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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252화 (252/649)

〈 252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45)

* * *

사방으로 핏물과 살점이 비산했다.

손도끼로 미트람의 두개골을 으깬 결과였다.

솔직히 마지막에 망설일 뻔했지만, 도리어 리아를 닮은 몸뚱아리로 흉내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욕지기가 치솟았다.

내게 소중한 여동생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여동생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리아의 얼굴을 하고, 리아의 목소리로 리아의 말투를 따라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미트람은 리아를 향한 내 사랑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숨을 가다듬으며, 미트람의 상태를 조심스레 살폈다.

머리를 잃은 육체는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용케도 쓰러지지 않는다 싶었다.

모든 생명은 머리가 박살나면 죽기 마련이었다. 본래라면 그 진리에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방심하고 말았다.

이성으로는 미트람의 개조된 육체가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리아를 죽인 듯한 죄악감에 일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빙글, 하고 머리를 잃은 육체가 우아하게 회전한 것은 그때였다.

나는 다급히 검과 도끼를 교차시켰다. 척추반사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미트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콱, 하고 발차기가 검과 도끼의 교차점을 즈려밟았다. 이대로 끝이라면 좋았을 테지만, 미트람은 곧장 발을 거두며 부드러운 연계동작을 그렸다.

마치 무용이라도 하는 듯 막힘이 없는 연결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일격의 위력은 일개 무용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쾅, 하고 뇌리에 천둥이 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측면을 후려친 발차기의 운동량은 무시무시했다. 그러지 않아도 부상을 입었던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울컥, 하고 핏물이 입에서 흘러나오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덧 땅 위에 엎어져 있었다.

옅은 신음을 흘리며 흔들리는 초점을 애써 다스렸다. 내 눈이 슬그머니 정면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미트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보고 또 봐도 리아와 똑 닮은 몸이었다.

그 쇄골로부터 흉부로 떨어지는 곡선부터, 유독 도드라지는 골반과 둔부의 굴곡까지.

차이점이 있다면, 리아는 머리를 잃었다고 해서 피거품이 부글부글 끓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재생의 전조였다.

머리를 날려버렸는데도 재생에 이르는 시간이 극히 짧았다.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재생 능력이었다.

불사신이라도 되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그만 허탈해지고 말았다.

어떻게 저딴 괴물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암울한 절망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러든 말든, 미트람은 리아를 닮은 몸뚱아리로 어여쁜 음색을 흉내 낼 뿐이었다.

“아아, 진짜 너무하다. 어떻게 여동생 머리를 그렇게 망설임 없이 내리쳐?”

“닥치라고, 커헉! 했어…….”

쿨럭이며 핏물을 뱉어낸 내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무래도 충격을 이겨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미트람이 그만큼이나 시간을 줄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팍, 하고 미트람의 발이 내 손목을 짓이긴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참아내려 했으나, 저절로 벌어지는 손가락마저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옅은 신음을 흘리며 손도끼와 검을 놓아 버렸다.

그제야 만족한 듯 미트람이 무릎을 굽혔다. 엎어진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리아를 닮은 입술로 슬픈 음색을 읊었다.

“우리의 운명이 기구하군요, 이안 페르쿠스… 하지만 이제 끝입니다.”

미트람의 가녀린 손이 내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리고 강제로 내 고개를 치켜들게 한 미트람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시선을 어딘가에 고정시켰다.

그곳에는 이미 쓰러지고 제압당한 일행들이 있었다.

“이, 이안… 꺄악!”

“주, 주인님? 야 이 씨발년아! 우리 주인님 당장 놓지 못… 으그읏?!”

성녀와 엘시 선배였다.

둘은 나를 보고 걱정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제압이 끝난 뒤였다.

팔을 등 뒤로 꺾으며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는 손길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실험체들의 완력은 익스퍼트 이상이었다.

두 사람의 비명을 들으며, 나는 곧장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팔이나 조금 허우적거리는 정도였다. 미트람은 그 사소한 몸부림마저 막아서지는 않았다.

다만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어 보였을 따름이었다.

“당신 덕에 멋진 소재를 구했습니다, 이안 페르쿠스. 지금 저들을 제압하고 있는 실험체들이 제 최고의 역작들이거든요… 기사, 첩보부 요원, 우수한 용병까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열 명 남짓의 실험체를 하나하나 바라보던 미트람은, 이내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오늘 얻은 소재로 만들 작품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하죠.”

“과연 네 마음대로 될까?”

