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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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음을 틈탄 추격전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나는 익스퍼트 초입에 다다른 검사였다. 하물며 평소부터 발을 놀리는 데는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차였다.
그럼에도 몇 분 동안이나 꼬리를 잡아내지 못하다니.
물론 이대로 계속 가면 그 뒤를 잡아내긴 하겠으나, 나와 추격전이 가능한 시점에서 상대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나무와 수풀이 듬성듬성 자란 숲은 달리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아무리 내게서 도망치려고 해도 초인이 아닌 이상 한계가 올 수밖에 없었다. 도주하고 있는 인물이 익스퍼트에 이른 고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내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숲의 공터 어림에서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 또한 공터 안으로 망설임 없이 진입해 그 뒤를 쫓았다.
구름이 달빛을 가려 뒷모습만이 얼핏 비치는 밤이었다.
몸의 굴곡으로 볼 때 상대는 여인으로 보였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그 발목이 기괴하게 비틀려 있다는 점이었다.
새하얀 뼈가 툭 튀어나와 핏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부상이었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리한 동작을 감행할 때나 그러한 상처가 생기곤 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생명체가 제 몸조차 돌보지 않고 목표만을 수행하는 그 지독한 참상.
생명을 향한 최저한의 윤리조차 갖추지 못한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였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럴 만한 인간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 입에서 내심 짐작하고 있던 인물이 내뱉어졌다.
“……미트람.”
끼익, 하고 여인의 고개가 180도로 돌아갔다.
목이 구겨지고 주름이 푹푹 파였으나 상대는 신경 쓰는 기색조차 없었다. 다만 소녀의 입을 빌려 징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을 따름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이안 페르쿠스.”
그 말과 함께 여인의 몸이 휙, 하고 장난감처럼 회전했다. 그러고 나서야 몸과 머리의 방향이 맞아떨어졌다.
소녀는 목을 우득, 우득, 하고 꺾으며 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아니, 그의 몸이 아닐 터였다.
아무리 악마 같은 인간이라도 제 몸뚱아리를 아낄 줄은 알았다. 저토록 무리한 달리기로 너덜너덜해진 신체가 그의 본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저 몸이 미트람의 것이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리의 몸이구나.”
실종자 중 하나, 사과를 좋아하던 소녀 마리.
어린 시절에나 얼굴을 보던 사이였으나 여인의 얼굴에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이를 깨달은 순간 불길 같은 감정이 목젖까지 치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머리를 차갑게, 기회를 노리며 나는 서서히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긴장한 낯빛의 나를 보고 미트람은 킥킥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외롭게 두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이안 페르쿠스? 저는 황족이니 귀족이니 하는 것들과 달리 약속은 분명히 지키거든요. 여하튼, 다시 만나뵙게 되어 영광…….”
“마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장난스레 예를 갖춰 인사를 하려던 미트람은, 내 싸늘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괴기스러울 만큼 과장된 각도로 고개를 기울였다.
좌로, 우로, 그럴 때마다 으득거리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상하군요, 일개 영지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과 인연이 있는 소녀였나요? 아하, 혹시 마음에 두고 있었다던가? 푸흐흐, 특별히 이 몸으로 봉사해 줄 용의도…….”
“무슨 짓을 했냐고, 묻고 있잖아… 이 개새끼야.”
으득으득 이를 갈며 토해진 되물음에, 미트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인은 새파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면 모르겠나요? 나약한 육신에 몇 가지 축복을 내렸죠. 이 또한 아루스의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아아, 임마누엘… 이었던가? 아무튼, 뭐. 그런 걸로.”
노골적인 조롱이었다.
악신의 사제답게 천신을 비꼬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특히 그 더러운 말을 마리의 입으로 읊는다는 점이 내 신경을 미친 듯이 긁어대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손도끼를 던지고 싶은 기분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아직 미트람에게는 물어야 할 것이 많았다.
“숲에서 널 목격한 사람이 있던데.”
“오호, 그 남자 말이군요. 그때 죽여둘걸 그랬나? 하필 인공 배양이 성공한 직후라 힘이 없어 그러지 못했는데…….”
톡, 톡, 입술을 검지로 두드리며 말을 이어가던 여인은 곧 코웃음을 터트렸다.
“……뭐, 됐습니다. 당신을 만났으니 다행이네요. 이 또한 운명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스릉, 하는 스산한 소리와 함께 내 칼집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점점 더 참기가 힘들었다.
암흑교단과의 연관성은 이로써 명확해졌다. 암흑사제 본인이 지금 내 앞에서 입을 놀리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였다.
그래서 나는 더욱 헷갈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미트람이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래봐야 암흑교단을 토벌하기 위한 추가적인 전력만 더 끌어올 뿐이었다.
혹시 이 또한 유인책인가?
페르쿠스 영지는 눈속임이고, 진정한 음모는 또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도 고려해 봄직했다.
미래에서 온 편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편지에 따르면 암흑교단의 음모는 페르쿠스 영지를 배경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확정된 사실이라 봐야 했다.
미트람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수년이나 공을 들여온 작업이었다.
난데없이 계획을 수정하거나 할 확률은 높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게 정체를 들킨 시점에서 미트람의 패배는 확정적이라고 보아야 했다.
아무리 미트람이 대단해도 제국과 성국의 진심을 이겨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 분명 그럴진대 여인은 그럼에도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려, 나는 날붙이 대신 대화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니, ‘불행’을 잘못 말한 건가? 네 정체가 들통난 이상, 제국과 성국이 진심으로 너를 죽이려 달려들 텐데.”
“푸흡, 하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이안 페르쿠스… 제국? 성국?”
내 지당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트람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진심으로 가소롭다는 태도였다.
