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5. 빵과 비수(76)
* * *
충돌 직전, 나는 기묘한 기척을 느꼈다.
일단 엘프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멀리에서 나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전 레오릭이 손수 제 힘을 선보였으니 당연한 판단이었다.
광선은 직선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절묘한 제어로 피아를 구분하는 범위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이었다. 내게 함부로 접근했다간 함께 광선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다.
그랬다간 한 줌의 재로 돌아가 버리겠지.
나와 함께 말이다.
멀리에서 활시위에 화살을 메기는 엘프가 보이긴 했으나, 아직은 경계할 단계가 아니었다. 따라서 내 모든 신경은 레오릭에게 집중되어 있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묘한 거슬림이 느껴졌다.
마치 신경을 흰개미가 사각거리며 갉작거리는 느낌이었다. 난 그 묘한 감각에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아야 했다.
내 앞에 선 것은 오직 레오릭뿐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내 시선이 자석에 이끌리듯 특정 지점을 향했다. 레오릭이 딛고 선, 끓어오르는 살점이었다. 그곳에서 유독 부글거리고 있는 지점이 몇 곳 있었다.
그 위치는 총 세 곳.
내가 걸음을 두어 번 내딛었을까, 그제야 그 용광로처럼 끓던 살점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고막을 찢어버릴 듯 울려 퍼졌다.
끼에에에에엑!
뱀이었다.
낯익은 역삼각형의 머리로 볼 때, 쌍두사가 분명했다. 난 이 시점에서 나와 멀리 떨어진 세 곳에서 뱀이 나타난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내달리느냐, 멈춰 서느냐.
갈팡질팡하던 것도 잠시.
나는 곧 뱀들이 아가리를 찍 벌리자, 그대로 흠칫 몸을 굳히고 말았다.
뱀의 아가리 속에는 혀 대신 엘프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독 낯이 익었다.
베티였다.
아비앙의 여동생이자, 레오릭의 품에 안겨 있던 엘프 소녀.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내던지려 들었다.
엘프들의 머리가 백열하며 공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빛의 폭풍이 허공에 죽죽 그어진다.
급히 회피를 시도했으나 너무 늦은 뒤였다.
마지막에 검면에 오러를 집중시키려 들었으나, 결국 나는 옆구리를 스쳐 핏물을 줄줄 흘리며 엎어졌다. 자글자글 살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겠네.”
옅은 신음과 함께 나는 쿨럭이며 피를 토했다.
오러가 광선에 밀렸다. 자칫하다간 검이 증발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마냥 손해는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광선의 궤도는 틀어져 있었다. 조금이지만 확실했다.
오러는 광선을 굴절시킨다.
단지 내 오러가 너무 약했을 따름이었다.
척수를 통증이 슬금슬금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어 억지로 신음을 억눌렀다.
마력이 열기를 가로막았으나, 그 충격에 내장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살이 익어버려서 지혈할 필요는 없으니 다행이었다.
내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자, 뱀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레오릭은 호방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보이십니까, 우리의 연대가? 우리의 힘이?!”
“개소리 하지 마… 도대체 베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내 낮은 으르렁거림에 레오릭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만일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꼼짝없이 인자한 종교인이라고만 생각했을 법한 미소였다.
지금의 내게는 괴물의 가증스러운 미소로만 보였지만.
레오릭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잠시 힘을 빌린 것뿐입니다. 비단 베타 자매님뿐만 아니라, ‘축복’을 가진 모든 형제자매들께서 제게 힘을 빌려주실 수 있지요.”
“베티는 동의했는지 궁금한걸.”
“동의하지 않았다면 어찌 강요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일원이 된다는 것.”
지휘자라도 된 것 마냥 레오릭이 작게 손짓했다.
그러자 뱀들이 또 다시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 두개골이 등불이라도 된 것처럼 새하얗게 빛났다.
은은히 대기를 진동시키는 떨림이 전해진다.
나는 눈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엄밀한 계산에 기반한 예측 따위는 불가능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었고, 전투 중에 그만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이는 마법사 중에서도 소수에 속했다.
검사가 의존하는 것은 오직 직감뿐이다.
찰나를 찰나로 쪼개는 승부 속에서 검사들은 매순간 적확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검이 날아들 궤적과 그 이후에 취해야 할 행동까지.
