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5화 〉 5. 빵과 비수(83)
* * *
눈보라와 함께 광탄이 쏟아진다.
새하얀 빛무리가 직격할 때마다 살이 익는 소리가 났다. 부글거리며 증식하던 살점이 터져 나가며 악취를 풍겼다.
흉측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할 풍경이었다.
마치 벌레의 알집을 터트릴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비위만 강하다면야 얼마든지 보고 싶은 광경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은 비단 신성력의 광탄뿐만이 아니었다.
화살이나 벼락,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동원되고 있었다. 실로 ‘총력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대대적인 공습이었다.
사실 연출이 불가능한 장면이기도 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광증에 미쳐버린 레오릭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야 한 줌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다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끓어오르는 살점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어마무시했다.
아무리 뱀 대가리를 상대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곤 하나, 나는 익스퍼트에 이른 무인이었다. 그만한 인물이 몇 시간이나 전력으로 질주하고 나서야 중심지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곳은 침엽수림의 한복판일 터였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볼록 솟아오른 살점이 무너진 나무의 잔해를 암시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저격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거리였다.
허나 지금 레오릭은 온갖 화력의 포화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적진의 외곽도 아니고, 그 중심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채로 기억을 되짚었다.
그래, 그날 밤이었다.
델핀 선배와 두 번째로 동침을 하던 날.
모든 열락의 시간이 끝난 뒤, 금발의 여인은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어야 했다. 지친 듯 헐떡이는 숨소리마저 뇌쇄적이었다.
여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힘들여 구한 보람이 있네, 우리 서방님?”
나는 말없이 델핀 선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혹적인 각선미를 그리는 다리가 내 몸 위를 스치고 있었다. 더불어 내 팔에 온기를 직접 전달하는 젖가슴까지.
오늘 밤도 충동적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보람이 있어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기둥서방인 줄 알겠습니다.”
“나는 기둥서방 따위 두지 않아.”
새하얀 검지가 내 가슴을 장난스레 훑으며, 어느덧 내 목젖까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던 델핀 선배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순수한 미소였다.
어떠한 계산이나 저의도 섞이지 않은, 행복의 증거.
객관적으로 볼 때, 나와 델핀 선배가 놓인 현실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었다. 나와 델핀 선배가 이 찰나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특히 델핀 선배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지 않았던가.
그중 일부는 내가 가한 것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왜 그 당시의 나는 그토록 폭력적이었을까.
사실 내 죄는 아니었다.
잘못을 저지른 쪽은 어디까지나 델핀 선배였다. 내게 죄가 있다면, 그에 대해 과도한 폭력으로 대응했다는 점뿐이었다.
이처럼 백옥 같은 살결에 무수한 도끼 자국을 남기는 실수 말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쓰레기가 맞았다.
나는 델핀 선배가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얼른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구했습니까?"
선연한 핏빛 눈동자가 나를 멀뚱히 응시했다. 나는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볼 한 번 꼬집어 볼까.
물론 델핀 선배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 일부러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저 말입니다. 중상까지 입었는데 어떻게……"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델핀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전이 마법이라고 알아?"
그 이후에는 델핀 선배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요컨대 장소와 장소를 잇는 마법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얼핏 듣기에도 훌륭한 마법이었으나, 단점이 없지는 않았다.
우선은 정확한 좌표 설정이 필수적이었다. 미세한 오차라도 발생하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으며, 그마저도 이동하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정확도는 떨어졌다.
다시 말해, 소수의 인원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그 비용은 값비싸기 그지없었다. 델핀 선배조차 ‘부담’이라는 어휘를 꺼낼 정도라면, 그 가치를 알 만했다.
나는 그때 떠올렸다.
좌표 혼동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면?
예를 들어, 가치가 높지 않은 무생물을 전이시킬 때가 이에 속했다. 목숨을 잃을 염려도 없고, 어딘지 모를 곳에 처박혀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면.
레토와 원거리 통신 마법까지 동원해서 짜둔 계획이었다.
그 대가로 레토의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으나, 나는 나름의 확신을 얻고 이 자리에 임할 수 있었다.
특히 레오릭을 상대할 때 이 수단은 무척이나 유용했다.
