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화 〉 5. 빵과 비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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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러진 비음과 교성이 쉴새없이 새어나왔다.
황녀가 제 가랑이 사이를 문댈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은밀한 장소를 건드리는 시엔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나,난생 처음 하는 자위행위였다.
속옷은 이미 음란한 액체로 흥건히 젖은 지 오래였다.시엔의 머리를 밤새도록 파고드는 것은,엿보았던 방 안의 풍경.
뱀들의 교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오가고,혀와 혀가 얽히며,짐승처럼 색욕을 채워가던 그 모습.
본래 경멸해야 마땅한 행위였다.
아니,그 이상으로 비참하고 슬픈 마음이었다.
강 밑에 가라앉은 시체가 된 느낌이었다.물고기처럼 제 살점을 파먹는 질투심에도 열패감,사랑하던 사내를 빼앗긴 여인의 슬픈 말로였다.
그럼에도,왜.
악물어진 잇새로 달큰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억누느려 했으나 참아낼 수가 없었다.
꾸욱,꾸욱.제 비부를 문지르는 손가락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황녀의 뇌리를 지배하는 것은 분노나 아픔뿐만이 아니라,또 다른 자책들이었다.
내게 누군가를 질투할 자격이 있는가?
한때 황녀의 심장을 한 무리의 식인어처럼 뜯어먹었던 의문이었다.
시엔은 죄인이었다.
최소한 황녀는 제 자신을 그렇다 여겼다.
너무나 많은 이들을 불신해서,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인연을 놓칠 뻔했다.
아직도 창백한 낯빛으로 의식을 잃고 있던 사내의 모습이 선했다.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는 것조차 실례일지 모른다 생각했다.그러다 멀어질까 두려워‘여자’가 아니라‘애완동물’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 아닌가.
누군가를 질투할 자격 따위는,존재하지 않을 텐데.
“흐읏,으응…흐읏,흐으윽?!”
나른한 희열이 몸살 기운처럼 전신에 퍼져 나갔다.손이 균열을 스칠 때마다 턱이 덜덜 떨릴 정도의 쾌감이 전해졌다.
패배를 정당화하고,열등감에 온몸을 맡긴다.
여태껏 그 모든 것을 거머쥐던 삶이었다.생전 처음 겪는 완패나 다름없었다.
황녀와 어울리지 않는 결과였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새어나오고,한 방울의 눈물이 눈가에 맺힌다.
아프고 힘들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극적이었다.
황녀는 본능적으로 속옷 안으로 제 가녀린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그러자마자 미끄러지듯 균열을 파고드는 손끝이,부풀어 오른 어딘가를 지나쳤다.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오르는 전류와도 같은 쾌감.
“헤엑,흐윽,헷,응,응,응오옷?!”
암캐처럼 헐떡이던 황녀의 허리가 절로 텅,하고 튕겨 올라갔다.그처럼 강렬한 자극이었다.황녀는 그 쾌감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울면서,기뻐한다.
소녀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다만 끝없이 재생되는 풍경은,짝사랑하는 사내가 금발의 여인과 몸을 겹치는 그날 밤의 기억뿐.
그 연회색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았다.
“흐읏,응,앗……!”
질투는 아니다.
그토록 경멸하던 머리 나쁜 쾌감에 중독된 뇌였다.이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고,다만 황녀는 입술을 짓씹었다.
팍,팍,팍.
새하얀 불꽃이 머릿속에 튀었다.
“헤엑,흑,흐으으읏?!”
그래,질투는 결코 아니었다.
폭죽처럼 뇌의 혈관 사이사이로 퍼져나가는 전류에 정신을 잃을 뻔하면서,황녀는 들어 올려진 허리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자극을 어떻게든 견뎌냈다.
눈물이 흘러내리며 황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단지 알아야 할 사람한테 알릴 뿐이다.
그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그럴 자격조차 없는 자신들과 달리,이안 경을 사랑하는 수많은 여인들은 죄가 없는데.
그 도둑고양이를 견제하고 괴롭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황녀에게는 전과가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들끼리 무슨 짓을 하든,시녀에 불과한 자신은 그 곁에서 멀거니 구경만 하면 될 따름이었다.
바로 오늘처럼.
“흐읏,읏,응……!”
황녀는 몇 시간 동안이나 넋을 놓고 자위에 열중했다.
눈물과 쾌락이 젖은 밤이 이어졌다.아마도 쌍두사의 교미보다도 긴 시간 동안이나.
다음날 아침,황녀는 행동에 나섰다.
**
시작은 소문이었다.
황녀는 피곤한 눈빛으로 하품을 내뱉었다.축 늘어진 어깨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우연인지 이는 나머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성녀나 엘시,그리고 엠마까지도.
유일한 예외는 오직 남자인 유렌뿐이었다.
그는 피로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전 이안을 데리러 가보죠.”
이안을 제외하면 유일한 남자였으니,자연스러운 역할 분배였다.
정작 그 사내는 다른 곳에서 어젯밤을 보냈을 테지만 말이다.
드물게도 오늘 지각을 한 이유도 그 탓이리라.
이미 수없이 곱씹은 기억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가슴에 남긴 멍울이 지워지기에 밤은 너무나 짧았다.울컥,하고 치솟는 감정을 황녀는 제어하지 못했다.
황녀는 울적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안 경은 왜 이곳에 온 걸까요.”
