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418화 (418/649)

〈 418화 〉 6. 존재 증명(6)

* * *

To. 사랑하는, 나의 이안 페르쿠스에게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오고 있어요. 어느덧 밤에는 찬 비가 내리고, 한 풀 꺾인 햇볕은 이제 반갑기까지 합니다. 그곳은 어떤가요, 이안? 달을 함뿍 적시는 이 빗소리가 당신에게도 들리고 있을는지.

밤과 비, 그리고 술.

과거를 추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에요. 혹자는 사제가 돼서 술을 마시냐고 탓할지 모르겠지만, 벌써 또 그날이 찾아오니 쓰라린 마음을 씻어내기가 힘드네요. 당신이라면 제 심정을 이해하시겠죠?

오늘과 달리 화창한 날이었죠. 당신과 함께 성국으로 떠나던 날 말이에요.

소풍이라도 떠나는 양 가슴이 부풀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신과 고향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잖아요. 누구에게나 고향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나누고 싶게끔 하죠. 오래 전에 파묻었던 어린 시절마저, 당신과 함께라면 당당히 마주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고해성사’나 다름없었죠. 여태껏 애써 눈 돌리고 있었던, 유달리 눈물과 한이 많았던 꼬마아이를 향한 참회를 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누가 알았겠어요? 정작 제 죄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주님께서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만큼, 우리는 스스로를 미워한다고. 미운 마음이 강해질수록 우리의 마음도 아프고 괴로워지기 때문이죠.

‘의심’이라는 감정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요.

고아원의 수상한 점을 파헤쳐 나갈수록 제 의심은 점점 깊어졌고, 그럴수록 스스로를 불신하게 됐죠. 믿어왔던 모든 사실들이 무너지던 때였어요. 심지어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이의 손에 배신당하던 날, 불경하게도 저는 신의 존재에 의심을 품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동료에게 배신을 당했으니까요.

사랑했던 모든 길들이 십자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정에 서던 날, 죽음은 눈앞에 있었고 일평생을 찾아 헤매던 신은 보이지 않았죠.

늦었지만 묻고 싶어요.

어떻게 절 믿을 수 있었죠?

누명을 쓴 것과는 별개의 문제에요. 판결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저조차도 스스로를 구할 자신이 없었어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포자기했었죠. 신념, 신의, 신앙… 제 삶의 전부가 부정당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당신은 왜.

살갗이 찢기고, 뼈가 으깨지고,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까지.

저를 구하려고 했나요? 왜 모든 것을 포기했던 제게 다시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나요.

사실, 당신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어요. 언제나 그렇게 말해 왔으니까.

‘순명(??)’이라, 주님의 뜻은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어요. 상처와 시련 앞에 부러지고 쓰러지더라도, 다시금 일어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주께서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날 배웠습니다.

오늘 올리는 술 한 잔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죠.

불쌍한 영혼의 기일을 기리며, 또 가늠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한 잔을 마시고, 또 한 잔을 채웁니다. 이 잔은 당신을 위해 마실게요.

나의 사랑, 나의 토대, 나의 영원한 동반자.

비 내리는 밤, 주 앞에서 당신을 향한 사랑을 맹세합니다.

추신 1: 다음달 중순에 제도를 방문할 것 같아요. 당연히 마중을 나와 주시겠죠? 다만 조언을 하나 드리자면, 그 애완견은 제발 좀 쫓아내세요. 주에 한 번씩은 깐족대는 편지가 날아와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추신 2: 최근 유르디나 가문에 사생아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진짜. 둘 다 간음죄로 종교재판에 회부시키기 전에.

From. 당신의 ‘루시아’로부터.

제국력 571년, 원반의 달 열두 번째 날에.

——

편지를 읽고 난 뒤, 나는 침묵을 지켰다.

여전히 자세한 사정은 나와 있지 않았다. 첫 번째 편지를 비롯한 모든 편지가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었다. 이쯤 되면 우연이라기보다 어떠한 강제력이 작용했다고 봐야 옳았다.

미래에서 온 ‘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정보를 직접 전달하는 것은 ‘소모’가 너무 크다고. 무엇을 ‘소모’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래에서 과거에 개입할 수 있는 사건의 총량이 존재하는 듯했다. 지난 사건 때 미래의 인격이 개입할 수 없던 까닭도 그와 연관되어 있겠지.

결국 나는 이 애매한 단서를 가지고 또 험난한 미래를 헤쳐나가야 했다.

이조차도 없이 사건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묘한 아쉬움을 지우지 못했다.

그 까닭은 하나였다.

편지의 뒷면에 휘갈겨 쓴 짤막한 글귀가 다시금 내 시야에 틀어박혔다.

