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10화 (310/649)

〈 310화 〉 5. 빵과 비수(8)

* * *

내가 엠마를 진정시킨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몇 분에 걸친 위로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푹 숙여진 머리 위로 김이 피어오르는 환각이 보였다.

그만큼이나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리라.

고작해야 말린 버섯을 오물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다지 부끄러울 것도 없는 장면이었다.

그래,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차마 그 위로만큼은 머뭇거리며 건네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꾸 당시의 풍경이 뇌리에서 재생되었던 탓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말린 버섯을 오물거리고 있던 그 모습이.

마치 삶에 대한 총체적 감사를 담은 예술 작품과 같은 얼굴이었다.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쪼그려 앉은 자세부터 시작해서, 일부러 말린 버섯을 침으로 녹여먹는 그 애잔한 노력까지.

오랜 시간 식사를 하지 못한 이만이 보일 수 있는 진심이었다.

물론 배고픔도, 가난도 죄는 아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조건에 불과했다.

인생이란 때때로 이처럼 불합리한 토대 위에서 기능하는 법이었다. 이를 두고 비난을 하거나 수치를 줄 생각은 없었다.

만일 그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외에는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이리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사견에 불과했다.

엠마는 그러지 않아도 평민 출신이라는 사실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나와 대등한 척 반말을 나누지만, 얼핏 드러내는 처세 속에서 엠마의 자괴감이 종종 드러나곤 했다. 하물며 내게 부채 의식을 느끼는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꼴을 보인 판이었다.

엠마가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불어 나도 엠마가 그러고 있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실망했다거나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아파서 그랬다.

엠마가 그토록 고생하고 있고, 그 단지 중 하나가 나라는 점이 참기 힘들 만큼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차마 엠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은 하지 못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주된 원인이 바로 나일 테니까.

하지만 엠마는 내 낯빛에서 드러나는 심정을 곡해한 듯했다.

아직도 울먹임에 젖은 목소리로, 엠마가 사과했다.

“미, 미안… 꼴사납지…….”

“아니, 아니야!”

나는 대번에 엠마의 말을 부정했다.

이대로 놔두다가는 위험했다. 엠마의 기분이 끝도 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갈지도 몰랐다.

그러한 위기감에 나는 드물게도 막힘없이 설득을 이어갔다.

“네가 왜 꼴사나워? 오히려 숨김없는 네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그, 조금 귀엽기도 했고…….”

“……귀여워?”

내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에, 물기 어린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슬프거나 괴로운 기색은 아니었다.

나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당연히 귀여웠지, 평소엔 꼼꼼한데 이럴 때는 꼭 허당 같네.”

그렇게 얼마간을 안절부절 하지 못하다가, 결국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행히도 엠마의 기분은 조금 풀린 듯했다.

나는 이제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내 손이 엠마의 가녀린 손을 그러쥐었다.

엠마는 읏, 하는 소리를 내며 움찔했으나 내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볼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그런데 엠마, 나는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밥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무리도 하지 않고. 네 안색이 파리해질 때마다 내 가슴도 쓰려.”

엠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내 말에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였다.

이를 계기로 엠마의 일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엠마는 워낙 헌신적인 성격이라, 이렇게 제동을 걸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그랬다.

엠마는 얼마 전 연금술 길드를 다녀왔다고 했다. 참다못해 물약을 팔아치웠다 들었으니, 한동안은 자금이 넉넉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또 말린 버섯을 씹고 있다면 그 까닭은 하나뿐이었다.

재료비로 탕진한 것이다.

그새를 못 참고, 연구를 위해서.

이대로는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한계는 있었다.

식사의 질이 나아지더라도 수면 시간이 줄어들거나 할 테지.

그래서는 안 됐다.

“너한테 내가 소중한 만큼, 내게도 네가 무척이나 소중해… 그러니까 부디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힘들고 부족한 만큼 내가 채워줄 테니까…….”

