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35화 (335/649)

〈 335화 〉 5. 빵과 비수(33)

* * *

어린 시절, 황녀는 희귀한 동물을 좋아했다.

태어나기를 황가의 핏줄로 태어난 여인이었다. 호화로운 취미를 하나나 둘쯤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물며 뿌리 깊은 인간불신을 앓던 무렵이 아니었던가.

시엔은 인간보다 동물을 사랑했다.

인간은 온갖 허물로 스스로를 치장하지만, 동물들은 그러지 못했다. 황녀는 그 사회적 무능을 사랑했다.

최소한 배신을 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한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황제가 아니었다. 절대자의 암묵적 동의 아래서, 황녀는 몇몇 이국적인 동물들을 키울 수 있었다.

때로는 소문을 접한 외국의 사절들이 제 고향의 짐승을 데려오는 날도 있었다.

그 속내는 뻔했다. 황제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황녀의 환심을 사서, 종래에는 제국과의 협상에서 자그마한 이익 하나라도 얻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물론 황녀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황녀를 대하는 모든 이들의 속내는 매한가지였다. 단지 이를 잘 숨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

도리어 황녀는 노골적으로 제 욕망을 드러내는 쪽을 선호했다.

사절들이 데리고 온 진기한 구경거리를 굳이 마다할 까닭은 없었다.

다만 유일한 불만이 있다면, 그 희소한 볼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몇몇 불청객들이 찾아오곤 했단 점이었다.

대개는 황족이나 제국의 5대 귀족 가문 출신의 명망가들이었다.

황제까지는 괜찮았다.

그는 딸을 아낄 줄 아는 아버지였고, 황녀의 몇 안 되는 버팀목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두 사람만큼은 아니었다.

제1황자 빌테온과 제2황녀 아이리스.

모든 형제자매를 통틀어, 시엔이 제일 싫어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 둘은 차기 권좌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권력을 위해 살아온 이들이었으니, 그 손이 깨끗할 리는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시엔은 제 ‘눈’에 비치는 감정을 신용했다.

빌테온과 아이리스는 야망의 색조가 너무나도 짙었다. 그 외의 감정들이 무색할 만큼 강렬한 색채였다.

그래서 시엔은 두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곤 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는 인간들.

제 팔다리를 자르라 해도 기꺼이 내놓을 이들이었다. 하물며 황위계승권도 한참이나 밀리는 이복동생쯤이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 버릴 테지.

그것이 시엔이 첫째 오빠와 둘째 언니를 싫어하는 까닭이었다.

무서웠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사실은, 황녀와 그 둘이 마주칠 때면 으레 황제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위세가 대단하더라도 제국의 주인은 엄연히 황제였다.

빌테온과 아이리스는 황제 앞에 설 때마다 순한 양을 연기하곤 했다. 그 자세한 속내를 알 수 없으나, 최소한 황제의 어전에서 둘은 형제자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태생이 쌀쌀맞은 아이리스는 무얼 해도 따뜻해 보이지 않았다.

쾌활하고 대범한 성미의 빌테온만이 시엔에게 농을 던졌을 따름이었다.

“시엔, 오늘 사절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들었느냐?”

사절이 데려온 동물을 공개하기 전, 빌테온이 눈을 반짝이며 던진 질문이었다.

암청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사내였다. 그 단련된 육체와 조각 같은 외모 탓에 벌써 울린 여인만 여럿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물론 시엔에게는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하는 외양이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두고 시엔이 설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모든 인간들은 거짓말쟁이에 불과한데.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이는 그 빌테온이었다.

차기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심기를 거슬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 후환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시엔은 조신한 어조를 가장하여 대답했다.

“트리알데 왕국에서 온 분이라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

남부 열왕국은 제국과 성국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연맹체였다.

각각의 소왕국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트리알데’는 그중 한 축을 이루는 나라였다. 또 우거진 밀림에서 채취하는 목재의 품질이 우수하기로도 유명했다.

그러한 곳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또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시엔의 관심사는 오직 그뿐이었으나, 빌테온은 아직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듣기로는 트리알데 왕국의 뱀이 그렇게 몸에 좋다더구나. 특히 남편을 가진 여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구하려 든다는데…….”

“……저질.”

탁, 하고 쥘부채를 접으며 내뱉어진 한 마디였다.

빌테온의 시선이 슬쩍 측면을 향했다. 그곳에는, 은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이 차가운 낯빛을 한 채 앉아 있었다.

제2황녀 아이리스였다.

어린 시절 중병을 앓은 그녀의 안색은 언제나 창백했다. 혈액순환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낯빛은 물론이고, 손과 발도 차갑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제2황녀와 악수라도 나눈 이들은 한결같은 증언을 늘어놓곤 했다.

