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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47화 (247/649)

〈 247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40)

* * *

“……고깃덩어리 치워라.”

“고, 고깃덩어리?!”

서류에서 눈조차 돌리지 않고 내뱉은 한 마디였다.

리아는 그 어휘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는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바른 자세를 되찾고 말았다.

흥분한 리아가 내게 따지고 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그럼 여동생의 고깃덩어리에 홀린 오빠는 뭔데?!”

“홀린 적 없다.”

“홀렸잖아! 그때 눈도 피하고, 얼굴도 붉히고!”

“눈 뜨고 보기 힘든 장면이라 그랬지.”

“……아아악!”

리아는 내 빈틈없는 논리에 머리를 두 손으로 쥔 채 절규를 터트렸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서류를 읽어내려갈 따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에게 성욕을 품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귀족의 명예는 둘째 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걸린 문제였다.

더불어 페르쿠스 가문의 평화까지 말이다.

하지만 분개한 리아에게 윤리관 따위가 소용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분을 삭이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무게감이 내 허벅지 위로 전해진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리아가 내 품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느닷없이 여동생의 몸과 밀착하게 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입에서 곧장 타박의 말이 터져 나왔다.

“리아, 너……!”

“……오호, 왜 그러셔?”

리아는 일부러 엉덩이를 뒤로 밀어 나와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훅, 하고 끼치는 여체의 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열 살을 조금 넘은 나이였는데, 어느덧 그 자그맣던 여자아이가 이만큼 컸던가.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얼이 빠진 사이, 리아는 한 술 더 떠 내 가슴팍에 바짝 몸을 밀착시켰다. 부드러운 압박감이 천 너머에서 전해졌다.

키득거리면서,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동생한테는 홀리지 않는다며? 혹시 거짓말이었어?”

“……당연히 진심이지. 나는 여동생한테 홀리지 않아.”

“아하, 그래?”

그러자 리아는 은근슬쩍 엉덩이를 내 허벅지 위로 문지르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보드라운 숨결이 뺨을 스친다.

리아가 곧 말을 꺼내리라는 전조였다.

나는 그 간지러운 숨소리에 얼핏 시선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기할래? 오빠가 여동생한테 흥분하는지, 어쩐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리아의 금빛 눈동자에서는 욕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감정의 정체는 아마도 승부욕이리라고, 나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결국 나는 오늘만 몇 번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이거 성추행이야…….”

물론 리아는 내 한탄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킥킥거리며 내 목에 팔을 감았을 정도였다. 누가 보면 새신부를 안은 새신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혹적인 음색으로, 소녀는 결정타를 날렸다.

“……내가 이기면, 오늘 밤은 오랜만에 같이 자는 걸로.”

미친년.

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왜 얼마 전까지 잠이 안 온다는 어리광을 들어줬는지 후회스러울 따름이었다.

단 둘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리아는 이처럼 위험했다.

어떻게든 오빠를 독점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여자였다.

*

여동생의 반란은 그 시작만큼이나 금세 끝을 맞이했다.

더는 참지 못한 내가 리아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아얏!”

의기양양한 태도로 나를 곯려먹던 리아의 눈에 눈물이 한 방울 맺혔다. 뒤이어 내 목을 감고 있던 리아의 팔이 풀리는 건 필연이었다.

당장 아픈 이마부터 문질러야 했으니까.

리아가 울컥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자, 나는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리아,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렇지… 결혼적령기의 처녀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내 꾸중에 리아는 단숨에 기가 죽고 말았다.

내가 리아를 진심으로 나무라는 경우가 드물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리아는 유독 내게 친근하게 굴곤 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리아를 혼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선을 넘으면 잘못을 교정해 줄 필요는 있었다.

그것이 올바른 관계일 테니까.

다만 리아는 풀이 죽은 와중에도 사소한 반항을 시도했다.

“……나, 나는 결혼 안 할 건데.”

“그건 모르는 거야, 리아… 나중에 네 인생이 어떻게 풀릴 줄 알고.”

그렇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하는 리아는, 조금 울적해 보였다.

설마 내게 혼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내 기세도 한 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용히 리아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리아, 돌아온 뒤에도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나중에 벌충할게.”

“……진짜지?”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리아의 등을 토닥였다.

솔직히 말해 리아의 부푼 가슴이 닿아 조금 답답하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오빠로서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만일 성녀였다면 이만큼 힘을 주어 안기는 힘들었으리라.

문득 불손한 감상을 품은 나였으나, 리아가 내 속내를 알 턱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품에서 귀여운 투정을 부릴 따름이었다.

“진짜로 해달라는 거 다 해줄 거야?”

“그럼, 당연하지.”

“잠도 함께 잘 거고?”

“아니, 그건 좀… 부모님한테 들키면 사단 난다.”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단 둘이 침실로 드는 것은 오해를 사기에 좋았다.

리아를 달래며 재운 적은 대략 재작년쯤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아직 어린 나이라며 애써 납득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제 리아는 내년 아카데미 입학을 앞둔 여인이었다.

