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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36화 (236/649)

〈 236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29)

* * *

빈민가의 ‘사기꾼’은 일종의 대부업자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자칭하는 표현은 아니었고, 빈민가 사람들이 붙여준 멸칭에 속했다. 일자무식의 시골 사람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는 것이 주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기생충 같은 조직이었다.

다만 내가 그 존재를 모르고 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얼마 전에야 페르쿠스 영지에 정착한 신흥 세력이었다.

대부업이란 기본적으로 금전이 필요한 이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였다. 주로 납기일이 눈앞에 닥친 상인들이 급전을 빌리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 통례였다.

따라서 대부업자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시장의 존재였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대부업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설시장은 규모가 있는 영지에나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상설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수요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불과한 페르쿠스 영지에 대부업자들이 진출할 까닭은 없었다.

하지만 리아가 적극적으로 상행에 나서면서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체계적으로 물자가 공급되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리아의 갖은 노력으로 페르쿠스 영지에는 차츰 화폐 경제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페르쿠스 영지에도 작게나마 상설시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근래의 일에 불과했다.

여전히 페르쿠스 영지의 경제 상황은 열악했고, 시장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 몇몇 파리떼의 이목을 끌었다.

아직 규모는 작아도 점차 발전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미리 자리를 선점해 두어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사기꾼’들이라 불리는 녀석들은 질이 더 나쁜 편에 속했다. 그들은 본거지를 따로 두고, 지부처럼 여러 영지에 걸쳐 대부업을 꾸리는 조직이었다.

당연히 그 세력이나 자본력은 여타의 시정잡배들과 궤를 달리했다.

그래봐야 양아치는 양아치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리아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사기꾼’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우선 단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식으로는 자본의 유입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시장에는 돈이 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고리 대출에 의한 자본 유출을 걱정해야겠지만, 지금 페르쿠스 영지에는 당장 마중물이 급한 상황이었다.

그토록 머나먼 미래를 걱정할 만큼 여유가 있지는 못했다.

또한 페르쿠스 가문에 ‘사기꾼’들을 손봐줄 여력이 없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 또한 그들을 방치하기로 한 주된 근거 중 하나였다.

그야 마음먹고 처리를 하겠다면 할 수는 있었다.

제국의 법은 지엄했다.

동네 양아치들 따위가 귀족 영주에 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인근의 대영주나 제국 중앙군의 엄한 심판을 맞이해야 했다.

다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사기꾼’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도 뒷골목에서 보낸 세월이 있었다.

귀족을 건드려봐야 피차 좋은 일이 없다는 사실쯤은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기꾼’들은 페르쿠스 가문의 눈치를 살피면서, 얌체 같이 순박한 영지민들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그들의 수작질에 걸려 빚의 노예가 된 이들만 수십이 넘는다고 들었다.

내게는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수틀리면 해충 구제를 하는 심정으로 나서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기꾼’들은 내 느닷없는 방문에도 곧장 저자세를 보였다.

“아이고, 도련님! 미리 말씀하시고 오셨으면 조금 더 제대로 된 대접을 해드렸을 텐데…….”

그러면서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 사내는 털이 덥수룩한 중년이었다.

아마도 지부의 책임자인 듯, 소식을 듣자마자 벼락같이 뛰쳐나와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응접실은 의외로 깔끔했다.

대출을 받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겠지.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귀빈들을 대접할 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든가.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드는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근 들어 빈민가에서 실종 사건이 다발하고 있더군요.”

“……네?”

갑작스레 던져진 질문에 중년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도무지 짚이는 부분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응접실의 탁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중년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 그 맞은편에 앉았다.

중년의 손짓에 시립해 있던 덩치 중 하나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나름 괜찮은 품질의 차 한 잔이 나올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혹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연달아 던져진 노골적인 질문에 중년의 표정이 묘해졌다.

내 화법은 귀족치고 꽤 직설적이었다.

애초에 나는 레토나 리아처럼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델핀 선배나 성녀처럼 고도의 정치적 수사를 동원할 역량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 화법은 언제나 일직선에 충실했다.

그럴수록 도리어 상대는 내 저의를 파악하기 어려워했다. 말이 너무나 담백해서, 유추할 수 있는 정보라곤 오직 내가 던진 질문뿐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중년은, 이내 헤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비록 저희가 양아치 짓이나 하고 다니는 천한 놈들이라지만, 페르쿠스 가문의 은혜만큼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신매매라니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년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그러자 털복숭이 중년은 한결 안심한 표정으로 열변을 이어갔다.

“그런 도를 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페르쿠스 가문의 다른 분들께 여쭈어 보셔도…….”

“잘 알겠습니다.”

내 순순한 인정에 중년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든 말든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언제나 단순했다.

“그렇다면, 혹시 채무자들의 정보를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빈민가 사람들은 인적정보를 공적으로 등록한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무, 물론입니다!”

중년은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서랍장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꺼내왔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서류를 읽어보았다.

제국의 행정관 아서가 준 명단에 있던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실종자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했다. 이를 알고 상대도 서류를 내온 것일 테지.

하지만 그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행방불명된 사람이 많군요.”

“그야, 그렇지 않겠습니까? 본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은 야반도주라도 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다고 빚이 탕감됩니까?”

“아니요, 물론 가족들에게 받아내고 있습니다.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하하하.”

가족뿐만 아니라, 인연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찾아가서 괴롭히겠지.

나는 이들의 수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는 꽃밭이 아니었고, 도박과 유흥에 빠져 질 나쁜 녀석들에게 걸려 파산하는 못난이들도 왕왕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일부러 중년의 말을 의심하는 척을 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탁, 하고 탁자 위에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원하시던 정보는 얻으셨습니까?”

