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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38화 (238/649)

〈 238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31)

* * *

장도를 든 사내는 단 일격만에 패배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지, 울컥이며 피를 토하는 그의 눈동자에는 빛이 사라져 있었다.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그의 뒷덜미를 쥔 채 질질 끌었다.

어차피 암흑교단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이었다. 고작 뒷골목의 폭력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기에는 그 실력도 나름 출중했다.

대략 고위 귀족 가문의 평기사는 될 수 있는 수준.

내게는 미치지 못하는 솜씨였지만, 일개 건달패에 있을 실력도 아니었다.

워낙 쓰러진 이들이 많아 턱턱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나는 짜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내를 내동댕이쳤다.

저 멀리 있는 응접실의 문으로.

우당탕하는 소음과 함께 목재로 된 문짝이 박살났다.

먼지가 자욱이 일며 그 안에 있던 털복숭이 사내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나는 쓰러진 이들을 훌쩍 타넘고 단숨에 응접실에 들어섰다.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던 덩치들은, 나와 장도를 든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진해서 다시 땅바닥에 몸을 뉘였다.

어차피 반항해봐야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쿨럭이며 장도를 쓴 사내가 팔로 땅을 짚으려 하기에, 나는 그의 옆구리에 발길질을 했다.

“크억!”

사내는 단말마와 같은 비명과 함께 다시금 땅바닥을 굴렀다. 벽면에 처박힌 그는 이제 몸을 일으킬 기력도 없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털복숭이 중년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성대를 긁고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어, 어떻게… 수십 명에 소리장도(????) 형님까지 달라붙었는데 단 몇 분만에!”

‘소리장도’라.

나는 슬쩍 장도를 들고 있던 사내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중년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고, 심지어 그는 내게 웃는 낯을 보인 적도 없었다.

하여간 뒷골목 녀석들은 하나같이 이름 짓는 감성이 저질이었다.

‘손도끼 공자’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내심 하면서도, 나는 허리춤에 매달아두었던 손도끼를 꺼냈다.

“나 아카데미 검술학부 3학년이야.”

“소, 손도끼랑 검술학부가 무슨 상… 끄아아아악!”

팍, 하고 손도끼의 모서리가 절묘하게도 중년의 손가락 하나만을 날려버렸다.

내가 손을 들자 당연하다는 듯 손도끼가 되돌아왔다.

범상한 재주는 아니었다.

중년의 눈에는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듯 보일 테지.

그는 잘린 손가락 부위를 남은 손으로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면서도, 더는 비명을 내지르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떠오른 공포의 빛이 선연해졌다.

나는 응접실에 나서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저벅저벅 걸어 무릎을 굽혔다.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중년의 눈가에 물기가 차올랐다.

수십이나 되는 이들을 몇 분인지 모를 시간 내에 박살나고 온 인간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이상하겠지, 애초에 그에게 더 이상의 수가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이제 권력의 우열을 나누자면 내가 압도적인 우위였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합시다. 서로 필요한 것 하나씩, 대신 그쪽은 질문 하나 던질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 날아가는 걸로.”

중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망설여 봐야 아까운 손가락만 더 날아갈 뿐이었다. 그나마 깔끔히 잘라내 주었으니 붙기는 할 터였다.

고위 신관이 아니라면 후유증이 남긴 할 테지만.

만일 그가 순순히 협조한다면 성녀를 소개해 줄 의향까지는 있었다.

“자, 우선 하나. 실종자들 어떻게 했습니까?”

“……모, 모릅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중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손도끼를 쥔 손에 다시 힘을 주자, 본능적으로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 중년이 발작하듯 외쳤다.

“지, 진짜 모릅니다! 그, 그냥… 저희는 그냥 정보를 팔았을 뿐이에요!”

연달아 이어지는 폭력은 인간의 정신을 극한까지 내몰기 마련이었다.

특히 언제든 당연하게 강도 높은 폭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실은 인간에게 강한 긴장감을 준다. 심지어 나는 일부러 갈등의 기색조차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심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하루 보고 안 볼 사이인데, 두려운 좀 산다고 나쁠 것은 없었다.

