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5. 빵과 비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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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집중치료실에 방문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래봐야 두 달 만이었지만, 워낙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그마저도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학기만 해도 달에 한두 번은 신세를 지던 곳이 아니던가.
다시 되짚어 봐도 참 몸을 막 굴리던 시절이었다.
만일 성녀가 아카데미에 없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적어도 나는 진작 목숨을 잃었거나 불구가 되었으리라.
집중치료실의 신세를 진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문제였다.
어지간한 부상으로는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타지의 신전이라면 몰라, 아카데미의 신전은 온갖 고위 사제들이 대기 중인 장소였다.
대개는 응급처치가 끝난 후 통원치료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럼에도 며칠 동안이나 신전에 머무르면 집중관리를 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부상의 정도가 무척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 학기의 내가 그랬다.
그때는 온갖 사투를 헤쳐 나가던 와중이었다.
전신에 골절상 및 타박상이 퍼져 있거나, 중상을 입은 채 혼절하거나, 혹은 말 그대로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중치료실을 자주 드나들 수밖에.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다.
대다수의 아카데미 재학생들은 집중치료실을 방문하지 않는다. 설령 들리더라도 대부분은 병문안이 목적이었다.
아무리 아카데미가 험하다고는 해도 엄연한 교육기관이었다.
학생들의 안전이 중대하게 위협받을 만한 상황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검이나 도끼를 휘두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아카데미에는 그 미친놈이 활보하고 있었다. 오늘 내가 집중치료실을 찾은 까닭도 그 피해자를 문안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 ‘미친놈’의 정체가 바로 나였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에서 온 ‘나’였다.
나는 암울한 눈을 한 채 성녀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둘 다 미쳤어요.”
성녀가 내게 처음으로 내뱉은 감상이었다.
세리아의 담당사제가 된 그녀는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했다.
우묵해진 눈빛이 그간의 피로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 원인이야 뻔했다.
늘 그랬듯이 환자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았던 탓이겠지.
나 또한 찔리는 바가 없지는 않았던지라, 어색한 헛기침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성녀의 한탄에는 의문점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둘이라뇨? 누구누구 말씀입니까?”
솔직히 말해 한 사람은 짐작이 갔다.
그러나 도무지 또 누구를 미쳤다고 하는지 알 수 없어 던진 질문이었다.
그 말에 성녀는 마침 잘 됐다는 듯 목청을 높였다.
“당연히 미래에서 왔다는 당신이랑, 세리아 자매님이죠!”
그러면서 성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절머리가 난다는 신호였다.
아무래도 성녀가 겪은 심적 고통에는 세리아의 지분도 있는 모양이었다.
“매일 원수라도 진 듯이 박살을 내는 그 인간도 그 인간인데, 무슨 말을 해도 자꾸 덤벼드는 세리아 자매님도 문제에요! 몇 번을 말렸는데 고집이 어찌나 센지…….”
“……세리아가 먼저 덤벼들었다고요?”
그 유순한 세리아가 말인가?
성녀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심이 아니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로서는 쉽사리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세리아는 매일 중상을 입는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세리아가 ‘나’에게 덤벼들어야 할 까닭을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성녀도 아는 바가 딱히 없는 듯했다.
그녀도 이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말았으니까.
“그야, 세리아 자매님께서는 수련의 일환이라 하시긴 했지만…….”
수련이라.
나는 문득 아이린 경이 전수받았다던 기술을 떠올렸다.
그 검술은 얼핏 보기에도 막강해 보였다. 내심으로는 이름 있는 조직의 비기쯤 되는 기술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던 차였다.
혹시 그만한 기술을 전수받을 수만 있다면 중상을 각오할 만도 했다.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터였다.
무인이란 태생적으로 강함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아무리 유순한 세리아라 해도 그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의문점은 아직 남아있었다.
바로 미래에서 온 ‘나’의 지도 방식이었다.
나로서는 그 교육법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이린 경은 기술을 전수받던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여기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를 넘는 폭력이 가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요체를 전하고, 스스로 수련한다.
아이린 경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 ‘나’의 지도 방식은 그랬다.
하지만 지금 성녀의 증언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정반대였다.
스스로 가할 때까지 폭행을 가한다. 설령 상대가 중상을 입더라도.
너무나 단순무식한 수련법이었다.
짧은 가르침만으로 아이린 경에게 오의를 전한 인물이었다. 굳이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해야 할 까닭이 없었다.
물론 성녀도 그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한 듯했다.
옅게 새어나오는 한숨이 이를 증명했다.
마땅히 덧붙일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또, 세리아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내 입에서도 절로 한숨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제가 한 번 말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려요.”
그렇게 답하는 성녀의 낯빛에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말없이 성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성녀는 은근슬쩍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남자 하나랑 잘못 엮여서…….”
“엄밀히 말해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흥, 당신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했겠어요?”