내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은 도발에, 미트람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 저들의 눈을 보시죠.”

세리아, 셀린, 그리고 성녀와 엘시 선배까지.

내 동료들은 하나같이 분하고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나에 대한 걱정이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는 감정도 섞여 있었다.

미트람의 설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도 그만두시죠. 특별히 당신은 인격을 남겨 암흑교단의 충실한 종으로 살게 해드리겠습니다.”

죽지 않는 불멸의 육체와 함께 말이죠.

선심 쓰듯 덧붙이는 말에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로서는 이제 수가 없었다.

남은 수단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더듬거리며 내 품을 뒤적이던 나는, 원하던 것을 찾아내자마자 입을 열었다.

“……미트람.”

“말씀하시죠, 이안 페르쿠스.”

그 느긋한 대답에 나는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수밖에 없었다.

“고생해라.”

그러자 허공이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용혈 문자’였다.

마지막까지 일행들에게는 숨기고 싶었지만, 이제 어쩔 도리가 없었다.

**

핏빛 도형이 새겨진다.

마치 세상에 상처가 난 듯한 광경이었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데, 저절로 그려지는 선들이 하나의 문자를 이루었다.

대륙에는 온갖 전설과 신화가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도, 이와 같은 특징을 보이는 마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엘시의 입에서 넋이 나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혈 문자…….”

제국 황실의 상징이자, 황제의 최측근만이 부여받을 수 있는 비전 마법.

귀족이라면 그 정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셀린과 세리아의 눈도 부릅떠진 지 오래였다. 아직까지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성녀와 미트람뿐이었다.

이미 용혈 문자의 존재를 알고 있던 미트람은 급히 몸을 던졌다.

아슬아슬한 판단이었다.

그가 자리를 피하자마자, 용혈 문자는 주위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음과 함께 불꽃의 폭풍이 공터를 휩쓸었다.

쾅, 하고 터져 나온 불길이 마구잡이로 주위를 불태웠다.

그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이안 페르쿠스였다.

그는 땅을 딛고 서자마자 품에서 자그마한 약병을 하나 꺼냈다.

용혈 문자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고작해야 한 번밖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던 미트람이었다.

이제야 용혈 문자를 사용하는 그 인내심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용혈 문자로 만든 빈틈에 수상쩍은 물약을 복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불길함을 느낀 미트람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안 페르쿠스! 무, 무슨 짓을……!”

미트람의 실험체들이 이안에게 급히 다가섰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이안은 약병을 기울여 두어 방울쯤 되는 물약을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미트람은 바짝 긴장한 낯빛으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미트람의 뇌리 속에서 이안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쓸지 알 수 없었으므로 대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했다.

심지어 지금은 비장의 무기인 용혈 문자까지 꺼내들지 않았는가.

그 소중한 기회를 생각없이 낭비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이안이 보인 행동은, 미트람의 사고를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안은 그대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너무나 뜬금없는 결과에 미트람은 그 자리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

의문을 품은 것은 미트람뿐만이 아니었다.

이안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일행 또한 그 의중을 짐작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숲의 공터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그 침묵이 깨져나간 것은, 잠시 후.

움찔, 하고 이안의 손가락에 경련이 일었다.

신음을 흘리며, 사내의 몸이 휘청거리며 일으켜졌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 눈동자에는 얼떨떨한 기색만이 맺혀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잠깐 사이 인격이 달라진 것처럼.

한동안 주변을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멎은 곳은 미트람이었다.

의문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던 사내는, 미트람을 보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미트람.”

그는 후우, 하고 깊디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캉, 하고 그의 발이 가볍게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즈려밟았다.

그 반동으로 튕겨 오른 검은 자연스레 사내의 손에 안착했다.

검술뿐만 아니라 검 자체에 깊은 조예가 없다면 보일 수 없는 묘기였다.

사내의 금빛 동공에 서서히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미트람도, 일행조차도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강하다.

본능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승부를 앞두고 저토록 침착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이는 얼마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실전 경험과,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미트람은 마른침을 삼키며 사내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폈다.

지독한 피로가 어린 눈빛이었다.세월과 전란의 모든 풍파를 홀로 감내한 것처럼.

사내는 그토록 지친 눈을 한 채로, 무심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건 처음인데.”

그러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듯.

사내의 목소리에는 단 한 톨의 감정조차 묻어있지 않았다.

마치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으로 해가 지듯 당연한 사실을 읊는다는 태도였다.

미트람은, 오늘 죽는다.

그것이 사내의 결정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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