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5. 빵과 비수(47)
* * *
돌진이 시작되었고, 하늘에는 어느덧 수십 개의 광탄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별의 비가 쏟아져 내린다.
으스러지고,부서지고,핏물을 터트리고.
그 몸뚱아리를 두들기는 마력의 구체들이 아프지 않을 리는 없었다.광폭화가 끝난 이상, 마인은 지금껏 참았던 배 이상의 고통이 몰려오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설표의 질주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설표가 충차처럼 나를 들이받을 때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전력을 다한 질주가 나와 교차하기 직전.
빙글,하고 내 몸이 회전했다.마치 마찰력 없는 얼음 위에 선 구체처럼.
설표의 돌진 궤도를 타고 내 몸이 저절로 배후를 점했다.
길포드에게 배웠고, 길포드를 죽였던 그 기술.
비전 절기, 회절.
그것이 끝이었다.
푹,하고 내 검이 설표의 목을 관통했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설표의 돌진이 멎은 것도 그때였다.어쩌면,그는 죽음을 예감하고 이쯤에서 멈추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헐떡이는 숨결이 새하얗게 흩어졌다.
피가 끓는 목소리로,설표 마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흐…커억,켁!후,훌륭하네…주제 넘는 멋진 최후를 선사해 주어서,그러니 빵을 주도록 하지.”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마인을 노려보았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등 뒤를 바라보며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내게 감사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도리어 증오해 마지않는 인류에게,최후의 일격을 먹일 수 있어 기쁘다는 표정.
그가 베에,하고 입을 열었다.
그곳에는 흉측한 눈동자가 위치하고 있었다.제 목숨을 희생해서 무시무시한 위력의 마법을 발동시키던,그‘축복’의 단말.
지지직,하고 반투명한 원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마인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 소원은,무엇 같은가?”
제기랄,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급히 검을 뺐다.어차피 마인은 이대로 두어도 죽은 목숨이었다.
나는 최대한 주위를 둘러싼 반구를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크흑,으읍……!”
그 억눌린 신음 소리만 듣지 않았다면.
내 눈이 다급히 그 진원지를 향했다.그곳에는 아직도 그림자에 묶인 채,땅바닥에서 몸부림을 치는 네리스 선배가 위치하고 있었다.
반구형의 원은 점차 그 색을 어둑하게 물들였다.
그 명도가 바닥을 치는 순간,이 마법은 완성되리라.
나는 황급히 내달려 네리스 선배에게 다가갔다.그러는 도중에 땅에 떨구었던 손도끼를 찾아,미친 듯이 그림자를 내리찍었다.
캉,캉,캉!
마치 금속을 치듯 불꽃이 일었다.그 모습을 보며 설표 마인은 광소를 터트렸다.
“읍,읍!”
네리스 선배도 전황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사실은,내리치고 내리치다 보니 그림자고 끊기긴 했다는 점이었다.오러로 파괴가 가능하다니 다행이었다.
우선 목을 끊고.
“흐읍,읍?으윽?!”
그 다음으로는 어깨와 허리,입을 지나 발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네리스 선배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압력이 상상 이상이었는지,네리스 선배의 팔과 다리는 이미 부러진 뒤였다.조금만 놔두었다간 갈비뼈까지 박살났을지도 몰랐다.
주요 장기만 마력으로 보호한 네리스 선배의 선택이 옳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마지막 남은 그림자까지 박살낸 직후.
반구형의 장은 이미 무척이나 어두워져 있었다.나는 네리스 선배를 업고 전력으로 질주했으나,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한 걸음,또 주위가 어둑해지고.
또 한 걸음을 내딛으면,막을 투과하는 희미한 빛줄기마저 스러지고 있었다.아무리 내달려도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네리스 선배를 던질 자세를 잡았다.그러자 도리어 당황한 쪽은 그녀였다.
“이,이안 님!무슨 짓을……!”
“그럼 둘 다 죽을까요?”
가뜩이나 마음이 급했던 참이었다.내 입에서는 절로 퉁명스러운 음색이 새어나왔다.
그러자 네리스 선배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상관없었다.어차피 네리스 선배의 의견 따위는 들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나는 전력으로 네리스 선배를 반구형의 장막 바깥으로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또 다시 온힘을 다해 내달렸으나,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네리스 선배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 직후.
내 몸은 쿵,하고 장막에 부딪히며 쓰러졌다.나는 이를 악물고,손도끼로 다시금 장막을 내리쳤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용없네.”
내 사나운 시선이 설표 마인을 향했다.
그는 쓰러진 채로,희미한 숨결에 목숨을 의존하고 있었다.
나는 울컥한 마음에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 막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자를 봉쇄하지.그 위력이 어떨지는,자네도 지금껏 보아 알잖나?”