아마도 했을 것이다.
새침한 척 하지만, 성녀는 늘 환자들에게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를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 말이 투정을 받아달라는 신호임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잠자코 내 품에 얼굴을 파묻은 여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성녀는 샐쭉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젖가슴의 푹신한 감촉이 전해져 왔으나, 나는 이 또한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성녀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나는 홍조 띤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예쁘기는 더럽게 예뻤다.
수척한 안색이 도리어 그 미모를 돋보이게 할 정도였다.
그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내게 선언했다.
“……이 빚은, 평생에 걸쳐 돌려받을 거예요.”
그러시든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성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성녀는 머리를 다시 정돈해야 한다며 살짝 짜증을 냈다.
물론 그러든 말든 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성녀가 짜증을 내는 모습도 귀여웠으니까.
그렇게 나는 성녀와의 독대를 마치고 세리아를 만나볼 수 있었다.
**
드디어 마주한 세리아의 몰골은 처참했다.
온몸에 붕대가 감기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어여쁜 얼굴마저 새하얀 붕대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핏물과 진물이 내 시야에 틀어박혔다. 부상이 아직 완치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소녀의 고통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팠다.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모습이었다.
나는 들어서던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인기척을 느낀 소녀의 짙푸른 동공이 서서히 나를 향했다.
세리아는 한동안 잠자코 나를 응시하고 있다가, 이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기색을 보였다.
음영만이 가득하던 소녀의 눈동자에 빛이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세리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시선을 피했다.
못난 모습을 보여 부끄럽다는 듯이.
그럼에도 나를 무시할 수만은 없어, 세리아는 소심한 중얼거림을 토해냈다.
“……이, 이안 선배?”
나는 세리아의 호명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저벅저벅 걸어, 황망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세리아의 온몸 곳곳에 남은 상흔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아픈 상처들, 나는 무심코 이를 악물고 말았다.
지금껏 나는 성녀의 표현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박살을 냈다는 말이 단지 비유에 그칠 뿐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세리아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것이 오판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말 그대로 ‘박살’이었다.
일부러 온몸을 잘근잘근 부숴 놓았으리라. 그러지 않고서는 이만한 부상을 입힐 수는 없었다.
그때 세리아는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소중한 후배가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니, 내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노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니, 그 개새끼가 진짜……!”
“지, 진정하세요. 이안 선배!”
세리아가 다급히 내 팔을 움켜쥐며 외친 말이었다.
그 연약한 손길을 차마 떨쳐낼 수 없던 내 몸이 멈칫했다.
어느덧 세리아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제, 제 잘못이에요! 괜히 제가 고집을 부려서… 그, 그러니까 자학만은……!”
그제야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세리아를 이렇게 만든 건 ‘나’였지.
손을 봐주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세리아가 걱정하듯 자해에 그칠 뿐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분노는 가시지 않았으나, 당장은 항의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빚은 나중에 톡톡히 갚아주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침대 옆에 위치한 의자였다.
여전히 세리아는 불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겠다는 건지, 나는 헛웃음을 머금으며 물었다.
“……왜? 설마 내가 자해라도 할까 봐?”
“네.”
망설임 없는 단언이었다.
설마 세리아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긴 했으나, 나는 헛기침을 끝으로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우선 세리아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였다.
마침 세리아는 내 극적인 반응에 당황하고 있는 참이었다. 지금이라면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 세리아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슬쩍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내게도 숨기고 싶은 속사정이 있는 듯했다.
물론 나도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셀린한테 물어보면 알게 될 일이잖아, 세리아… 그냥 네 입으로 들려주면 안 될까?”
세리아는 결국 이어지는 내 부탁을 당해내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세리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겠다는 신호였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그렇게 세리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따라오지 마라.”
느닷없는 한 마디였다.
유독 피로한 눈빛을 한 사내였다.
그날도 셀린과 세리아는 투닥거리면서도 함께 걷고 있던 차였다.
두 사람의 얼빠진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러든 말든 사내는 무심한 눈빛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쯤 되니 셀린과 세리아도 사내의 정체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서 온 ‘그’다.
두 사람이 함께 짝사랑하는 선배는, 이토록 냉혈한 얼굴을 할 수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미래에서 온 '그'가 사랑하는 사내에게 빙의하는 조건이 따로 있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셀린은 우선 당장 떠오르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왜요?”
어디를, 이라고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사내가 말할 정도라면 어디든 떠나긴 한다는 뜻일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어째서.
왜 두 사람은 함께 따라가면 안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한 사내의 해답은 간단했다.
“도움이 안 되니까.”
참으로 담백하고 잔인한 답변이었다.
그 말에 세리아는 울컥하고 말았고, 그것이 시련의 단초가 되었다.
세리아는 아직 몰랐던 것이다.
미래에서 온 '그'가 어떤 인간인지.
그는 상상 이상의 또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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