마치 얼음으로 된 공예품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시엔은 내심 그 평가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표정 변화가 드문 여인이었다.

“오라버니, 제발 체통을 지키세요… 어린 동생 앞에서 짓궂은 소리나 늘어놓는 꼴을 보니,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노골적인 힐난의 어조였다.

그럼에도 빌테온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 따름이었다.

“아니, 시엔도 이제 사랑을 알 나이잖아? 그러니 혹시 몰라서…….”

트리알데의 사절이 상자 안에서 꿈틀거리는 살덩이를 꺼낸 것은 그때였다.

놀라운 크기의 뱀이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두 팔로 끌러안아도 겨우 품에 들어갈 정도의 굵기였다. 그 길이는 어찌나 긴지, 커다란 나무 상자에서 타래를 풀 듯 꺼내도 끝없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시엔은 깜짝 놀라 말을 멈추고 말았다.

빌테온이나 아이리스 또한 잠잠해졌다. 다만 두 사람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제국의 지존을 노리는 만큼 아는 것도 많았던 덕이었다.

빌테온이 침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쌍두사…….”

“저만한 크기라면 마력의 영향을 받았겠네요. 절반쯤은 마수라 봐야겠고… 그렇다면 대수림의 중앙에서 데려온 특등품이군요.”

아이리스의 설명까지 덧붙자, 시엔은 더욱 들떠 흑색 비늘의 뱀을 구경했다.

너무나 컸다.

시엔도 온갖 파충류를 보았으나, 저토록 큰 뱀을 본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정작 무서워서 키울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쌍두사에게는 꼬리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꼬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또 하나의 머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연 두 머리 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지, 시엔은 눈을 반짝였다.

트리알데의 사절은 마침 그 의문을 해소해 줄 예정인 듯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곧 좌중으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몇몇 사내들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빌테온은 다소 곤란하다는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어, 음… 시엔? 잠깐만 눈 좀 돌려보겠니.”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다.

시엔은 그녀답지 않게 다소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반문하고 말았다.

“왜요?! 이제 두 머리 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가지는지 보여준다고…….”

그럼에도 빌테온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 제대로 된 답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나선 이는 아이리스였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엔에게 말했다.

“그럼 잘 봐두렴, 공부가 될 테니까.”

“야, 야! 미쳤냐?! 아직 시엔은 열세 살이라니깐!”

“누군가 그러더군요, 오라버님… 그만하면 사랑을 알 나이라고.”

그렇게 두 사람의 고성과 조롱이 교차하던 그 찰나.

쌍두사의 두 머리가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뱀답지 않게 널찍한 각자의 혀를 둥글게 말고, 침처럼 찔러 들어가는 모양새.

시엔은 처음에 두 머리가 주도권을 두고 물리적으로 다투나 싶었다.

그러나 그 순박한 생각은 이내 깨어지고 말았다.

쌍두사의 돌돌 말아진 혀가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곧 깨달아 버렸던 탓이었다.

시엔은 넋을 놓고 그 장면을 감상해야 했다.

쌍두사의 몸이 칭칭 얽히고, 열기가 훅훅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귀족들은 감탄을 터트렸으나, 시엔은 그럴 여유조차 남아있지 못했다.

결국 빌테온은 제 낯짝을 손으로 가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몸에 좋아 보이긴 하네.”

그렇게 쌍두사의 짝짓기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쌍두사는 본래 평범한 뱀이었으나, 꼬리가 서로 머리를 하려 다투다 보니 두 개의 머리가 생겼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늘 사이가 좋지 않아 주도권을 두고 싸운다고.

단지 그 방식이 교미일 뿐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그 끝없는 성욕과 질투심으로 인해 델피렘의 앞잡이로 여겨진다나.

시엔은 그날 종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앉아 있어야 했다.

빌테온은 말없이 황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아이리스는 늘 그렇듯 차가운 조언을 남기고 떠나갔다.

“시엔, 잘 기억해두렴. 이것이 삶의 본질이란다… 모든 것에는 서열이 있어. 심지어는 수컷과 암컷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고.”

아이리스의 사고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물론 시엔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리어 쌍두사의 열성적인 교미에 지나치게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남녀간의 결합에 대한 강한 거부감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어찌 그리 망측한 짓을.

이성이라고는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 행위였다. 오직 육체적 욕망에 의존하여, 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던 그 모습.

적어도 시엔만큼은 그러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어째서.

“흐으, 읏… 하으으…….”

시엔은 헐떡이면서, 달뜬 숨을 내뱉고 있었다.

명실상부 암컷의 행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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