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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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지는 사내의 목소리는 고저 없이 평탄하기만 했다.
호흡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사내는 능숙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아무리 거세도 그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그만큼이나 말을 타는 일에 익숙하다는 듯.
이안도 승마에 일가견이 있긴 했으나, 사내의 솜씨는 그 이상이었다.
보면 볼수록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사내의 질문에 답이 돌아올 때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속내조차 짐작키 어려운 정체불명의 강자였다.
누구든 대화를 나누고 싶을 턱이 없었다.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누가 안단 말인가.
결국 사내의 대화상대로 당첨된 쪽은 성녀였다.
그나마 사내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탓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소음에 가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네,어떻게 죽인 거죠?!우리가 했을 때는,계속 재생하던데요!”
사내는 흘깃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동안 침묵 속에서 성녀의 낯을 뜯어보고만 있었다.
그대로 감상만 하고 있을 셈인가, 하고 성녀가 다소 불쾌한 심정을 품기 직전이었다.
그제야 사내의 입이 열렸다.
“암흑교단이 사용하는 악신의 힘은,오러와 비슷하거든.”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름 암흑교단에 대한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성녀조차 들어본 적 없는 정보였다.
호위를 이유로 저택에 남아야 했던 유렌이라면 몰라, 나머지 일행도 금시초문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일행의 이목이 사내에게로 집중되었다.
이윽고 성녀의 눈동자까지 그를 향하자,사내는 조곤조곤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둘 다 사용자의 심상을 구현해서 현실을 왜곡시키는 힘이야. 다만 악신의 힘은 계약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지…미트람도 마찬가지였고.”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 사이로 사내의 목소리가 푹푹 내리꽂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를 향한 의문은 더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아리송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육체를 강탈해서 젊음을 누려온 녀석이야.오늘 파괴한 육체도 진정한 의미에서‘본체’는 아니겠지.다만 몸을 재생시키고 옮겨 다니는 힘이 일종의 오러라면,파훼법도 오러와 같을 수밖에.”
이어지는 말에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성녀는 희미한 탄성을 흘렀다.
“……더 강한 오러.”
“그래,더 강한 심상.”
사소한 오차였으나 사내는 굳이 성녀의 답을 정정해 주었다.
아무래도 사내는 그 사실을 꼭 전하고 싶었던 듯했다.
사내가 이처럼 먼저 말을 건넨 덕인지,일행의 긴장감도 어느덧 옅어져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질문을 던진 쪽은 엘시였다.
“야,괴물딱지!”
사내는 엘시의 부름을 무시했다.
그러든 말든 엘시는 초조한 기색으로 재차 물어왔다.
“우리 주인님은 언제 돌려주는 건데?!저,저택에 돌아가면 바로 돌려주는 거지?”
끝까지 엘시를 무시할 수 없던 사내는,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엘시에게 말했다.
“……‘주인님’이라고 하지 마.”
“뭐?왜?”
엘시가 고개를 갸웃하자 사내는 울컥한 듯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다.
그가 이토록 선명한 감정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일행의 의아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사내는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사내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왠지소중한 추억이 더렵혀지는 느낌이라서.”
괴로운 음색이었다.
그 말소리에는 애수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성녀의 낯빛에 일순 안타까움이 스쳤을 정도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내의 상대는 그 엘시였다.
엘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또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왜 너 따위를 배려해야 하냐는 반문이었다.
사내는 결국 한숨과 함께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려…저택에 돌아가는 대로 용무만 처리하고 돌려줄 테니까.”
그렇게 대화를 매듭 짓는 사내의 눈빛에는 슬픈 기색이 역력했다.
그 외에도 사내에게는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대개는 당신이 진짜‘이안 페르쿠스’가 맞냐느니,혹은 미트람이 최후에 언급한‘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더불어 미트람이 어째서 리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내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레토한테 물어봐.”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지.”
"페르쿠스 가문 내부의 사정이야."
결국 일행은 별다른 소득 없이 페르쿠스 저택에 도착해야 했다.
한나절 내내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이 같으니 그들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사내가 무거운 침묵을 지키던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사내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고 짐작해 볼 뿐이었다.
페르쿠스 저택에 도착한 후, 일행은 말을 마굿간에 맡기고 곧장 정문으로 향했다.
성녀가 사내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사내의 복부에서 옅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미트람에게서 당한 상처였다.
힐링 포션으로 응급처치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전투 중에 다시 봉합된 부위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성녀는 깜짝 놀라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피,피……!”
“호들갑 떨지 마.”
그러나 성녀가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사내는 칼 같은 어조로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조금 무리했을 뿐이야…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까,당연히 상처가 터질 수밖에.그래도 이 정도로 미트람을 죽였으면 이득이야.”
