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 5. 빵과 비수(5)
* * *
그렇게 나는 잠자코 세리아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세리아가 어째서 그동안 진술을 꺼려했는지 짐작이 갔다.
‘실력이 모자라서 짐이 될 뿐이다.’
세리아는 미래에서 온‘나’에게 그렇게 통보받았고,그 평가를 뒤집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털어놓기 싫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스스로 그 평가를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그 점이 못내 괴롭고 힘들었을 터였다.나는 세리아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한때는 나도 중하위권에 불과한 학생이었다.
자조와 자학은 내게도 익숙한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세리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말 한 마디가 세리아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최대한 신중히 말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다만 문득 떠오르는 의문은 하나 있어,나는 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셀린은?”
“아,하스터 양.”
그러자 세리아는 난감하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녀의 고개가 다시 한 번 푹 꺾였다.
“제 탓에 고생도 많이 했죠.제가 하도 고집을 부린 탓에 하스터 양까지 그 인간한테 찍혔거든요…저처럼 얻어맞지는 않았는데,종일 붙들고 훈련을 시키더라고요.”
“훈련?”
“검이 아니라 이상한 무기를 들게 시키더라고요.뭐더라…배틀 엑스?”
배틀 엑스라니.
가녀린 여인의 무장으로 선호 받는 무기는 아니었다.근육질의 거한이 양손으로 들어야 가까스로 다룰 수 있는 장비였다.
신체 조건의 차이가 있으므로,당연히 여성이 다루기는 더욱 힘들었다.최소한 오러를 쓸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해야 했다.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일정 수준 이상으로 숙달된 무장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아카데미를 기준으로 잡아도 대략10년 이상은 다루어 왔을 무기였다.
굳이 손에 익은 애병을 버려야 할 까닭이 없었다.하물며 배틀 엑스는 그 무게 때문에 훈련이 더욱 까다로웠다.
그러니 배틀 엑스를 다루는 여성이 드물 수밖에.
내가 알기로 아카데미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탓인지 세리아는 셀린에게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은‘훈련’이지만,실상은‘고문’에 가까울 터였다.아무리 마력이 많아도 양손 무기로의 전환은 무척 괴로운 과정을 수반했다.
기초근력부터 시작해서,무기를 쥐고 휘두르는 방식까지.
배틀 엑스는 검과 너무나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백지부터 출발해야 하는 만큼,아마 심적 부담도 막심했을 테지.
나는 그제야 셀린이 나를 보고 흠칫 몸을 굳힌 사정을 헤아렸다.
세리아만큼은 아니었으나,그녀도 나름 고된 훈련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팔짱을 낀 채 골똘히 고민에 잠기고 말았다.
미래에서 온‘나’는 결코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세리아를 폭행하고 셀린을 훈련시켰다면,그에 상당한 까닭이 있을 터였다.
지금으로서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하나였다.
바로 맞닥뜨릴 적이 그만큼이나 위험하고 강하다는 것.
셀린은 물론이고,익스퍼트에 이른 세리아조차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적 갈등을 겪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리아를 북돋아 주고,얼마든지 뒤를 쫓아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괴감이란 과실을 좀먹는 벌레처럼 뇌리를 파고든다.
그 괴로운 심정을 털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야,나는 얼마든지 세리아를 데리고 갈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목숨이 걸린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리 심적으로 힘들더라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이 내린 판단이었다.늘 감상에 사로잡히고 마는 나보다는 더 정확할 터였다.
그렇게 끙끙거리며 고심에 빠져 있던 나는,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리아,굳이 따라와야 할까?”
내 말에 세리아는 곧장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내 마음 또한 절로 괴로워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만일 세리아가 목숨을 잃는다면 그보다 더한 참사는 없었다.어쩌면 나는 평생 동안 스르로를 용서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것만큼은 사양이었다.
세리아는 내게 소중한 후배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를 달래듯이 설득을 이어갔다.
“알다시피 목숨을 건다는 건 장난이 아니잖아…기회는 다음에도 있을 거야.실은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그동안 수련을 하고 있어도 되고…….”
