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9화 〉 5.5 막간: 금과 은(14)
* * *
셀린이 실종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직후, 나는 곧바로 짐을 싸러 침실로 향했다.
사안이 워낙 중대했던 탓이었다.
셀린과 헤어진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그동안 셀린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으리라 여겼으니까.
그런데 느닷없이 ‘실종’이라니.
나로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일단 아카데미는 인구 밀도가 높았다.
어딜 가도 목격담이 떠돌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셀린은 검술학부의 꽃이라 불릴 만큼 유명인사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아카데미에는 주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경비 인원들도 많았다.
대륙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장소인 만큼, 그 보안 또한 철저한 것이다.
자의로 떠나고 싶어도 동선이 노출되는 곳이 아카데미였다. 그러한 장소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내가 리아를 채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실종이라니? 셀린이 사라질 이유가 어디 있다고?”
“그러니까 실종 사건이지! 사실, 아직 실종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면도 있고…….”
들으면 들을수록 난항이었다.
실종이면 실종이지, 실종이라 부르기에 애매한 면은 또 무어란 말인가.
내 황당하다는 눈빛에 리아는 우물쭈물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벌써 종적을 감춘 지 이틀이나 지났단 말이야!”
“이틀 정도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 셀린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겠지.”
내 반론은 지당했다.
밤거리에 홀로 돌아다니는 여자를 노리는 무리가 많다지만, 이 또한 일반인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셀린은 아카데미의 입학 시험을 통과한 수재였다.
밤을 배회하는 시정잡배들은커녕, 노련한 용병들조차 애를 먹는 상대라는 뜻이었다.
혼자 돌아다닌다고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함부로 시비를 걸다 애꿎은 건달들이 다치면 몰라.
물론 리아가 이러한 반박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셀린 언니는 최근 종일 수련만 하고 있었는걸… 하지만 수련하던 장소 어디를 돌아봐도 언니는 보이지 않았어.”
“검사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단련해야 돼. 무언가 단서를 잡아서 명상을 하러 떠났을 수도…….”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 알펜하우저 가문의 영애라도?”
앞선 모든 논의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발언이었다.
나는 호흡조차 잊은 채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내 불신을 담은 눈동자가 셀린을 향했다.
알펜하우저 가문.
제국의 5대 귀족 가문 중 하나이자, 하스터 영지에 재앙을 불러온 이들이었다.
자고로 제국에서 ‘대귀족’이라 불리는 가문들은 각자가 상징하는 바가 있어야 했다.
북부의 유르디나는 군권을.
동부의 루페미온은 기사를.
서부의 핀들스턴은 정보를.
남부의 아라호른은 마도를.
그리고 중앙의 알펜하우저는 황금을 쥐고 있다고 여겨진다.
셀린은 알펜하우저 가문이 하스터 가문을 침탈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어느 날 하스터 영지에 발견된 금광이 원인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이권을 두고 수많은 가문들이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알펜하우저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그들은 곧바로 하스터 가문으로 향하는 상행을 통제하며 영지를 고사 상태로 만들었다.
이후의 전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스터 남작은 분을 이기지 못해 쓰러졌고, 하스터 가문의 영민들은 광산에서 헐값에 부려지고 있었다.
하스터 가문의 어린 외동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비극이었다.
그날 이후 셀린은 알펜하우저를 향한 복수를 맹세했다.
고위 귀족을 향한 반감과 열등감 또한 그날의 아픔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으리라.
다만 나로서는 도무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 하나 존재했다.
“알펜하우저 가문의 영애라면, 그 쌍둥이? 이미 졸업했잖아?”
그렇다.
알펜하우저의 영애라면 그 둘밖에 없었다.
상학부의 수석과 차석을 차례로 가져가던 쌍둥이 선배.
델핀 선배와 엘시 선배의 1년 선배였고, 아카데미에는 ‘유급’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이미 졸업생 신분이었다.
굳이 아카데미까지 찾아올 이유를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설마 셀린을 만나러 일부러 발걸음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
이에 대해서는 리아도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몰라. 듣기로는 초빙 교수 신분으로 돌아왔다던데, 그쯤 되는 사람들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움직이겠어?”
