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372화 (372/649)

〈 372화 〉 5. 빵과 비수(70)

* * *

침엽수림은 드넓은 새장이다.

처음 오는 행인은 무조건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야 어딜 가도 비슷한 풍경만 보인다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방향감각마저 무뎌질 지경이었다.

눈, 나무, 그리고 짐승의 발자국.

시야에 들어오는 표지란 그뿐이었다. 태반이 의미가 없는 자료로, 사실 위의 셋은 침엽수림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그래서 침염수림에서 움직일 때는 반드시 길잡이를 동행해야 했다.

미세한 차이와 천부적인 지리 감각, 몇 년에 걸친 단련이 필요한 업무였다.

길잡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마침 길잡이에 최적화된 인물을 알고 있던 참이었다.

바로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수백 년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관찰력도 뛰어나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추구하는 만큼, 채집을 중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등 뒤를 따르고 있는 이는 엘프 중에서도 특출난 길잡이였다.

회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 아비앙.

어린 나이부터 인류 사회에서 첩자로 살아오던 여인이었다. 그야 전문적인 훈련을 받진 못했겠으나, 기본적인 소질은 뛰어났다.

예를 들어 길눈이라든가.

벌써 걸음을 옮긴 지가 한나절이었다. 내 눈에는 모든 풍경이 비슷해 보이는데, 아비앙은 그 와중에도 꿋꿋이 앞장을 서고 있었다.

진짜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걸까.

혹시 몰랐다. 아비앙이 변심해서 나를 팔아치우려는지도.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와서 아비앙을 의심해 봐야 소용없었다.

단지 나는 아비앙에게 질문을 던질 따름이었다.

“아비앙, 이제 얼마나 남았어?”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몇 시간 전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은 것 같은데.

나는 미심쩍은 눈빛을 하면서도, 그 이상 아비앙을 닦달하지는 않았다. 소녀의 낯빛에 옅은 피로가 맺혀 있던 탓이었다.

사실 그녀가 품은 감정은 보다 복잡해 보였다.

동족을 위해 첩자에 자원했고, 평생을 엘프로서의 자부심에 젖어 지냈다. 그런데 난데없이 동족을 배신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배신’은 아니었다.

도리어 엘프를 배신한 쪽은 레오릭과 사교였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인류와 엘프 사이를 이간질함으로써, 엘프는 더욱 고난을 겪게 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속내가 복잡할 수밖에 없을 테지.

하물며 아비앙의 동생은 본부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레오릭의 본성을 몰랐다면 몰라, 이미 그 광증을 여실히 지켜본 뒤였다.

심란한 마음은 어쩔 수 없으리라.

나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아비앙에게 물었다.

“……힘드냐?”

아비앙은 한동안 대답은 돌려주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내딛으며, 어딘가로 향했을 뿐.

소녀는 몇 분이 지나고 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나만 멋쩍어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저와 제 동생은 독특한 취급을 받았어요. 예전에 말한 적 있죠? ‘흡혈귀’의 자식이라 불렸다고…….”

회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흡혈귀의 피를 이은 자들은 그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나는 문득 마찬가지의 색조를 지닌 소녀를 떠올렸다.

세리아,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윽고 델핀 선배도 떠올랐다. 하룻밤을 함께한 사내가 사라졌는데, 그녀 또한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지.

나는 침묵으로 울적해지는 마음을 감추었다.

“다들 우리를 존중하면서도 무서워했어요. ‘흡혈귀’란 그런 존재였죠. 무언가 다가가기 힘든, 짙은 피 냄새를 풍겨요.”

“그런데 자식을 낳은 건가?”

“정확히는, 피를 빨린 거죠. 그럼 그 엘프는 흡혈귀의 권속이 돼요.”

아무리 들어도 대수림의 흡혈귀와 동일한 특징이었다.

하지만 대수림의 흡혈귀는 대마녀의 결계에 갇혀 있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고, 하물며 대륙의 정반대편인 침엽수림에 올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적어도 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면 그럴 테지.

나는 아비앙이 던지는 말을 조용히 가슴 속에 주워 담았다.

“사실,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난 엘프지만 엘프가 아니구나.’ 웃기지 않아요? 동족이 유일한 가족인데, 그들조차 우리를 멀리하다니.”

“엘프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부모를 잃은 고아 둘이 의존할 상대가 얼마나 있을까?

끈끈한 동족애를 가진 엘프들이 유일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북부가 너무 추웠으니까.

비참한 기분이었으리라.

누구보다 동족애를 갈구하는데, 동족에게 경원시 당하는 이의 마음은.

“그래서 첩자에 자원했을지도 몰라요. 엘프 사이에서야 ‘흡혈귀’라 불리는 몸이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그저 엘프로 있을 수 있잖아요?”