“네, 대략적으로는.”

후우, 하고 중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곧 비굴한 어조로 내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과연 페르쿠스 가문의 둘째 공자님께서는 평화주의자라더니, 그 말이 딱이로군요. 대개 저희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윽박지르거나 하실 때가 많은데…….”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 무심한 대답에 중년은 과연 그렇다는 듯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은 서류를 조심스레 짚을 때, 내 예민한 감각이 아주 찰나에 불과한 중년의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조소(??)였다.

새파란 애송이를 속여 넘겼다는 즐거움이 담긴 미소, 그에게 불행한 사실은 나는 애초에 추궁을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미 확신은 있었다.

미래에서 온 ‘나’는 결코 쓸데없는 정보를 주지 않으니까.

하물며 실종 사건이 일종의 범죄 행위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누차 심증을 얻은 뒤였다. 이를 단순도주로 인한 행방불명이라 핑계를 대봐야 먹힐 리가 없었다.

연결점은 존재했다.

다만 이를 듣기 위해서는 보다 ‘평화로운 수단’이 필요했을 뿐.

손도끼가 내리 찍히고, 털복숭이 중년이 비명을 내지르고, 탁자가 으스러지며 목재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이미 손도끼는 나를 포위한 덩치 중 하나의 어깨를 으깬 뒤였다.

목편이 비산하는 사이를 내 몸이 야수처럼 달음박질을 쳤다.

첫 번째로 손에 걸린 사내는, 내 정면에 있던 사내였다.

나는 달리던 힘을 그대로 실어 주먹을 안면에 꽂아 넣었다. 으드득, 하고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얼굴이 타점을 중심으로 구겨졌다.

텅, 하고 가죽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헥……!”

그리고 그와 함께 핏물과 잇조각이 시야를 울긋불긋 물들였다.

덩치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내게 짓쳐드는 두 덩치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란 뜻이었다.

최소한 용병 출신, 시골 영지의 일개 대부업자가 고용할 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리아가 위험하다고 경고를 남긴 것일 테지.

허나 지금의 내 상대는 아니었다.

콱, 하고 측면에서 날아든 손도끼가 사내 하나의 팔뚝에 내리꽂혔다. 사내의 몸이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해 옆으로 기울었다.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동료의 어깨에 박혀 있던 손도끼가 멋대로 움직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중동(?中?)의 묘리였다.

단 한 번이기는 하지만, 궤적을 뒤틀어 새로운 운동량을 창출하는 소드 서클의 비기였다. 뒷골목의 양아치 따위가 알 턱이 없는 상승의 무리였다.

속절없이 덩치 중 셋이 무너져 내렸다.

내게 달려들던 나머지 하나는, 휘둘러지는 방망이를 몸을 굽혀 피해내는 정도로 충분했다. 파고든 품에서 명치를 직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콱, 하고 골격의 틈새를 비집고 파고든 주먹이 무시무시한 충격량을 내부에 전달했다.

울컥 터져 나온 핏물이 내 어깨 너머로 굽혀진 사내의 입에서 토해졌다. 나는 완력만으로 가뿐히 거구의 사내를 넘겨버렸다.

이제 남은 덩치는 셋.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려던 덩치의 어깨에서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사내가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기에, 도끼의 뭉툭한 면으로 관자놀이를 후려쳐 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비명조차 없이 쿵, 하고 쓰러지는 덩치.

내 손이 망설임 없이 빛살을 쏘았다.

핏물과 함께 고통에 잠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궤도를 꺾은 손도끼는, 곧장 또 다른 사내의 무릎을 아작내며 둘을 처리했다.

남은 하나는 허둥지둥 달려와 품속의 단검을 꺼냈다.

날붙이, 귀족을 건드리면 무사할 수 없을 텐데도 진검을 썼다.

그만큼이나 내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는 뜻이었다.

물론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시각이 공간을 도해한다. 공간이 실처럼 분해되고 있었다.

내 손이 그 실을 쥐어뜯듯 잡아당겼다.

쭉 내뻗어진 찌르기의 궤적이, 쥐어뜯어진 공간의 궤도를 따라 비틀어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의 팔이 자연스레 내 손에 잡혔다.

그리고 팔을 아래로 내리누르며 무릎을 차올리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시끄러.”

심드렁한 한 마디와 함께, 나는 고통으로 굽혀진 사내의 뒷목에 팔꿈치를 내리꽂았다.

사내의 몸이 움찔 경련하더니, 이내 뻣뻣이 굳어 쓰러졌다.

그렇게 일곱이나 되는 사내가 쓰러질 때까지는 채 몇 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털복숭이 중년 사내는 겁에 질려 덜덜 떨고만 있었다.

아무리 건달패에 불과하더라도 전직 용병도 다수 포함된 조직이었다.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하고 무력화되니, 당황스럽겠지.

나는 덩치 중 하나의 무릎에 꽂혀 있던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줄줄 흐르던 핏물이 그제야 한 차례 뿜어져 내렸다. 제 무릎을 쥐고 있는 덩치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드러나 있었다.

내게 저항할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굳이 추가타를 가하지는 않았다.

“……펴, 평화!”

털이 덥수룩한 중년이 외친 한 마디에, 내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나는 다음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할지 두고나 보자 싶어서였다.

“‘평화주의자’라면서!”

그렇게 외치는 중년의 표정은 무척이나 억울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아, 하고 옅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내 별명이 그랬지.

흐, 하고 헛웃음을 머금은 내 입에서 담백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이제 평화로워졌잖아.”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던진 농담이었으나, 중년의 사내가 보이는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의외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나는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미친놈을 보는 눈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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