이는 생각의 속도를 한참이나 추월한 공방이었다. 그 고속의 공방에 익숙해진 뇌는 반복적으로 입력된 경험에 입각해 판단을 내린다.
바로 지금처럼.
가상의 궤적이 눈앞에 그어지는 듯한 느낌.
몇 번의 사선을 넘은 끝에, 내 감각은 더욱 예민해져 있었다. 비록 시작은 미래에서 온 ‘나’의 수많은 경험 덕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야 보인다.
그 사내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얄따란 실을 타고 넘었는지.
내가 걸음을 내딛는 순간, 빛과 열의 선이 대기를 후끈 달구었다.
검을 쥔 내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오러가 들불처럼 타고 있었다.
한 걸음, 날카로운 공명음이 두개골을 파고든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죽, 하고 그어지는 빛의 궤적.
나는 내딛은 힘을 그대로 상체로 실어 몸을 굴렸다. 등판에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곧장 일으켜진 내 몸이 튕겨 오르듯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래, 두 걸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또 하나의 빛이 명멸한다.
번쩍, 하고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각도는 조금 더 아래로, 땅을 굴러봐야 피할 수 없는 궤적이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도약으로 대응하면 될 뿐이다.
내 몸이 허공을 날아 빙글 회전했다. 착지한 뒤편을 새하얀 광선이 달구며 내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나는 그 그림자를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마지막, 세 걸음.
날 듯이 내달린 결과 레오릭은 어느덧 목전에 있었다.
물론 레오릭은 내 질주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순순히 접근을 허용할 턱이 없었다.
세 번째 뱀이 아가리를 벌리는 동시에, 레오릭의 눈과 입으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명을 시작하는 두개골들.
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쏘이지는 않을 터였다.
지금껏 폭음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법이 없었다. 늘 쿵, 쿵, 쿵 지반을 울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난 뒤에야 광선이 쏘아졌다.
그러나 그 틈새가 한없이 짧다면?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여태껏 그러쥐고 있던 검에 힘을 주었다. 들불처럼 타던 오러가 점차 잦아들더니, 정제된 빛이 검신에 어리기 시작했다.
승부수는 있었다.
레오릭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려 퍼진 것은 그때였다.
“임마누엘!”
속임수였다.
먼저 광선을 토해낸 쪽은 마지막으로 남은 뱀이었다. 질주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내 발걸음이 주춤하며 멈춰 섰다.
시간이 둔중히 흐르기 시작한다.
마치 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 레오릭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진득한 미소가 내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나 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무언의 답을 주었다.
‘알아, 새끼야.’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느릿하게 흐르던 시간이 급류를 만난 듯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쾅, 하고 내 검면이 광선과 부닥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상적이라면 검이 증발해 버리거나, 적어도 하늘로 튕겨 나가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드러난 결과는 정반대였다.
광선이 오러를 파고들지 못한다.
단단히 응집된 마력은 광선을 점차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릭의 입에서 광선이 토해지기 직전, 나는 이를 악물고 검면의 각도를 틀었다.
그러자 레오릭을 향해 쏘아지는 광선.
두 개의 광선이 맞붙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오!
이미 쏘아진 광선은 무를 방도는 없는 모양이었다.
레오릭과 뱀이 처연한 비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뱀이 아가리를 틀면 그만이겠으나, 애초에 그럴 수 있었다면 내 회피에 대응할 수 있었을 터였다.
레오릭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결(?)’이었다.
최후까지도 망설이기는 했으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과연 마스터 중 일좌를 담당하고 있는 대마녀의 비전다웠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검면의 각도에 주의하면서, 또 한 걸음.
쾅, 하는 폭음이 울려 퍼지며 두 광선의 격돌은 무승부로 끝났다.
“……커헉!”
레오릭은 그 여파로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 검이 은빛의 실선을 긋고 있는 궤적 안으로.
사내의 두 팔이 교차되며 내 검을 가로막았다. 일전에 보기로, 레오릭의 몸은 강철과도 같은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결’에 이어지는 또 다른 비전이 있었으니까.
펑, 하고 두 팔이 피와 살점을 주위로 흩뿌리며 터져 나갔다.
아무리 보아도 검과 마주친 흔적이 아니었다. 마치 포탄이라도 얻어맞은 듯한 느낌.
