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60)
* * *
“우리가 그 악신의 권속을 건드리자.”
셀린이 이를 으득으득 갈면서 꺼낸 첫 마디였다.
나는 허, 하고 헛웃음을 삼켜야 했다.
“미쳤어, 셀린?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영지마저 버리고 떠나는 피난민 신세를 어느 귀족이 반긴단 말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답이 없어서 가까스로 납득했던 문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셀린이 다시 그 군불을 떼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그녀도 당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한히 재생하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셀린은 내 반론에도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나는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팔짱을 꼈다.
“아니이! 쓰러트리자는 게 아니야. 그 안에 숨은 핵을 파괴하자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니야?”
“아니야, 유렌 선배가 알려준 게 있어.”
아무래도 내가 기절한 사이 일행 사이에서 남모를 대화가 오고간 모양이었다.
처음 듣는 정보에 내 눈가가 한 차례 경련했다.
유렌이라면 믿을 만한 정보원이었다.
최소한 지금껏 그가 알려준 정보 중 틀린 내용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암흑교단의 마법에는 ‘핵’이 존재하는데, 그 수가 늘 하나뿐이래. 그런데 시전자인 암흑사제가 죽었는데도 실험체들이 발작하는 걸 보면…….”
“……핵을 따로 떼어두었다?”
“응, 술식을 분리해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암흑교단의 마법이 ‘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할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대개는 시전자 본인이 핵으로 기능하는 모양이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에만 핵을 따로 둔다는 뜻이었다.
슬프게도 리아를 비롯한 복제인간들을 조종하는 마법에 그에 속했고.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 괴물을 쓰러트리자는 것도 아니잖아… 단지, 조금만 버티면서 기회를 노리자. 그 정도면 다들 납득하지 않을까? 어, 어떻게 리아를 버려!”
셀린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어린 시절 고위 귀족의 농간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그녀였다.
또 다시 권력에 휩쓸려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지인을 잃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과거의 악몽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었으니까.
도리어 리아를 구하자고 하는 셀린의 목소리는, 그 시절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제 자신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지도 몰랐다.
이제는 지킬 수 있다.
예전처럼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그 증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떤 의미로든 리아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진짜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중앙군을 기다려도 되는 문제잖아… 설마 괴물이 국토를 짓밟고 있는데, 제국 황실이 지켜만 보고 있겠어?”
“그러다 핵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반문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셀린도 내가 용혈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중앙군에 최대한 노력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이루지 못할 소원도 아니었다.
나는 허공에 용혈문자를 그려주려다가, 셀린의 연이은 질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혹은 중앙군이 파견되는 사이에 또 다른 암흑사제가 온다면? 그리고 그 암흑사제가 핵의 제어권을 가져간다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제국 황실 이상으로, 암흑교단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거야.”
나는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는 셀린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셀린도 나와 함께 레토에게 ‘빡대가리’라고 욕먹는 검술학부의 일원이었다.
언제부터 이토록 말을 잘하게 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우리가 리아를 구해야 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내 입이 다시 묵언수행을 시작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별 움직임이 없으나, 암흑교단이 악신의 권속을 방치해 둘 리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 수를 써서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조력할 터였다.
그 과정에서 미트람의 성과를 회수하려 들 가능성도 충분했다.
아니, 10년 이상 생체 연구를 진행한 학자의 귀중한 자료였다.
암흑교단이 이를 확보하려 들지 않는다면 도리어 이상했다.
그리고 그때 ‘시체 거인’에게 심겨진 핵 또한 유출될 확률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고심했다.
다시 한 번 일행들을 설득해 볼까?
정 위험해진다면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럼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기는 하겠으나, 도전할 만한 가치는 있었다.
다만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문제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무례하고 이기적인 부탁이 될 수도 있었다.
암흑교단의 피조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 달라는 소리나 진배없이 들릴 테니까.
비단 성녀뿐만이 아니었다.
유렌도 그럴 테고, 엘시 선배 또한 리아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였다.
내 마음이야 뻔했다.
리아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하잘 것 없는 희망에 매달려 이기적으로 구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고뇌에 잠겨 있던 그 순간.
쿡, 하고 가시처럼 뇌리를 파고드는 기억이 있었다.
나는 일순 그 통증에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피로 젖은 풍경이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다만 너무나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귓가에 속삭이는 여인의 목소리가.
“……그러게 진작 버렸어야지.”
무엇을, 이라고 나는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꿈에서 현실로 튕겨나오며 온갖 기억들이 뒤죽박죽으로 얽혀 들었다.
불타는 대수림.
피, 그리고 피.
떨리는 손, 잦아드는 숨결.
눈을 뜨면 아직도 휘갈겨 써진 그 문장이 선명했다.
‘버릴 것은 버려라.’
아버지는 말했다.
“운명을 거슬러서는 안 돼.”
더불어 제국의 행정관 아서도 말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비틀거리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슬픈 낯을 하고 내게 사죄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뇌리를 스쳤다.
운명을 거스르려 한 대가였다.
내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자 셀린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안 오빠? 오빠, 오빠! 갑자기 왜 그…….”
탁, 하고 나는 손을 들어 내게 다가오던 셀린을 제지했다.
그리고 거친 숨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안 돼.”
셀린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훔치며 재차 확언했다.
