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5. 빵과 비수(44)
* * *
‘마인’이란 공포의 대명사였다.
주위의 마수들을 통솔하며, 델피렘의 군대에서 선봉을 맡는 괴물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들은 각각이 무시무시한 강자였다.
애초에 힘을 위해 악신과 계약한 이들이었다.
마땅한 대가가 없다면 마인이 탄생할 리가 없었다. 일례로 내가 고아원에서 상대했던 길포드가 있지 않던가.
그는 인간일 적에도 강했지만, 마인일 때는 더 강했다.
지금의 나와 붙는다고 해도 동수를 이룰까 의문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길포드는 내게 그나마 수월한 상대에 속했다.
그 이전부터 며칠씩 길포드와 대련을 진행하며, 그의 기술이나 전투 방식들을 이미 익혀 둔 뒤였기 때문이었다. 마인이 되더라도 검술 고수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대하는 설표 마인은 그렇지 못했다.
난생 처음으로 마주한 적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내게 싸움을 걸어올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침묵 속에서 내 검극과 설표 마인의 핏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설표 마인의 숨소리는 벌써부터 거칠었다.
이제 곧 맛 볼 피가 너무나 기대 된다는 듯.
설표 마인의 근육이 수축한 것은 그때였다.
그 우락부락한 몸이 단숨에 공처럼 말렸다. 돌처럼 단단해 보이던 근육이 저토록 부드럽게 말리다니,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물론 내게는 감탄할 틈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쾅, 하고 폭음이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설원에 느닷없는 열풍이 불어 닥쳤다. 설표가 온몸을 부딪히고, 내가 검면으로 그 충격량을 받아냈을 뿐임에도 이랬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내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자, 설표는 곧장 사납게 앞발을 휘둘렀다. 교차하는 궤적 사이로 날카로운 실선이 그어졌다.
정석에 가까운 대응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 열어두었던 감각을 좁혔다.
시야가 공간을 도해하고, 빛나는 실낱들이 눈에 들어온 그 찰나.
휘청거리던 내 손이 거칠게 빛의 실을 쥐어뜯었다. 그러자 주륵, 하고 설표의 두 팔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 흘러내렸다.
설표가 당황해서 울부짖기 직전, 내 손이 손도끼를 벼락같이 뽑아냈다.
팍, 하고 핏물이 허공에 튀었다.
오러가 맺힌 손도끼는 마수의 가죽도 가뿐히 관통해냈다. 뼈까지 잘라내지는 못했으나, 타격을 주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크허어어엉!
설표 마인은 마치 이지를 상실한 듯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굴려, 특유의 탄력 있는 근육을 이용해 멀리 떨어지기까지.
‘설표’라는 동물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이는 발달한 유연성 덕이라고 배웠는데, 마인이 되며 그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설마 그 외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걸까.
이만하면 할 만하다, 라고 내가 생각했을 찰나였다.
“크흐, 크흐흐…….”
느닷없이 설표의 입이 우득거리더니, 이내 주둥이의 길이가 조금 줄어들었다.
그제야 마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축복을 받은 몸으로도 상대하기 힘들다니, 역시 인간들이란 강하군… 그러니 우리가 이토록 비참한 처지가 되었겠지만.”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
나는 손도끼를 다시 허리춤에 매달면서, 그렇게 말했다.
“오늘은 유르디나 군에 특별한 식객이 좀 많거든. 평소라면 몰라, 너희가 노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 이쯤하지?”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었다.
설표를 마주하는 내 낯빛에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길포드쯤 되는 마인이라면 몰라, 고작해야 신체능력이 조금 우수할 뿐인 마인에게 내가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필요 이상의 자신감을 경계해야겠지만 말이다.
“이미 피는 충분히 봤잖아. 그만 돌아가서, 너희 우두머리한테 전해… 한동안은 침엽수림을 나갈 엄두도 내지 말라고.”
“그럼 우리 엘프들은 끝없이 빼앗기고만 살란 말인가?”
거친 숨결에 섞어 나온 물음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설표 마인은 처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나운 외형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몰골이었다.
“이 춥고 메마른 침엽수림에 갇힌 이후, 우리는 인류를 먼저 습격한 적이 없네… 그런데 우리들의 식량을 빼앗고, 죽기 직전까지 내몬 것은 그대 인류가 아닌가?”
“헛소리.”
나는 헛웃음과 함께 설표 마인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침엽수림에 얌전히 있는 엘프들을 우리 인류가 먼저 건드려야 할 이유가 뭐지? 그러지 않아도 최전선에서 머무는 병사들의 사기 저하가 심한 마당에…….”
“우리가 물어야 할 소리!”
커헝, 하고 일순 고막이 먹먹할 만큼의 음파가 터져 나왔다.
설표 마인은 어느덧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를 만큼 흥분하고 있었다.
“왜 우리를 괴롭혔나?! 우리는 더는 저항할 생각조차 없었네! 침엽수림에서 얌전히 죽어가든, 어떻든 더는 고통 받고 싶지 않았단 말일세!”
헛소리, 라고.
나는 또 다시 일갈하려다가, 그 절절한 한이 맺힌 절규에 멈칫하고 말았다.
저것이 거짓을 말하는 자의 눈빛이란 말인가?
이곳에 황녀가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그래야만 저 엘프의 진심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껏 엘프들의 생존 전략은 단순했다.
살기 위해서 죽이고, 빼앗는다. 이는 북부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약탈당한 수많은 민가가 증언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강변해 봐야, 우선 의심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설표 마인은 으르렁거리며 증오 섞인 음색을 토해냈다.
“그리고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네… 이미 피는 충분히 봤다고?”
