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51화 (251/649)

〈 251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44)

* * *

벼락이 그친 뒤에야 세상이 조금 조용해졌다.

나는 헐떡이면서, 미트람이 밀치는 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미트람이 나를 찌른 단검에는 검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아마도 악신의 힘일 터였다.

미트람은 그제야 가뿐해진 낯으로 몸을 일으켰다.

“후, 시원하다… 여동생을 때리다니 너무하네, 오빠.”

찔린 부위가 점차 부패하고 있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품속에서 힐링 포션을 꺼냈다.

델핀 선배한테 받아낸 물약을 엠마가 개조한 물건이었다.

악신의 힘에도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뿌리고 보니 상처가 덧나는 정도는 방지할 수 있었다. 흐릿하던 시야가 비로소 맑아졌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일격을 허용한 터라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실험체들이 미트람의 주위를 에워쌌다.

대부분은 땅에서 솟아오른 실험체들이었다.

무장을 보아하니 기사부터 시작해서 직업군이 다양했다. 미트람이 아끼고 아낀 전력답게, 하나하나가 지난번 마주쳤던 시녀장 수준은 되어보였다.

우리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가정폭력으로 고발할까? 아아, 맞다. 나 암흑사제라 불가능하려나~”

“……지랄하지 마.”

울컥 치솟는 것은 핏물뿐만이 아니었다.

내 살벌한 목소리에, 미트람은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응시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너, 리아 아니잖아.”

“눈으로 본 사실을 부정하는 거야? 조금 추하다, 오빠…….”

“리아는 아직 스물도 안 됐어.”

내 반론에 미트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거친 숨을 고르며, 미트람에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실종 사건이 시작된 지는 10년도 더 됐고, 그런데 리아가 그 나이부터 암흑사제로 활동했다고?”

미트람의 입에서 흐응, 하고 미묘한 소리를 흘러나왔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소녀는 싱긋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뭐, 10년 전에는 또 다른 암흑사제가 활동했나 보지?”

“너 같은 쓰레기가 둘이나 있을 리가 없잖아.”

으르렁거리며 뱉어진 말에 미트람은 손뼉을 치며 꺄르르 웃었다.

너무나 재미난 농담을 들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안타깝지만 오빠, 암흑교단에 사제가 몇이나 있는 줄 알아? 그중에 납치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그리고 리아한테는 종일 아이린 경이 붙어있었고.”

미트람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이내 불퉁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 그 쓸모없는 년.”

이제 미트람은 할 말이 궁한 듯 보였다.

페르쿠스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단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확신을 가진 부분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리아는 쇄골에 점 있어, 개자식아.”

내 지적에 눈을 동그랗게 뜬 미트람은, 이내 슬쩍 제 쇄골 어림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얬다.

점이라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차, 하고 미트람은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이럴 수가, 이 내가 이따위 실수를? 그리고 이안 페르쿠스…….”

맑고 청량하던 목소리가 서서히 들끓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미트람의 목소리였다.

비로소 가식을 벗어낸 여인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짧은 순간에 여동생의 몸을 훑어봐요? 비정상입니다, 비정상… 물론, 암흑교단은 비정상을 사랑하죠. 어떻습니까, 이참에 암흑교단에 입교해 금단의 사랑을 이루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제안이었다.

남매끼리의 사랑이라니, 암흑교단에 입교할 사유치고는 황당했다.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 손에 손도끼를 들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짖은 것은 그와 동시였다.

“……세리아!”

직후, 회색의 섬광이 내달린다.

내쏘아진 소녀의 몸이 거리를 단숨에 엄습했다.

내가 그랬듯이, 일행 또한 미트람의 외양을 보고 당황했을 터였다. 하지만 일단 내가 판단을 내린 이상 일행은 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주었다.

세리아의 검에 맺힌 푸른 오러가 실선을 새긴다.

그에 대응하는 것은 미트람의 옆에 서 있던 실험체들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익스퍼트에 이른 세리아의 검격을 차례차례 막아내고 있었다.

세리아가 기사로 보이는 실험체 하나의 팔을 절단하긴 했으나, 의미 있는 성과는 아니었다.

팔이 잘려나간 자리가 부글부글 끓으며 흉측한 촉수가 튀어나온 탓이었다.

세리아는 그 징그러운 광경에 깜짝 놀라 흠칫 몸을 굳혔다. 그 사이 촉수가 주위의 시체로 뻗어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잘린 팔이 다시 자라났다.

더 크고 강인한 팔로.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안타깝게도 세리아 또한그 예외는 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등 뒤를 노리던 또 다른 실험체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꺄아악!”

“세리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내달리려 했다.

그러나 내 앞을 막아선 것은, 미트람이었다.

그녀가 히죽이며 손에 검붉은 기를 피워 올렸다.