“안 돼, 너무 위험해… 다른 수단을 찾아보자. 리아는 내가 보호할 테니까.”
황급히 이야기를 정리한 내 몸이 자연스레 돌려졌다.
나는 마치 도망치듯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래, 이것이 최선이었다.
시체 거인에 맞서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다.
나와 셀린, 레토라면 몰라 다른 일행들은 목숨을 걸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염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셀린의 달아오른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변했어.”
남자친구를 갈굴 때 여자들이 흔히 쓰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농을 던지려 했다.
돌아본 셀린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나를 노려보는 황갈색 눈동자가 매서웠다.
“이안 오빠, 변했다고!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내가 뭘…….”
“요즘 나랑 레토 오빠랑 다닌 적이 몇 번이나 있는데?!”
되짚어 보면 요즘 셀린과 레토와 함께 다니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다소 억울한 심정으로 항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함께 죽을 위기를 넘긴 동료들이 몇 명인데…….”
“그리고 요즘에는 고위 귀족이든 뭐든 들이받고 보고!”
그것만큼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미친놈이었다 싶었다.
어찌저찌 운 좋게 넘어가지 못했다면, 나는 벌써 아카데미 퇴학생 신분이었을 터다.
물론 셀린의 분노는 그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이제 예쁘고, 재능 있고, 배경도 좋은 사람들이 널렸다 이거야?!!”
나는 셀린에게 진정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열이 오른 셀린의 말소리는 쉬이 식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지켜준다고 했잖아…….”
느닷없이 소환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나는 문득 어떠한 풍경을 떠올렸다.
꽃밭이었다.
하늘색 꽃이 하늘거리던 그곳에서, 나는 어느 소녀를 안아주었다.
그때 무언가 약속을 맺었던 것만 같은데.
“나도, 리아도… 지켜준다고 말했으면서…….”
이제는 울먹임마저 섞여든 음색이었다.
나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안절부절 하지를 못했다.
다만 어떻게든 셀린을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았을 따름이었다.
그러한 일념으로 내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을 찰나.
내 눈에 기묘한 광경이 띄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하늘의 찢어진 균열 속에서 끝 모를 어둠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어둠은 마치 그림자처럼 형체를 이루었다.
거체가 땅 위에 선다.
그 크기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단지 어마어마하게 컸다.
저 멀리에서 등장한 존재임에도 곧장 눈으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늘이 열리고 거인이 강림하기까지 단 몇 초.
하늘의 균열은 마지막으로 정체불명의 덩어리들을 토해냈다.
무시무시한 속력이었다.
그대로 얻어맞기만 해도 주위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킬 만한 운동량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훌쩍이는 셀린의 등 뒤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고함을 내지르며 땅을 박찼다.
“셀린!”
그리고 탁, 하고 셀린을 밀치고 내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 실선을 따라 핏물이 튀기며 추락물이 반으로 쪼개졌다.
살점이 뭉친 덩어리였다.
얽히고설킨 육체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더듬거리며 수 개의 다리로 서 수 개의 팔을 펼치는 그 모습이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팔방으로 뻗은 얼굴들이 울면서 비명을 토해냈다.
키에에에에엑!
셀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이미 절반으로 쪼개놨는데,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아무래도 살점둥지와 살점씨앗, 그리고 시체 거인은 비슷한 류의 괴물인 듯했다.
더불어 이를 소환한 주범이 미트람으로 같기도 했고.
나는 셀린에게 다시 한 번 외쳤다.
“당장 돌아가서 사람들 불러와! 피난 준비를 서둘러야 해!”
“……그, 그럼 이안 오빠는?!”
셀린의 물음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살점덩어리 너머로, 비명을 내지르는 마을이 보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혼란스럽고, 무섭겠지.
그럴수록 피난 행렬에 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살점덩어리의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나도 돌아가야겠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단지 셀린이 던졌던 원망의 말을 떠올렸다.
소년 시절의 치기로 맺은 약속이었다.
기사니까, 지켜주겠다고.
셀린이 불러일으킨 기억은 또 다른 소녀와의 약속까지 이어졌다.
리아도 아직 그 약속을 소중히 품고 있었다.
이를 믿고 그녀는 내게 고백했던 것이다.
저택으로 오기 전의 기억이 없다는 비밀을.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켜야지.”
아직은 망설임이 깃든 목소리였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도 애매했다.
셀린은 얼이 빠져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땅을 박차고 내달려, 검을 다시 횡으로 그었다.
내게 달려들고자 준비하던 살점덩어리의 몸이 다시금 쪼개졌다.
이것만큼은 견딜 수 없었는지, 살점덩어리는 비명을 내지르며 허우적거렸다.
나는 콰직, 하고 살점덩이리의 징그러운 얼굴을 짓밟았다.
그제야 비명 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팔다리를 모두 잘라 살점덩어리를 무력화시켰다.
“마을로 가 있을게. 누군가 인솔할 사람이 필요할 거야.”
“오빠 혼자서?!”
“만일 상황이 안정되면 좀 더 보내든가.”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던 내 몸이 곧장 마을을 향해 쏘아졌다.
내 머릿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쳤다.
나의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순박한 얼굴들이.
나는 간만에 천신께 기도를 올렸다.
제발.
제발 너무 늦지만 않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는 살점의 운석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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