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6. 존재 증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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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에는 고아원이 많다.
전란의 시대도 끝난 마당에 무슨 고아가 그리 많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대륙에 안전한 곳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수와 범죄자들이 호시탐탐 약자의 살점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치안이 가장 좋다고 하는 제도에서도 범죄 조직을 온전히 뿌리 뽑지는 못했다.
그러니 지방에 사는 민초들의 삶이 어떨지는 뻔했다. 부모가 동시에 목숨을 잃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나마 성국의 고아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는 천신교는 고아의 삶에도 관심이 많았다.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감찰을 나가 고아를 착취하는 악덕 고아원을 적발하기도 할 정도였다.
성녀가 내게 내민 서류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말하자면, 고아원에 봉사 활동을 가는 조건으로 재판을 유예한다는 거군요.”
“네, 어디까지나 유예지만요.”
흐음, 하고 나는 침음을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성국에는 수많은 사제와 성기사들이 버티고 있지만, 그들은 대개 바빴다. 곳곳에 위치한 영세한 고아원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래서 성국이 내게 제안한 것이다.
성국을 돌면서 고아원들을 살펴봐 달라고.
말하자면 봉사이자 감찰이었다.
내가 침묵에 잠긴 사이, 성녀의 보충설명이 이어졌다.
“말은 유예지만, 봉사 활동이 끝나면 자연스레 면책이 이루어질 거예요. 인류의 떠오르는 영웅이 성국의 고아를 보살피고 떠났는데, 이를 칭찬하진 못할 망정 벌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제 혐의는 어떻게 됩니까?”
“알려지지 않은 진실은 사실이 될 수 없어요, 이안.”
성녀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막후에서 계략을 꾸미는 모사꾼의 모습이었다.
내 눈에는 그마저도 예뻐 보이기만 했지만 말이다.
“제국과 성국도 눈치가 있으니, 적당히 여론 통제에 나서겠죠. 그래도 흘러나가는 정보는 뜬소문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에요. 그럼 당신은 저와 느긋하게 성국 유람을 하다 돌아오는 거죠.”
“가족한테 인사도 하고?”
“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나고 자랐던 고아원.”
농담처럼 던진 말에 되돌아온 대답이 너무 진지했다.
나는 다소 당황해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성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터였다.
“저, 그… 고아원과는 연을 끊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성녀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정했다.
‘고아’라는 꼬리표를 평생 떼어내려 애썼던 그녀였다.
이름을 버린 것은 물론이고, 출신 고아원과의 연락도 뜸하다고 들었다. 물론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지원을 했다고는 들었지만 말이다.
그랬던 성녀가 공개적으로 제 출신 고아원을 방문한다라.
괜찮겠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성녀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왈가왈부 할 문제는 아니었다.
대신 나는 일부러 태평한 목소리를 연출했다.
“선물이라도 사들고 가야 하나요?”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무려 영웅이 주는 선물이니…….”
마찬가지로 애써 태연한 척을 하던 성녀는, 결국 말끝을 흐렸다.
이내 그 매력적인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실, 두렵기도 해요.”
그렇겠지.
아카데미에 입학한 직후, 나는 고위 귀족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받아야 했다. 귀족인 나조차도 그럴진대, 평민이나 고아 출신을 향한 괄시가 어떨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성녀는 결단을 내렸다.
“너무 오랜 시간을 ‘성녀’로 살아왔잖아요. 오직 그 직무에 걸맞은 삶만 살아왔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했고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요즘은 자꾸 딴생각이 들더라고요. ‘성녀’가 아닌 나는 누구인가, 하고… 사춘기가 늦게 온 걸까요?”
후후, 하고 옅은 미소와 함께 연분홍빛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봉숭아 꽃잎을 닮은 그 색조가 애달프다고 느꼈다. 그래봐야 무식한 검사의 짧은 감흥에 불과하겠지만.
“싫증이 났을지도요. ‘성녀’로 산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잖습니까.”
“맞아요. 그리고 ‘성녀’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자꾸만 해요.”
그리고 싱긋, 하고 여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꽃잎이 새벽 이슬을 머금듯이.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지고 함께 가줘야겠어요.”
그 까닭을 캐묻지는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성녀의 따스한 눈빛이 유독 간질거렸다.
그래서 나도 쓴웃음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기꺼이 책임져 드리죠.”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
그 후에는 성녀의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봉사 활동 기간 동안 최대한 눈에 띄는 짓을 자제하란 소리였다. 나 또한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다만 호기심이 남는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제가 사고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법정에 서야죠. 그리고 오랜 율법에 따라 세 가지 재판 방식 중 하나를 택하면 돼요.”
성녀는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했다.
성국의 종교재판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어렴풋이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재판의 종류가 세 가지가 된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이에 대해 성녀는 친절한 해설을 덧붙여 주었다.
“첫 번째, ‘교리 재판’. 대부분은 이 재판을 받는다고 보면 돼요. 각자 지식, 자애, 심판을 담당하는 명망 있는 사제 셋과 신실한 성도 열두 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형량을 결정하죠. 참고로 지식의 사제는 교리성, 자애의 사제는 복음성, 심판의 사제는 이담심문회에서 파견돼요.”
‘교리재판’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종교재판과 판박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재판 방식도 존재한단 말인가?
내가 의문을 뱉기도 전에, 성녀는 연이어 설명을 이어갔다.
“두 번째, ‘명예 재판’! 먼 옛날 신마전쟁 때 앞장서 오메로스의 군대를 참한 대성인 아리우스를 기념하는 재판이에요. 교황청에 머무르는 성기사를 차례로 쓰러트리면, 그 명예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죠.”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횡당한 이야기였다.
