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6. 존재 증명(1)
* * *
꿈은 불현듯 찾아온다.
눈을 감고 무의식 속을 부유하다가, 물을 헤집는 물고기처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어두운 들판이었다.
해가 뜨지 않은 세상은 명도를 강탈당한 채 음울한 절경을 연출했다. 모든 생명이 사라진 장소에서는 미동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완연한 침묵을 등지고, 나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시체와 병장기가 어우러져 그림자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까마귀조차 우짖지 않는 세계란 이토록 쓸쓸했다.
사내는 그 위에 홀로 서 있었다.
내가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 그는 어떠한 말도 얹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생존 여부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소리는 그때 태어났다.
“모두 죽었군.”
사내가 내뱉은 음색은 무뚝뚝하기만 했다.
무채색의 세계에 어울리는, 메마른 목소리.
나는 그제야 입술을 뗐다.
비로소 입 안에 온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왜 오늘은 이곳으로 온 거지?”
그 한 마디에, 사내의 시선이 흘깃 나를 향했다.
금빛 동공은 어느덧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눈빛이 불꽃 같다고 생각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선화 속에서, 홀로 빛나는 유일한 색조였으니까.
“의식이란 고정된 공간이 아니야. 네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넓고 특이하지.”
“예전에는 늘 비슷한 곳으로만 불려왔던 것 같은데.”
그렇게 반문하는 내 뇌리를 스치는 풍경은, 균열 난 허공과 끝없는 어둠으로 뒤덮인 공간이었다.
여태껏 내가 사내를 만나온 장소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느닷없이 벌판 위에서 사내와 재회했다.
나로서는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내는 딱히 그 사실에 흥미를 느끼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를 향하고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금 시체로 이동했다.
“내가 그렇게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사내의 언어는 언제나 담백하고 명쾌했다.
반론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화법이었다.
그렇다고 또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진 않았지만.
결국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또 다른 질문을 던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델피렘이 오고 있다.”
내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으나, 묵직한 감정이 느껴지는 증언이었다.
피로와 증오, 회환과 절망, 그리고 들끓는 살의.
그는 지독히도 지친 낯빛으로 말했다.
“나는 보다 준비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지. 차차 준비해 나가면, 너라도 어떻게든 델피렘을 막아낼 수 있을 줄만 알았어. 하지만 네가 시계를 너무 빠르게 돌렸어… 점점 더 그 괴물의 기척이 강하게 느껴진다.”
담담히 쏟아지는 낱말들은 나침반의 자침처럼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소한 활로는 아니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사내의 경고를 들었다.
“연달아 두 권속을 잃었으니 그녀도 애가 닳았겠지. 그동안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네게도 시선이 닿고 있을 거야.”
“앞으로 조심하란 말이야?”
“아니, 조심할 필요 없어.”
사내는 비로소 등을 돌려 나를 정면에서 마주했다.
그리고 단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단언이 이어졌다.
“조심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너는 손으로 태양을 가리고 달빛을 피할 수 있나?”
그것은 너무 비관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그렇게 한 마디를 하려던 나는, 이내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나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이 한없이 진중했다.
예전이라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았다. 사내가 얼마나 발버둥을 쳐야 했는지.
그럼에도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비록 나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비웃을 만큼 초라한 길은 아니었다.
사내가 걸어온 길이란 그랬다.
나는 대신 내내 품고 있던 의문을 던졌다.
“이곳은 전장인가?”
“아마도.”
그답지 않게 애매한 답변이었다.
나는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정체 모를 괴물부터 시작해서, 마수와 인간들까지 다종다양한 생명들이 죽음을 맞이한 뒤였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묻고 싶던 내용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너무나 다양했다.
대개 전장에서 맞부딪힌다고 한다면, 이처럼 여러 종의 시체가 쌓이기는 힘들었다.
애초에 종족의 한계로 서로 융화되기가 힘들었던 탓이었다.
아군끼리 내분이 내거나, 특정 종족이 전략을 무시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이처럼 여러 종족의 시체가 섞인 풍경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여러 종족을 합치시킬 수는 있어도, 이처럼 마구잡이로 뒤섞이지는 않을 텐데.
내 의문이 해결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내가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였어.”
고저조차 없는 고백이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살인마가 제 죄를 털어놓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이나 사내의 토로는 갑작스러웠다.
나는 살짝 의외라는 눈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전부, 다… 내가 쌓아 온 죄지. 내 기억에 남은 적들은 전부 이곳에 있는 모양인데.”
“이렇게나 많이?”
그렇게 반문하는 내 눈이 무심코 주위에 널린 시체 중 일부를 향했다.
괴물과 마수들도 많았지만, 이 벌판 위에 놓인 시체의 절반은 사람이었다.
못해도 수백에서 수천은 되리라.
내 시선이 함의하는 바를 깨달았는지, 사내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래, 이렇게나 많이…. 죽여야 할 이유는 많았지. 어느샌가 잊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담담한 진술은 추가 되어 내 가슴을 내리눌렀다.
내 시야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이토록 많은 생명을 빼앗아야 한단 말인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그 멋진 구호를 위해서.
사내는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 떨리는 눈동자가 시체 사이를 건너다닐 때마다, 그는 묵묵히 읊조렸다.
“그 남자는 암흑교단과 손을 잡고 고아들을 팔아넘겼지. 마지막까지 부정했지만, 증거가 너무 명확했어. 유가족들은 끝까지 그가 무죄라고 믿더군. 나를 살인마라고 비난하면서… 또 그 소녀는 교단의 실험체였지.”
하나, 둘씩.
