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42화 (342/649)

〈 342화 〉 5. 빵과 비수(40)

* * *

침대 위의 엘시 선배는 의외로 귀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 본질이 소녀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내 밑에 깔린 엘시 선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푹신한 침대라 아프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절로 거칠어지는 숨결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에서는 공포와 기대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엘시 선배에게 속삭였다.

“……덮쳐졌네요?”

“아, 으… 히이이잇?!”

네 능글맞은 질문에도 엘시 선배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 입이 슬쩍 엘시 선배의 목덜미를 향하자, 옅은 비명을 내질렀다.

단지 엘시 선배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을 뿐이었다.

내 의도는 순수했다. 예전에 턱을 쓰다듬어 줄 때 엘시 선배가 유독 좋은 반응을 보여주던 장소였다.

엘시 선배를 괴롭히기 위해서는 최적이었다.

그런데 엘시 선배가 보여주는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다.

자그마한 비명을 토해낸 이후, 엘시 선배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제 허벅지를 비볐다. 한껏 달아오른 숨소리에 달콤한 비음이 섞여들고 있었다.

엘시 선배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자, 잠깐… 간지럽… 흐으읏?!”

물론 그 저항은 쪽, 하고 다시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는 동시에 사라졌다.

엘시 선배는 이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나는 그 무렵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 하하하하! 엘시 선배, 그게 뭐에요. 정작 덮친다고 하니까 엄청 쫄아선.”

눈물 맺힌 사파이어빛 눈동자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째릿, 하고 노려보는 폼이 내게 화라도 났다는 기색이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나는 더욱 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사실 나도 진심으로 엘시 선배를 덮칠 생각은 없었다.

엘시 선배의 말마따나 아직 씻지도 않았고, 술까지 취했다. 일전의 델핀 선배와 엘시 선배는 이야기가 달랐다.

델핀 선배는 그저 모든 고민을 지워주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엘시 선배는 아니었다.

엘시 선배와 내가 선을 넘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결실이라는 형태가 되어야 했다. 이처럼 춥디 추운 오지에서 갑작스레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잘 모르지만, 여자는 첫 경험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들었다.

적어도 그 환상이 천막에서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아닐 터였다.

미래는 알 수 없어도 난 엘시 선배에게 좋은 기억만 선물하고 싶었다.

물론 엘시 선배는 어느 쪽이든 분한 모양이었다.

“나, 나쁜 새끼야…….”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다가.

그리고 벌컥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

“자, 자꾸 소녀의 순정을 가지고 놀래?! 진짜 깜짝 놀랐잖아!”

“일어나자마자 두 손이 묶여있을 때보단 덜 놀랐잖습니까.”

내 정론에 엘시 선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아직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엘시 선배를 달래기 위해 그녀를 품에 안아야 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남녀가 단 둘이 침대 위에 누워, 서로 끌어안고 있는데 별다른 일이 없다니.

그러나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입은 험한데, 몸으로는 저항하지 못하는 선배라.

묘한 배덕감도 느껴졌고 말이다.

처음에는 화난 기색이던 엘시 선배도 이내 잠잠해졌다.

살포시 얼굴을 붉힌 채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은 험했다.

진정한 덕인지 조금 공손해지기는 했지만.

“지, 진짜 나빴어… 결국, 나는 여자도 아니다 이거야?”

어쩌라는 건지.

덮치려고 하니까 무서워하고, 덮치지 않으니까 또 서운해 하고.

나는 레토의 격언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여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그저 받아들여라.’

그때는 여자가 무슨 자연재해라도 되는 양 말하는 꼴이 퍽 우스웠는데, 당해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는 내 절친한 친구의 조언을 따라 보기로 했다.

“그랬으면 고백 받았을 때 벌써 거절했겠죠… 그리고 저도 위험하긴 했어요.”

내 달래는 듯한 어조에 엘시 선배의 새침한 눈흘김이 나를 향했다.

그러든 말든 내 위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엘시 선배, 처음에 저 깔고 앉았잖아요. 그때 자꾸 그, 꾹꾹 누르니까…….”

“뭐가?”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엘시 선배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진짜로 몰랐던 건가.

엘시 선배는 은근히 맹탕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한 살 어린 후배한테 당하고, 오줌이나 쌌다는 놀림을 당하지.

나는 차마 노골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저 헛기침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을 뿐.

“그, 뭐겠습니까. 깔고 앉을 때, 닿는 부위가…….”

“……아.”

