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4. 라이넬라의 운명은 라이넬라가 정한다(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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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벌써 아수라장이었다.
난데없이 떨어진 살점 덩어리에 주민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몇몇 사람들은 팔이나 다리를 하나씩 잃은 채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일찍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페르쿠스 영지는 중심지라 하더라도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다. 그 덕에 하늘에서 떨어진 살점 덩어리에 당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 아직까지는 그랬다.
괴로운 표정으로 손을 뻗는 이들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정녕 버려야만 한단 말인가?
차라리 중심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괜찮았다.
그보다는 구석진 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더욱 걱정이었다. 그곳에는 마땅한 전력도 없었고, 피난 행렬을 이끌 만한 인물도 마땅치 않았다.
세리아가 후방에서 점차 피난 행렬을 이끌어 오기로 하긴 했다.
다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을 따름이었다.
실험체들의 폭주로 인한 일정 지연이 치명적이었다.
이처럼 전조조차 없이 악신의 권속이 강림할 줄은 몰랐던 탓도 있었다.
우우우우, 하고 대기가 진동하며 지축이 흔들렸다.
쿵, 쿵, 그림자를 뚝뚝 털어내며 걷는 거인의 발걸음에는 막대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지반이 으깨지고, 나무들이 지푸라기처럼 쓰러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의 어스름이 괴물의 끔찍한 형상을 비추었다.
시체로 이루어진 거인.
그 외의 표현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 존재였다.
수백, 아니 수천에서 수만에 이를지도 모를 시체들이 옹기종기 뭉쳐 있었다.
발바닥을 이루는 시체들은 그 하중을 견디다 못해 핏물을 토해냈다. 핏빛 발자국이 이어질 때마다 구슬픈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시체 거인의 머리는 몇 명인지도 모를 사람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 동공이 일제히 특정한 지점을 향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인이 나를 내려다본다.
아니, 내가 서 있는 마을일지도 몰랐다.
그만큼이나 광범위한 시야각을 가진 존재였다. 어쩌면 뒤통수에도 수많은 얼굴들이 있어 사각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수백의 입이 한꺼번에 비명을 내질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 웅혼한 함성에 살점 덩어리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소음을 더했다. 인세의 풍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주민들의 낯빛이 절로 창백해졌다.
“처, 천신이시여…….”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이었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초월적인 적의 등장에 분위기는 단번에 공포심으로 물들었다.
목이 아플 만큼 고개를 들어야 그 머리를 볼 수 있는 상대였다.
그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볼품없고 초라한가.
수레에 맞서야 하는 사마귀의 절망감이 모두에게 투영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어째서 도망치라고 했는지.
그리고 버려야만 한다고 했는지.
격의 차이는 얼핏 보기에도 명백했다.
셀린이 어리석었다.
저 괴물을 언제 상대하며, 또 핵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주먹질 한 번, 발길질 한 번이 자연재해에 준하는 신화 속의 괴물이었다.
홀로 대적하는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에게나 어울리는 역할이리라.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허리춤에 가져간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침 내 눈에 중년의 여인에게 다가서는 살점 덩어리가 띄었다.
“사, 살려……!”
중년의 여인은 두려움에 목이 메여 말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원인을 제거해 주기로 했다.
은빛의 궤적이 허공을 갈랐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든 도끼날이 살점 덩어리의 정면을 으깨버렸다. 살점덩어리는 허우적거리며 뒷걸음질을 쳤으나, 그것이 최후였다.
투척된 손도끼에 다시 한 번 힘이 들어갔다.
콰드득, 하고 뼈를 으스러트리는 소리와 함께 살점덩어리를 핏물을 쏟아냈다.
땅을 박차고 쏘아진 내 손이 낚아채듯 손도끼를 회수했다.
그 다음으로 날아든 것은 발길질.
팍, 하고 토실토실한 살점에 내 발이 틀어박힌 직후, 살점덩어리는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저 멀리 날아갔다.
덜떨 떨리는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요나 아주머니, 저택으로 피신하세요.”
“도, 도련님… 하, 하지만 저 괴물들은 어떻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망설임조차 없는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요나 아주머니는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시체 거인은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나를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둘러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 인기척을 느낀 주민들의 눈동자에 흐릿한 기대가 어렸다.
나는 그 기대에 응해 줄 필요가 있었다.
손도끼를 내던지자 또 하나의 살점 덩어리가 핏물을 터트렸다. 더듬거리며 손도끼를 떼어내려 했으나, 보다 깊숙이 들어간 손도끼는 기어코 살점덩어리의 얼굴 하나를 으깨버렸다.
키에에에엑!
화가 난 살점덩어리 하나가 위기를 느끼고 내게 달려들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내게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었다.
검이 횡으로 그어진다.
그 은빛의 실선을 따라 핏물이 차례로 터져 나왔다. 나는 그 핏빛의 시야 속에서 검을 좌하단으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어지는 3개의 발톱 자국.
아무리 재생력이 강하더라도 여덟 토막이 난다면 부활은 불가능했다.
이제 단순한 육편이 되어버린 살점 덩어리의 시체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어느덧 모든 이들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으나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친절하고 유순하던 내 모습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내 머리카락은 피로 젖어 끈적거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당장 저택으로 떠나요… 당장!”
