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 5. 빵과 비수(1)
* * *
술, 술, 술.
그녀를 만날 때면 늘 알싸한 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 짙푸른 눈동자가 혼탁하게 풀려 있었다. 본래 새하얀 빛이었을 얼굴은 새초롬한 홍조에 젖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취기가 오른 모습이었다.
대개의 취객은 취하면 취할수록 추한 꼴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앉은 여인만큼은 달랐다.
도리어 설원의 홀로 남은 꽃처럼 그 처연한 미를 풍길 뿐이었다.
본판의 미모가 워낙 뛰어난 덕이었다.
물론 여인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단지 끝없이 술병을 기울여 잔을 채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잔을 비우고, 또 다시 채우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 동작에서는 은근한 고집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술을 들이키는 것이 유일한 의무라도 된다는 양, 여인은 말없이 잔을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외로운 음주였다.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자기파괴라고도 할 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인은 점점 더 외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보고 있기 힘들다고.
그러지 않아도 표정 변화가 지극히 적은 여인이었다. 그 무뚝뚝한 성미는 아무리 술을 들이켜도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여인은 술에 취하면 쓸쓸한 낯을 할 때가 더 많았다.
삶의 목적을 상실해 버린, 텅 빈 껍데기.
그 몰골이 한때의 나를 연상시켰다.
혹은 끝내 도달하고 말 종착지를 보는 듯해서, 나는 울컥하여 입을 열었다.
“……그만 마시지.”
여인의 손짓이 처음으로 멎은 것은 그때였다.
아쿠아마린을 닮은 눈동자가 흘깃 나를 향했다.
한겨울의 연못처럼 싸늘하기 그지없는 색감이었다.
그 눈빛에 몸이 움찔 떨릴 만도 하건만, 나는 어쩐지 그녀가 두렵지 않았다.
여인의 또 다른 이름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아인(?人)백정.
무시무시한 호칭이었다.
도무지 가녀린 미녀에게 주어진 칭호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장의 선두에서 엘프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그녀를 본다면, 누구라도 그 별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리라.
오늘도 수십, 수백의 목숨이 저 차가운 눈빛 아래 스러졌다.
새파란 검광이 궤적을 그릴 때마다 핏물이 설원을 적셨다.
그 풍광을 기억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저 시선 앞에서 당당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혀는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일 또 출전해야 하잖아… 그럼 조금이라도 쉬어야지.”
여인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타버린 잿더미처럼 여인의 낯에는 아무런 감정의 편린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한참 후에야 흐릿한 목소리를 토해냈을 뿐이었다.
“……선배, 예전에도 그렇게 오지랖이 넓었나요?”
“모르겠는데.”
내 심드렁한 대답에 그녀는 또 다시 잔을 꺾었다.
단숨에 남은 술이 여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우울한 심상을 담은 푸른빛이 나를 향했다.
“술을 마시다 보면, 모든 것이 흐려지죠…….”
넋두리와 같은 말이었다.
쪼르륵, 하고 또 다시 술을 따르며 여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성과 감성, 삶과 죽음, 그리고 과거와 미래… 모든 것이 혼탁해져서,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니까요.”
“그래서 매번 혼자 적진 한복판으로 달려드나?”
한숨 섞인 타박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꾸중인 듯, 여인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죽어,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죽지는 않아요, 죽고 싶긴 하지만…….”
여인은 무기력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또 한 잔의 술을 비워냈다.
탁, 하고 술잔이 탁자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여인의 눈동자는 어느덧 심유한 빛을 품고 있었다.
과거의 어딘가를 되짚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생경할 만큼 진득한 음색이었다.
잿더미 속의 푸른 불씨가 되살아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씹어뱉듯 그 한 마디를 내뱉는 여인의 낯빛에는, 온갖 감정이 소요돌이치고 있었다.
증오, 원독, 후회, 절망, 그리고 자기혐오.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면 이해하지 못할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가슴이 조이듯 아팠고, 초조했다.
내 손이 여인의 손목을 움켜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불쾌감을 담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러든 말든, 나는 빼앗듯이 여인의 손아귀에서 술병을 빼냈다.
평소에는 동상처럼 무뚝뚝하더니, 술을 빼앗자마자 바로 극적인 반응이 되돌아왔다.
“지금 이게 무슨 짓……!”
그러나 그 외침이 마저 토해지기도 전에.
나는 곧장 술병을 꺾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차가운 액체가 불길처럼 식도를 훑고 내려갔다. 도수가 높은 술이었는지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이윽고 탁, 하고 내가 술병을 내려놓았을 때.
