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11화 (311/649)

〈 311화 〉 5. 빵과 비수(9)

* * *

아카데미는 상주인원만 수만 명에 이르는 인구밀집지역이었다.

당연히 그로부터 창출되는 수요나 이윤 또한 무시무시했다. 적어도 아카데미 내의 자그마한 시장 경제만으로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아카데미의 주변에는 자연스레 번화가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인구는 자본을 부르고, 자본은 시장을 부른다.

그리고 또 시장이 인구를 부르며 도시는 형성된다. 아카데미에서 흔히 ‘시내’라고 불리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래 아카데미는 한적한 오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먼 옛날 위대한 마법사가 지혜를 나누기 위해 명사들을 모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뜻 있는 젊은이들이 모인 것이 시초였다.

그 후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며 아카데미의 명성은 나날이 드높아졌다.

그리고 소문이 널리 퍼질수록 더 많은 이들이 몰리기 마련.

심지어 왕족이나 귀족 같은 부호들까지 아카데미에 찾아오면서, 그 주위에는 그들의 생활수준에 걸맞은 가게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결과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

시내의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골목마다 가득 들어찬 인파는 중심지 특유의 활기를 연출했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외딴 시골이었다는 과거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시절의 잔재는 오직 하나, 아카데미에 남아있는 치열한 경쟁 문화밖에 없었다.

명사들이 누구의 제자가 더 뛰어난지 겨루던 것이 전통이 되었다나.

예나 지금이나, 스승이란 어떻게든 제자를 굴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족속인 듯했다.

나는 문득 데렉 교수님을 떠올렸다. 얼마 전 찾아뵀을 때는 지옥 훈련을 각오하라 하셨는데, 아무래도 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어야 할 듯 싶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중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시내에 방문한 참이었다.

나는 품속에서 쪽지를 꺼내들었다. 그곳에는 동글동글한 필체로 짧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엠마가 적어준 글귀였다.

그녀에게 ‘눈서리끼’를 판 행상인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엠마는 내 끈질긴 요구에 주소를 적어 주면서도, 못내 불안을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끝까지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아무 짓도 안할 거지?”

그럴 리가.

아무 짓도 안할 생각이라면 애초에 찾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목젖까지 치닫는 그 말을 억지로 삼켜내야 했다.

굳이 엠마를 공포에 떨게 할 필요는 없었다.

상냥하고 마음씨 좋은 그녀였다. 아무리 사기를 당했다고 한들, 오랜 지인이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단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엠마를 다독였을 뿐이었다.

“그럼, 내가 뭘 하겠어?”

“팔다리를 자른다든가……?”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엠마의 떨리는 눈빛이 진정될 때까지 그녀를 안심시켜야 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내로 향해, 이제야 엠마가 적어준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가게로 보이는 곳이었다.

아마도 이 안에 엠마를 등쳐먹은 녀석이 머물고 있겠지.

우선 나는 크흠, 하고 일부러 헛기침을 하여 인기척을 냈다. 내 손이 똑똑, 하고 가게의 문을 두드린 것은 그 다음이었다.

이내 정중한 어조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계십니까?”

엠마와 약조했던 대로 예의와 상식에 입각한 대응이었다.

이만하면 엠마도 나를 탓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 너머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몇 번 더 문을 두드렸음에도 그랬다.

나는 흐음, 하고 침음을 삼키며 턱을 짚었다.

시체 거인과의 혈투는 내게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또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러를 다루는 법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스퍼트 초입에 불과했던 나였다.

당시의 나는 오러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내지도, 검에 두르는 것 이상으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힘에 취한 햇병아리’라는 표현이 어울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달랐다.

슬슬 오러의 특성까지도 개화해 가고 있던 참이었다. 이를 응용하면 보다 고급의 감지 기술도 사용이 가능했다.

숨을 죽이고, 오러를 퍼트린다.

오러란 심상의 발현이었다. 정련된 마력이 퍼져나갈수록 주위의 구조가 가슴에 더욱 선명히 틀어박혔다.

오감을 넘어선, 또 하나의 감각이 새로 생긴 듯한 느낌.

가게 안에서 특이점을 발견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희미한 숨결과 온기가 느껴진다.

안에 살아있는 자가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깨달은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쾅, 하고 울려 퍼지는 폭음.

마력을 담은 발길질이 가게의 정문을 후려친 결과였다.

대기가 찢겨져 나가며 칼바람이 몰아쳤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목재 파편들이 그 충격량을 짐작케 했다.

얼핏 안에서 자그마한 비명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한때 문이었던 나무 파편들을 즈려밟으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계십니까~?”

여전히 예의 바른 인사말이었다.

그래, 아직까지는 엠마와의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닐 터였다.

허나 나는 문짝을 부수고도 기대하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가게 내부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던 탓이었다.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고양이 한 마리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의심해 봐야 할 곳은 뻔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라, 아무도 없나?”

