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5. 빵과 비수(10)
* * *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파편이 비산했다.
말간 빛이 반사되며 영롱한 색조를 주위로 흩뿌렸다. 만일 내 감수성이 예민했다면 일순 몽환적인 감상에 빠졌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내게 감성을 자극받을 여유는 없었다.
얼음송곳이 날아든 직후, 사내의 몸이 내게 쇄도했던 탓이었다.
느닷없는 전투였다.
처음에는 단지 엠마에게 사기를 친 상인을 찾아왔을 뿐이었다.
결코 날붙이를 맞대며 싸울 의도까지는 없었다.
손해를 본 비용이야 내가 보전해 주면 그만이었다. 그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은, 그 상인이 북부의 희귀한 재료를 취급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북부의 동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리라.
혹여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좋았다. 다시는 엠마를 만만히 볼 수 없도록 교육을 해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상인이 설마 엘프였을 줄이야.
섬광처럼 쏘아진 비수가 쐐액, 하고 파공성을 일으켰다.
그에 맞서 나는 손도끼를 휘둘렀다.
그 궤적은 일직선, 가장 단순한 투로였으나 그만큼 위력과 속도는 강맹했다.
불똥이 튀기며 날카로운 소음이 일었다.
엘프가 들고 있던 비수가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나는 또 다시 발길질을 엘프의 복부에 처박았다.
콱, 하고 발이 엘프의 복막을 파고드는 감촉이 느껴졌다.
엘프의 몸이 새우처럼 바짝 꺾이더니, 바람 소리를 내며 벽면에 처박혔다.
쿵, 하는 소리를 끝으로 엘프의 몸이 벽면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벌써 몇 번이고 반복된 결과였다.
마법사 엘프는 나름 박투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아카데미의 저학년이 상대였다면 제압이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어중이떠중이와 질적으로 다른 실력자였다.
무투가도, 마법사도 아닌 어중간한 인물에게 당해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엘프와 끝장을 보지 않는 까닭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제 그만 두지 그래? 내가 언제 너 죽이기라도 한대?”
“……인간들은 전부 다 똑같아.”
으르릉, 하고 엘프는 마치 짐승이라도 되는 양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윤기 나는 회색 머리카락이 갈기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지? 제국 첩보부인가? 지금껏 아카데미의 교수들도 내 정체를 눈치 챈 사람이 없었는데.”
의외의 사실이었다.
내가 알아챌 정도라면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당연히 눈치 채리라 여겼는데, 그러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엘프가 아카데미 한복판에 있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프는 인류의 적이다.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온 악연이었다.
엘프는 자연을 숭상하고 보호한다. 반면 인간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 탓에 인류와 엘프의 갈등은 유구한 역사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나무를 베다가 엘프들에게 습격당하는 일마저 있을 정도였다.
묵은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사실 승패는 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용들이 마법을 전수한 이후, 대륙의 지배종은 명실상부 인류였다. 그 머릿수부터가 차원이 다르던 판이었다.
인류는 엘프의 고향인 대수림에 승자의 깃발을 꽂았다.
대수림의 엘프들은 세계수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륙의 어디에도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 눈과 얼음이 지배하는 대륙의 최북단을 제외하면.
그토록 기나긴 세월을 원수로 지낸 사이였다.
엘프가 인류를 좋아할 턱이 없었고, 이는 인류도 다르지 않았다.
아카데미 바로 옆에 엘프가 살고 있다?
당장 체포해서 압송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엘프가 저토록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까닭도 그래서일 터였다.
어차피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승리, 혹은 죽음뿐이다.
그럴 바에는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편이 나았다.
그러한 결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내가 제국 첩보부 소속이긴 한데…….”
“역시나!”
엘프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내 산하에 제국 첩보부 아카데미 지부가 있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또 엘프 첩자의 존재를 보고하는 것 또한 제국의 신하된 도리이리라.
허나 내가 못내 답답했던 까닭은, 정작 나는 엘프에게 딱히 적개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가는 엘프들이야 그럴 수 있었다.
또 엘프들과 오랜 마찰을 빚어온 북부인들도 아직 원한이 해소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 외의 인류들은 딱히 엘프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혐오하고 배척하는 기류는 존재해도, 나처럼 별 생각이 없는 부류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따라서 나는 경우에 따라 그를 보호해 줄 용의도 있었다.
감시야 네리스 선배한테 맡기면 되겠지, 뭐.
오히려 나는 그의 존재가 조금 반갑기도 했다.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에는 ‘엘프’의 존재도 언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엘프와 상담하는 편이 더욱 빠를 터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엘프를 살살 다루고 있었다.
물론 엘프의 입에서 슬슬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긴 한데, 아직 사지가 멀쩡하다는 점에서 내 자비는 유효했다.
그것도 한계가 있지만.
최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자꾸 이러면 내게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제안하는데, 싸움은 이쯤하고 대화로…….”
“웃기지 마, 무슨 속임수를 쓰려고!”