의젓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핏물이 흘러나와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 그 모습은, 가히 검사의 모범이라 할 만했다.
그럼에도 성녀가 목소리를 높여 항의해야 할 까닭은 아직 충분했다.
“……다,당신 몸 아니잖아요!”
지금 사내가 점유하고 있는 몸은 성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다.
당연히 사내가 강한체를 해봐야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았다. 도리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었다.
사내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그럼에도 그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할 뿐이었다.
“나 아니었으면 어차피 다 죽었어.”
성녀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물론 사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단지 걸음을 옮겨 저택의 문 앞에 섰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벌써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거리는 소녀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리아 페르쿠스.
이안의 여동생이자,재색을 겸비한 여인으로 주변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신붓감이었다.
미모로 명성이 자자한 만큼 그 외양은 아리따웠다.
그녀를 본 일행은 몸을 흠칫 굳히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미트람을 떠올리고 만 탓이었다.
광소를 터트리며,실험체들을 조종하여 일행들을 하나하나 제압해가던 광인의 모습을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리아는 타인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만 이안을 보자마자 펄쩍 뛰며 그에게 달려왔을 따름이었다.
헐레벌떡 사내에게 다가선 리아는, 곧 울상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는 사내의 복부가 비치고 있었다.
터진 상처에서 배어나온 핏물은 어느덧 상의를 축축히 적시고 있었다.
“이,이게 뭐야…내가 못 살아 진짜!”
리아는 속상함을 견디다 못해 발까지 동동 구르고 말았다.
그러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소녀는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오빠를 사랑해 마지않는 귀여운 여동생의 모습이었다.
“그, 그러니까아…내가 위험하다고 했잖아! 왜, 왜 오빠가 거길 가야 하는데!안 되겠어,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야…….”
아름다운 남매 상봉의 장면이었다.
본래라면 이쯤에서 이안이 조용히 리아를 토닥이며 달래주는 그림이 연출되었을 터였다.
유일한 문제는, 눈앞의 사내는 리아가 아는 따스하고 상냥한 오빠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리아.”
리아는 난생 처음 듣는 메마른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신으로 물든 그 황금빛 눈동자가 사내를 향했다.
그러나 이를 마주하는 사내의 표정은 그 이상 차가울 수 없을 만큼 굳어 있어서.
“이 오라비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소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그러든 말든 사내는 냉엄한 꾸중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지금은 손님의 면전이 아니냐. 그런데 네가 오라비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페르쿠스 가문이 어찌 보일지 염려가 앞서는구나."
"아, 그, 그……."
당황한 리아는 그저 몸을 움츠린 채 말을 더듬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그동안 이안은 화를 내더라도 이토록 엄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따스한 목소리로 리아를 달래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화를 내는 사내는 도무지 리아를 달래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론이라, 리아는 감히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제 곧 성인인데,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지. 앞으로 상단을 운영할 때도 그따위로 할 셈이냐?"
"그, 그, 그게에……."
리아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자, 사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재차 물었다.
"……대답."
"아, 아니요……."
사내는 아직도 조금 불만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럴수록 리아는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며 공손히 모은 손바닥에 땀을 쥐어야 했다.
오빠가 이토록 무서울 수 있는지를 처음 안 리아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사내의 꾸중이 이어질 때마다 리아의 움찔거리며 감긴 눈꺼풀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사내는 무어라 한 마디를 더하고 싶은 듯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 설령 상대가 오라비라 해도 말이다."
"네, 네. 오라버니……."
그렇게 사내는 마지막까지 싸늘한 태도로 리아를 지나쳤다.
등 뒤에서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니 그의 걸음걸이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정문을 넘어서자, 그곳에는 문 뒤에서 리아를 지키고 있던 아이린이 서 있었다.
얼떨떨한 눈빛의 아이린에게 사내는 말했다.
"아이린 경, 앞으로도 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마. 한동안 집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네, 넷?!"
"그리고 지난번에 전수한 기술은 잘 익혀 뒀나?"
"아, 아! 네! 스, 스승님 덕분에……."
사내는 그럼 됐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이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선생에게 칭찬받은 계집아이처럼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으로 보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로비를 지나친 사내는 지금까지와 같이 막힘없는 지시를 내렸다.
"다들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나는 가주님과 형님께 인사를 올리고 올 테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셀린의 말이었다.
사내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하자, 셀린은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리아한테, 너무하지 않았나 싶어서……."
"진작 이랬어야 했어."
그 말에 셀린은 무어라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게 읊조리는 사내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
"……진작에 말이야."
그 회한에 잠긴 목소리를 차마 막아설 수가 없었다.
사내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고, 셀린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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