‘가족을 조심하라.’

더불어 편지에서도 언급되는 ‘배신자’의 존재까지, 내 마음에 한 줌의 의혹을 심어놓기엔 충분한 진술이었다.

그리고 ‘가족’이라고 한다면 용의자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내 여동생, 리아 페르쿠스.

“아니야, 설마…….”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리아가 나를 배신할 리는 없었다. 만에 하나 암흑교단에 조종당한다면 몰라, 그마저도 시체 거인의 핵을 파괴하며 가능성이 희박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나는 차마 한 줄기의 불안을 떨쳐내지 못했다.

배신이란 본래 신뢰하던 이에게 당하는 것이다.

편지에서도 명확히 언급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동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나는 한동안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뇌를 삼켰다. 리아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검지로 탁자 위를 두드리기를 몇 분.

결국 나홀로 골치를 앓아봐야 나오는 결론은 없었다. 이럴 때는 우선 추가적인 단서를 수집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미래에서 온 ‘나’의 행적을 조사하기.

그리고 두 번째, 나보다 머리가 좋은 동료와 상담하기.

정보가 많을수록 구체적인 추론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상식이었다. 따라서 나는 늘 그렇듯 첫 번째 과정부터 밟아 보기로 했다.

아카데미 내에서 ‘나’의 행적을 추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워낙 유명인사였던 탓에 모든 동선이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다음으로 찾아간 인물은 바로 황녀였다.

“이안 경, 또 오셨군요!”

황녀는 늘 그랬듯이 반색하며 나를 맞이했다. 황족에게만 주어지는 베르라타 궁의 후원, 그 인적 드문 장소에는 오직 두 사람의 인영만이 비치고 있었다.

그래, 두 사람.

놀랍게도 황녀의 곁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푸른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한 여기사가 하나 보였다.

아이린 루페미온.

한동안 페르쿠스 영지에 남아 호위에 힘쓰겠다던 그녀가 되돌아온 것이다.

나는 전우의 귀환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린 경! 돌아오셨습니까?”

“네, 스승님. 덕분에 무탈했습니다.”

아이린 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여전히 그 ‘스승님’이란 호칭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러고 보면, 황녀와 아이린 경은 미래에서 온 ‘나’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 중 하나였다.

언젠가 밝히기는 해야 할 텐데.

또 그러다간 날 ‘스승님’이라 부르는 아이린 경이 멋쩍어질 것만 같아서, 진실은 나중에 공개하기로 했다. 아이린 경이 스승으로 모시는 이는 어디까지나 미래에서 온 ‘나’였으니까.

대신 나는 평범한 안부 인사를 건넸다.

“페르쿠스 가문은 어떻습니까? 제국 첩보부와 같이 수색을 한다곤 들었는데, 암흑교단의 끄나풀이 접근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만일 그랬다면 당장 스승님께 연락을 드렸을 겁니다. 다만…….”

흠흠, 하고 아이린 경은 나를 안심시키다 말고 살짝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못한 아이가 부모를 눈치는 살피는 모양새였다.

내가 의아한 눈빛을 하고 있자, 아이린 경은 한숨과 함께 이실직고를 시작했다.

“그, ‘가면을 쓴 괴한’은 종적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습니다.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해서…….”

다시 말해, 아직 페르쿠스 가문 주위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내가 흐음, 하고 침음을 삼키자 황녀는 나와 아이린을 번갈아 보았다. 무언가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걸까.

잠시 보충 설명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황녀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이틀 전에도 물어보셨잖아요? 그 ‘가면을 쓴 괴한’에 대해서.”

그러자 오히려 놀란 쪽은 아이린 경이었다.

그녀는 더더욱 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삐질삐질 흐르는 식은땀이 그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어제 막 도착한 탓에 몰랐습니다. 그토록 신경 쓰시는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머물면서 지켜보았어야 했는데… 다, 다시 돌아갈까요?”

“됐습니다, 그보다 제가 뭘 물어봤다고요?”

아이린 경의 제안을 단칼에 자른 뒤, 나는 황녀에게 되물었다.

이 시점에서 ‘가면을 쓴 괴한’에 대해 물었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으니까.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면을 쓴 괴한’에 대해 무관심하던 그였다.

유르디나 영지에서도 그가 목격되었다곤 하나, 느닷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황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유르디나 가문에서 목격한 괴한에 대해 물어보셨잖아요? 인상착의가 어땠다든가…….”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당시에는 너무 놀라서, 사실 기억이 잘…….”

그러면서 황녀는 에헤, 하고 멍청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답변이었지만, 그 순수한 표정을 마주하니 또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그나마 황녀는 내게 쓸 만한 정보를 하나 떠올려 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아이린 경 이야기도 하셨죠?”

