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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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년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리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내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중년은 발버둥을 치며 뒤로 몸을 질질 끌었다.
그래봐야 나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팍, 하고 손도끼를 잠시 바닥에 꽂아둔 뒤 나는 무릎을 굽혀 중년과 눈높이를 맞췄다.
중년의 눈동자에 어린 두려움의 기색은 더욱 짙어졌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도끼를 꽂아놓은 바닥이 석재였던 탓이었다.
“그러니까 얼른 대답해, 내가 평화주의자일 때… 응? 누구한테 팔아치웠어?”
“고, 공자님… 실수하시는 겁니다…….”
그제야 실낱같은 이성의 끈을 붙잡은 중년의 입에서 존댓말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이 가식이라면, 지금 흘러나오는 공대는 진심이었다.
누가 위에 있는지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저, 저도 도구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인질로 삼아봤자 쓸모도 없어요! 지금 이곳에 수십이나 되는 조직원이 몰려들고 있을 텐데… 그중에 공자님을 이길 사람이 없겠습니까?”
흠, 하고 내가 침음을 삼키자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애원했다.
“지, 지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해결책을 논의해 보시죠. 저, 저는 죽기 싫어요!”
“안 죽어.”
그러면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어느덧 길쭉한 복도로 다가오는 인기척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응접실에서 난리가 나면 소식이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결코 범상한 건달 집단이 갖추고 있어야 할 보안 수준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를 이길 수 있는 상대라?
아무리 얕잡아 보더라도 나는 아카데미 상급생이었다. 건달패, 심지어는 방금 전에 상대했던 전직 용병 수준의 싸움꾼들조차 내 상대는 아니었다.
수십이라는 숫자를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무척 흥미로운 증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안심하라는 듯, 그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죽이기 전까진.”
히이익, 하고 중년의 사내는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한동안 움직이기 힘들 테니 상관은 없었다. 나는 쾅, 하고 응접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길쭉한 복도 너머로 온갖 연장을 꺼내든 왈패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구충 작업은 조금 길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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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끼가 은빛 실선을 그릴 때마다 핏물이 터져 나왔다.
군데군데 금이 가 있던 무채색의 석재 복도는 어느덧 강렬한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살색과 붉은색, 쓰러진 사내들의 몸에서 절단된 신체 부위가 하나씩 나뒹굴었다.
죽이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죽이지는 않았을 뿐이라, 개중에 약한 이들은 과다출혈로 죽을지도 몰랐다. 물론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실제로 사망에 이를 확률은 높지 않았다.
어차피 무언가 비밀을 감추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이들이었다.
심지어 귀족을 상대로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었으니, 목숨을 거두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그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끄나풀에 불과한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은 살리고 싶었다.
다만 희생까지 해가며 그들을 구할 용의가 없을 뿐이었다.
건달들은 두려움조차 잊었는지 핏발이 선 눈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좁은 복도라 내게 달려들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작해야 둘뿐, 덕분에 나는 그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후우, 하고 자세를 바로 잡은 내 손이 벼락같이 쏘아졌다.
팍, 하고 손도끼가 달려오던 사내 중 하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날로 치면 죽을지도 몰라 뭉툭한 부분으로 노렸지만, 애초에 금속으로 이루어진 흉기였다.
가속이 더해지면 그 운동량 자체가 남달랐다.
울컥 핏물을 쏟으며 사내의 몸이 굽혀졌다. 뒤이어 날아오는 손도끼를 쳐내고자 옆에 서 있던 사내 하나가 도끼를 휘둘렀다.
동일한 무장을 사용하는 동지였다.
물론 그 수준은 처참해서, 일전에 수렵제에서 붙었던 올마르 선배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 선배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한 잡념과 함께 내 발차기가 텅 빈 사내의 품을 노리고 쏘아졌다.
명치를 강타당한 사내의 몸이 옆에 있던 동료와 마찬가지로 움푹 꺾였다.
그 틈에 나는 핑그르르 회전하던 손도끼를 다시 손에 쥐었다.
콱, 하고 어깨를 내리찍자 사내가 쓰러지며 길이 열렸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지는 습격의 연속.
확실히 점점 더 내게 쇄도하는 이들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고도 내 손도끼를 쳐내지 못하더니, 이제는 정중동의 묘리로 이어지는 두 번째 일격까지는 어찌저찌 쳐내고 있었다.
그래봐야 나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단검을 들고 내게 달려들던 여인의 검격을 몸을 비틀어 피해내고, 손도끼로 곧장 찍어내자 여인의 어깨로부터 팔이 떨어져 나갔다.
“끄, 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쓰러진 여인의 몸이 꿈틀거렸다.