“놀이상대는 따로 있습니다, 이안 페르쿠스… 오랜만에 갈아탄 육체인데, 저도 조금은 즐겨봐야죠.”

“……갈아탔다고?”

내 반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실험체들이 말없이 땅을 박차고 쏘아졌다.

내가 아니라 일행이 목표인 듯했다.

나는 손도끼로 미트람의 팔을 내리찍으며, 엘시 선배에게 외쳤다.

“엘시 선배! 연락용 스크롤 찢었어요?!”

“지, 진작찢었는데 아직도 반응이 없어요!”

캉, 하고 도끼와 팔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미트람이 정권을 내지르자 나는 슬쩍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그리고 자연스레 팔을 붙잡고 반격하려던 내 손에 작열감이 느껴졌다.

내 눈이 미트람의 낯짝을 향했다.

그녀는 태연자약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소용없습니다, 이안 페르쿠스.”

화르륵, 하고 검은 불꽃이 치솟자 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미트람의 팔에서 일어난 불꽃의 화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불꽃이 휘몰아치며 채찍처럼 나를 덮쳐왔다. 도끼에 오러를 씌워 절단을 시도하긴 했으나, 절단당하는 즉시 다시 재생하는 불꽃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불과 도끼의 윤무가 이어졌다.

“그 라이넬라 가문의 머저리들을 상대할 실험체도 따로 준비해 두었죠. 그리고 애초에 연락 마법 따위, 사전에 차단해두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곳은 제 은거지인데.

키득거리며 미트람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뱀의 혀처럼 낯가죽 앞을 훑었다.

그 열기에 눈알이 익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일행 쪽의 상황도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전위 중에서는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셀린이 호위로 붙은 탓이었다.

“으, 꺄아아악!”

셀린의 비명 소리에 나는 발작하듯 옆을 돌아보았다.

대여섯 명의 실험체가 달려드니 셀린도 더는 견뎌내지 못했다. 성녀와 엘시 선배의 지원을 등에 업었으나, 후방 지원이 아무리 좋아도 근접전을 허용한 순간 끝이었다.

내 입에서도 탄식이 새어나왔다.

“셀린! 이런 씹……!”

“오, 빈틈 빈틈. 한 눈 파셔도 괜찮겠습니까?”

쾅, 하고 검은 불꽃의 채찍이 지반을 치자 폭음이 터져 나왔다.

불꽃 주제에 물리력까지 갖춘 모양이었다.

나는 손도끼를 연달아 휘두르며 뱀의 혀처럼 낼름거리는 불꽃을 잘라냈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암흑사제라 하더라도 악신의 힘 또한 한계가 있을 터였다.

그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실험체들의 역량이 상상 이상이었다.

결국 내게도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미트람을 노려보자, 미트람은 리아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이 육체를 얻어낸 것인지…….”

“뭐, 납치라도 했냐?”

팍, 하고 내리찍은 도끼날에 걸린 불꽃의 채찍이 절단되어 땅바닥 위로 떨어졌다.

한동안 꿈틀거리던 불꽃은 사그라지며 이글거리며 타는 잡초만을 남겼다.

부상 탓에 슬슬 숨이 가팔라지는 나와 달리, 미트람은 여유만만한 낯빛으로 내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럴 리가요. 암흑교단은 늘 선택과 대가를 중시합니다. 누군가 선택을 하면, 암흑교단을 그 대가를 지불하고 제 몫을 받아올 뿐입니다.”

“어차피, 허억… 복제된 몸이면서!”

나는 그 무렵 손도끼를 내던졌다.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미트람은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꺾어 피해냈을 뿐이었다.

어차피 나도 미트람이 맞아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몸을 날려서, 투척했던 검을 다시 손에 쥐었을 따름이었다.

손도끼가 궤적을 꺾어 다시금 내 손으로 되돌아왔다.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도끼.

불꽃의 채찍을 쳐낼 조건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꺄하핫! 모르는 소리! 복제에도 원본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무척 오랜 기간, 꾸준한 연구가 없으면 복제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대량 양산이 힘든 겁니다!”

“무슨,후우…개소리야.리아는 우리 집에 있는데, 임마!”

발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내 검과 도끼가 불꽃의 채찍을 삼분했다.

단숨에 타오르던 불꽃의 기세가 누그러졌다.나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실로오랜만에 미트람이 내 공격권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미트람은 광증 어린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푸흐흡… 그, 그러니까 재미있다는 겁니다! 아아, 이토록 비극적인 운명이라니?”

팍, 하고 나는 검을 미트람의 교차된 팔에 걸어 잡아당기듯 풀어냈다.

드디어 미트람의 품이 열렸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이를 깨달은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익숙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오빠, 나 죽일 거야?”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는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손도끼가 팍, 하고 미트람의 골통을 으깨버렸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