“아이린 경이요?”

“네, 아이린 경의 증언을 자세히 들어봐야겠다고 그러셨어요.”

나와 황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이린 경을 향했다.

그럼에도 아이린 경은 여전히 불안한 듯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눈을 질끈 감은 채 사력을 다해 기억을 되짚는 듯하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 말씀드렸다시피 눈앞이 ‘번쩍!’ 했다는 것밖엔…….”

나와 황녀의 낯빛이 딱딱히 굳었다.

도저히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다. 누구나 쓰러지기 직전에는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결국 아이린 경은 황녀를 따라 에헤, 하고 멍청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름대로 탈출구를 고민해 본 듯했다.

“아이린 경, 웃겨요? 지금 이안 경께서 몸소 물어보고 계시는데?”

“죄,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죄송하면 호위기사 생활 끝나나요?”

물론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 손을 허리에 척 얹은 채, 황녀가 묘하게 불량한 어투로 타박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이린 경은 다시 쩔쩔 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든 말든, 나의 시름은 더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마땅한 정보가 없었다. 내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나의 행적이 이어지는 곳은 황녀와 대화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에도 무언가 활동을 하긴 했겠지만, 당장은 조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유의미한 단서가 하나쯤은 더 있었으면 했는데.

내가 그렇게 끙끙거리고 있자, 한창 아이린 경을 갈구고 있던 황녀가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이안 경, 무언가 고민거리라도 있으신가요?”

내 눈이 힐끗 황녀를 향했다.

그러고 보니, 황녀는 마법학부 1학년 수석을 할 만큼의 인재였다. 혹시 상담을 하면 무언가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이내 픽, 하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 황녀가 말인가?

내 머릿속의 황녀는 지켜줘야 할 여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결코 내가 의지하고 기댈 대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나는 의지로 불타는 연회색 눈동자를 보며 기묘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돌이켜 보면, 황녀는 이미 나를 아카데미에서 매장하려 수작질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데.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나는 황녀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혹시 ‘가족을 조심하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에이,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요?”

참, 그랬지.

나는 새삼 황녀의 출신을 실감했다. 싱긋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그 어느 가문도 가족을 조심하란 소리에 이처럼 담대히 반응하지 못한다.

오직 황족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로서는 언어를 깨우친 순간부터 들어온 말일 테니까.

다만 황녀도 내가 그러한 의도로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는지,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어왔다.

“하지만 이상하네요. 왜 조심할 사람을 특정하지 않은 걸까요?”

“그, 사실은 말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직접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가 없거든요. 최대한 두루뭉술한 정보를 전달해야만 하는…….”

“그래도 이상한데요.”

황녀는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결국 이안 경에게 구체적인 정보가 전달되면 안 된다는 소리잖아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이안 경의 가족은 많지 않고, 특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아는데요.”

적절한 지적이었다.

그것도 고민하고 있던 지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말이라, 나는 일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말대로면 내가 의심해야 할 대상은 오직 리아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었다.

즉, 리아를 의심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더 이상 간접적인 정보가 아니었다. 내가 잠시 입을 다문 사이, 황녀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을 의심하란 내용이 아니에요.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의문이 존재하죠.”

그리고 확신에 가득 찬 선언이 이어졌다.

“누구의 가족인가?”

그렇게 덧붙이는 황녀의 연회색 눈동자는, 드물게도 음험한 빛을 품고 있었다.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발견한 모사꾼의 눈이었다.

**

황녀의 조언을 들은 이후, 나는 보다 넓은 범주의 후보군을 고려하게 되었다.

세상에 가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리아가 ‘배신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장 고아원에도 성녀의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고아원의 누군가가 배신자일까?

왜 이리 성국이 관리하는 고아원에는 배신자들이 많은 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워프 게이트를 지나 성국에 진입해 있었다.

내가 의외의 인물을 마주한 것도 그때였다.

“어라, 엘시 선배?”

내 나지막한 부름에, 고깔모자를 쓴 소녀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곧장 그 푸른 눈동자에 피어오르는 반가운 빛.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낭패감이었다.

어째서일까, 라고 내가 채 고민에 빠지기 전에.

“오랜만일세.”

나는 내 앞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시선을 살짝 올려야 했다. 나 또한 신장이 큰 편이었지만, 상대의 키는 그보다도 컸다.

그야말로 거구의 사내라는 호칭이 걸맞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엘시 선배를 닮은 푸른색이었다.

“조카 사위.”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얼떨결에 마주잡으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여야 했다.

라이넬라 가문에 단 둘밖에 없는 대마법사이자, 나와 함께 페르쿠스 영지에서 싸웠던 사내.

레이놀드 라이넬라와의 재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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