지금껏 수없이 본 광경이라 이제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단지 이 여인은 조금 강해 보였고, 마력도 쓸 수 있으니 지혈만 잘하면 앞으로 얼마 정도는 살 수 있겠거니 하는 기계적인 계산만 이루어질 뿐이었다.
어느덧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핏물로 흥건했다.
쓰러진 건달들을 꾹꾹 짓밟고 지나갈 때마다 신음이 카펫처럼 새어나왔다. 그다지 유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만일 이따위 카펫을 만드는 장인이 있다면 굶어죽어야만 할 터였다.
그 참상의 원인이 나라는 점이 못내 슬플 따름이었다.
수십 명의 핏물과 신음, 그리고 아픔으로 이어진 길 끝에는 사내 하나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있는 검사였다.
허리춤에 매달린 장도(??)가 인상깊었다. 기본적인 근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사용조차 할 수 없는 무기였으니까.
이제야 좀 상대다운 녀석이 나왔다.
나는 어느덧 상대의 핏물로 덥혀진 몸을 식히기 위해, 소매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닫아냈다. 그리고 퉷, 하고 입술 사이로 스며든 핏물까지 뱉어냈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페르쿠스 가문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오늘로 그 관계도 끝이네.”
사내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일전에 공자님의 여동생 분을 만나뵌 적이 있습니다. 아리따우시더군요.”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지… 물론 너한테는 줄 생각 없지만.”
나는 후우, 하고 거칠어진 숨결을 가다듬으며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내 여유로운 모습을 본 사내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때로는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 말 듣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내 소문 못 들었어?”
“들었습니다. 대단하더군요. 하지만, 저 또한 한때는 아카데미에 있던 몸입니다.”
의외의 증언이라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한 내 반응을 보고 사내는 서글픈 웃음소리를 흘렸다.
“평민의 한계를 넘지 못했죠… 귀족들의 멸시와 무시 속에서 저는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결국 아카데미의 졸업장조차 따지 못한 채, 도망치듯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와 이처럼 하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니, 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까진 아니니까요.”
상대가 한때 선배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내 어조가 다소 공손해졌다.
아카데미의 위계질서는 공고했으니까.
하지만 내 위로에도 사내는 이를 으득으득 갈며 증오를 불태울 뿐이었다.
“그래서 부럽고, 또 증오스럽더군요. 어쩌면 그 자리에, 혹은 그 곁에, 그렇지 않더라도 그 역사를 써나가는 장소에 관중으로나마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다지 지능이 높지 않았던 터라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느닷없이 분위기를 잡는 사람에게도 익숙하지 않았고.
그저 나는 최선을 다한 위로를 건넸다.
“……바로 앞에서 보니 어떻습니까?”
“대단하더군요, 하지만.”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장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란 검신을 타고 흐르는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무장을 공을 들여 관리했다는 뜻이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자였다.
한때 아카데미 재학생이었다니, 당연하겠지.
“온실 속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깨달은 검술을 보여드리죠. 자, 오십시오…….”
나는 그 말을 듣고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신 거죠?”
그러한 인간들이 있었다.
빛나는 재능을 추앙받으며 살아오다가, 진정한 천재들 사이에 내던져진 뒤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 이들이.
아니, 대다수의 아카데미 신입생들이 그랬다.
나 또한 그러지 않았는가.
고작해야 중하위권, 그마저도 필사적으로 수련을 해 얻어낸 성과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귀족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는 손도끼를 허리춤에 매달고, 대신 검을 뽑아들었다.
최저한의 예우였다.
사내는 고맙다는 듯 눈인사를 해보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정적.
단 몇 초의 시간이었지만, 분위기가 다시금 팽팽히 당겨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긴장된 시간의 간극 속.
내딛은 한 걸음이, 극한의 가속을 부여한다.
쏘아진 내 몸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사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침착한 기색으로 장도를 움직였다.
내 검이 은빛의 오러를 불태우며 종으로 그어진다.
이를 막아서는 장도의 궤도는 평형, 두 손으로 받친 장도에는 어느덧 푸르른 오러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사내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이후의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파각, 하고.
무언가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날붙이가 파편이 되어 비산했다.
사내의 눈동자가 멍청해졌다.
그가 들고 있던 장도가, 내 오러를 이겨내지 못하고 박살이 난 것이다. 은빛의 오러는 넘쳐흐르던 청색의 오러를 단번에 양단하고 있었다.
비어버린 사내의 품을, 검격이 찢어발긴다.
핏물이 터져 나왔지만 사내는 여전히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눈앞에 도달한 현실이 시차를 두고 그의 뇌리를 파고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폼 좀 그만 잡아, 새끼야.”
지금껏 상대했던 적들이 강했을 뿐, 나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져 있었다.
낙오자 따위가 내 검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제 그 배후를 캐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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