“……왜 저만 안 되는데요?”
세리아의 반문에 나는 일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질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내 눈동자가 의문을 담고 물끄러미 세리아를 향했다.
당연히 세리아만 데려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셀린도 명단에서 제외될 판이고,그 외에도 실력이 부족한 이들이라면 동행은 허가할 수 없었다.위험한 적을 상대해야 하니 지당한 수순이었다.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세리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불평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아직 내가 모르는 사실이 남아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후 세리아가 내뱉은 말은,내 추측을 어김없이 증명해 주었다.
“황녀 전하는,따로 찾아가서 동행을 요청했으면서…….”
‘황녀 전하’라.
나는 그 호칭을 듣고 잠시 사고회로가 엉키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 울보에 눈치 없는 꼬맹이를 말하는 건가?
아무리 마법학부 수석이라도1학년은1학년이었다.객관적으로 황녀의 실력은 세리아와 비교해도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헛웃음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황녀 전하라니?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리스 전하께서 전학이라도 오신…….”
“시엔 전하 말씀이에요.”
고개를 내젓고 있던 내 귓전에 내리꽂힌 소리였다.
그 명료한 단언에,나는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불신을 담은 시선이 세리아를 향했다.
그러자 세리아는 재차 내게 강조했다.
“시엔 전하에게 동행을 요청했다고요,그 사람.”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듯 싶었다.
**
그날도 사내는 무척이나 피로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은근한 예기마저 어려 있었다.마치 가까이 다가서면 베일 것만 같은,날카로운 인상.
감히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사내의 악명은 아카데미 내에서 독보적이었다.그야 황녀까지 손도끼로 찍어 버린 전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아카데미 내에서 그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미친개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하물며 누가 봐도 피곤해 보이는 그를 건드리고 싶은 이들은 더더욱 없었다.
단지 수군거리며 그의 행선지를 추측하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그러든 말든 사내는 그저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군중의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던 그의 걸음이 멎은 것은,어느 소녀와 눈이 마주쳤을 무렵이었다.
새하얀 망토가 소녀의 학년을 드러내고 있었다.
1학년,갓 아카데미에 입학한 신입생이라는 뜻이었다.
밤하늘을 닮은 암청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미인이었다.갓 성인이 되어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내지는 못했지만,시간이 지날수록 그 미모가 드러나리라.
적어도 사내는 그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녀의 진정한 신분은 제국 황실의 제5황녀로,한때 그가 직속상관으로 모신 적이 있던 여인이었으니까.
물론 이곳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기도 했고.
사내가 그렇게 편린과도 같은 감정의 잔흔을 정리하고 있을 때,그의 인기척을 느낀 황녀가 폴짝 뛰며 반가움을 표했다.
“……앗,아앗!이안 경!”
호칭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과거가 달라지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쯤은 존재하는 모양이라고,사내는 속으로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봐야 이곳은 그의 세계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황녀는 종종걸음을 걸어 사내에게 다가섰다.
“마침 잘 됐어요!저,연습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사내는 황녀가 무얼 연습하고 있든 딱히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그가 사랑했던 이들은 이미 스러진 뒤였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별개의 인물이었다.최소한 사내는 그러한 믿음이 확고했다.
그래서 그는 이대로 본론만 전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황녀가 다음에 보인 행동만 아니었다면.
“……크롸롸롸롸라!”
앙증맞은 두 손으로 발톱을 흉내 내며 외친 말이었다.
아니,말이라고 해야 할까?
짐승의 울음소리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사내는 그 저의를 이해할 수가 없어 잠시 침묵했다.
그의 가라앉은 금색 눈동자가 소녀를 향하자,황녀는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이며 홍조를 띠었다.
“에헤헤…용은‘크아아아앙!’하고 울지 않는다고 아바마마께서 말씀해 주셨거든요!그래서 이안 경의 애완 용이 되기 위해, 새로 연습해 왔어요!”
그 말을 듣고도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단지 입술을 떼었다가, 닫았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자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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