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5.5 막간: 금과 은(1)
* * *
세리아의 머릿속이 헝클어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꼬인 실타래처럼 엉망진창이 된 뇌리는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단지 세리아는 속으로 끝없이 되물었을 따름이었다.
어째서?
왜 이안과 델핀이 심야에 함께 있단 말인가.
견고히 닫힌 문은 오직 실낱같은 틈새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내부의 상황을 짐작조차 할 수 없겠지만, 세리아는 이미 완숙한 경지에 이른 검사였다.
자그마한 낌새, 흐릿한 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세리아는 방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듯 감각하고 있었다.
포개어진 두 남녀의 몸뚱어리가 느껴진다.
푸르른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 떨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거세어졌다.
“첫날밤이 거짓말 같네… 그때는 수도승이라도 되는 양 굴더니.”
“그 수도승을 기어코 덮친 쪽이 문제 아니고요?”
옅은 웃음소리, 달콤한 기색이었다.
비록 시야는 차단당했으나 세리아의 망막에 가상의 광경이 새겨진다. 침대 위에 포개어진 두 남녀가 진득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을 테지.
옷매무새는 반쯤 흐트러져 있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세리아는 덜덜 떨면서 무심코 제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다댔다.
어째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었는데.
세리아에게 남은 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친아비인 유르디나 후작이 구금된 이후, 소녀에게 남은 혈육은 언니가 유일했다.
혹은 혈육보다도 더욱 끈끈한 인연으로 묶인 선배라든가.
그 두 사람이 밀회를 나누고 있었다.
심장의 고동마저 마모되는 듯했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새하얘진 정신으로, 불신의 말을 읊을 뿐.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허나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세리아의 고막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복도를 감싼 칠흑의 정적 속에서 그녀의 감각은 지극히 예민해져 갔다. 점점 더 실내의 상황이 명확히 느껴질 만큼.
손에 잡힐 듯 두 남녀의 호흡이 들려왔다.
짐승의 숨소리다.
두 남녀 사이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단두대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세리아는 이성이 아닌 직감의 영역에서 이해했다.
저것은 단두대다.
“……그래서, 싫어?”
“아니.”
새초롬한 목소리에 능글맞은 답변이 겹친다.
입술이 서서히 떨어져 내린다.
두 사람의 숨결이 뒤섞이고, 두 살점이 포개어지기 직전.
어느덧 공대를 포기한 사내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싫어하겠어? 내가 서방이라는데.”
세리아는 울컥, 하고 검은 진흙을 토해 버릴 뻔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아버렸으나, 기괴할 정도로 발달한 감각은 제멋대로 실내의 풍경을 재생했다.
이대로 도망치고 싶은 심장이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사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더불어 지금 인기척을 내다 제 존재를 들키는 것도 두려웠다.
까닭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세리아는 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덜덜 떨면서,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문 앞에 웅크려 앉은 제 몰골이 어떤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비참하고 초라했다.
그래서 세리아는 간절히 읊조렸다.
안 돼, 제발.
그러나 그 기도가 무색하게도, 이내 낯선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점막과 점막이 얽히며, 타액을 교환하는 음란한 소리.
세리아는 두 귀를 틀어막았다. 말소리가 잦아들었으나, 방 안의 인기척만큼은 어찌해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살갗과 살갗이 마주친다.
달뜬 신음과, 두 육체가 교합하며 만들어내는 열기에 세리아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흐으……”
잇새를 타넘고 질척한 숨결이 흘러내린다.
그때까지도 세리아는 자문하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태어날 때부터 언니였던 여인이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사랑한 사내였다.
세리아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발목을 삔 세리아를 대신해 마수와 싸우러 가던 선배의 뒷모습을.
말없이 아픔을 보듬어 주던 그의 상냥함을.
지금도 제 목에서 흐릿한 빛을 발하고 있는 목걸이를.
잊어버릴 턱이 없었다.
그것은 최초로 맞이한 온기였으니까. 어머니가 떠나간 이후, 스스로를 검으로 단조하던 소녀에게 인간의 마음을 선물해 준 소중한 추억이었으니까.
연모하고 경애했다.
다치기라도 하면 초조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옆에 여우 같은 계집애들이 달라붙을 때마다 혈관을 타고 불길이 흐르는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세리아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열락의 신음이 세리아의 예민한 청각을 자극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피부의 떨림이 두 남녀의 행위 하나하나를 전달했다.
애정을 갈구하는 여인의 몸짓.
그에 응하는 사내의 육체.
미쳐버릴 것만 같다.
“흐으, 흐으…….”
그 열풍의 파도 속에서 세리아는 먼 옛날의 기억을 발굴했다.
