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화 〉 5. 빵과 비수(48)
* * *
몸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모순이었다.
부유하는 육체에는 감각이 없었다.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끊긴 지 오래였다. 후각과 미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부유감을 느끼고 있는가.
이를 깨닫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나는 내 육신이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느닷없는 인식이었다.
사고의 도화선이 당겨졌다. 불타는 의문의 실선이 내 정신을 차례로 일깨웠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묘한 감각에 빠져야 했다.
몸이 너무나 가벼웠다.
나는 설표 마인과 결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부상도 입었고,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에 활력이 돌 정도는 아니었다.
그제야 시야가 번쩍 밝아졌다.
아니, 이를 밝아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광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시야는 맑고 선명했다. 물리적인 법칙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풍경이었다.
곳곳에 새겨진 균열에서 송출되는 장면들과, 그 중앙에 위치한 의자. 그리고 등을 돌린 채 침묵하는 사내까지.
내가 몸을 벌떡 일으키자, 사내의 무심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무척이나 피로한 눈빛이었다.
이를 제외하면, 나를 똑 닮은 이목구비를 가진 인물이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 만큼.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나’였으니까.
단지 먼 미래에서 모종의 사명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을 뿐.
사내는 늘 그렇듯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꼴좋군.”
노골적인 조롱이었다.
정작 그 음색은 평탄하기만 해서, 나는 화조차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이곳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야. 고작해야 네가 무슨 짓을 해서 의식을 잃었다는 것밖에는.”
그 말과 함께 사내가 앉아있던 의자가 빙글, 하고 돌아갔다.
바퀴가 달린 것도 아닌데, 방향 전환이 무척 매끄러웠다. 나는 다시금 이곳이 현실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임을 실감했다.
혹시 나는 죽은 걸까.
마지막 순간, 설표 마인은 내게 말했다. 자신은 동포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노라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결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죽음만은 면했으면 싶지만, 이곳에서 눈을 뜬 걸 보니 최소한 의식을 잃은 것은 분명했다.
사내는 내 걱정스러운 기색을 읽은 듯했다.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그는, 나지막한 음성을 토해냈다.
“……죽지는 않았어.”
내 눈이 사내를 향했다. 그는 여전히 담담해 보였으나, 살짝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를 안심시켜야 하는 이 상황이 짜증난다는 듯이.
“그랬다면 내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네가 완전히 맛이 갔다면 나를 볼 수도 없고. 이곳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거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의 경계지. 과거와 미래,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다소 복잡해 보이는 이야기였다.
다만 나는 내 몸이 슬슬 옅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상처가 크지 않았던 탓일까.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엘프, 엘프들이 사교를 믿고 있었어! 유르디나 가문에는 배신자가 있었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긁어모아야 했다.
저 사내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터였다.
“북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암흑교단은 또 무얼 꾸미고 있……!”
“말 못해.”
그러나 내 요청은 단칼에 거부당하고 말았다.
사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말했잖아, 더는 도와줄 수 없다고… 그러지 않아도 한동안은 조심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찾아와 이젠 정보까지 달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정보를 직접 전달하지는 않아도, 비유를 들거나 하는 식으로 전하면 그 ‘힘’의 소모가 무척 줄어든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유르디나 군도, 엘프도… 그리고 내가 죽이기도 했고. 그런데 아직 단서조차도…….”
“애송아.”
툭, 하고 내던진 그 한 마디.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시선이 어느덧 진중해져 있었다.
“나는 네 보모가 아니야… 매번 널 도와주고 돌봐줄 수 없다고. 너는 이미 나와 다른 길을 택했어. 그러니 책임도 네가 짊어지는 수밖에.”
툭, 하고 사내의 남은 손이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책임’이라.
나는 그 낱말의 무게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왜 널 돕지 못하는 줄 아나? 네가 지난 사건 때 날 강제로 불러내고, 심지어는 내 기억을 마구잡이로 엿보기까지 했지. 그 결과가 이거야.”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담백했으나, 어느 하나 내 가슴을 찌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결국 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어야 했다.
“네가 죽인 엘프들도 마찬가지야, 애송아… 아프냐?”
아프냐고.
불쾌하고 슬프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고통이라 불러야 할지는 애매해서, 고개를 내저으려던 찰나.
사내가 내게 눈짓했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지점을 바라보자마자, 다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아프겠지.”
내 손은 어느덧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째서 그 사실을 지금껏 눈치 채지 못했나 의문일 만큼.
“그게 바로 책임이야. 네가 평생토록 짊어져야 할 죄의식… 동화율이 높아져서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아직 너는 애송이에 불과해. 책임도 어떻게 져야 할지 모르는.”
그러자 울컥, 하고 내 목젖을 치고 올라오는 불길이 있었다.
‘책임’이라고?
어떻게 내게 책임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제 신세에 만족하고 살아가던 중하위권 학생에 불과했다. 졸업하면 봉신이 되거나 중앙군에 입대해서 살아갔겠지.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에 멋대로 편지가 날아왔고.
내 인생은 그날부터 일변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피를 토한 적도 많았다.
