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417화 (417/649)

〈 417화 〉 6. 존재 증명(5)

* * *

느닷없이 걷어차인 여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부릅떠진 눈이 경악을 말해 주기도 전에, 리아는 땅을 구르다 켁켁거리며 강렬한 통증을 호소해야 했다.

불신을 가득 담은 시선이 사내를 향했다.

주위에 있던 행인들 중 일부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질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것도 남매 사이에서.

그러나 또 절반 정도 되는 인원은 이럴 줄 알았다는 눈빛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사내가 아카데미에서 어떠한 인물로 통하고 있는지 잘 드러내 주는 광경이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짓……!”

“해보라고 했다, 리아 페르쿠스… 난 지금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저벅저벅 걸어, 사내는 다시금 여인의 몸을 걷어찼다.

리아는 가까스로 팔을 들어 그 일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래봐야 우득, 하고 뼈를 파고드는 충격량을 온전히 상쇄할 수는 없었지만.

소녀의 몸이 땅 위를 몇 바퀴나 구른 뒤 멈췄다.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런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짤막한 비명을 내지르고, 숨을 헐떡이는 것만이 리아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의 전부였다.

고통조차 희미했다.

멍하니 올려다 본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마치 작금의 상황이 악몽이기라도 하다는 듯.

리아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려 들자, 사내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의식이 희미해지자 본능이 강해졌다. 상대의 살의가 손에 잡힐 듯 선명히 느껴졌다.

살해 당한다.

그 선연한 공포가 리아의 척수를 싸늘히 핥고 지나갔다. 소녀는 직감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어째서, 라는 의문조차 들지 않았다.

다만 땅을 박차고 쏘아진 리아의 몸이 사내의 품을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가속한 몸뚱어리는 상상 이상의 운동량을 지니고 있었다.

이대로 자세를 무너트리고, 위를 덮친다.

그렇게 무의식이 그리는 활주로가 펼쳐졌다. 리아는 그 위를 그저 짐승처럼 내달렸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어라, 하는 사이 소녀의 몸은 허공에서 팽팽 돌고 있었다.

사내가 팔꿈치를 쥐는 듯 싶더니, 춤을 추듯 한 차례 팔을 휘저었다. 그 직후 리아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운신이 불가능한 적은 허수아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내의 발길질이 다시금 소녀의 몸을 후려치고, 땅을 몇 번이나 구르고, 시야에 벼락과 불꽃이 몇 차례나 튀긴 뒤.

정신을 차린 리아의 눈앞에는 손도끼를 치켜든 사내가 비치고 있었다.

리아는 무심코 비명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그만… 꺄아아아악!”

그리고 콱, 하고 내리꽂히는 손도끼.

리아는 바들바들 떨면서, 제 옆을 바라보았다. 얼굴 바로 옆의 지반을 파고든 도끼날이 시린 극광을 비추고 있었다.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큼 그도 흥분했다는 뜻이었다.

“리아 페르쿠스… 난 네가 싫어.”

마르고 닳아서, 바닥만이 남은 감정이었다.

옅은 열기와 후회가 담긴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갈라진 진흙에 물을 뿌리듯, 사내는 말라붙은 진심을 토로했다.

“부디, 애송이도 그렇게 만들지는 말아라.”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꽂혀 있던 손도끼가 팍, 하고 뽑혀져 나와 사내의 손 위로 떨어졌다.

좌중은 침묵 속에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를 만류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던 셀린까지도.

사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남은 건, 그 애송이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

셀린을 스쳐 지나가며 내뱉은 말이었다.

**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네 사람 중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셀린은 살짝 내 시선을 피했다. 레토는 두 손으로 낯가죽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뱉었고, 리아는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나 또한 할 말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연한 목소리로 나는 각오를 밝혔다.

“……술 가져와.”

모두의 의아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느닷없이 술을 달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가장 먼저 내 생각을 눈치 챈 건 레토였다.

“야, 이안. 설마 너…….”

“감히 내 여동생을 건드리고 도망쳐?!”

쾅, 하고 분노가 담긴 내 주먹이 탁자를 으스러트릴 듯 강타했다. 그러자 셀린과 리아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서, 가서 따져야겠어… 아니! 한 방 먹여줘야겠어. 어떻게 우리 리아를 폭행할 수가 있지?! 이 가녀린 애가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마, 맞아!”