‘조심해.’
나른한 눈빛을 한 소녀였다.
금빛 머리카락에 핏빛 눈동자, 세리아는 가지지 못했던 유르디나의 표식.
어머니를 빼앗긴 직후였다.
‘너도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저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제 막 어미를 잃은 계집아이에게, 그 말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말뚝으로 남았다.
뒤이어 금발의 소녀가 머금던 냉소까지도.
‘언제나 승리해야 해.’
되짚어 봐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조소였다.
그 미소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유르디나니까.’
세리아는 그 호선이 마치 제 가슴을 절단하는 궤적처럼 느껴졌다.
의식이 다시금 과거에서 현재로 부상한다.
문 너머에서 찰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뒤틀며 쾌락에 젖은 신음을 토해내는 여체.
으득, 하고 세리아는 제 엄지 손가락을 씹어버리고 말았다.
달콤한 핏물이 혀를 적신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혈향이 감미로웠다. 그제야 세리아는 뇌리가 맑아져 오는 것을 느꼈다.
헐떡이면서, 소녀는 생각했다.
그래, 그랬구나.
선배 덕에 지워졌다고 생각한 상처였다. 악몽이 사라지지는 않겠으나, 이제는 몸서리를 치며 눈을 뜨는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아니었다.
언니의 조언은 언제나 그렇듯이 옳았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승리했어야 했는데.
그럼에도 세리아는 마지막까지 하나의 의문을 저버릴 수 없었다.
언니는, 꼭 그랬어야 했을까?
“흐윽, 응… 하아! 서, 서방님! 조, 조금만 천천… 흐이잇?!”
끊임없는 자극에 녹아내린 목소리였다.
델핀의 목소리는 쾌감뿐만 아니라 행복에 젖어 있었다.
그래, 여인으로서의 행복.
세리아는 다시금 콰득, 하고 제 손가락을 어금니로 으스러트렸다.
핏물과 살점이 흐물거리며 입천장을 적셨다. 기묘하게도 고통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릿한 통증이 뇌의 혈관에 남은 찌꺼기를 청소하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 저릿하면서도 시원한 감각.
세리아의 의식이 어린 시절의 어디쯤을 더듬었다.
언니는 늘 그래왔다.
‘세리아, 우선 네 언니가 먹고 나서 식기를 들거라.’
매일 먹는 식사도, 언니의 몫.
‘델핀 님께서는 적통이시니까요. 아가씨와는 달리…….’
가문의 사랑도, 언니의 몫.
‘세리아, 이 검은 네 언니가 가지기로 했단다.’
심지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검조차도 언니의 몫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더 가져갈 것이 남아있다니.
모든 것을 양보해 왔다.
단 하나 양보해지 못했던 것은 오직 수렵제의 승리뿐이었다. 그 지난한 패배의 인생 속에 남겨둘 책갈피와 같은 추억이었다.
일생에 단 하나 품을 수 있는 ‘첫사랑’이라는 보석.
그런데 그마저도 빼앗으려 하는가.
내게는, 내게는 이제 이것밖에 없는데.
가문도, 가족의 애정도 무엇이든 양보했지 않나. 덧붙여 변치 않는 존경과 충성까지도 맹세했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이렇게 나오겠다면.
“흐으윽, 으읏?! 자, 잠까… 읏, 자, 잘모태써요… 다, 다신! 다신 도발 안 할 테니… 으으응?!”
어느덧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세리아는 묵묵히 손가락을 으깨며 숨을 죽였다.
으득, 으득, 으득.
그렇게 밤이 깊고, 새벽이 지나, 두 남녀가 열락의 후폭풍에 지쳐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세리아는 그저 곶에 선 바위처럼 교성과 속삭임의 파도를 견뎌냈다.
이안과 델핀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비틀, 하고 한 번쯤 몸을 휘청였으나 괜찮았다. 세리아는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읊조림을 남기며.
“죽이는 수밖에 없잖아…….”
그 새파랗던 눈동자에는 어느새 스산한 한기만이 맺혀 있었다.
**
따사로운 햇볕을 맞이하며, 나는 나른한 한숨을 내뱉었다.
벌써 오후였다.
오전에 눈을 뜬 나는 허겁지겁 델핀 선배의 침실을 떠나와야 했다. 제국 첩보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거니와, 아직 남은 일정이 한가득이었던 탓도 있었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내 책임은 아니었다.
내게는 전술 계획의 입안자로서 짊어져야 할 짐이 있었다.
오늘 내가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지난밤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제 한동안은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하니, 음주까지 했음에도 평소보다 격렬한 밤을 보내고 만 것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가 그 증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내가 만나러 갈 상대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주인님!”