위장에서 폭죽처럼 주향이 터져 나와 코와 뇌리를 찔렀다. 술기운은 이내 증기가 되어 온몸에 퍼져 나갈 터였다.
이토록 과음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아카데미 시절 이후로는 술을 줄여 왔는데, 그 탓인지 오랜만에 들어오는 술의 감촉이 낯설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후회는 길지 않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여인만 보더라도, 내 의도가 적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크흐, 하고 입가를 닦으며 나는 말했다.
“……그럼 대작이라도 해. 혼자 마시지 말고.”
그제야 여인은 헛웃음을 삼키며 내게 물었다.
“선배… 내일 아침 제도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걱정되면 조금 덜 마시든가.”
결국 여인은 할 말이 궁해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살짝 나를 흘겨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새로운 술병을 땄다.
몇 잔의 술이 오고간 뒤에야, 여인은 만취하고 말았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취기 따위는 얼마든지 털어낼 수 있을 터였다.
단신으로 수십의 엘프 병사들과 암흑교단의 마수들을 제압하는 강자였다.
주정을 몰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난 단 한 번도 그녀가 취기를 털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여인은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선배, 선배가 왜 전장에 나가기 전에 술을 마시냐 했죠? 반대, 반대에요… 술이, 술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아요. 매일 밤 병장기 소리가 들려와요…….”
물기조차 어려 있지 못한 메마른 탄식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내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가문도, 성도, 이름도, 가족도… 내, 내가 어리석었던 거죠… 그때, 그래서는 안 됐는데.”
그녀는 차라리 울고 싶다는 듯 제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리 가슴을 두드려도 말라버린 눈물샘이 터질 리는 없었다.
여인은 흐느끼는 목소리라도 흉내 내며 말했다.
“우리 언니, 우리 언니가 보고 싶어요… 나, 나는 몰랐어요. 내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그것도 모르고 언니를 미워했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급작스레 소매를 걷어붙였다.
가녀린 팔이 드러나고, 여인은 손가락으로 그 위를 그었다.
그 과정에 날붙이 따위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갗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찢으며,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여인이 기어코 눈물을 토해내지만 않았다면.
“……이 피가!”
뚝뚝 핏방울이 손끝을 타고 떨어진다.
찢어진 상처가 순식간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마음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입술을 짓씹으며, 강렬한 증오에 들끓는 푸른 눈동자만을 응시했을 뿐.
“이 피가, 증오스러워요…….”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까, 하다가.
나는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다지 면식도 없는 후배에게 할 만한 짓은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뿐이었다.
술기운을 딛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내가 일어선 찰나.
콰직, 하고 세계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시야를 가로지르는 빗금을 중심으로 자잘한 실금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탄에 얻어맞은 유리창처럼 딛고 땅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나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어둠 속을 수많은 꿈들이 부유하며 스쳐지나갔다.
눈보라가 이는 설원.
끓어오르는 살점들.
검은 옷을 입은 엘프들.
이해할 수 없는 풍광들이 시야를 파고들며 뇌리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끝내는, 내 어깨를 붙든 사내의 타는 듯한 금빛 눈동자가.
“……명심해, 네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기억은 많지 않아.”
내 뇌리를 불태울 듯 새하얗게 일렁였다.
“한동안은 너를 돕지 못해, 그러니까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나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숨이 막혔다.
도무지 언어가 토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들었던, 사내의 경고를.
“……절대 함부로 맞서지 마라.”
그 조언을 끝으로 다시 땅바닥이 무너져 내렸고, 나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뜬 것은 그때였다.
나는 헐떡이면서, 황망한 정신을 수습했다.
지나치게 생생한 꿈이었다.
이것도 그 동화율의 영향일까?
그렇게 정신을 차린 직후, 나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침대 머리맡에 둔 탁자를 향해서였다.
그곳에는 언제나 그렇듯 낯선 편지봉투가 도착해 있었다.
무려 두 통이나.
나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황급히 편지봉투를 쥐었다.
둘 다 고급스러운 재질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어디서 온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이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편지봉투 하나가 이미 개봉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는 오직 내게만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었다.
따라서 편지봉투를 뜯을 수 있는 것도 나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편지봉투는 이미 뜯겨져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안을 확인해 보니 들어있어야 할 편지도 실종된 상태였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하.”
벌써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정보가 너무 없었다.
나는 나머지 편지봉투를 조심스레 뜯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안에는 몇 장의 편지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내 눈동자가 말없이 줄글을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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