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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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사제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 소식은 사용인들의 입을 타고 곧장 저택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의 모든 이들이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영주가 머무는 곳이라지만, 일개 시골 영지의 저택에 불과한 곳이었다.
이야깃거리라고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화제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보기 드문 대사건이 벌어졌으니,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암흑교단’이 관련된 사건이 아닌가.
이는 그들의 안위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아무리 신경 쓰고 싶지 않더라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택은 그렇게 들뜨면서도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리아 아가씨가 울고 있었다느니, 이안 도련님의 복부에서 피가 났다느니 하는 목격담들이 불길한 미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물며 이안 도련님과 동행했던 동료들의 표정도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았던가.
라이넬라 가문의 마도병단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저택의 사용인들이 불안을 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저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맞이한 이는 따로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레토 아인스턴이였다.
그는 벗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터덜터덜 로비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난데없이 나타난 셀린의 손에 붙잡혀 응접실로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였다.
그러나 냉기가 풀풀 날리는 네 여인이 그의 앞에 자리 잡았을 무렵에는, 제 아무리 레토라 한들 견딜 재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두 손을 들어야 했다.
항복의 표시였다.
“……무슨 일입니까, 아가씨들?”
레토는 그 이후로 여인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 주어야 했다.
“그러니까, 그 사내는 미래에서 온 ‘이안’이라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성녀님.”
레토의 답변에는 막힘이 없었다.
어차피 미래에서 온 ‘이안’ 또한 레토에게 물어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는 곧 정보를 공개해도 좋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더는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물론 레토의 진술을 순순히 신용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워낙 믿기 힘든 이야기였던 탓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엘시였다.
그녀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영 못마땅하다는 기색이었다.
“……어떻게 확신하는데?”
레토는 흐음, 하고 제 안경을 고쳐 썼다.
조금 고심에 잠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렇듯 얼마 지나지 않아 출구를 찾아냈다. 그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혀를 놀렸다.
“그야 방법이 다 있습니다. 이안과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 몇 개 있거든요. 가령 셀린은 열두 살에…….”
“아, 아아아아아아!”
그러자 격렬히 반응한 쪽은 셀린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이내 필사적으로 두 손을 휘저었다.
더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찌나 허둥지둥했는지 그 눈동자가 핑핑 돌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 그만! 믿을게! 저, 저도 보증할게요! 그 사람 이안 오빠 맞아요!”
레토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셀린은 이안과 함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 활약과 무관하게, 동료들 사이에서의 신의는 레토보다 두터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령 동료 사이의 신뢰가 크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레토는 아군 하나를 얻은 셈이었으니까.
그 덕에 레토의 부끄러운 과거마저 밝혀지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의 보증이 아니던가.
이마저도 의심할 수는 없었는지, 엘시는 결국 투덜거리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덜컥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였다.
세리아는 이러한 마음을 대변하듯 기나긴 한숨을 흘렸다.
“미래에서 온 이안 선배라…….”
그 상냥한 이안 선배가 미래에 그토록 냉혹한 인간이 된다니.
세리아가 본 사내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었다.
그야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실험체들을 남김없이 격살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그나마 검에 조예가 깊던 세리아였기에 알 수 있었다.
사내의 기술 하나하나가 얼마나 깊은 이치를 담고 있는지 말이다.
지금껏 세리아가 본 검사 중 가장 강한 이는 델핀이었다.
전성기의 유르디나 후작이 조금 더 강하기는 할 테지만, 워낙 어린 시절의 일이라 기억에 없었다. 그래서 세리아의 태양은 언제나 델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동경해 마지않는 언니라 하더라도, 사내가 보인 신위를 재현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차라리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른다는 마스터들의 일대기에 더 가까운 전투였다.
다만 뛰어난 실력 이상으로 감정이 희미하던 사내였다.
닳고 닳아서, 마모된 인간성을 자갈처럼 쥐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미래의 ‘이안 선배’라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이는 비단 세리아만이 품은 감상이 아니었다.
여인들은 각자 복잡한 심경에 잠겼다. 대개는 울적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레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의 입에서 위로의 말이 흘러나왔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죠. 저 ‘이안’이 온 미래는 확정된 미래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안은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죠. 그러니까, 이걸 또 설명하려면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는데…….”
응접실의 문이 벌컥, 하고 열린 것은 그때였다.
그 열린 틈새로 걸어 들어온 이는, 마침 대화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금빛 눈동자가 지독한 피로에 젖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안 페르쿠스’, 일행의 중심이자 떠오르는 신성으로 불리는 사내였다.
다만 지금 그 몸뚱아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가 언제인지도 모를 미래에서 온 존재일 뿐.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그의 양손에는 위스키가 한 병씩 들려 있었다.
사내는 자연스레 응접실의 최상석으로 향했다.
본래 가주가 앉는 자리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이 배석하는 곳이었다.
뒤이어 그는 들고 온 위스키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중 한 병의 뚜껑을 곧장 따더니, 병째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병나발이었다.
북부에서나 하는 호쾌한 음주 방식이었다. 그것도 남성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군대에서나 보던 술버릇이었다.
세리아 정도나 지나가다 이를 몇 번 보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일행은 일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사내가 느닷없이 병나발을 불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만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멍하니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든 말든 사내는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단지 탁, 하고 위스키 병을 탁자 위로 떨어트렸을 따름이었다.
넋을 놓고 있던 모두의 정신을 일깨우는 소음이었다.
퍼뜩 제정신을 차린 일행의 이목이 일제히 사내를 향했다.
그제야 사내는 제 입가를 훔쳐내며 입을 열었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지, 우리는 영지를 버려야 해.”
그 등장만큼이나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여인들의 침묵이 조금 더 연장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귀족에게 있어 영지란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이안에게도 다르지 않아서, 그는 영지민들을 향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미래에서 온 ‘이안’이라지만, 영지를 버리자는 이야기를 꺼내다니.
낙차가 너무 컸던 탓에 여인들의 입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사내의 성향을 조금 파악하고 있던 레토만이 되물었을 뿐이었다.
“어째서?”
비난도 부정도 아니었다.
까닭을 묻는 그 근원적인 질문에, 사내는 담백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어차피 지킬 수도 없으니까. 암흑교단의 의식이 시작된 이상, 악신의 권속이 불려나올 거야. 지금 전력으로 상대해 봐야 역부족이지.”
“……유르디나 가문의 사병들이 있는데도요?”
세리아의 반박이었다.
사내는 말없이 세리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무심한 눈빛을 마주한 세리아는 흠칫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저토록 슬픈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세리아는 유독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아니, 어쩌면 세리아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지도.
물론 사내는 여인들의 낯빛이 어떻든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단지 해야 할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래, 사병이 있든 마도병단이 있든 상관없어. 쓸데없는 희생을 늘릴 바에야 퇴각하는 편이 합리적이지.”
“……시간은 얼마나 있는데?”
“많아봐야 사흘.”
레토와의 문답이었다.
‘사흘’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쾅, 하고 탁자를 두드리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성녀였다.
무심코 책상을 내리친 그녀는 쏠리는 이목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조곤조곤 따져 물었다.
“사흘은 너무 부족해요. 이곳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라고요! 분명 떠나지 못하는 영지민들이 적어도 수백…….”
“어쩔 수 없지.”
사내는 다시 위스키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그렇게 말했다.
“……버릴 것은 버리는 수밖에.”
감정조차 섞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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