나는 말없이 중년을 노려보았다. 중년의 동공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일단 거짓말을 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한테?”

“그,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고… 아아아아! 알겠습니다! 다 말할게요!”

핑계가 구구절절 길어지자 나는 다시금 손도끼를 치켜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마자 중년은 두 팔로 제 머리를 가리며 아무 소리나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상부! 상부에서 내린 지시인데,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그, 그냥 검은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오면 정보를 넘기라고…….”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인데?”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헐떡이면서, 중년은 변명을 이어갔다.

“부실채권은 어차피 판매가 원칙입니다… 추심을 하려고 해도 추심할 수가 없으니까, 채무자의 정보를 넘겼을 뿐이에요! 그 이후 추심이 어떻게 이루어지든 무슨 상… 끄아아악!”

다시 한 번 핏물과 함께 허공을 손가락 하나가 날았다.

남은 손가락을 일곱 개.

나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안 물어봤어.”

흐으으, 흐으, 하고 숨을 고르며 중년은 그제야 흥분을 조금 진정시킨 모양이었다.

그가 주춤거리며 내게서 떨어지려 들었다.

물론 그래봐야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들은 게 있을 것 아니야. 채무자 정보만 턱하니 넘기고 끝나는 게 말이 돼?”

“지, 진짜인데… 아, 아아!”

억울하다는 듯 말끝을 흐리던 중년은, 그제야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그것이 구원의 동앗줄이라도 된다는 양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새, 생체 실험!”

“……생체 실험?”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쁜 낱말이었다.

동물을 상대로 해도 그럴진대, 지금 이야기의 주제는 실종자들이었다.

전원 인간들이라는 뜻이었다.

내 미간이 좁혀지자, 중년은 중요한 정보를 이제야 떠올렸다는 듯 헤픈 웃음을 터트렸다.

“헤, 헤헤… 그, 그렇습니다! 분명 ‘생체 실험’에 필요한 자료를 넘기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미친놈.”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에게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 말을 듣고도 정보를 넘겨?”

“그, 그것이…….”

중년이 열심히 눈을 굴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어찌됐든 내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공헌이 있었으므로, 나는 더는 중년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탁자 위에 남은 서류뭉치를 쥐었다.

핏자국이 묻어있었지만 중요한 내용은 아직 읽을 만했다.

내 추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총 몇 명이나 팔아치웠지?”

“지금까지 그… 9명쯤?”

흐음, 하고 나는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9명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흘깃 그에게 시선을 던지며 되물었다.

“서류랑 숫자가 다른데?”

“그중에는 진짜 행방불명된 사람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악성 채권은 전부 넘기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야반도주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 그 이상한 사람도 도망친 사람들까지 쫓지는 않더군요…….”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내 입에서 자그마한 읊조림이 새어나왔다.

“……도리스, 방앗간을 운영하는 요나 아줌마네 아들인데.”

흘러나오는 정보에, 움찔 몸을 떨었던 중년의 시선이 멍하니 나를 향했다.

혹여나 내가 채무자 정보를 읽고 있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나는 상세한 정보를 훑어보지도 않은 채 무심히 서류를 넘길 뿐이었다.

“마리, 벌써 성년이 됐나? 그새를 못 참고 벼르고 있던 과일 장사를 시작한 모양이네… 어릴 때 꿈이 과일을 실컷 먹는 거였거든. 특히 사과를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탁, 하고 나는 힘없이 서류를 탁자 위로 내던졌다.

내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중년의 사내를 향했다.

“……행방불명 됐어, 이제 사과도 못 먹게.”

다시금 중년에게로 걸음을 옮기는 듯하던 내 손이, 곧장 중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너무나 가뿐히 들린 중년은 켁켁대며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나는 들끓는 음색으로 중년에게 경고했다.

“내가 이 사람들 다 모를 줄 알아? 이 자그마한 영지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려 자란 나야… 똑바로 말해. 진짜 9명뿐이야?”

“케윽, 헉… 지, 진짜… 끄으윽, 진짜입니다! 매, 맹세코!”