“지, 짐을 아직 덜 챙겼는데…….”
다급한 마음에 내지른 고함에 되돌아온 것은 그러한 망설임이 어린 질문이었다.
나는 그 말을 뱉은 사내를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내 피로 젖은 눈빛을 마주한 사내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내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럴 때는 귀족이라는 신분이 도움이 됐다.
다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그제야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술도 덜 깬 상태에서 부상까지 당했다.
복부가 욱씬거렸고, 정신이 몽롱했다. 피로에 젖은 뇌가 휴식을 호소하고 있었다.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곯아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비척거리며 걸으며, 어느덧 내 옆으로 다가온 살점 덩어리에게 검을 쑤셔 넣었다.
키에에에에에엑!
“그렇게 살금살금 다가오면 모를 줄 알았어?”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가 쑤셔 박은 칼날을 눕히고 그대로 힘을 주었던 탓이었다.
양단당한 살점 덩어리의 몸이 휘청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을 살점 덩어리의 하반신에 처박았다.
익스퍼트에 이른 검사의 신체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살점 덩어리가 얼마나 무겁든 간에, 그 일격에 곧장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은 반쪽은 직접 검을 내리꽂아 처리했다.
살점 덩어리의 시체가 한 차례 경련하더니, 곧 축 늘어졌다.
나는 그렇게 칼질을 반복하며 걸음을 옮겼다.
마을의 외곽으로 향할수록 쓰러진 사람들과 살점 덩어리들이 많아졌다.
살점 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며 무언가 문제라도 생겼는지, 어느덧 마을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살점 덩어리들도 불꽃은 견디기 힘든 듯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제 몸을 바라보며 비명만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몸뚱아리에 불이 붙어 날뛰던 살점 덩어리의 몸에 칼날을 박아 넣으며, 나는 해진 옷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마력이 강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몸뿐이었다.
이미 제복은 찢어지고 불타 군데군데 해진 곳이 많았다. 핏물로 잔뜩 젖어 전투가 끝나면 버려야 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내 몰골은 양호한 편이었다.
세간살이조차 챙기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마저도 내가 살린 사람들이었다.
땅바닥에 누워 눈조차 감지 못한 시체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깊은 인연은 아니었을지언정, 오며가며 얼굴을 보았던 사이였다.
하물며 내 영지민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그래,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저들에게는 유일한 삶이고 기회였을지언정, 누군가에게는 멋대로 내던질 수 있는 목숨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가진 않았으나.
애써 납득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나는 불타는 풍광 사이에서 눈을 감았다.
정신이 흐릿해진다.
무의식과 현실의 경계가 옅어졌다.
문득 타오르는 불꽃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휘청이면서, 걸음을 옮기고.
칼과 도끼로 살점과 핏물을 몸에 끼얹어 가며 나는 걸었다.
매캐한 연기에 갈증이 절로 일었다.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숨결이 쉬이 거칠어졌다. 내 정신이 점점 더 현실로부터 동떨어지고 있었다.
정작 내게 상처를 입힐 만한 적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내 혼탁한 정신을 일깨운 것은, 나를 붙들고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아이, 아이들이 남아있어요!”
내 눈동자가 슬쩍 내게 말을 건 사람을 향했다.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여인이었다.
돌연 시야가 흔들리더니, 나는 주변의 풍경이 일변하는 경험을 했다.
무심코 내 입에서 낯선 호칭이 흘러나왔다.
“……사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내게 울고불고 하는 여인의 낯을 보고.
나는 내가 환각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근깨가 귀여운 여인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나 되었을까.
“네? 도, 도련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 아직 저 안에 아이들이…….”
나는 흐릿한 시야로 소녀가 가리키는 지점을 훑었다.
어딘가 익숙한 길목이었다.
잠시 몽롱한 정신 속을 헤집던 내 뇌리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여인이 가리키는 곳이 누구의 집인지 깨달았던 탓이었다.
“……이런 씨발.”
나는 곧장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사이사이에 살점 덩어리들이 달려들었으나, 그럴 때마다 나는 손도끼로 골통을 으깨며 전진했다.
마무리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얼마 후.
나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소년이었다.
그는 복부가 꿰뚫린 채 쿨럭이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우두커니,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읊조렸다.
“네드…….”
그리고 비틀비틀 걸어 나는 네드에게 다가섰다.
그 옆에는 칼로 난자당한 살점 덩어리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네드는 이 괴물 하나와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손도끼를 내던졌다.
그러자 팍, 하고 치솟아 오르는 핏물.
키에에에에에엑!
그것을 마지막으로, 네드와 사투를 벌이던 살점 덩어리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이 무시무시한 괴물과 다툴 수 있다니.
매일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네드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기사는 아니더라도, 훌륭한 병사는 될 수 있었으리라.
살아남았다면.
나는 풀썩 무릎을 꿇었다.
허망한 눈동자가 네드의 상처를 훑었다.
더듬거리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직 힐링 포션을 쓰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전에, 억센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소년은 핏물을 주륵 흘리며 웃고 있었다.
“스승님.”
그 미소를 보고, 나는 그만 망연해 지고 말았다.
누군가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검을 쥔 내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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