누군가가 죽어야 할 이유를 읊는 사내의 목소리는 평탄하기만 했다. 마치 시체를 검안하는 성직자가 사인을 읊는 것만 같았다.
기괴했다.
하지만 합리적이었다.
그가 죽여야 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적절한 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사내의 말이 길어질수록, 나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주위를 황망히 둘러보던 내 눈동자가 멈춘 것은 그 무렵이었다.
나는 문득 어떤 시체에 시선이 내리꽂히는 감각을 느꼈다.
마치 그 시체 자체가 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무심코 걸음을 내딛었다.
엎어져 있는 시체였다.
훼손이 심하지는 않아서, 그 뒷모습만 보더라도 체형은 대략적으로 유추가 됐다.
익숙하다.
그러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나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칵, 하고 머릿속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깨진 유리 파편이 뇌의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나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저, 저 시체… 끄으으으윽!”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토막 난 의문만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저 시체.
도대체 저 시체의 정체가 뭐냐고.
사내는 무심한 시선을 던졌고, 내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는 듯.
사내는 그제야 아, 하고 유의미한 반응을 보였다.
“저 시체는…….”
시야가 흔들리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내 몸이 땅 위로 엎어졌다.
아니, 엎어진다는 표현이 옳을까.
어딘가에 부닥치는 느낌마저 들지 않았다. 다만 나는 다시금 부유했다.
꿈을 꾸듯이 감각이 옅어진다.
육체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전부 증발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단지, 머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이제부터 네가 죽여야 할 사람.”
그리고 나는 헐떡이며 잠에서 깼다.
그리운 기숙사의 내 방이었다.
나는 잔향처럼 남은 통증을 느끼며 수통을 손에 쥐었다. 머리맡에 위치한 탁자 위에는 늘 찬물이 가득 찬 수통을 두곤 했다.
그래야 술 마신 다음날 편하니까.
냉수가 벌컥벌컥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내 시야 구석에 낯익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어느샌가 도착한 편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달력을 확인했다.
그새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삭제되어 있었다. 지난번보다는 긴 시간 동안 미래의 인격이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슬슬 지난 호출의 후유증이 회복되고 있는 건가.
페르쿠스 영지에 있을 때, 나는 무리하게 미래의 인격을 불러낸 적이 있었다. 그 여파로 한동안 그는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또 일주일이란 시간을 쓸 만큼은 여력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그의 조력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 봉투를 뜯어보려던 때였다.
똑똑, 하고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린 것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창밖을 살폈다.
아직 새벽녘의 어스름이 다 가시지도 않았을 시간이었다. 이처럼 이른 시간에 나를 찾아올 만한 사람은 드물었다.
당장 편지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손님을 이대로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 문을 열기까지, 단 몇 초.
문 너머에는 성녀가 서 있었다.
무척이나 피로한 눈빛으로.
그녀의 손에는 서류 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성녀는 짜증스레 인상을 구겼다.
“뭐해요, 지금? 일단 이 서류부터 받고, 당신의 저의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둘… 세상에, 이안?”
으득으득 이를 갈며 말을 이어가던 성녀는, 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나와 눈을 마주친 직후였다.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낯빛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보자마자 성녀는 직감한 듯했다.
다시금 내 인격이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성녀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울먹이며 무너져 내렸다.
“아아, 주여… 감사합니다. 그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난봉꾼이 떠나도록 해주셔서…….”
“아니, 아직 떠나지는 않았는데…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성호를 긋는 성녀의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되물었다.
이쯤 되니 나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또 무슨 짓을 저질렀다.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미래에서 온 ‘이안 페르쿠스’가.
성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 문을 조심스레 닫은 그녀가 말없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곳에 모든 답이 담겨 있다는 태도였다.
손만 뻗으면 될 텐데도, 나는 괜히 불안한 마음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대신 나는 몇 가지 가설을 늘어놓았다.
“혹시 누구를 때리기라도 했습니까?”
절레절레.
성녀가 고개를 젓는 것을 확인한 나는,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그럼 죽였습니까? 죽일 만한 놈이었겠죠?”
“아니라고요! 얼른 이 서류부터 받지 못해요?!"
오늘따라 성녀의 인내심이 깊지 못했다.
나는 여인의 고성에 곧장 기가 죽고 말았다. 이보다 더 성녀를 채근해 봐야 꾸중만 들을 판이었다.
결국 내 손이 조심스레 서류 봉투를 받아들었다.
발신인은 성국의 교황청이었다.
그래서 성녀가 가지고 온 걸까.
그대로 봉투의 봉인을 찢고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서류는, 난생 처음 보는 양식을 하고 있었다.
내 눈이 곧장 그 내용을 읽어내렸다.
몇 초 후, 내가 품은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뭡니까, 이거?”
“종교재판에 회부됐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서류에요.”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종교재판?
그러니까 내가 피고로 소환됐다는 말인가?
곧장 울컥이는 감정이 내 목젖을 치고 올라왔다.
“아니, 말이 됩니까?! 도대체 무슨 죄목으로……!”
성녀는 내 의문에 답해 주지 않았다.
단지 눈짓으로 서류를 가리켰을 따름이었다.
나는 일단 이를 악물고, 핏발이 선 눈으로 줄글을 읽어내렸다.
내 의문을 해소해 줄 대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혐의: 신성 모독(성희롱)’
그리고 침묵.
나도, 성녀도 입을 열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으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친 새끼가 진짜…….”
나는 서류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인격이 도움이 된다고?
취소였다.
그는 단지 나를 괴롭히고 싶을 뿐인 개자식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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