“무슨 짓을,한 거야……!”
내 으르렁거리는 음색에도 마인은 훗,하고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그가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는군…이상사태를 직감하고,자네를 구하러 달려오는 이들의 모습이.그들 중 몇 명을 길동무로 데려갈 텐가?”
그 말을 듣고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이곳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느껴졌다.그중에는 익숙한 기척들도 있었다.
이 막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을 차단한다.
즉,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막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 입에서 발작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들어오지 마!”
그러자 움찔,하고 굳어버리는 장막 밖의 기척들.
이대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올 여인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그래서 나는 조잡한 변명을 내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그래…걱정하지 말고 대기해.”
“큭큭큭…….”
내 힘없는 핑계에 마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상상 이상으로 즐겁다는 반응이었다.
“보기 좋군.우리도 이랬지…서로에게 기대며,서로를 희생시켜 가며,제 살갗을 뜯어먹는 마음으로 살아왔거든.어떤가,스스로 희생을 자처한 기분은?”
“아주 좆같아.”
마인의 웃음소리가 더욱 짙어졌다.
장막이 점차 흔들리고 있었다.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였다.
나는 이미 될 대로 되라는 듯 주저앉아 있었다.혹여나 바깥에 있는 일행이 들어올까 봐,몇 번 더 소리를 치면서.
설표 마인은 마지막 유언처럼 중얼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우리도 축복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네.”
“……그럼 받지 않으면 되잖아?”
“그 이상으로 삶이 퍽퍽했던 게지.사실,난 죽고 싶지 않았네…단지 더 살기가 무서웠을 뿐이지.죽음보다 무서운 삶,내 동족에게 이 모진 운명을 남길 수는 없잖나.”
나는 코웃음을 치려다가,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죽기 직전이었다.
죽을 사람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우스운 꼴이었지만,나는 마인의 유언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러면 남은 동족들의 삶이 나아진답니까?”
“모르겠네.다만 우리는 더는 떨어질 곳이 없어.그러다 보니,악에 받쳐 무엇이든 해보려다 이곳까지 흘러왔지…….”
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인의 음색에서는 옅은 후회가 느껴지고 있었다.그러고 보면,베네타도 이랬던가.
몰리고 몰렸다.
그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사실 나는 잘 몰랐다.
“요즘 엘프들은 어떻습니까?듣기로는,사교가 퍼지고 있다던데.”
“사교,사교라?”
흠,하고 마인은 침음을 삼켰다.
“그럴지도 모르겠군.그러나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어…….”
“지금도 말입니까?”
“이제는 더더욱 없지.”
헐떡이는 숨소리가 마인이 임종을 앞두었다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었다.
장막의 옅은 떨림이 점점 더 잦아졌다.바깥이 소란스러웠으나,그보다 먼저 이 마법이 시전될 판이었다.
마인은 마지막으로 울부짖었다.
“오오,불쌍한 나의 어린 동포들이여!그들부터 흉측한 살점을 삼키게 되었으니,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마지막까지 제 동족만 걱정하다니.
그러면서 정작 내게는 제 동족을 마구 던져댔단 말인가.나는 코웃음을 치려 했으나,그보다 내 감각이 이변이 감지되는 것이 먼저였다.
누군가 장막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멈춰!들어오지 말라고!내가 몇 번이나……!”
그러나 장막 안을 파고든 인물은,너무나 예상 외라서.
나는 그대로 넋을 놓고 말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엘프 소녀.
아비앙이었다.
그녀는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어,어린 동포들?!그럼,그럼 내 동생은?!내 동생도 이 빌어먹을 살점을 삼켜야 했냐고!”
핏발 선 눈으로 보아,아비앙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심문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비앙은 제 동생을 사교로부터 지키고 싶다고 했었다.그래서 인간 사회에 숨어 매달 자금을 보내고 있다고 했던가.
물론 어린 엘프의 목소리는,죽음을 앞둔 마인의 고막을 자극하기엔 너무 여렸다.
그의 눈동자가 흐려지며,내게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
“내 신세한탄에 어울려 줘서 고맙군,인간 젊은이…보답으로 내 소원을 알려주겠네.”
장막의 진동이 거세진다.
지반이 우드득 박살나며,그 파편이 하늘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내 몸도 중력을 이기고 떠오르고 있었다.
아비앙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무척 당황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바깥에서 뒤늦게 장막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나,이미 마법은 시전이 끝난 뒤였다.
오감이 하나씩 차단당한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내 몸은 어느덧 온전한 어둠 속에 홀로 남아있었다.오로지 인상에 남은 것은,죽은 엘프의 유언뿐.
“나는,동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네.바로 지금도.”
이윽고 내 의식이 순백으로 물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