그것이 ‘해(?)’였다.
물체의 결속을 흐트러트리고, 더 나아가 ‘결’로 단단해진 흐름을 우겨넣는다.
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서 선보여지고 있었다.
망연한 눈빛과 은빛의 실선이 교차한다.
절단된 시간 속에서 핏물이 울컥, 하고 허공에 흩뿌려졌다.
나의 승리였다.
풀썩, 하고 레오릭의 몸이 허물어지며 끓어오르는 살점에 잠겼다.
그리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들.
“꺄, 꺄아아아아아악!”
“레오릭 님! 가, 감히 인간 따위가!”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한가득이었다. 그럼에도 감히 내게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
레오릭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일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으로 이들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랬던 이가 단칼에 처단당한 것이다.
당장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도주를 감행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옆구리를 쥐었다. 아직도 상처가 깊었다.
제대로 된 사제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우선은 아비앙을 구출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나는 또 다시 기시감을 느꼈다.
내 눈이 황급히 등 뒤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이상한 점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뱀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뱀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딛고 선 끓어오르던 살점조차 여전히 부글거리며 제 영역을 확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내가 결론을 내릴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적에게 너무 많이 당해봤던 탓이었다.
“……이런 시발.”
나는 미친 듯이 내달려 끓어오르는 살점 위를 벗어났다. 혹시라도 늦을까 싶어 마지막 순간에는 몸을 던지다시피 했을 정도였다.
그러자 내 등 뒤로 푸학, 하고 무언가가 솟구치는 소리가 났다.
“아아, 임마누엘! 주를 찬미하라! 아니, 증오하라! 주여… 어찌 제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으시나이까!”
또 한 마리의 뱀이었다.
아니, 네 마리의 뱀의 얼굴이 꿈틀거리며 실시간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베티가 모르는 엘프로, 모르는 엘프는 또 다시 레오릭으로.
설마 이 뱀들은 모조리 해치워야 한단 말인가.
레오릭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뱀도 실시간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이, 저, 주, 받, 은, 삶… 끝, 내, 다, 오! 끝, 내, 다, 오!”
레오릭은 더는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끓어오르는 살점에서 몇 개의 촉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를 경계하기 위해 주변에 서있던 엘프들을 하나씩 끌고 가기 시작했다.
끓어넘치는 살점은 그 엘프들을 삼키며 점차 덩치를 키워갔다.
엘프가 사라질 때마다, 하나씩 늘어가는 뱀들.
나는 더듬더듬 기어가, 아비앙을 품에 안았다.
필사적으로 번민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이기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무엇보다 내 몸은 부상을 입은 뒤였고, 심지어 나는 혼자가 아니었던가.
지금껏 나는 홀로 싸워온 적이 많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랬다.
결착을 짓는 역할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러나 사실 동료들의 존재가 누구보다 절실했던 것은 나였다.
그들은 늘 내게 길을 열어주었다.
등을 받쳐주었으며, 내 소중한 이들을 지켜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최전방에 설 수 있으랴.
나 또한 겁 많고 나약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다.
영웅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만 하더라도 아비앙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치를 떨면서 아비앙을 끌어안았다.
괜한 오지랖이었나?
내 이웃을, 자그마한 소녀를, 더불어 내 소중한 동료를 지키겠다는 상상은 본질적으로 헛짓거리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허나 후회하기는 늦었다.
아니, 후회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겠다고, 내가 결정한 삶이었다.
누가 정해준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한 쪽은 나였다.
그러니 나는 다시금 전의를 가다듬기로 했다.
아비앙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시금 몸을 일으킨 그때.
“빛의 심판!”
쾅!
키에에에에에엑!
뇌우가, 쏟아져 내린다.
전격이 하나씩 틀어박힐 때마다 잔상처럼 푸른 전하가 땅 위로 흘렀다. 뱀의 머리가 하나 터져 나가며 피분수를 뿜어냈다.
한창 엘프를 납치하며 증식하고 있던 살덩어리의 행동이 멈추었다.
그리고 뱀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뒤쪽을 향해서.
나는 그제야 그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주인님!”
엘시 선배였다.
나는 무심코 옅은 미소를 떠올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엘시 선배는 또 눈물을 머금고 있었으므로.
하여간 은근히 눈물이 많은 여자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