 끝마친 뒤, 리아는 앞장서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의를 갖춘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침 저택에 남은 방이 있어 부디 머물러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 귀빈 여러분이 지내시던 곳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괜찮습니다, 자매님.”
성녀는 늘 그렇듯 자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리아의 황금빛 시선이 흘깃 성녀를 향했다.
“이안 형제님을 도와 고아원에서 머무르던 적도 있는 몸입니다. 애초에 제 출신이 그리 고귀한 곳도 아니고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리아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시군요.”
성녀는 리아의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흘깃흘깃 이안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그에게 제 솜씨가 어떻냐고 자랑을 하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이안은 픽, 하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끝나면 제 여동생이 아니라는 듯이.
“허나 염려되는 점이 하나 있어 마음이 괴롭습니다. 본래 성녀라고 하시면, 신전에 머무셔야 하는데… 혹시나 낡은 신전이 불편하실까 페르쿠스 가문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싶어서요.”
“……네, 네?”
마치 준비한 것처럼 막힘없이 쏟아낸 리아의 말에 성녀는 당황하고 말았다.
무슨 의도로 그러한 말을 꺼내는지 모를 만큼 성녀는 멍청하지 못했다. 오히려 살얼음판 같은 정계에서 단련된 눈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성녀가 당황한 까닭은, 리아가 성녀를 견제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아 페르쿠스는 상인이었다.
그리고 상인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바로 인맥이었다. 성국의 최고위직에 있는 성녀는 상인으로서 놓칠 수 없는 상품이나 다름없었다.
조금의 끈만 만들어 두더라도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사이였다.
지금껏 수많은 상인을 상대해 왔던 성녀는 리아도 그러리라 지레짐작했다. 실제로 리아는 무척 깍듯하게 일행을 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리아의 일면은 달랐다.
그녀는 도리어 성녀를 적대하고 있었다.
이안의 여동생이라 조금 잘 보일 생각을 하고 있던 성녀는 억울한 심정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성녀님의 방을 저택에 준비해 둘 필요는 없겠군요. 도리어 봉사 활동에 걸림돌이 될까 저어됩니다. 이후에 따로 신전까지 안내를…….”
“……리아.”
성녀가 넋이 나간 사이, 결국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대화 전면으로 나서야 했다.
리아의 싸늘한 시선이 이안을 향했다.
사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 손님이야.”
“……흥.”
존경해 마지않아야 할 오라버니에게 돌려줄 반응치고는 시건방졌다.
그저 코웃음을 한 번 치고 말다니.
하지만 리아는 의외로 군말 없이 이안의 말을 따랐다.
“그렇다면 성녀님께서는 이쪽 방에서 머물러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렇게 리아가 정중히 저택을 안내하는 동안, 엘시는 불안한 기색으로 이안의 소매를 꼭 쥔 채 걷고 있었다.
그 걸음걸이가 유독 뻣뻣했다.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엘시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이안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주, 주인님…….”
“엘시 선배, 진짜 그 호칭 쓰지 마요.”
이안은 엄숙한 어조로 말했으나, 이미 속삭이는 엘시의 목소리는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후우, 후우, 하고 엘시는 심호흡을 하며 제 가슴을 가라앉히려 시도했다.
“어, 어떻게 하죠? 만약 주인님의 가족들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안은 엘시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지만, 결국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그도 확신이 없었다.
애완동물을 자처하는 명문가의 여식이라니?
이는 호오(??)의 문제를 넘어서, 그러한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의 문제였다. 이안의 난감한 표정에 엘시는 더욱 불안해졌는지, 심호흡을 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반면 사전에 셀린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세리아는 조금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이안 선배, 저분이 그… 여동생 분이시죠?”
“응, 내 여동생이야. 너희보다 두 살 어려.”
즉 내년에 성년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안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세리아는 불신이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그런데… 제가 하스터 양에게 들은 것보다는 꽤…….”
“정중하지? 예의도 바르고.”
다소 실례되는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세리아의 낯빛이 조금 달아올랐다. 우물쭈물하며,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헛웃음을 삼키고 말았다.
“일단 봐. 남들한테는 원래 그러니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저택 안내가 끝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제가 지내고 있는 방입니다. 혹시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사용인을 호출해 주세요.”
그렇게 말을 마치는 리아의 기색은 태연하기만 했다.
흠 잡을 데 없는 안내였다.
때때로 묘한 곳에서 견제가 들어오긴 했으나 예의도 바르고, 저택의 대략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했다.
그러나 그 설명에는 유일하게 빠진 부분이 있어, 세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페르쿠스 양?”
“네, 유르디나 님.”
아카데미였다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었을 테지만, 이곳은 아카데미가 아니었다.
당연히 제국의 5대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유르디나가 더욱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양’과 ‘님’이라는 호칭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아무래도 이안 선배의 방을 안내해 주지 않으신 것 같아서요.”
세리아의 지적에 성녀와 엘시의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졌다.
그 셋의 목적이 하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안과 함께 시간을 보내러 왔는데, 정작 이안의 방이 어디 있는 줄 모른다면 곤란했다.
여인들은 저마다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 정보를 얻고자 했다.
리아는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듯 입술에 손가락을 얹어두었다가, 얕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하.”
그리고 소녀는 아리따운 미소를 머금었다.
“얼마 전에 오라버니의 방을 옮겼거든요.”