“필사적이었구나.”

“네,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꽤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내 시선이 슬쩍 아비앙을 향했다. 담담한 목소리에 걸맞은, 상쾌한 얼굴이었다.

“인간이니, 엘프니… 사실 딱히 구분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누구든지 제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가족이 아닐까요.”

“그럼 나도 네 가족이겠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아비앙은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홍조를 띄우며 살짝 고개를 돌렸을 뿐.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아비앙이 자그맣게 답했다.

“……그, 그런 셈이죠?”

‘가족’이라, 나는 아비앙이 그토록 무거운 낱말을 꺼낼 줄은 몰랐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아비앙에게 있어 ‘가족’이란 ‘동족’과 동치어였다. 애초에 동생을 제외하면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아비앙의 가족이 되어주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어도, 외로운 엘프 소녀를 위로해 줄 여력 정도는 남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너무한 관계였다.

처음에는 죽일 듯이 심문했던 소녀가, 이제는 나를 가족이라 여기다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하자… 가족. 그런데 인간과 엘프도 가족이 될 수 있나?”

“말했잖아요, 인간과 엘프는 딱히 중요하지 않…….”

파삭, 하고 어디선가 얼어붙은 눈밭을 짓밟는 소리가 났다.

내 시선이 단번에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 진원지가 멀리 있었떤 탓에 아비앙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아비앙은 내 의도를 눈치챘다.

그녀가 다시금 앞장서더니, 코끝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그리고 이어지는 눈짓.

숨어 있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날 듯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따끔거리는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겼다.

아비앙과 정체불명의 엘프가 마주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엘프 사내 하나가 터벅이며 아비앙에게로 다가섰다.

“누구지? 이곳은 본부 인근이다. 엘프도 신분이 보장된 이들만 출입이 가능한데.”

“아비앙이에요.”

흐음, 하고 엘프 사내가 턱을 쓰다듬었다. 눈을 감은 꼴이, 아무래도 기억을 뒤적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내 떠올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아아, 그 첩자! 요즘 들어 본부에 송금하는 자금이 줄어들었다던데, 혹시 그것 때문에 본부로 되돌아온 건가?”

“네, 그런 셈이죠… 또 겸사겸사 레오릭 님께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요.”

그렇다면야, 뭐.

엘프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그대로 엘프의 ‘본부’까지 안내할 요량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푹, 하고 마력으로 이루어진 송곳이 엘프 사내의 목을 관통했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까지도 그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더듬거리면서, 제 목을 내려다보는 눈길이 마지막이었다.

즉사였다.

헐떡이면서, 아비앙이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쳤다. 방금 막 제 동료를 죽인 소녀의 안색이 창백했다.

나는 깜짝 놀라 곧장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아비앙! 괜찮아? 네가 죽일 것까진…….”

“제 신분이 노출됐어요.”

아비앙이 든 사유였다.

아니, 어쩌면 변명이나 핑계일지도 몰랐다.

그 내용만큼은 사실이었지만.

레오릭은 정체불명의 수단으로 해당 장소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비앙이 나와 함께하는 장면 또한 노출되었으리라.

즉, 아비앙은 본신으로 본부에 침투할 수 없었다.

“그러니 신분을 빌리는 수밖에… 괜찮아요,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

애절할 만큼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탄식했다.

“……무리할 필요는 없었어.”

“당신도 절 위해 동족을 죽였잖아요.”

다시 한 번 침묵, 내 눈이 덜덜 떨리는 아비앙의 손을 향했다.

“그때도, 그때도 이랬나요? 이렇게 끔찍한 기분으로…….”

“그래서 알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턱, 하고 아비앙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나는 말을 맺었다.

“……준비하자. 이제 곧 본부니까.”

이를 신호로 어디선가 까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까마귀가 날아들어 얌전히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승부의 시간이었다.

**

앞서나가던 델핀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침엽수림을 한참이나 걷고 있던 와중이었다. 델핀을 필두로, 일행을 이끌고 있던 엘시와 엠마의 걸음도 함께 멎었다.

좌중의 의아한 시선이 델핀을 향했다.

그러나 그 직후.

팍, 하고 세상에 금빛의 직선이 새겨졌다.

벼락같은 발검이었다. 그리고 그 궤적에 노출된 것은,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

이글거리는 열기가 화살을 대기와 함께 불태웠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이 초라한 포물선을 그리며 땅 위로 떨어졌다.

델핀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그 핏빛 시선 너머로, 소년으로 보이는 엘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긴장한 낯빛의 엘프 여인이 하나 더 나타났다.

델핀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이제 만날 수 있다.

델핀의 처녀를 가져간 사내를.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