미래의 도움을 빌리긴 했으나, 그 신랄한 아픔을 견뎌내야 했던 것은 나였다.
죽음의 공포와, 내가 패배한다면 세상이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숨조차 쉬어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고작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나는 온몸을 던졌고 무너져 내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째서 나는 ‘애송이’에 불과한 것인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내 입은 열기를 토해냈다.
“그럼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사내의 묵직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나는 그 금빛 눈동자를 마주하며, 묵은 감정을 토해냈다.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지금껏 열심히 아팠잖아… 그런데 이보다 더 아프고 힘들어야 한다고? 도대체 어떻게?”
“바닥을 봐야지.”
그러나 늘 그렇듯이, 사내의 대답은 명료했다.
허탈할 만큼.
“아프고 힘들어? 책임을 졌다고? 아니, 아니야… 넌 지금껏 덜 아픈 선택지를 골라왔을 뿐이야. 네 탓에 주변 사람이 다치고, 세상이 멸망할까 두려웠잖아?”
“그렇다고 내 아픔이 덜어지나?”
“아니, 더 밑바닥을 보고 오라는 거야.”
그 말을 신호로 사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이 공간에 도달한 이후, 그가 꼿꼿이 선 것은 최초였다.
그리고 살짝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내.
“너와 달리, 선택지조차 없었던 삶도 수두룩해. 너처럼 강하지도 않고 운이 좋지도 않아서! 그걸 보고 와라… 그러지 않으면, 델피렘에게서 승리할 수 없어.”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내가 반문하려던 그때.
텅, 하고 내 몸이 바닥을 뚫고 내려앉았다.
와장창 깨져나간 밑바닥이 파편으로 비산했다. 끝없이 추락하면서,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금빛 눈동자만을 보았을 따름이었다.
낙하, 그리고 낙하.
비명을 내지를 틈조차 없었다. 나는 어느덧 신체의 자유를 봉쇄당한 뒤였다.
내가 다시금 몸을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몇 초 후.
“……허억!”
하고,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버둥거렸다.
이제야 제대로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오감이 되돌아오고,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누추한 거처였다.
창고로 보였는데, 군데군데 땜질을 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만큼이나 오랜 시간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허술하게 지었거나.
그나마 중앙에 돌과 점토로 만든 원시적 화덕이 위치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북부의 추위에 동사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끄응, 하고 신음을 삼키며 난 주위를 좀 더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좋은 취급은 아니었다.
애초에 허름한 창고에 꽁꽁 묶어 방치했다는 점부터가 그랬다. 통상적이라면 따스한 집에서 푹 쉬게끔 했겠지.
그러나 지금의 내 상황은, 그래.
차라리 갇혀 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죽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그렇다고 막막해지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또 무슨 사건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내 옆에는 나와 마찬가지의 몰골인 아비앙이 쓰러져 있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로 보아,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한 듯했다.
그 낯빛이 약간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비앙은 나와 달리 유약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이 추위에 방치되었으니 몸살 기운이 오를 만도 했다.
나는 어서 아비앙을 깨우기로 했다.
내 몸이 슬그머니 아비앙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소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비앙, 아비앙! 일어나!”
그러나 한참을 불러도 아비앙은 끙끙거리기만 할 뿐, 일어나지를 못했다.
나는 잠시 구속을 풀어버릴까 고민했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나를 묶은 듯했으나, 나는 익스퍼트였다. 이따위 밧줄 따위는 얼마든지 풀어버릴 수 있었다.
기절한 사이 몸이 좀 회복된 것도 같았고.
다만 내가 망설였던 까닭은, 구속을 풀지 않는 편이 경계를 피하기에 용이했던 탓이었다.
여차하면 기습도 노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진지한 고민에 빠졌을 무렵.
“아으, 으… 베, 베티…….”
아비앙은 문득 애절한 음색을 토해냈다.
누군가의 이름인 듯했다.
아마 아비앙의 유일한 가족이라던 동생이 아닐까 싶었다.
종족은 달라도, 그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생이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자, 곧장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던 그 모습.
어릴 때의 누구를 꼭 빼닮아 있었다.
내가 쓴웃음을 머금자, 그제야 아비앙은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휘둥그레 뜨인 그 눈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그녀가, 덜덜 떨면서 내게 물어왔다.
“무, 무, 무슨 일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나도 몰라.”
담담한 고백이었다.
그러자 아비앙은 쩍 굳어버린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묘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처음에는 당황한 눈빛으로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던 아비앙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눈에 의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미간을 좁힌 채 유심히 중앙에 위치한 화덕을 살피기까지.
나는 의이한 목소리로 묻는 수밖에 없었다.
“뭐해?”
“이, 이곳…….”
그러자 아비앙은 더듬거리면서, 내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엘프들의 마을인데요?”
엘프의 마을이라.
침엽수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던 그곳 말인가.
나는 점점 화색이 감돌기 시작하는 아비앙의 안색을 보며, 헛웃음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적진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떨어진 이는, 폭력과 협박으로 강제로 굴복시켰던 엘프 하나.
“이런 씨발.”
언제나 그랬듯이, 가시밭길이 내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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