쿵, 하고 내 손이 전력으로 사내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사내의 몸이 한 차례 튀어오르며 커헉, 하고 숨 막히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손도끼로 그의 목을 겨누며 외쳤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흐으, 무, 무슨 소리… 끄으으…….”

“부실 채권은 그 인간에게 전부 다 넘기는 것 아니었어?”

중년의 눈동자는 강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리어 내게 대답을 구하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울컥해서 고함을 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중 몇 명이 그 자식한테 납치됐고 몇 명은 진짜로 도망쳤는지…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

“그, 그야…….”

더듬거리며 무어라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중년의 사내는, 이내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입에서 텅 빈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라.”

중년의 분위기가 일변한 것은 그때였다.

그의 팔다리가,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땅을 딛고 몸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팔 관절이 역방향으로 꺾여 우드득, 하고 소름 끼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고통의 기색이 스치지 않았다.

“왜, 왜, 흐으, 왜, 왜, 흐으으… 왜애애애애애?!”

그는 느닷없이 울부짖으며, 제 낯가죽을 손가락으로 긁어내기 시작했다.

핏물이 줄줄 흐르고 눈알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그는 제 얼굴을 긁어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도는 점점 더 더해지고만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나 또한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뭔… 야, 괜찮아?!”

“왜, 왜, 왜지?! 끄으, 흐으… 흑. 어, 어째서냐고오오오!”

이제 중년은 울먹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잠시 망설였다.

온갖 사선을 넘어보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난생 처음이었다.

멀쩡히 대화하던 인간이, 이처럼 발작을 일으키다니.

중년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제 손은 그 낯가죽을 긁고 있어,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그는 개처럼 헐떡이며 내게 말했다.

“고, 공자님… 흐에, 헤엑, 어, 어째서, 헥헥, 기, 기억이이이… 제 머리가아아아아……!”

최소한 그가 자의로 이러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곧장 그에게로 몸을 날렸다.

기절이라도 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 순간.

중년의 목울대 위로 둥실 떠오르는 칠흑의 문양이 눈에 띄었다.

그 기기괴괴한 도형은 검붉은 전하를 튀기고 있었다.

일순 당황한 나였지만, 이내 그 문양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길포드 고아원에서 보았던 암흑교단의 계약 마법.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씨발.”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중년의 골통이 산산조각 나며 그 빈자리로부터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철퍽이며 살점과 골편, 뇌수가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그 충격파에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을 더 물러난 나는, 허망한 눈빛으로 머리를 잃은 사내의 몸을 바라보았다.

기우뚱 기운 시체는 이내 철퍽, 하고 제가 만든 피웅덩이 위로 쓰러졌다.

핏물이 주위로 튀었다.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쓰러진 척을 하고 있던 덩치들과, ‘소리장도’라 불린 사내는 쥐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검은색 문양.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응접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피보라가 일고 밀물처럼 응접실의 문 아래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넘쳤다.

나는 온몸에 피를 묻힌 채로, 몸을 탁탁 털며 일으켜야 했다.

이마를 짚으며 고민에 잠겨 있던 내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선 본가에 보고해야겠지.”

암흑교단의 꼬리를 잡았다.

계약마법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레이놀드 씨가 아끼는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척비척 건물을 나선 내가 지나가던 행인을 붙잡은 것은 몇 분 후.

내 몰골을 보자마자 행인의 얼굴이 핼쑥해졌으나, 다행히 낯이 익은 사이라 넘어갈 수 있었다.

일행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복도에서 신음을 흘리는 수십의 육체들과, 핏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응접실을 뒤로 한 채.

그 살벌한 풍경을 목도한 일행은 일순 멈칫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페르쿠스 가문을 대표해서 도착한 리아의 표정이 가장 볼 만했다.

부릅떠진 눈동자, 덜덜 떨리는 입술.

나는 귀여운 여동생에게 한 마디 인사를 건넸다.

“……왔냐?”

그리고 그 직후.

“미,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아악! 리, 리아! 그만 때리라고 했다!”

나는 분노한 여동생에게 등짝을 몇 번이고 얻어맞아야 했다.

정작 전투 중에는 한 대도 맞지 않았는데 말이다.

억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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