죄를 지으면 지었지, 결투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 무죄 판결을 주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어이가 없었던 점은, 상대해야 할 적이 무려 교황청의 성기사단이라는 부분이었다.
조건이 ‘연승’이니 당연히 일대일 승부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죽으라는 소리다.
하나나 둘이면 몰라, 교황청의 최정예 기사단을 연달아 상대하면서 승리를 거두라?
마스터라도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아니, 설령 마스터라 하더라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교황청에는 인류에 단 셋밖에 없는 마스터 중 하나인 ‘성자’가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러한 내 의문에 답하는 성녀의 음색은 담백하기만 했다.
“그래서 대부분 ‘교리 재판’을 받는다고 했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 누가 두 번째 재판을 선택하려 들겠는가. 그래봐야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한데.
나는 잠자코 세 번째 선택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재판은 ‘정화 재판’인데… 장작 위에 올라가 밤새도록 불 속에서 견뎌내면 무죄를 받아요.”
“아니, 그건 또 무슨 헛소리입니까?”
두 번째는 그나마 가능성이라도 점칠 수 있지, 마지막은 말도 안 되는 방식이었다.
불 속에서 밤새도록 타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가 존재는 한단 말인가.
성녀는 이에 대해 짤막한 논평을 남겼다.
“그러니까 다들 ‘교리 재판’을 받는다고 했잖아요.”
참고로 죄인을 불태우는 불꽃을 ‘성화’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삿된 것을 태우는 아루스의 간, 태양의 빛을 모아 만든 불씨로 불을 붙인다나. 따라서 죄를 지은 자는 성화 속에서 불타 사라지고, 무고한 이는 살아 남으리란 논리였다.
야만의 시대가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었다.
고대의 종교는 이토록 잔혹한 면모가 있었으니까.
나는 성녀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금 다짐했다. 절대 수상한 짓은 하지 않기로.
떠나기 직전, 성녀는 묘하게 미련이 넘치는 기색이었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결국 머뭇거리던 성녀의 입이 열렸다. 볼에는 옅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그, 그… 혹시 하고 싶은 거 없어요? 모처럼, 단 둘뿐인데…….”
그러면서 성녀는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쭈뼛거리는 모양새로 보아,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는 듯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성녀가 내 방을 나서는 광경을 목격당하면 큰일이었으니까.
차라리 종일 방에서 성녀와 단 둘이 지내면 모를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헛웃음을 삼키려다가, 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던졌다.
“저, 성녀님?”
“네, 네?”
성녀는 묘하게 순종적인 태도였다.
이만하면 물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한 자신감이 생긴 나는 곧장 궁금증을 풀어헤쳤다.
“그 말, 사실입니까?”
“……?”
성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재차 물어야 했다.
“그, 억지로 당하는 편을 선호한다던… 윽?!”
내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성녀의 발이 내 발등을 짓밟았다.
으직, 하고 살갗이 비틀리는 감각이 전해져 왔다. 워낙 몸이 단단했던 탓에 강한 통증은 일지 않았지만, 숨이 일순 멎을 정도는 되었다.
어느덧 성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수치심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였다.
“다, 다, 당신… 종교 재판에 회부할 거야!”
아니, 나중을 위해 참고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억울한 심정이었으나, 성녀에게 감히 항의를 하진 못했다.
또 다시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싶진 않았다.
법정에서 온 통지서를 받는 것은 한 번으로 족했다.
**
성녀가 떠난 후, 나는 다시금 미래에서 온 편지를 읽으려 시도했다.
곧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오늘따라 방해가 많았다.
나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며 편지 봉투를 품에 집어넣었고, 문을 열어 전언을 받았다.
“그, 이안? 레토가 당장 찾아오라던데. 네 여동생한테 무언가 문제가…….”
더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당장 땅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나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레토의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리고 안에서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문고리를 부러트리기라도 할 듯 거칠게 꺾었다.
다행스럽게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리아, 괜찮아?!”
이후 내 망막에 닿은 광경은, 책상에 엎어져 펑펑 눈물을 쏟고 있는 리아였다.
이어서 난감하다는 얼굴을 한 레토가 보였고, 그 옆에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있었다.
좌중의 시선이 단숨에 나를 향했다.
탄력 있는 촉감이 나를 덮친 것은 그 직후였다.
“……오빠!”
종종거리며 내달린 리아는 곧장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엉겁결에 여동생을 안아든 나는 평소처럼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든 말든, 리아는 펑펑 눈물을 쏟을 뿐이었다.
“흐윽, 흑. 나 버리지 마… 내가 잘못했어, 흐어엉……!”
또 무슨 일일까.
나는 보드랍고 굴곡진 여체의 감촉에 당황하면서도, 설명을 요구하듯 레토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 시선이 그 옆에 서 있던 소녀에게 닿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등 뒤로 깔끔하게 정리한 미인이었다.
그 황갈색 눈동자에서는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나는 그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지 않아도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셀린!”
등 뒤에 묵직한 배틀 엑스를 동여맨 셀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었다.
그래봐야 단순한 몸짓에 불과했지만, 나는 깨달았다.
무언가 다르다.
예전의 기세가 철 모르던 망아지가 멋대로 날뛰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잔잔히 가라앉은 파도와 같았다. 언제든 노도와 같이 밀어칠 준비를 끝낸 바다.
나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너, 강해졌구나!”
내 찬탄이 섞인 반응에도, 셀린은 그저 멋쩍은 웃음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오랜만이야, 이안 오빠. 아하하…….”
실종되었던 소꿉친구가 강해져서 돌아왔다.
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여동생을 보듬어 안으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내 여동생을 울린 범인에 대한 분노도 잊지 않으면서.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 벌어진 사건은 하나가 아니었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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