그 여유의 근원을 알 수 없던 나는 잠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용혈 문자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토록 눈이 어두워서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국이든 성국이든, 썩지 않은 뿌리가 어디 있다고… 아아아!”
짝, 하고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미트람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당신, 페르쿠스 가문의 사람이었죠?”
늘상 ‘이안 페르쿠스’라고 성까지 꼬박꼬박 붙이던 사람이 한 말치고는 뜬금이 없었다.
내가 살짝 미간을 좁히자, 미트람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오, 불쌍한 이안… 당신의 운명이 찾아왔군요? 자고로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법이죠.”
“……무슨 헛소리야?”
“보채지 않아도 곧 마주하게 될 겁니다. 그때 당신의 반응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군요.”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당장이라도 진실을 털어놓지 못해 안달이 난 꼴이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 내게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리는 언제나 멀리 있지 않죠… 썩어빠진 권력이 그 빛을 탐낸 나머지 숨겨두었을 뿐.”
내 검이 빛을 흩뿌린 것은 그때였다.
팍, 하고 허공을 가르고 쏘아진 칼날이 여인의 목젖에 닿았다.
그러나 미트람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소녀는 멈추지 않고 걸었고, 그럴수록 그녀의 목젖에 그어지는 핏빛 실선은 점점 더 길어지기만 했다.
내 눈앞에서, 미트람이 조심스레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미트람을 지켜봐야 했다.
지금 당장 죽여야 할까?
아니라면, 조금 더 많은 정보를 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미트람은 킥킥대며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이안 페르쿠스, 눈을 떠요… 이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합니까? 단지 태어난 출신만으로 귀천이 가려지고, 삶의 목적이 정해지는 끔찍한 굴레가!”
“그래서 고아들을 이용하고, 빚 진 사람들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을 한 건가?”
“오, 물론이죠. 대신 우리는 대가를 지불했잖아요. 고아들을 착취하고 빚 진 이들을 괴롭히는 것쯤이야 귀족들도 하는 일 아닙니까? 돈도 주지 않으면서.”
더 들어줄 것도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내가 검을 쥔 손잡이에 힘을 주려던 찰나.
꾸욱, 하고 여인의 손이 내 손목을 쥐었다. 당황스러울 만큼 강한 악력이었다.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어 신음을 참아냈다.
만신창이가 된 다리를 보고 근력 자체는 별 것 없으리라 지레짐작했던 것이 실수였다.
사실 손도끼를 쓰면 그만이었으나, 기묘하게도 미트람의 말은 흡입력이 있었다.
나와 미트람의 눈이 지척에서 마주쳤다.
“규칙, 법률, 윤리… 모두 권력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일일이 규율을 지켜가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을 바꾸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것들인데!”
“그런다고 네가 저지른 죄가 사라질 것 같아?!”
가증스러운 마음에 나는 그렇게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미트람의 입술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그 낯빛에서 마리의 옛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제는 사과도 먹지 못하고, 악신의 꼭두각시가 된 불행한 소녀의 얼굴이 말이다.
그러나 미트람은 암흑사제답게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여인은 내 팔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음산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에겐 재능이 있어요.”
그렇게 달콤한 속삭임이 이어진다.
“신분이니 규율이니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합니까? 당신의 행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어요. 그토록 강인해 보이던 것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
나는 이 무렵에서 두 번째 인내의 한계를 맞이했다.
미트람에게서 들을 만한 정보는 이미 다 들은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팔을 붙잡힌 후 들은 이야기라고는 암흑교단의 교리 강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미트람의 거슬리는 혀를 당장 치워버리는 편이 나았다. 내 눈이 슬쩍 허리춤의 손도끼로 향하려던 그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암흑교단에 입교한다면, 최소 사제 이상의 지위를 보, 장… 커허억?!”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미트람의 가슴께에서 날붙이가 튀어나왔다.
푸르른 빛에 물든 검신이 새빨간 피로 젖어들었다. 불의의 일격은 치명타를 먹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칼날이 빙글, 회전하며 검면으로 관통상의 윗면을 받쳤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여인의 몸이 뒤로 넘어가 땅바닥에 틀어박혔다.
그제야 회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리아!”
유령을 그토록 무서워하던 그녀가 어떻게 용기를 낸 것일까.
문득 궁금증이 일었으나, 드물게도 세리아는 내게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다만 푹, 하고 쓰러진 미트람을 찔렀을 따름이었다.
핏물이 주르륵 새어나오자, 미트람은 오히려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당신의 짝인가요, 이안 페르쿠스?! 암흑교단에 들어오면 특별히 이 여자와 똑같이 생긴 복제품을 드리… 크헥?!"
푹, 하고 다시금 찔러 들어가는 칼날.
세리아는 그렇게 기계적으로 미트람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리던 미트람조차도,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전신에서 피가 흘러나오니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툭, 하고 실 끊어진 인형처럼 미트람의 전신에 힘이 빠져나간 뒤에도 세리아는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아니, 도리어 전력을 다해 칼을 역수로 쥔 채 여인의 몸을 내리찍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육신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파도처럼 너울졌다.
"그, 세리아……?"
아무리 상대가 미트람이라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던 그 찰나.
"……죽여야 해."
세리아는 그렇게 스산한 목소리를 흘리며, 음영이 사라진 눈동자를 피투성이의 시체로 향했다.
"쓰레기, 암캐! 발정나서 감히 이안 선배에게… 유, 유령 따위가! 죽어, 죽어, 이미 죽었으면 다시 죽어!"
그제야 세리아가 어째서 유령에 대한 공포를 이겨냈는지 깨달은 나는,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재차 다짐했을 뿐이었다.
절대 델핀 선배와의 관계를 들켜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렇게 결의를 다지면 저택으로 돌아간 다음날, 나는 또 다른 문제를 직면해야 했다.
이제는 리아가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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