흐음, 하고 침음을 삼켜도 마땅히 짚이는 점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알 수도 없는 정보였다. 나는 깔끔히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자세한 사정은 아카데미에 돌아가서 캐물어도 됐다.
그보다 바삐 처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리아, 너는 먼저 워프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나는 남은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올 테니까.”
“바로 출발하려고?”
“셀린이 사라졌는데 어떡해, 그럼. 간단히만 인사 나눌 테니까 걱정 말고… 참, 레토는 뭐래?”
마침 떠올랐다는 듯 던진 질문에, 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황금빛 동공이 천장 위를 향했다. 소녀의 검지가 입술을 두어 번 두드린 뒤에야, 나는 대답이라고 할 만한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조심하라던데?”
이미 수없이 들어본 말이었다.
주로 전장에 서기 직전, 동료들에게 듣거나 미래에서 온 ‘나’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러나 레토가 말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이어지는 리아의 설명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아카데미에서 정치가 시작됐대.”
내가 가장 취약한 분야를 맞닥뜨릴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지금의 내게는 딱히 감흥을 주진 못했지만 말이다.
내 뇌리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셀린, 어디로 간 거냐.
어서 아카데미로 돌아가 봐야 했다.
**
내 결단이 갑작스러웠던 만큼, 나를 일별하는 여인들의 태도도 제각각이었다.
우선 사정이 있어 나의 뒤를 따를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델핀 선배라든가, 세리아라든가, 성녀가 그랬다.
델핀 선배는 유르디나의 가주가 될 여인이었다. 당연히 뒤처리를 끝낸 뒤에야 돌아올 수 있을 테고, 세리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세리아는 기필코 내 뒤를 따르겠다는 각오를 보였지만 말이다.
“함께 돌아갈게요.”
“세리아, 너 최전선에서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그야 언니가 알아서 할 일이죠.”
그렇게 말하는 세리아의 목소리에서는 냉기가 풀풀 풍겼다.
그나마 이제는 ‘암캐’라고 부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는 며칠에 걸친 내 설득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가주를 ‘암캐’라 부르는 가신이라니.
델핀 선배에게도, 세리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풍문이었다.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세리아를 달래기로 했다.
내 두 손이 살포시 어깨 위로 얹어지자, 세리아는 움찔 몸을 떨며 당황한 눈빛을 했다.
“난 말이야, 세리아. 델핀 선배가 소중해.”
담담한 고백에 세리아의 눈동자에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으득, 하고 앙다물어진 이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리아의 두 손에는 어느덧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무시무시한 박력이었다.
찰나 사이에 사람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나는 침착을 잃지 않고 조곤조곤 세리아를 설득했다.
“그리고 너도 그만큼 소중하고. 내 욕심인 줄은 알겠지만, 난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둘 중 누구를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대단히 뻔뻔한 소리였다.
두 자매를 모두 데려가겠다니, 만일 유르디나 후작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유르디나 후작이 암흑교단과 손을 잡은 대가였다.
가정의 모든 불화는 그로부터 발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애써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말했다.
“최소한 내가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는… 그러니까 세리아, 너도 그때까지만 참아주면 안 될까?”
비겁한 부탁이었다.
세리아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 없이는 삶조차도 의미가 없다고 했던 여인이었다.
내가 둘 중 누구도 버리지 않겠다면, 세리아 또한 내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리아는 내 생각 이상으로 씩씩한 여인이었다.
“……좋아요.”
세리아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말했다.
“보여드릴게요. 그 암캐가 얼마나 쓸모없는 여자인지… 암컷으로서 우수한 점은 그 반반한 얼굴이랑 몸뚱아리밖에 없잖아요? 증명해 보일게요. 이안 선배가 망설이시는 동안.”
기대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내 말을 알아들었다니 다행이었다.
나는 새어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델핀 선배와 세리아의 다툼이 극단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다시 인사를 하러 떠나려던 내 발걸음을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저… 이안 선배!”
나는 의문을 담아 뒤를 돌아보았다.