“……뭐? 난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지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안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리아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일행들은 멀뚱멀뚱 시선을 교환하다 다시 리아의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오직 이안만이 또 시작됐다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의문만이 가득하던 일행의 분위기가 일변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리아는 저택의 로비까지 내려온 것도 모자라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일행의 눈동자에 어린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물음표가 머리 위로 떠오르는 환각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리아의 걸음걸이는 거침이 없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그 태도에, 일행은 무어라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한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이 도착한 뒤뜰에는 커다란 구덩이 하나가 위치하고 있었다.
퍼낸 흙의 양으로 볼 때 얼마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 앞에서, 리아는 한 손에 삽자루를 쥔 채 삽날을 푹, 하고 지반에 박아 넣었다.
리아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이게 오빠가 지낼 새 방이야.”
그 해맑은 목소리에 일순 일행은 뇌리가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이안을 비롯해 셀린과 레토만이 한숨을 푹 내쉬었을 따름이었다.
어느덧 그 정중하고 예의 바르던 말투조차 사라진 지 뒤였다.
리아의 손은, 명확히 구덩이 안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안은 제 두 손으로 낯가죽을 훑어내리며 애원하듯 말했다.
“리아, 제발… 손님들 앞이잖니…….”
“……손님들 앞?”
그 말에, 리아가 만면에 걸치고 있던 미소에 균열이 일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오빠 덕에, 내가 어떤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는 줄 알아? 제국 재무부가 어떤 정복을 맞춰 입는지 하나하나 읊어줘?”
“그건, 그건 말이지… 리아.”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진짜로 어쩔 수 없었…….”
“웃기지 마.”
미소를 서서히 지우면서, 리아는 삽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팍, 하고 삽날이 다시금 지반을 파고들자 흙무더기가 튀어올랐다.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이 비명이 될 때까지는 얼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금빛 눈동자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뒤이어 울먹이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우,웃기지 말라고오오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리아는 이안에게로 달려들었다.
익숙한 듯 리아의 손이 이안의 머리채를 붙들었다. 일행이 당황한 사이, 리아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안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잡아당겼다.
“내, 내가 몇 년을 힘써서 키운 상단인 줄 알아?! 그런데 파산했다고! 어, 어떻게 할 거야… 내 3년! 매일 밤을 새가며 키워놨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오빠를 위해서!”
칭얼거리며 이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리아의 모습에서는, 기품 있던 이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리어 그 차갑던 금빛 눈동자에 눈물마저 어려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안조차 여동생이 제 머리채를 붙들고 있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기색이었다.
그는 고통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변명을 주워섬겼다.
“어, 어쩔 수 없었다니까! 그러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
“그게무슨 헛소리야!”
그러나 이안의 말은 이어지는 리아의 울부짖음에 틀어막히고 말았다.
어느덧 리아의 눈동자가 핑핑 회전하고 있었다. 감정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그때까지도 일행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리아의 또 다른 일면을 감상하고만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치 인격이 교체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세계 멸망?! 오, 오빠 따위가 왜 그딴 일에 엮이는데! 위험하잖아! 지,진짜 혼날래?! 그리고내 상단… 내,내 상단 어떡할 거야아아…….”
결국 리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인생 책임져! 평생 동안 나 먹여 살리란 말이야! 내, 내 인생 책임지라고오오!”
그렇게 두 남매가 투닥거리는 꼴을 보며, 일행의 멍청한 시선이 레토와 셀린을 향했다.
셀린은 벌써부터 눈을 돌린 채 보기 괴롭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레토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원래 저래요.”
그러면서, 레토는 깊이 파인 구덩이와 머리채를 쥐어뜯기는 중인 이안을 번갈아 보았다.
“……오빠를, 음. 워낙 좋아해서?”
참으로 아리송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
결국 내가 풀려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력은 모공도 강화할 수 있었다. 쥐어뜯긴 머리카락의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을 위안 삼으며, 나는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응접실에 앉았다.
리아는 훌쩍거리며 손수건으로 제 눈가를 찍어내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을 테지만, 내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나를 따르던 리아였다.
그 저의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오빠로서 져 주어야 할 때가 있었을 뿐.
내가 넋을 놓고 앉아있자 엘시 선배는 옆자리에서 울상을 지었다.
“그, 그… 괘, 괜찮…….”
“……괜찮아요.”
정작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돌아왔다.
그제야 울음을 그친 리아는 다시 침착한 목소리를 되찾고 있었다.
“오라버니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괜찮아요. 지금껏 몇 번 해봐서 알아요.”
“……자랑이다, 자랑이야.”
나는 그렇게 소심한 반항을 하며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임시로나마 머리카락을 정리하니 그럭저럭 봐줄 만한 꼴이 되어 다행이었다.
조금 사태가 진정된 듯 보이자, 나는 지금껏 품고 있던 의문을 하나 꺼내야 했다.
“리아, 그보다 부모님이랑 형님은 어디 가셨어?”
내 질문에 리아는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황당한 마음으로 되물어야 했다.
“손님이 오셨는데, 가주랑 후계자가 나오지 않다니 이상하잖아. 왜 저택에 너밖에 없는데?”
“……못 들었어?”
리아는 그렇게 살짝 미간을 좁히며, 나와 엘시 선배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단숨에 내 심장 박동이 가라앉았다.
일종의 직감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내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이는 엘시 선배도 다르지 않은지, 의문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으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얼떨떨한 목소리로, 리아는 말했다.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이 오늘 도착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마중하러 가셨지, 가문과 가문 사이의 공식 교류잖아… 그거, 오빠가 부른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지금 나와 엘시 선배는 단 둘이 도피한 상태나 다름없는데.
곧장 내 손바닥이 이마를 때렸다.
아무래도, 라이넬라 가문과의 인연은페르쿠스 영지에서도 이어질 모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