쾅, 하고 살점의 저변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신성력과 마주친 육편이 새하얗게 물들며 흩어졌다. 전이 마법의 좌표 혼란에 의해 광탄이 살점 내부로 이동한 결과였다.
다시 말하지만, 끓어오르는 살점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무척 넓었다.
그 덕에 좌표 혼란이 발생하더라도 혼란이 적었다. 도리어 부작용이 이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크아아아아아악!”
레오릭은 이제 눈을 까뒤집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사내의 눈을 뒤덮은 새하얀 광채가 점차 명도를 높여갔다. 이내 그 빛은 당장이라도 레오릭의 두개골을 꿰뚫을 듯 강렬해졌다.
폭격이 한참이나 이어졌으나, 레오릭의 본체는 아직 멀쩡했다.
고통을 호소해도 그뿐이었다.
“삶, 삶, 삶! 고통, 아픔… 지독하구나, 임마누엘! 주께서 내게 시련을 내리셨으니, 살아가라 명하셨도다!”
나는 슬그머니 손도끼의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비록 살점 덩어리의 중심부를 폭격하고 있으나, 그것이 곧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끓어오르는 살점의 중심부는 언제나 변동될 가능성이 있었다.
무제한적인 재생 능력은 위협적이었다. 시체 거인의 예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레오릭은 그에 더해 무서운 특징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잡아먹은 시체를 의체로 쓸 수 있다.
본체를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최근의 보고를 종합하면, 섭취한 시체의 능력도 습득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주로 걱정하는 문제는 후자였다.
저벅, 저벅, 저벅.
레오릭의 본체가 허물어지며 몇몇 살점 덩어리가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빚은 찰흙처럼 어설픈 모양새더니, 걸음을 반복할수록 그 윤곽선이 선명해졌다.
죽음이 온다.
단말마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졌다. 토막 난 비명이 울려 퍼질 때마다 낯이 일그러지며 새로운 얼굴이 드러났다.
레오릭이었다.
“오, 오… 구, 슬, 픈, 숙, 명, 이, 여!”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조차 남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엘프들에게 배웠던 호흡법을 따라 했다. 숨소리가 급격히 줄어들며 인기척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엘프 칼잡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공포스러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칼잡이 중 하나가, 빗발치는 광탄 사이에서 혀를 빼물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흉측스러운 살덩이.
‘축복’이었다. 시체가 아닌 이상 살점 괴물은 스스로 흡수한 ‘의체’의 능력을 전부 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축복’의 능력은 무궁무진했다.
제 영혼을 대가로 악신에게 받은 힘이다. 당연히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이를 과시하듯 하늘에 칠흑의 반구가 생겨나고 있었다.
쿠궁, 쿠궁!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반구형의 결계가 흔들렸다. 그럼에도 당장 무너질 전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검과 도끼를 뽑아들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내 입가에 사나운 호선이 그려졌다.
“덤벼, 이 새끼들아.”
그리고 검과 검이 맞물렸다.
마치 검신이 피를 흘리는 것만 같았다.
불똥이 튀기는 시야 사이에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수가 다가오고 있기를.
그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우웅, 하고 세상이 퇴색하기 시작했다.
무채색의 밤이 시작됐다.
진정한 최후 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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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디나는 언제나 패배하지 않는다.”
검극이 설원을 질질 끈다. 누군가 보았다면, 검사의 기본조차 되지 않았다면 일갈했을 만한 광경이었다.
칼날이든 칼끝이든 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를 땅에 질질 끌수록 무뎌지는 것은 상식이었다. 미세한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검사의 승부에서, 이토록 안이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애송이가 아니었다.
“북부의 법칙이지… 나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머나먼 우리의 선조께서 만드셨고, 또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방식이다.”
유르디나 후작.
마스터를 목전에 둔 괴물.
북부를 덮친 엘프의 다발성 습격을 완전히 제압하고, 그들을 침엽수림으로 몰아넣었다. 제국의 5대 귀족 가문 중 무력만큼은 루페미온 공작과 함께 최상위로 뽑히는 명장.
델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긴다.
“그러니 너도 증명해라.”
승리한다.
“네가 유르디나의 주인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설원을 중앙에 두고, 유르디나와 유르디나가 마주한다.
일생일대의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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