세리아는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살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얼굴을 잔뜩 붉힌 소녀의 허리가 굽혀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 옷! 옷 한 벌만 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나 의외의 부탁이라 내가 넋을 놓고 있자, 세리아는 귀까지 새빨갛게 붉힌 채 중얼거렸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무래도 힘드니까요! 어, 업무 추진희… 으으,추진의 효율을 위해서도… 피,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는 말없이 세리아의 침실을 둘러보았다.
여전했다.
나를 닮은 인형들과 나와 관련된 물품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외투를 벗어주어야 했다.
낯부끄러운 짓이었지만, 괜찮았다.
내 사랑하는 후배가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으니까.
세리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부끄러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나를 따라오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여인은 더 있었다.
바로 성녀였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수두룩한데도, 성녀는 기어코 내 뒤를 따라오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래도 성녀는 성녀였다.
아무리 나를 따라오고 싶어도, 신음하는 환자들을 두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말했다.
“……일주일 이내에 정리하고 따라갈게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풀이 잔뜩 죽은 성녀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이라면 모르겠는데, 이제 여자를 몇 번 겪고 나니까 감이 왔다.
성녀가 내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몸을 허락할 정도의 상대였다. 마음은 이미 넘어온 뒤라고 봐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머리가 복잡했다.
언젠가 날을 잡고 말하긴 해야 할 터다.
델핀 선배와 세리아, 그리고 엠마까지 얽힌 관계를.
다만 지금으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기에, 나는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고생은 훗날의 나에게 미뤄두어도 충분했다.
그 후에 만난 상대들은 별다른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엘시 선배와 황녀는 나를 따라오겠다고 했고, 네리스 선배야 첩보부로서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으니까.
다만 델핀 선배가 묘한 소리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벌써 시작됐구나.”
“……네?”
나는 느닷없는 소리에 얼빠진 반문을 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든 말든, 델핀 선배는 권태로운 눈빛으로 턱을 괼 따름이었다.
“차기 권좌를 향한 장난질이지. 유르디나 가문은 정실 태생이 나 하나뿐이라 상관없지만, 나머지 5대 명문가들은 후계자들끼리 경쟁을 시키거든. 어느 황위 계승권자에게 줄을 대느냐… 그리고 누가 다음 황제가 되느냐에 따라, 가주의 자리가 결정되지.”
“알펜하우저의 쌍둥이들도 그와 관련이 있을까요?”
“무조건.”
오랜만에 갑옷을 입고 나를 마주한 델핀 선배는, 꽤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참고로 알펜하우저의 쌍둥이는 아이리스 황녀의 편이야. 무슨 목적으로 아카데미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 서방님.”
이후에는 늘 하던 대로였다.
델핀 선배와 입을 맞추고, 혀를 섞다가, 짧은 열락의 시간을 즐기고 나는 집무실을 나섰다.
그후로 워프 게이트를 향하는 길.
나는 엠마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엠마의 낯빛은 이미 터질 듯이 붉어진 지 오래였다.
“이, 이안… 이러지 않아도 돼. 나 너무 부끄러워……..”
“아니, 안 되지. 아직 몸살 기운이 남아있잖아.”
다소 호들갑이 섞인 말이었으나, 나는 진심이었다.
아직도 내 뇌리에는 그날의 풍경이 대못처럼 틀어박혀 있었다.
창백한 낯빛으로 가녀린 숨을 내쉬던 집중치료실의 여인.
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엠마의 건강 문제에 예민했다.
바로 지금처럼.
“일단 아카데미에 도착한 뒤에는 푹 쉬어. 짐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가져가거나 사람을 보내면 되니까. 아니면 따로 간병인을 고용해서…….”
내 공연한 걱정이 주저리주저리 이어질 때마다, 엠마의 시선은 더더욱 아래를 향했다.
물론 나를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심지어는 내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도.
희미한 감각으로 어렴풋이 느껴질 뿐이었다.
황녀와 수군거리던 엘시 선배가, 무언가 묘한 눈빛을 나와 엠마에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카데미로 돌아가던 날, 우리 사이에는 폭탄 하나가 놓이게 되었다.
엘시 선배는 그 이후로도 엠마를 응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쭉.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