저 멀리에서 종종거리며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 큼지막한 고깔모자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믿음직한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되도록 그 부담스러운 호칭을 수정해 주길 바라면서.
“엘시 선배, 그 표현은 앞으로 자제…….”
“오늘은 어디 가려고? 설마 멀리 가려는 건 아니지? 혹시 어떤 년이 꼬셨다거나…….”
언제나 그랬듯이, 택도 없는 시도였다.
엘시 선배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질문을 쏟아냈다.
하나같이 나를 향한 걱정이 잔뜩 묻어나오는 물음이었다.
아니, 마지막은 조금 다른가.
하여튼 나는 엘시 선배의 마음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맞는데, 여자는 아니에요.”
내 대답에 엘시 선배의 고개가 갸웃, 하고 기울었다.
그리고 흐으음, 하고 수상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기를 잠시.
엘시 선배는 턱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괸 채 물었다.
누가 봐도 미심쩍다는 기색이었다.
“……진짜로?”
“아니,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일말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억울한 취급이었다.
마치 바람둥이가 연인에게 추궁을 당하는 듯한 모양새가 아닌가.
그러든 말든 엘시 선배는 한동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황당한 마음에 목적지를 알리기 직전, 엘시 선배의 자그마한 입에서 또 다시 심문이 이어졌다.
“그럼 세리아, 그 계집애는?”
“……세리아라뇨?”
이제는 내가 반문을 되돌려줄 차례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내 눈빛에 엘시 선배는 흐응, 하고 지긋이 나를 쳐다보았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 다 한 치도 물러나지 않다 보니, 나와 엘시 선배의 낯이 서로 가까워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패배를 선언한 쪽은 엘시 선배였다.
서로의 숨결이 살결에 닿은 직후, 소녀의 몸이 폴짝 튀어오르며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듯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은 덤이었다.
“무, 무, 무, 뭐야! 왜, 왜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건데!”
“전 가만히 있었는데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완벽한 승리를 위해 뻔뻔해지기로 했다.
“애초에 세리아라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세리아는 최전선에서 일을 정리하고 있다면서요. 듣기로는 오늘 온다고…….”
“이, 이미 도착했다던데?”
붉어진 낯빛을 식히기 위해서인지, 엘시 선배는 제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물론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난 또 그 꼬맹이를 보러 가나 했지. 괜히 나한테 숨기나 싶어서…….”
나는 우물쭈물하며 이어지는 변명에 픽, 하고 헛웃음을 머금어야 했다.
설령 세리아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왜 엘시 선배에게 그 사실을 숨기겠는가.
오랜만에 내 손이 엘시 선배의 고깔모자를 꾹꾹 눌렀다. 자연스레 내가 엘시 선배를 쓰다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럼에도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엘시 선배는 한결 진정된 낯빛으로 고개를 숙였을 따름이었다. 부끄럽다는 듯 제 검지를 꼬물거리기는 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엘시 선배. 세상에 엘시 선배만큼 좋은 여자가 그렇게 흔하겠어요?”
“……그럼 델핀, 그 계집애는?”
내 말문이 일순 막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의심을 받고 있었던가.
결국 나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야 했다.
“아시다시피 유르디나 가문의 사정이 말이 아니라, 델핀 선배와는 한동안 만나지 못합니다. 또 제가 제국 황실과 연이 있잖습니까.”
“그럼 도대체 누굴 만나러…….”
“엘프.”
내 한 마디에, 추궁을 이어가던 엘시 선배의 혀가 얼어붙고 말았다.
뒤이어 낭패감이 그녀의 눈동자를 스쳤다.
입술을 짓씹는 꼴이, 아차, 싶은 얼굴이었다.
“포프 영감님을 만나러 갑니다.”
겸사겸사 마을의 엘프들도 함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두 번째 이별을 맞이하며, 내가 깨달은 사실 하나.
아플수록 사람은 상처를 숨기려 한다.
그럴수록 제 가슴에 남을 흉터만 깊어질 테니까.
슬프고 괴로운 심정이었다.
**
그리고 한편.
“왔니, 세리아?”
유르디나의 가장 높은 곳, 가주의 집무실에서는 두 자매의 해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네, 언니.”
금발의 여인은 여유롭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핏빛 눈동자에서 타고 있는 열락의 찌꺼기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간밤의 사랑이 남긴 흔적이었다.
반면, 회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의 낯에는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심해를 닮은 검푸른 눈동자에는 스산한 한기마저 맺혀있을 정도였다.
세간에서는 '자매'라 불리고 있으나, 그 색조와 성향마저도 정반대.
그야말로 금과 은의 만남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