부모님한테 들켰다가는 꾸중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러한 내 마음도 모르고 리아는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불만의 표시였다.

“그럼, 나 빼고 다른 여자들 다 쫓아내.”

“손님한테 어떻게 그래.”

“……치.”

결국 나는 리아를 달래기 위해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그나마 리아가 단 둘이 도시 나들이를 가는 정도로 만족해서 다행이었다.

조금 더 리아와 밀착해 있었다면 위험할 뻔했으니까.

리아가 엉덩이를 문지를 때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응접실을 나섰다.

이제 레이놀드 씨를 찾아갈 차례였다.

**

레이놀드 씨는 여관에서 머물고 있었다.

조금 낡긴 했지만 주인아저씨가 공들여 관리해 온 건물이었다. 몇 안 되는 페르쿠스 영지의 여관 중에서는 최고라 할 만했다.

그럼에도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쯤 되는 손님에겐 조금 부족한 대접이긴 했다.

특히 그 깐깐한 레이놀드 씨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엘시 선배의 전례를 생각해 보면, 레이놀드 씨 또한 라이넬라 가문에서 온갖 귀한 대접을 받아왔을 터였다.

시골 영지의 낡은 여관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이를 염려한 아버지가 저택의 사용인 몇 명을 파견해 주기로 했으나, 레이놀드 씨가 한사코 거절한 탓에 성사되지 못했다.

그때는 레이놀드 씨가 괜히 자존심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여관에서 레이놀드 씨를 마주하니, 그러한걱정들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레이놀드 씨는 정복까지 풀어헤친 채로 방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 무뚝뚝한 사내였지만 그가 한결 편해 보인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방 안에는 몇 권의 책과 낡은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지팡이에 관심을 보이자, 레이놀드 씨는 언제나와 같이 속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한때 용병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쓰던 지팡이일세.”

“……용병이요?”

의외의 과거를 들은 내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하급 귀족이야 돈이 부족해서 용병을 할 때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돈이 마를 리 없는 고위 귀족이 굳이 그 험한 직종에 종사하다니.

레이놀드 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젊을 때의 치기였지… 그때는 가문의 구속이 너무나 싫었네. 사랑하던 연인과 파혼을 한 이후, 나는 자유를 찾아 가문을 떠났지.”

이 목석같은 사내도 사랑을 하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가문의 규율을 중시할 것 같은 인간이 가출을 할 정도였으면, 꽤나 뜨거운 사랑이었으리라.

연애담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끄는 소재였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레이놀드 씨의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좋았네, 행복했고… 그 탓인지 지금도 화려한 침실보다는 이처럼 깔끔한 여관이 더 편하더군. 그런데 혈육의 정이란 생각보다 질긴 법일세.”

“결국 가문으로 돌아가셨잖습니까.”

내 맞장구에 레이놀드 씨는 흐릿한 고소를 머금었다.

그가 처음으로 보인 표정다운 표정이었다.

“……행방불명이 된 날 찾아 형이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네. 어린 시절부터 엄격하고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지.”

레이놀드 씨는 그 마음을 이겨내지 못한 듯했다.

그토록 강한 형제애로 묶인 사이라면 마도병단을 맡길 만도 했다. 게다가 레이놀드 씨는 가문까지 버리고 나갔던 몸, 권력을 탐할 리도 없었다.

어쩌면 라이넬라 백작도 이를 알고 동생을 찾아다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마법사’라 불리는 존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전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추론에 불과한 생각이었다.

외인에 불과한 내가 눈치 없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레이놀드 씨가 지팡이를 바라볼 때의 눈빛이 조금 다르다고는 느꼈다.

애수에 잠긴 눈이었다.

얼마쯤 지팡이를 응시하고 있던 레이놀드 씨는, 이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가?”

나는 준비하고 있던 대사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주로 네리스 선배가 조사해 온 정보였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실종 사건이 있었으며, 그 당시 돌던 소문이 또 다시 돌고 있고, 그래서 유르디나 가문의 주둔지를 찾아가 소문의 진상을 파헤쳤다는 내용이었다.

이윽고 이야기가 미트람과 조우한 대목에 이르자, 레이놀드 씨는 감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가 나지막히 탄식했다.

“……자네 하나가 라이넬라 마도병단 전부를 합친 것보다 낫군.”

대부분은 네리스 선배의 공이었으니 쑥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레이놀드 씨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라이넬라 가문도 협조해야겠지. 황제 폐하의 명도 있으니 말일세. 다만,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남몰래 주먹에 힘을 주었다.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이 돕는다면 탐색이 몇 배는 수월해질 터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뜻을 담아 레이놀드 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직후, 레이놀드 씨가 던진 질문이 너무나 의외라서.

“……자네, 엘시랑 약혼할 의사가 있나?”

내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말았다.

내가 내놓을 대답에 따라, 나와 엘시 선배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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