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28화 (228/649)

〈 228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21)

* * *

레이놀드 라이넬라.

라이넬라 백작의 동생이자, 라이넬라 가문에 단 둘뿐인 대마법사 중 하나였다.

무인들 사이에서 ‘익스퍼트’라는 경지가 존재하듯이,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위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주로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고리의 수와 관련이 있었다.

심장을 둘러싼 마력의 고리를 ‘서클’이라고 부르는데, 마법사들은 이 고리 하나당 하나의 술식을 교차시킬 수 있다.

심장의 고리가 하나뿐이라면 단순한 술식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리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술식은 마치 고차방정식처럼 기하급수처럼 늘어나고, 또 복잡해진다.

그중에서 검사의 ‘익스퍼트’와 비견되는 경지가 바로 ‘고위 마법사’였다.

이는 심장의 고리가 다섯 개인 마법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엘시 선배가 이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으며, 그것만으로도 엘시 선배는 무척이나 희소한 전력에 속했다.

하지만 ‘고위 마법사’라 불리는 존재들 사이에서도 특출난 이들은 존재했다.

심장의 고리가 다섯 개에 이르면, 대개는 그 경지에서 멈춰 서기 마련이었다. 그 이상의 경지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나 지난한 탓이었다.

여섯 개의 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수재가 일생을 걸어도 부족했다.

때때로 재능과 끈기, 그리고 의지를 겸비한 소수의 인간들만이 그 경지에 도달할 자격을 얻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만이 ‘대마법사’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었다.

라이넬라 가문에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가 무려 둘이나 존재했다.

가주인 라이넬라 백작과, 그 동생인 레이놀드 라이넬라가 그 주인공이었다.

아직 5서클에 불과한 엘시 선배마저 대군전에서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6서클에 도달한 ‘대마법사’의 힘은 어떨 것인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러는 한편, 호승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기도 했다.

이제야 갓 익스퍼트에 오른 나는 오러 특성조차 개화시키지 못한 애송이였다. 당연히 라이넬라 씨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할 터였다.

하지만 내가 과연 대마법사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아무리 전투 마법사라 하더라도, 대인전에서 마법사는 검사보다 열위에 존재했다. 영창을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검사들은 그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간격을 좁히고, 검의 궤적 안에 누군가를 두는 일이야말로 검사들이 평생을 매진하는 작업 중 하나였다. 이는 마법사가 상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마법사처럼 까다로운 존재는 기회가 있을 때 확실히 끊어내야 했다.

전위를 함께 갖춘 집단전이라면 모를까, 마법사와 일대일 승부라면 내게도 승산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무장을 챙겨 대련장으로 나아가려던 그때.

레이놀드 씨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 뭐하나?”

나도 의아한 눈빛으로 레이놀드 씨를 바라보았다. 레이놀드 씨의 키가 워낙 커, 자연스레 조금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고 말았다.

내 키도 180cm는 넘는데도 그랬다.

“실력 좀 보자면서요?”

그제야 레이놀드 씨는 내 의도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쓴웃음이 떠올랐다. 애초에 감정 표현이 극히 드문 사람이었다.

마치 아론 형과 같았지만, 그 결과는 조금 달랐다.

아론 형은 늘 행동으로 제 마음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서 든든하고 묵직한 느낌이라면, 레이놀드 씨는 달랐다.

투명한 호수와 같은 사람이었다.

손을 담가봐야, 그 물에 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자체가 드물었다.

그래서 레이놀드 씨는 누구에게든 쌀쌀맞은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외로 폭력적인 친구로군, 설마 대련을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일 줄이야.”

“……아니, 그럼 어떻게 제 실력을 어떻게 확인하시려고요?”

레이놀드 씨는 대답 대신 앞장을 섰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레이놀드 씨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페르쿠스 저택에는 수많은 방이 있었다.

개중에는 다소 조용한 분위기도 방도 존재했는데, 레이놀드 씨는 그중 ‘회의실’의 역할을 하는 곳의 문을 열었다.

주로 아버지께서 페르쿠스 가문의 대소사를 논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안경을 쓴 젊은 남성이었다.

품이 넓어 운신이 귀찮을 것 같은 옷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그는 유약해 보이는 인상에 무척 피로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제국의 관복이었다.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물건으로, 제국의 행정관들조차도 극히 소수의 임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면 이를 입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저 사내는 그 소수의 임무를 맡은 모양이었다.

제국 황실의 사절로서, 신하들의 봉지로 찾아가는 역할이었다.

아무리 제국 황실이라 하더라도, 신하의 영지에 참견하는 일은 드물었다. 예외적으로 5대 귀족 가문들만이 가주를 정할 때 황제의 재가를 받을 뿐이었다.

지금 이곳에 제국의 행정관이 왔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페르쿠스 영지에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행정관은 나를 보자마자 급히 몸을 일으켜,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아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그,이안 경이시죠?”

“아, 네. 그렇습니다만…….”

그는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제 이름은 ‘아서’라고 합니다. 금번에 페르쿠스 영지로 파견된 행정관이죠. 아 참, 이건 대외비니까 최대한 비밀로…….”

“그, 어차피 저택에 머물면 다 알게 될 텐데요.”

“본래 행정 사무란 겉치레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레이놀드 씨는 못마땅한 얼굴로 벽면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꼈다. 앉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자리가 유독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하기야 그도 고위 귀족 가문의 일원이지 않은가.

제국의 행정관은 평민 출신이 많았다. 아서 또한 따로 성을 소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럴 터였고, 나는 제국의 하급귀족에 불과했다.

라이넬라 가문의 중책을 맡은 그를 마주하기에는 급이 조금 떨어졌다.

물론 아서는 그러한 홀대가 익숙하다는 태도였다.

“다름이 아니라, 이안 경께는 특별히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어서 말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굽신거리는 아서의 태도와, 느닷없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레이놀드 씨의 행동이 뒤죽박죽 내 뇌리 속에서 뒤섞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애초에 레이놀드 씨와 제국의 행정관이 같이 있는 까닭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부탁이라뇨?”

“암흑교단.”

혼란이 가득 담긴 짤막한 질문에, 레이놀드 씨가 돌려주는 말소리는 담백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라이넬라 가문은 영지 내에서 벌어지던 특이 동향을 쫓고 있었네.”

“……실종 사건이군요.”

무심코 내 입에서 그러한 말이 터져 나왔다.

레이놀드 씨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아서는 옅은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굳이 페르쿠스 영지에 이들이 파견될 까닭은 그 정도뿐이었다.

내가 네리스 선배에게 요청하여 미리 조사해 두었던 실종 사건.

그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넓은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듯했다.

“처음에는 신원미상자의 단순 실종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서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제 자리에 쌓여 있던 서류뭉치 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의 입이 안경 너머로 비치는 활자들을 주르륵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종되는 대상의 조건이 너무 특정적이에요. 게다가 반복적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죠. 심지어 실종 사건이 다발하는 영지 또한 천천히 옮겨지고 있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그곳이 페르쿠스 영지인 거고.”

아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제야 수수께끼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왜 이 시기에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이 페르쿠스 영지로 파견되었는지, 그리고 왜 페르쿠스 가문은 그들의 주둔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는지.

전부 제국의 행정관이 배후에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됐다.

아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제국에서는 그 배후에 암흑교단이 존재하지 않나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럴 만한 근거는 충분합니까?”

“아니요, 아직까지는.”

내 시선이 단숨에 떨떠름해졌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의뢰의 난이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바닥부터 뒤져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내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일단 암흑교단만 얽히면, 절대로 일이 잘 풀리는 법이 없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