그러면서 나는 슬금슬금 가게 안을 훑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긴장한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설픈 이들이라면 속아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시각은 오감 중에서도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혼란시킬 수만 있다면, 나머지 감각을 혼동시키는 것도 간단했다.

단지 내게는 또 하나의 감각이 존재했을 따름이었다.

내 손이 벼락 같이 어딘가로 쏘아졌다.

니야아아아아옹­!

회색 털을 지닌 고양이가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손톱을 세워 내 손을 긁어댔으나, 마력으로 강화된 피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 손은 어느덧 고양이의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고양이의 푸른 눈동자가 공포를 담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계시냐고 묻잖아.”

그 한 마디에 고양이의 발작이 우뚝 멎었다.

대신 고양이는 오들오들 떨면서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위장을 들킨 것이 뻔한데도 아직도 버티려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 유효한 대화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그제야 고양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제 실책을 인정했다.

“이, 있습니다! 여기 있으니까 제발……!”

고양이의 입으로 듣는 인간의 언어라.

나는 그 드문 광경에 헛웃음을 머금었다.

몇몇 마법사들은 이러한 재주를 부릴 수 있다고 듣기는 했다. 잡술에 가까운 마법이라 정통 마법사 중에는 다루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드디어 대화를 나눌 최저한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양이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공중제비를 돌며 제 모습을 바꾸었다.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유약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그는 천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이는 마법에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흔한 특징이었다. 희귀한 연금술 재료를 취급한다니 사내도 그 예외는 아닌 듯했다.

엠마는 그를 ‘아비앙’이라고 불렀다.

나는 오들오들 떨며 눈치를 살피는 그를 두고, 팔짱을 낀 채 엄포를 놓았다.

“아비앙… 왜 숨어 있었지?”

아비앙은 한동안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참 뒤에야 가까스로 변명을 짜냈다.

“그, 그게 오늘은 휴일이라…….”

“헛소리는 그만 하고…나 바빠.”

그와 동시에 콱, 하고 책상 위로 내리꽂히는 손도끼.

이를 본 아비앙의 낯빛이 더욱더 창백해졌다.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아비앙에게 죄가 없다면 몰라, 그는 엠마에게 사기를 친 입장이었다. 더불어 몸까지 숨기려 들었으니 의심은 더욱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예민하게 구는 까닭은 따로 있었다.

아직까지도 내 눈은 아비앙의 행색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아비앙은 끝났다는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이 날이 오고야 마는군요. 10년이 넘도록 장사를 해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숨김없이 털어놓겠습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항복이라는 듯 두 손을 들었다.

“사기를 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부 사정이 있고, 근시일 내에 자금이 준비되는 대로 다시 환불을 해드릴 예정……!”

“숨김없이 말한다며.”

그러나 아비앙의 변명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내 차가운 한 마디에, 아비앙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연기력이 무척이나 훌륭했다.

나는 그 뻔뻔한 낯짝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아직도 내가 그를 경계하고 있는 까닭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당신 모습에서 위화감이 느껴지지? 그거, 당신 진짜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비실비실해 보이던 아비앙의 기색이 일변했다.

메마른 동토처럼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비앙의 푸른 눈동자가 얼음 송곳처럼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래, 진작 이랬어야지.

당장이라도 파열음을 일으킬 듯한 팽팽한 긴장감.

그 끝은 명확했다.

탁, 하고.

두 줄기의 섬광이 교차한다.

아비앙의 손에는 어느덧 얼음으로 만들어진 비수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이를 팔을 맞대 막아냈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팍, 하고 내 발이 아비앙의 명치를 강타했다. 아비앙은 신음조차 없이 멀리 날아가 가게 구석에 쳐박혔다.

그곳에 아무렇게나 산적해 있던 짐 사이에서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탁탁 손을 털어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법사가 왜 검사한테 근접전을 걸어?"

그러나 아비앙은 의외로 근성이 있는 사내였다.

나름 힘조절을 했다지만, 급소에 일격을 허용하고도 그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꼴로 보아 타격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차피 가게 안은 좁아터졌다.

그가 나로부터 벗어날 수단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며, 내가 걸음을 내딛으려던 그 찰나.

나는 문득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우뚝 멈춰 서는 수밖에 없었다.

"야, 너 그 귀……."

내 지적에 아비앙은 화들짝 놀라며 제 귀 어림을 가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호흡이 흐트러진 탓에 마법이 풀려 버렸는지, 그의 귀는 어느덧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쭉하고 뾰족한 모양새의 귓바퀴.

이는 어떤 종족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의외라서, 나는 멍하니 그의 정체를 읊는 수밖에 없었다.

"……엘프였냐?"

아비앙은 내 얼빠진 목소리에 더욱 입술을 짓씹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곧장 땅을 박차고 내게 쏘아졌다.

"죽어!"

살기를 가득 담아서,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는 듯이.

조금도 예상치 못한 조우였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