자그마한 탄성과 함께, 엘시 선배의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그녀는 뒷짐을 지며 제 엉덩이를 가리려 시도했다. 어차피 정면에서 끌어안고 있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엘시 선배는 더듬거리며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렸다.

“그, 그래? 조, 좋았나 보다?!”

“네, 좋았죠.”

물론 본전도 찾지 못할 짓이었다.

내 뻔뻔스러운 반응에 엘시 선배는 도리어 더욱 얼굴을 붉혀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트리자, 그녀는 분한 눈빛을 했다.

내게 주도권을 빼앗지 못한 것이 영 분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엘시 선배는 울컥해서 이상한 소리를 시작했다.

“그럼 증명해 봐!”

“네? 뭘 어떻게 증명합니까.”

좋았으면 좋은 거지.

내 황당하다는 반응에도 엘시 선배는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제 몸을 감싸고 있던 내 팔을 쳐내더니, 뒤로 돌아 누웠다.

그 다음으로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기까지.

그것이 노리는 곳은 명백했다.

내 사타구니 쪽이었다. 나는 다시금 닿는 보드라운 감촉에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좋았다니까요! 제가 왜 엘시 선배한테 거짓말을 해요!”

“그, 그러니까 증명해 보라고! 남자는 이런 거 좋아할 거 아니야!”

엘시 선배의 엉덩이가 움찔거리며 내 옷 위를 마찰했다.

비록 천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나, 그 감촉이 온전히 상쇄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엘시 선배의 체향이 너무 가까웠다.

결정타는 엘시 선배의 숨소리였다.

내게 둔부를 비비적대던 엘시 선배의 허리가 움찔, 튀어 올랐다.

“……흐으.”

그리고 젖은 숨결이 하나.

다소 놀랐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엘시 선배의 눈동자가 애처로웠다. 이상한 취향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도리어 엘시 선배의 그 숨소리가 더욱 야하다고 느껴졌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엘시 선배는 내게 ‘증명’을 요구하다가, 이내 변화를 깨우쳤다.

“어라?”

내게는 무척 수치스러운 상황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까스로 짜낸 한 마디는 짧았다.

“……됐죠?”

엘시 선배는 나를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야 엘시 선배는 엉덩이 골 사이에 뜨겁고 단단한 막대가 하나 낀 정도로 느끼겠지. 그 정체까지는 아직 짐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더듬거리는 손길이 내 사타구니 위를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 어어……?”

엘시 선배는 새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멍한 소리만을 내뱉었다.

“혹시, 혹시 미리 천막 다녀왔어? 왜 쌍두사가 이곳에…….”

“무슨 천막이요? 그리고 쌍두사는 또 뭡니까.”

내 짜증스러운 되물음에, 엘시 선배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이상하네? 남부 대수림에나 있어야 할 생물이, 북부에 있길래 이상해서 가지고 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남부 대수림은 북부와 환경이 천양지차였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물이 이곳에 있을 턱이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북부에 쌍두사를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남부 대수림에서 지내다가, 북부 중에서도 최북단에 속하는 침엽수림까지 이동해야 할 이유라.

그래야 할 까닭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쫓겨났다면 몰라.

그래, 남부 대수림에서 쫓겨난 이들.

나는 추론이 매듭지어지자마자 비명을 터트렸다.

“아니, 그것부터 말했어야죠!”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켜, 쌍두사를 보관해 두었다는 천막을 향했다.

겸사겸사 엘프들을 심문할 심산이었다.

그러는 내 뒤를, 엘시 선배는 새빨개진 얼굴로 수행했다.

붉어진 얼굴로, 제 배꼽 아래까지 손대중 해보면서.

그 이후로 엘시 선배는 퍽이나 얌전해졌다.

“주, 주인님.”

어느덧 돌아온 호칭은 덤이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다소 짜증스러운 눈빛이었으나, 엘시 선배는 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부족한 몸이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든 말든, 엘시 선배는 등 뒤에서 자꾸만 손대중으로 길이를 재고 있을 뿐이었다.

우와, 우와, 같은 소리나 터트리면서.

**

“레오릭 님께서 데려온 제물이에요.”

어둑한 밤, 천막 안에서 등잔 하나에 의지해 얻어낸 진술이었다.

나와 다투었던 엘프 여인이었다. 바람을 조종하는 특이한 궁술로 나에게 저항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만 인물.

이름은 ‘베네타’라고 했던가.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낯선 이름을 듣는 순간 직감했다.

그 사람이구나.

내가 죽여야 할 사람이.

비로소 이야기가 겨눌 목젖을 찾아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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