“……그, 그만해.”

하지만 내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엠마가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반응이 괜찮았던 것 같은데.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너, 자꾸 그러지 마. 손 잡고 진지하게 쳐다보면서… 그, 그러면 착각하잖아.”

“……뭘?”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던진 질문에, 엠마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물론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지, 진심인 줄 안다고…….”

“난 진심인데?”

“아아, 진짜!”

엠마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목청을 높이고 말았다.

울상을 지은 어여쁜 얼굴이 나를 향했다.

“……이러니까 내가 그만 못 두는 거야.”

새초롬한 푸념이었다.

나는 말없이 엠마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엠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엠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성의 의미였다.

“나, 나도 처음부터 돈을 다 쓸 생각은 아니었어… 그런데 자꾸 네 걱정을 하다 보니까 연금술 재료가 눈에 들어와서…….”

우물쭈물하며 내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따듯했다.

그것이 엠마가 지닌 천성이었다.

따스하고 배려심 넘치는, 온기를 머금은 조약돌 같은 여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엠마에게 단단히 일러두겠다던 굳은 결심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어떻게 이토록 상냥한 여인에게 단호히 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엠마는 풀이 죽어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미안, 괜히 걱정 끼쳐서.”

“아니야, 엠마. 고마워… 나 많이 생각해 줘서.”

그 후에는 오랜만에 도란도란 근황을 나누었다.

물론 내가 악신의 권속과 맞선 이야기는 다소의 축약을 거쳐야 했다. 내가 진짜로 죽을 뻔한 사실을 알게 된 엠마의 반응이 두려웠던 탓이었다.

더 성능 좋은 물약을 만들어야 된다며 날밤을 샐지도 몰랐다.

혹은 그대로 기절해서,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눈물만 흘릴지도 모르고.

엠마는 연약했다.

내가 지켜줘야만 했다.

그러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는지, 엠마와의 대화는 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야기의 몇몇 구절에서는 엠마가 깜짝 놀라 탄성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다만 아무리 흘리고 흘려내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내겐 네드와의 이별이 그랬다.

최대한 담담히 이야기했으나, 엠마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괜찮아?”

“응, 이제는.”

아마도, 라는 뒷말을 나는 꿀꺽 삼켰다.

엠마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헛된 노력으로, 엠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눈치가 빨랐다.

그래, 언제나 그랬듯이.

엠마는 말없이 내 표정을 살피다가, 이내 머뭇거리며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일순 버틸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홀린 듯이 엠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을 수 있었다. 달콤한 체향이 폐부를 간질였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품이었다.

나는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그 감촉을 누리기로 했다.

“고생 많았어, 이안…….”

고향의 풍광이 스쳐 지나갔다.

불타고 쓰러진 잔해 사이로,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체를 파묻으며 마을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비석들이 묘목처럼 무수히 섰다.

아프고 괴로웠다.

상실이란 묵직한 통증을 심장에 아로새긴다. 잊으려면 잊을 것만 같은데, 얼핏얼핏 되살아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그날의 울음소리.

네드의 여동생, 메이가 내게 물었다.

“……도련님, 오빠는 어디로 갔어요?”

온몸에 붕대를 둘둘 두르고 있는 내게 던질 질문은 아니었다.

허나 상대는 어린아이였고, 죽음조차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를 나이였다.

나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기껏해야 메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짜낸 변명이 이어졌다.

“약속을 지키러 갔지.”

“……왜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메이는 눈망울에 한가득 눈물을 머금으며 물었다.

“왜 약속을 지키러 가야 했는데요? 저까지 두고서?”

“왜냐하면…….”

너를 지켜야 했으니까.

그것이 네드의 유일한 맹세였으니까.

그 모든 말들을 가슴에 묻으며, 나는 메이에게 답했다.

“……훌륭한 기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메이의 기억 속에도 네드가 훌륭한 기사로 남길 바라면서.