크흐흐, 하고 마인의 입에서 구슬픈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비척비척 걸음을 내딛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상에 불빛 한 점 없는 북부의 밤하늘은 너무나 찬란했다.
홀로 선 이가 초라해질 만큼.
그리고 다시금 나를 향하는 설표의 눈에는, 어느덧 실핏줄이 서 있었다.
“착각하지 말게. 우리는 살려고 온 것이 아니야.”
그때 나는 묘한 기척을 느꼈다.
마인의 등 뒤로 비틀비틀 몇 명인가 엘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세파에 찌든 얼굴로, 그 눈동자에서는 짙은 절망만이 엿보였다.
나는 그들이 만드는 음울한 분위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해방’되기 위해 온 거지.”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나의 직감이 경종을 울린 것은 그 직후였다. 내 손이 더듬거리며 손도끼를 쥐었다.
파공성을 일으키며, 기나긴 궤적을 그리는 손도끼.
하지만 설표 마인의 행동은 그보다 즉각적이었다.
마인의 앞발이 두 엘프의 멱살을 쥐었다. 그 목적은 명확했다.
투척하기 위해서였다.
차마 동족을 던질 줄은 몰랐던 내 눈이 부릅떠졌다. 기껏해야 함께 다중영창을 하든 하리라 예상했던 나였다.
더 무시무시한 사실은, 그마저도 아직 놀라기엔 이른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던져진 엘프 중 하나는 명백히 손도끼의 궤적을 관통하고 있었다.
서걱, 하고 단말마조차 없이 갈라진 엘프의 몸뚱아리가 내장을 흩뿌렸다.
철푸덕 땅바닥에 흘러내리는 그 말로가 허망했다. 일순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정도였다.
누군가의 생명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도 되는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출되었다.
내게 날아든 엘프를 검면으로 쳐내려던 순간, 나는 그와 잠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는 슬프고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사내의 입이 벌어졌을 때, 나는 그제야 설표 마인의 의도를 이해했다.
혀 위를 데구르르 구르는 흉측스러운 눈동자.
그것을 중심으로 주위의 공간이 왜곡되고 있었다.
나는 검을 휘두르는 대신, 본능에 따라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검으로 향해야 할 마력까지 전신에 두른 것은 덤이었다.
내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증명되었다.
콰광, 하고 천둥과도 같은 폭음이 연달아 귓전을 후려쳤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삐 하는 이명 소리로 화했다.
내 몸은 어느덧 허공을 날고 있었다.
체공거리가 꽤 길었다. 우지끈 나무가 박살나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내 몸에 둔탁한 충격이 내달렸다.
아프다, 라는 감각조차 애매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설원 위를 구르고 있었다.
마력을 전신에 둘렀음에도 일순 시야가 흐릿할 지경이었다.
쿨럭, 하고 나는 한 줌의 핏물을 토해내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내가 날아온 자리로 희미한 열기가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내 옷 곳곳에 탄 자국이 남아있었다.
불꽃이었다.
저 너머에서 상승기류를 만들고 있는 매캐한 냄새가 이를 증명했다.
엘프가 숲에 불을 지른다고? 심지어 동족을 제물 삼아?
우리가 알던 엘프가 아니었다.
나는 이 현실을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했다.
불 그림자를 등지고, 우락부락한 거체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어깨와 손에는 이미 엘프 여럿이 들려 있었다.
나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뒤로 밀려나도 한참이나 밀려나 있었다. 체공시간도 길었을뿐더러, 이곳은 설원이라 대지가 미끄러웠던 탓이었다.
땅에 떨어진 이후에도 기나긴 거리를 뒹군 듯했다.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금속의 충돌음이 그 사실에 실감을 부여했다. 나는 어느새 병과 병들이 마주치는 경계 근처까지 밀려난 것이다.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위력이었다.
생명 하나를 통째로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힘이었다.
한참을 마인을 응시하던 내 곁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유렌이었다.
그는 황급히 달려 내 곁에 서더니, 멍한 눈빛으로 불타는 침엽수림을 응시했다.
“……저게 뭐야?”
“괴물.”
내 빈약한 어휘력 중에서 고르고 고른 낱말이었다.
그 외에는 제 동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이를 정의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유렌에게 말했다.
“당장 도망쳐야 해. 우선 후열로 빠진 뒤에,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들의 지원을 업어 처리해야겠어.”
“그 정도라고?”
되묻는 유렌의 목소리에는 불신의 기색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 전에, 저 멀리에서 엘프 하나가 또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표의 유연한 근육은 투척을 할 때도 유용했다. 그 탄력을 이용하니 상상 이상으로 투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
나는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유렌, 피해!”
그러나 유렌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이미 부상을 입은 내가 걱정됐는지, 한 발자국 앞으로 튀어나가 오러를 얇게 펼쳤다.
검막이었다.
아직 나는 저만큼 정교하게 오러를 다룰 줄은 몰랐다. 방어를 위해서라면 훌륭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엘프 제물’의 위력은 그 역치를 아득히 초과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는 반복이었다.
단지 나는 유렌의 등 뒤에 숨어, 보다 짧은 거리를 비행했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덕에 추가적인 부상은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다.
내 옆에 나자빠진 유렌은 쿨럭, 하고 핏물을 토해내야 했지만.
첫 번째 일격을 허용한 나와 비슷한 몰골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화염을 일으켰던 첫 번째 폭발과 달리 두 번째 폭발은 전하를 일으켰다는 점 정도였다.
아직도 유렌의 사지에는 옅은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담백했다.
“좋아, 도망치자고.”
내 친구는 전투광 기질이 있었으나, 자살희망자는 아니었다.
그것이 못내 다행이었다.
저 멀리에서, 불길이 낼름거리며 지옥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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