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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48화 (248/649)

〈 248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41)

* * *

페르쿠스 저택에 돌아오니 벌써 이른 오후였다.

레이놀드 씨와 간단한 식사를 끝마치고 온 참이었다. 과연 용병 출신이라던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는지, 그는 시골 여관이 준비한 식사도 불만 없이 먹어치웠다.

도리어 마도병단의 몇몇 젊은 단원들이 조금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법사는 귀하고, 뛰어난 마법사는 더더욱 귀했다.

가문에서 귀한 대접을 받다가 시골 영지로 내려왔으니 불만이 있을 법도 했다. 심지어 그동안 성과조차 내지 못했으니 고생한 보람도 없었다.

마음이 편하다면 이상하리라.

그 탓인지 단원 중 몇몇은 내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오기도 했다. 고위 귀족 가문의 일원들답게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난 모양이었다.

협력할 상대와 승부를 겨룰 상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하면 말이다.

물론 쓸데없는 갈등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레이놀드 씨가 엄숙한 목소리로 단원들에게 경고한 덕이었다.

“라이넬라 가문의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다들 언행에 신중을 기해라.”

공개적으로 내가 엘시 선배의 약혼자 후보로 오른 날이었다.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그야 엘시 선배는 내게 과분한 신붓감이었지만, 아직 엘시 선배의 마음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내게 품은 것이 사랑인지, 혹은 동경인지 헷갈리기만 했다.

그처럼 복잡한 심경으로 저택의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곳에는 이미 두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레토와 유렌, 나를 제외하면 일행 중 몇 없는 남성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리아가 유독 화가 난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여섯 명의 손님 중 넷이 여자였으니, 그 질투심 많은 리아가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만일 레토와 유렌만 데려왔으면 리아의 태도는 한결 누그러졌겠지.

물론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이는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본래 동성끼리 모임을 가지면 한 사람도 빠지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어느덧 두 사람은 나를 빼놓고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들의 마음속 동성집단에서 배제된 모양이었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자 레토와 유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제야 나는 약간의 서운함을 담아 물었다.

“……남자끼리 뭐하냐? 유렌이야 그렇다 치고, 레토 너는 여자도 좋아하는 놈이.”

“이안, 만일 내가 받아야 할 돈이 있다 치자. 그러면 그 돈에 손댈 거냐?”

뚱딴지같은 레토의 반문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헛소리야? 내가 왜 친구 돈에 손을 대.”

“그런 거야… 뭐, 애초에 건들 수도 없는 상대들이지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뱉어진 대답은 여전히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하지만 재차 그 말뜻을 캐물어 봐야 레토에게 타박이나 들을 것이 뻔했다. 검술학부가 이래서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느니, 하는 원색적인 비난들.

굳이 듣지 않을 욕을 먹는 취미는 없었다. 나는 그만 레토에게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 대신 내 시선이 옮겨간 곳이 바로 유렌이었다.

탁, 하고 카드로 탁자 위를 내리치는 그의 표정도 심드렁하기만 했다.

“하, 재미있는 일 없나? 날붙이, 피, 전투… 괜히 누님 좀 도와보겠다고 참견하는 게 아니었는데…….”

“참견이라니?”

“누님이 하도 밤에 펑펑 울길래 조금 조언을… 아차, 이거 비밀이었나?”

그러면서 유렌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제 보아도 신비롭고, 잘 생긴 사내였다.

너무 잘 생겨서 한 대 패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애초에 유렌과 겨뤄봐야 백중세를 이룰 테니, 때리고 싶다고 때릴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유렌에게서도 조금 캐물을 내용이 있을 듯 보였지만, 나는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마침 유렌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소식을 가지고 있던 차였다. 굳이 친구의 기쁨을 미루어 둘 까닭이 없었다.

어차피 일행과 공유해야 할 정보였다. 몇 명에게 조금 일찍 공개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내게서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들은 유렌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드디어 전투냐?!”

“아직 몰라. 혹시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아니, 무조건 전투야!”

유렌은 기묘할 정도로 확신에 가득 차서 말했다.

“이안, 지난번에 말했던 적이 있지? 마수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마인뿐만이 아니야. 암흑사제도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지, 그런데 왜 그 암흑사제는 숲에 마수를 부르지 않았을까?”