이제 그 모든 기억을 되짚어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아픈 가슴을 엠마의 체향과 감촉으로 다스렸다. 그러면 아픈 기억들이 모조리 덮어씌워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엠마는 내가 그만둘 때까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서서히 엠마의 품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헛기침이 나왔다.

그럼에도 엠마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 마음만큼은 전해졌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큰 힘이 되는 것을 느꼈다.

또 한참이 지난 뒤, 엠마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짜냈다.

“참, 이안. 내가 사온 재료 좀 볼래? 이번에 시내에서 희귀한 재료를 발견했거든!”

어차피 내가 봐야 알지도 못하는 물건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하는 엠마의 그 마음이 고마워서,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네 식사와 맞바꾼 재료 말이지?”

“그, 그렇지! 응… 그래도 후회는 없어!”

엠마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자루를 꺼냈다.

그곳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하얀 이끼풀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내 의아한 눈빛에 엠마는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어깨를 핀 채, 가슴에 주먹을 얹은 그 폼이 꽤 귀여워서 내 미소가 조금 짙어졌다.

“북부 중에서도 최북단에 있는 침엽수림에서만 나는 이끼야! 영구동토의 마력을 흡수하고 자라는 풀이라, 구하기 까다롭거든… 알다시피, 대륙의 최북단에는 칠죄성 중 하나의 저주가 머무르고 있으니까.”

북부와 칠죄성이라.

나는 엠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 두 가지 낱말이 귀에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신화학 강의 때 들은 기억이 났다.

북부가 영원한 추위로 둘러싸인 이유.

내가 생각을 이어나가기도 전에, 뿌듯함을 못내 감추지 못한 엠마의 말이 이어졌다.

“워낙 추운 곳이라, 채취는 고사하고 진입도 힘든 장소에서만 자라는데 이렇게 대량으로… 진짜 신기하지?! 그러니까 이게, ‘눈서리끼’인… 어라?”

불길한 낌새가 감지된 것은 그때였다.

흥분에 젖어 있던 엠마의 어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엠마의 낯빛을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엠마는 넋이 나간 채, 제 손에 들린 한 줌의 ‘눈서리끼’를 바라보았다.

“이, 이건 ‘눈서리끼’가 아닌데……?”

“……뭐야, 전부 다 가짜야?”

엠마는 서서히 고개를 젓더니, 이내 자루 안에 들어있는 눈서리끼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상을 지으며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대략 10분의 1 정도가 가짜야. 이상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 상인이었는데, 왜 갑자기……?”

10분의 1이라.

참 애매한 비율이었다.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던 것인지, 혹은 엠마 같이 전문가의 눈마저 신뢰를 바탕으로 속이려고 든 결과물인지.

나는 엠마 몰래 허리춤의 손도끼를 만지작거렸다.

“……그거, 네 식비까지 들여서 산 거잖아.”

내 지적에 엠마는 윽,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엠마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평화주의자에 불과한데, 엠마의 눈빛만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대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애써 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괘, 괜찮아! 버섯 맛있거든! 특히 요즘 숲에는 흰그루터기 버섯이 자주 나오는데, 할 수 있는 요리가 다양해! 버섯 숙회, 버섯 구이, 버섯볶음, 버섯 주스, 말린 버섯 탱자 무침…….”

버섯, 버섯, 버섯.

아무리 기다려도 엠마의 입에서 나오는 식량이라고는 버섯밖에 없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센 요리의 가짓수가 10가지가 넘었는데도 그랬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단 한 마디.

“……그 인간 어디 사는데?”

당장 필요한 질문만을 건넸다.

엠마는 우물쭈물하며 내 시선을 피했지만,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머금었다.

'북부'와 '이끼'라.

참 묘한 인연이 아닌가.

아무래도 엠마와의 해후는 다음에 마저 나누어야 할 듯 싶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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