리아는 내 말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무튼 내가 제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기쁜 듯했다.

“혼내줘, 오빠! 나 많이 아팠어!”

귀여운 여동생의 응원까지 받은 마당이었다. 더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나는 이를 으득으득 갈면서 외쳤다.

“암, 그래야지. 그러니까 일단 술을 마시고 기절하면……!”

“그만해라.”

그러나 내 멋진 복수 계획은 초장부터 장해물을 만나고 말았다.

레토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지난번에도 무리한 대가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잖아? 이러나저러나 미래에서 온 네가 주는 정보는 우리한테 하나하나가 소중해. 간접적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아니, 그럼 얌전히 있으라고?!”

“나중에 또 기절하면 얼굴 볼 사이잖아. 당장 할 일이 바쁜데,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칠 셈이야?”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온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끄응, 하는 신음을 삼켜야 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은 도무지 그렇지 못했다.

무려 내 여동생이 얻어맞은 사건이었다.

당장 달려가 주먹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칼부림을 내더라도 천신께서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만큼이나 여동생을 폭행당한 오빠는 제정신이 아니어야 정상이었다. 나도 그 예외는 되지 못했다.

신을 내던 리아는 어느덧 풀이 죽어 나와 레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내 계획에 무언가 허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했다.

결국 리아는 소심하게 제 의견을 정정했다.

“레토 오빠 말이 옳아, 오빠.”

“리아…….”

마지막 우군을 잃은 내 어깨가 힘없이 떨어졌다.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하는 오빠라니, 존재 가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상냥한 내 여동생은 이처럼 무능한 나를 위로해 주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야. 나, 연약하니까…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되잖아. 평생 이안 오빠가 옆에서 날 지켜줄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리아는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대번에 그 말을 부정했다.

“무슨 말이야, 리아… 내가 왜 널 못 지켜줘.”

“하지만, 평생 내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그럼 되지! 아니야, 차라리 네가 평생 내 옆에 있어. 알았지?”

“지, 진짜?!”

리아는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금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내 마음도 자연히 편해졌다.

“그래, 당연하지. 그러지 않아도 불안하던 참이었어. 요즘 암흑교단이 날 거슬려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무리 아카데미라도 네 안전이 걱정됐…….”

“아주 꼴값을 떨어요.”

오랜만에 듣는 짜증 어린 말투였다.

그 발화자는 보나마나 뻔했다. 턱을 괸 채 입술을 비쭉 내밀고 있는 셀린이었다.

“이안 오빠, 병신이야? 그럼 앞으로 어딜 가든 리아를 데리고 다니겠다고? 당장 다음주에 성국 가야 한다며.”

나는 그 지적에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차피 내가 가는 곳은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였다.

그러한 곳에 리아를 데려가는 것이 맞을까?

내가 성국에 가는 이유는 봉사활동을 위해서이긴 했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편지가 도착한 이상,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사건이 발생하는 미래는 기정사실이었다. 그곳이 성국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서 편지를 읽어야 하는데.

아직 편지의 내용을 읽지 못한 내가 망설이는 사이, 리아는 도리어 반색을 하며 강변했다.

“성국?! 나 마침 그쪽 가봐야 하는데! 마수 사체를 인수하기로 했거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좀…….”

“오빠, 나도 따라갈래! 용병도 고용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셀린은 리아의 고집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황금빛 눈동자와 황갈색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향했다.

서로 정반대의 기대를 품고서.

그러나 내 대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리아. 함께 가자. 어차피 가야 할 성국이라면, 내가 함께 있는 편이 낫겠지.”

내 결정에 탄식과 환호가 교차했다.

아직 성녀에게 허락을 맡지는 못했지만, 리아는 내 여동생이었다. 성녀의 가족을 만나는 만큼 내 가족도 하나 동행시키고 싶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단지 나는 알지 못했다.

리아와 셀린을 보내고, 레토와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침실에 돌아온 나는 편지를 펼쳐 들었다.

그러던 내 눈이 문득 편지지의 뒷면을 훑었다.

그곳에는 늘 그렇듯 휘갈겨 쓴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

‘가족을 조심하라.’

조금만 더 일찍 읽었으면 좋았을 뻔한 경고가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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