“……발각되지 않으려고?”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은 발각돼 버렸네?”

레토의 입에서 낮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조건 전투뿐이야… 뒤늦게 마수를 불러오든, 혹은 마수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전력을 갖추고 있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준비는 끝났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후자?”

두통을 가라앉히는 레토와 신이 난 유렌의 목소리가 기묘한 화음을 이루었다.

그 말소리는 하나같이 한 가지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숲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연적으로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숲에 미트람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놈이 그렇게 쉽게 꼬리를 잡힐까?”

“……잡힐걸?”

여전히 자신만만한 태도로, 유렌은 예의 그 수상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암흑사제는 은거지에서 잘 벗어나지 않거든. 본체가 기다리고 있다면, 모습을 드러낸 곳 인근일 거야.”

성국의 호위기사가 암흑교단의 사정을 어찌 그리 잘 안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단단히 채비를 하라고 일러두어야겠다.

그렇게 일행들에게 전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나는 숲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급히 꾸려진 탐색대가 출발했다.

탐색대에 포함된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은 외부의 군대였다.

행선지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페르쿠스 가문의 식솔들은 우리의 목적지는 물론이고 목표까지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리아는 곧장 필사적인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출발 직전까지도 리아는 나를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래 이쯤 되면 아버지나 형이 나서 리아를 만류해야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체면 탓에 나서지 못할 뿐이지, 마음만큼은 리아와 같다는 뜻이었다.

결국 리아의 반대를 홀로 떠안게 된 내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리아, 가야 해. 이건 단지 페르쿠스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페르쿠스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면 왜 오빠가 나서야 하는데? 중앙군을 기다려도 되잖아!”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자 나선 것은 아이린 경이었다.

일전의 만남 이후로 아이린 경은 리아의 곁에서 눈에 띌 때가 많았다. 미래에서 온 ‘나’의 지시를 잘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리아 님, 스승님께서는 탐색대의 핵심 구성원 중 한 분이십니다. 라이넬라 마도병단은 예외로 쳐도, 그 외의 전력을 이끌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그럼 다른 사람이 이끌라고 해!”

“목숨을 건 전장에서 지휘관의 판단은 곧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 그 책임만큼이나 동료들의 인정받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긴급한 상황에서 지시가 얽히거나 지연될 위험이 존재했다.

하물며 나는 미트람과 악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매듭을 지었으면 끊을 줄도 알아야 했다. 죽을 수도 있다고 책임을 방기하는 이는 귀족이 아니었다.

결국 할 말이 궁해진 리아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안 돼,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안 돼! 정 가야 한다면, 나도 데려가!”

“……리아.”

나는 또 다시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더는 리아의 투정에 어울려 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린 경에게 부탁했다.

“아이린 경, 부탁드립니다. 리아를 잘 지켜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호위 실패는 지긋지긋하거든요.”

아이린 경은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결국 리아는 아이린 경의 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아, 아이린 경! 이거 놓으세요! 우리 오빠가 지금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리아의 애원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이안…….”

아버지께서는 유독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명심하거라, 암흑교단과 얽히면 늘 후회와 아픔뿐이다. 그들의 혀를 믿지 마라.”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단언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아버지는 나와 악수를 나누었고, 어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품에 안았으며, 아론 형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내 동료들도 각자 친해진 가족들과 짧은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엘시 선배는 아버지에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성녀는 내 목숨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세리아는 아론 형으로부터 홍옥 원석을 하나 더 받았다.

아마 응원의 의미일 터였다.

어느덧 목숨을 건 전투가 일상이 된 나였다. 그럼에도 나를 떠나보내는 가족의 애틋한 낯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나는 진심으로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최대한 다치지 않고 돌아오기로.

물론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 리 없는 다짐이었다.

난데없이 민간인들로 보이는 이들을 숲에서 마주치자마자, 나는 고함을 내질렀다.

“……전원 전투 준비!”

그중에는 내가 알고 지내던 얼굴도 있었던 탓이었다.

실종자들이었다.

미트람의 실험체가 된 이웃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우리를 덮쳐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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