그것이 최후통첩에 대한 엘프의 답변이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비앙은 엘프였으나, 또 10년 이상 인간 사회에 섞여 살며 장사를 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종족 간의 뿌리 깊은 증오마저 씻어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무작정 불신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쯤은 깨달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아비앙이 보이는 태도는 이상했다.
무작정 적대하고 증오하는 모습.
결국 평화로운 대화는 물 건너갔다는 소리였다.
나는 재차 한숨을 푹 내쉬었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응해 주는 수밖에.
무언의 신호가 아비앙을 향했다.
짧은 눈짓, 덤빌 테면 얼른 덤비라는 뜻이었다.
그 도발에 아비앙은 울컥해서 얼음의 송곳을 만들어냈다.
지금껏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유는 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대략 여섯 개, 꽤 많았다.
아비앙은 이 공방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그는 전력을 다하려는 듯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새파란 섬광이 여섯.
순서대로 쏘아진 얼음송곳을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손도끼를 던졌다.
팍, 팍, 팍!
송곳 하나를 격추시킨 손도끼가 두 번의 변화를 보였다. 단숨에 얼음송곳 3개가 무력화된 사이, 나는 반짝이는 얼음가루 사이를 돌파했다.
그리고 올려차기로 날아드는 얼음송곳 하나를 허공으로.
나머지 얼음송곳은 두 손으로 하나씩 붙잡았다. 급작스러운 냉기에 손바닥이 얼음에 쩍, 하고 달라붙는 감촉이 느껴졌다.
천방지축 달려드는 엘프 하나를 제압하기에는 딱 좋았다.
마침 아비앙의 전력을 다한 찌르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감각을 집중했다. 지독히도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 찌르기와 내 몸이 교차하는 찰나를 노렸다.
빙글, 하고 몸이 회전했다.
마치 아비앙의 일격이 나를 밀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휘감기듯이 엘프의 품을 파고든 내 두 손이 곧장 쭉 뻗어진 팔을 내렸다.
팍, 하고 핏물이 폭발한다.
아비앙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상완과 하완에 하나씩 틀어박힌 얼음송곳에서 맹렬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을 터였다.
무력화를 위해서는 이 정도로도 부족했다.
나는 아비앙의 팔을 그대로 내리눌러, 팔꿈치를 무릎으로 차올렸다.
으득, 하고 관절이 박살나며 새하얀 뼈가 드러났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러게 진작 말 좀 들을 것이지.
손에 온기가 돌아 얼음송곳이 미끄러졌다. 어차피 아비앙의 팔을 관통한다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상관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주먹으로 에비앙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직, 하고 코뼈가 내려앉으며 아비앙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비앙의 쓰러진 몸 위로 타고 오르는 나의 육체.
이후에는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콱, 콱, 콱!
안면에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피와 함께 새하얀 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두 무릎으로 팔을 제압하고 있던 터라 아비앙은 반격이 불가능했다.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하고 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만약 전력으로 쳤다면 아비앙은 진작 목숨을 잃었으리라.
결국 아비앙도 생물이었다.
목숨의 위협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그하(그만)!”
이가 박살나 바람이 줄줄 새는 발음이었다.
나는 그제야 휘두르던 주먹을 멈칫했다.
아비앙의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 하혹(항복)! 하혹할 헤이까(항복할 테니까)…….”
그 말을 들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혹시라도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내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져나갔다. 이완된 근육이 전투의 열기를 훅훅 내뿜으며 몸을 식혔다.
아비앙은 훌쩍이며 눈물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안타까운 목소리를 흘렸다.
“……진작 그러지.”
그리고 그것이 끝.
퍽, 하고 내 주먹이 아비앙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아비앙은 온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
신전에 딸린 자그마한 건물, 일명 ‘태양의 쉼터’.
성녀의 거처에 느닷없이 찾아온 나는 피 묻은 자루를 탁, 하고 내던졌다.
성녀는 멍청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치료 좀 해주시죠.”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던진 말에, 성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면서도 자루를 열어보는 그 모습이 참 고마웠다.
성녀는 기본적으로 선량했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내 성녀의 타박을 감내해야 했다.
“꺄, 꺄아아아아악! 무슨 여자애를 이렇게 피떡으로……!”
당연히 내가 범인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기색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 할 말이 없다는 점이 제일 슬펐다.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그간의 사정을 밝히려던 그때.
“그것도 사정이 다… 아니, 잠깐만.”
나는 문득 성녀의 말 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의아한 눈빛으로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애?”
“그래요, 여자애! 아무리 사정이 있었다지만이 가녀린 아이를……!”
나는 곧장 성녀의 손에 들린 자루를 낚아챘다. 그리고 자루를 역으로 뒤집어 탈탈 털어냈다.
그 너무한 취급에 성녀가 허,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나는 그러든 말든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눈앞에 드러났던 탓이었다.
“……진짜 여자네?”
그것도 갓 성인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자애.
나는 그만 탁, 하고 이마를 짚고 말았다.
변신 마법이 그게 끝이 아니었구나.
아비앙은 제 성별까지도 속이고 있던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 손속이 덜해지거나 하진 않았겠지만.
나는 성평등주의자였으니까.
기묘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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