성녀와 엘시의 지친 눈빛이 황녀를 향했다.그야 그 둘은 이미 이안으로부터 사전에 설명을 들은 뒤였다.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의 존재는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
애초에 보이지도 않고,그 내용조차 알 수 없는 서신이었다.단지 그 존재유무만을 이안에게 들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 정체불명의 이야기를 믿고 따르려면,좀 더 깊이 있는 신뢰관계가 필요했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할 황녀가 아니었다.
연회색 동공이 세로로 찢어지자,두 여인의 짜증스러운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멋 모르는 철부지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느낌이었다.
오직 엠마만이 다소의 흥미를 가지고 시엔을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도리어 짜릿한 전류가 시엔의 척추를 긁고 지나갔을 정도였다.성녀와 엘시는 누구보다 이안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그 둘조차 모르는 사실을,시엔만이 알고 있다.
그 묘한 쾌감이 시엔의 혀를 더욱 매끄럽게 만들었다.
모두가 잊고 있었으나,연기는 시엔의 특기였다.
평생 남들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꾸미며 살아왔으니까.
“어제 시녀가 묘한 소리를 하더라고요.유르디나 선배와 이안 경 사이가 조금 수상하다나…….”
“보나마나 쓸데없는 소리겠죠.”
엘시는 무성의한 목소리로 그 의혹을 일축했다.
그나마 황녀 대접은 해주려는지 존댓말을 쓰고는 있었다.그럼에도 그 껄렁거리는 태도에서 존중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일행과 시엔의 비정상적인 관계 설정에서 기인하는 문제였다.
한때 일행의 서열 최하위에서 머물렀던 시엔이었던 만큼,아직까지도 일행 사이에서는 그녀를 무시하는 기조가 아직 남아있었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시엔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으리란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일행에게 있어 그녀는 눈치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계집애에 불과했다.
“원래 주인님이 좀 그래요.워낙 잘난 분이라,온갖 여자들이 얽혀 있다고…….”
“살갗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던데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가던 엘시의 말이 그대로 멎어 버렸다.
오랜만에 뜨인 시엔의 눈은 일행의 감정을 그대로 포착하고 있었다.
당혹과 균열.
시엔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그,그러니까…허,헛소문이겠죠?!어쩌면 유르디나 선배가 나쁜 짓을 해서 싸움을 벌였다거나,에헤헤…….”
시엔의 궁색한 수습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여인들은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나름대로 소문을 수집하러 다닐 테니까.
자진해서 조사한 정보는 더욱 신뢰하기 쉽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겠지.
진정으로 견제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 말이다.
단지 거슬리는 점이 하나 있다면,유독 엠마만은 아무런 동요 없이 시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엠마는 평민이었다.애초에 유르디나의 차기 가주를 견제할 수단은 전무했다.
그 이후에,황녀는 멍하니 이안을 보며 헤실거렸고.
또 혼자 남았을 때는 열렬히 스스로를 위로했다.전날 밤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황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황녀는 몰래 이안의 천막에 잠입하기를 시도한 것이다.
다들 잊고 있던 사실이었으나,황녀는 마법학부1학년 수석이었다.이는 그 엘시조차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었다.
전투력은 몰라도 잔재주는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때 황녀는 보고 말았다.
성녀와 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하며,관계 직전까지 가는 이안의 모습을.
이미 손수건을 습득한 황녀는 본능적으로 제 코를 손수건에 처박았다.그러자 뇌리를 파고드는 수컷의 향기.
찔꺽이며 제 비부를 문지르며,황녀는 이를 악물었다.
헐떡이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그녀는 눈물을 머금었다.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도주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시엔은 광탄을 터트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병사들이 침입자라며 군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그녀는 그 틈을 타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이안에게 들키긴 했지만,어떻게든 잘 넘어갔다.
이안이 볼 때 황녀는 어린아이에 불과할 테니까.
그래,멋모르는 꼬맹이.
여자는 아닐 터였다.
황녀는 제 천막에 돌아와 속옷을 들춰보았다.이안에게 북부로 가자는 제안을 받은 후,한참을 고민했으나 결국 적당한 속옷을 고르지는 못했다.
용기를 내서 순백의 속옷을 맞추긴 했지만 그마저도 어젯밤에 흠뻑 젖어버렸다.
결국 남은 것은 곰돌이 팬티뿐.
이래서야,이안 경이 꼬맹이로 볼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자조하며 자위하다 눈을 뜬 다음날의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황녀 전하.”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흠 잡을 데 없는 예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하녀복을 입고 있었다.
전속 하녀 따위는,요청한 적도 없을 텐데.
그 암녹색 눈동자가 요사스레 빛나고 있었다.
“제 이름은 네리스라고 합니다.제국 황실의 요청에 따라,잠시 황녀 전하의 수발을 들게 되었습니다.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황녀는 그제야 그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네리스,검술학부4학년에 속한‘무도회의 여왕’.
왜 그만한 인물이 굳이 하녀를 자처한단 말인가.
그러한 의문이 들었던 찰나에,황녀의 귓가를 파고드는 한 마디가 있었다.
“……제가 이안 님을 워낙 흠모하고 있어서요.”
연회색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직후,황녀는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억지로 미소를 머금어야 했다.
이 여자, 이안 경이 보낸 인물이었다.
그것도 강요에 의한 관계였다. '이안 님'이라고 말할 때 보이는 감정은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았으니까.
황녀는 생각했다.
이러면 밤마다 신경 쓰이잖아.
물론 겉으로는 파르르 떨리는 미소를 유지하면서, 황녀는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네리스 선배."
침엽수림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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