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화 〉 6. 존재 증명(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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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타고 가는 길은 길었다. 대략 사흘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여행 경로에 워프 게이트가 없던 탓이었다. 대륙 곳곳에 위치한 거점도시에는 워프 게이트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 외의 지방은 도로조차 제대로 닦여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외진 곳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했다. 하물며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마수의 대량 발생이 주기적으로 발발하는 장소였다.
이처럼 위험한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인력의 대부분은 대개 군대와 관련이 있었다.
성기사단과 사제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필수인력까지.
유일한 예외는 오직 상인들뿐이었다. 그들은 돈 냄새에만 이끌리는 족속들이었으니까.
당장 내 옆에 앉은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어둑한 밤, 모닥불을 중심에 두고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흔들리는 불 그림자가 낭만적인 풍취를 연출했다.
이제 여름에 가까워지는 날씨는 쌀쌀하기만 했다. 날벌레들도 슬슬 숨을 죽이고 월동을 준비할 즈음이었다.
내 옆의 소녀는 이 멋진 풍경화에 어우러질 만큼 매력적이었다.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칠흑의 머리카락과, 야밤에도 빛을 잃지 않는 황금빛 눈동자. 그리고 천으로 차마 가릴 수 없는 몸의 굴곡들. 어느 사내라도 이 소녀와 하룻밤을 지샐 수 있다면 기꺼이 제 자존심을 버리리라.
물론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이 아름다운 소녀는 바로 내 여동생이었으니까.
내 여동생, 리아 페르쿠스는 콧노래까지 흥걸거리며 주판알을 퉁기고 있었다.
마수 사체 거래로 얻을 이익을 미리 계산 중인 듯했다.
“좋아, 운임을 포함해도 이윤은 꽤 남겠어. 그래도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가격은 좀 깎아야겠지? 장기적으로 볼 때는 거래처와 관계를 도모해야 하니까… 중개료만 챙기는 셈 치면, 그래도 구당 10골드 이상?”
이윤에 관한 이야기를 중얼대는 리아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 반짝이는 눈동자가 금화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과연 상인은 상인이었다. 이토록 돈에 사족을 쓰지 못하다니.
그렇게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있자, 리아는 신이 나서 내게 말을 걸었다.
“오빠, 들었어?! 무려 구당 10 골드 이상이라니까! 거래할 사체의 양만 400구가 넘으니까… 한 번에 4,000 골드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마수 시체가 왜 그리 비싼 거야?”
리아의 기대와는 달리, 정작 내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4,000 골드. 단순히 환산하면 평민 가족 하나가 300년 이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시골의 작은 영지라면 그만한 예산으로도 분기나 반기를 버틸 수 있었다.
나 또한 깜짝 놀라야 정상이었다.
얼마 전까지라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내 손으로 1만 골드 이상의 가치를 지닌 마수를 쓰러트린 전적이 있는 몸이었다. 더불어 수만 골드의 가치를 지닌 신물을 포상으로 하사받기도 했고, 아직 수령을 하지 않았을 뿐 쌓여있는 포상금도 많았다.
이제 와서 4,000 골드 정도로 내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리아는 내 심심한 반문에 더욱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지! 마수 시체가 얼마나 유용한 줄 알아? 뼈나 장기는 마력을 품고 있어서 가공하면 마도구가 되거든. 또 인기 있는 마법 재료이기도 하고… 심지어 요즘에는 마수 고기도 유행하고 있잖아?”
“셀린이 참 좋아하겠네.”
내 무심한 답변에도 리아의 열정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제는 아예 제 사업 계획서까지 줄줄이 읊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수 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거든. 마수 사체는 일단 마수가 출몰하는 곳에서 나오잖아?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력에 의한 부패가 심해져서,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도 필요해. 호위를 위한 운송비는 말할 것도 없고.”
“너는 그 돈이 다 어디서 났는데?”
사실 예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이었다.
리아는 느닷없이 아카데미 근처에 상점을 차렸다. 내년 아카데미 입학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취급하는 품목이 마수 사체라면 비용이 어마무시할 터였다.
심지어 상점을 차린 지 채 몇 달이 되기도 전에 대규모 거래까지 성사시켰다. 이는 자본이나 수완 이전에 인맥이 필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리아가 잘났어도 단기간에 그만한 사회적 자원을 축적해냈을 리는 없었다.
누군가의 조력이 있다.
자금이야 상단이 파산하기 전 은닉한 재산이 있다고 해도, 대규모 중개상 역할까지 해명할 길은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리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다 수가 있지.”
“너, 혹시 이상한 속임수에 넘어간 거 아니지? 자고로 이유 없는 호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
“아, 몰라도 돼! 아무튼 있다니깐!”
나는 결국 입을 꾹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리아도 이제 곧 성인이었다. 무엇보다 상계에 몸을 담은 지도 몇 년이니 나보다는 사람 보는 눈이 있을 터였다.
괜한 걱정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기새를 떠나보내는 어미새의 마음이 되어 구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구나…….”
“그야 당연하지, 설마 아직도 몰랐어?”
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 눈동자에 한심하다는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내 가슴은 더욱 아려왔다.
“그럼 이제 나도 널 보내줘야겠네.”
“그것도 당연… 무, 뭐?!”
나의 구슬픈 각오에 호응하듯 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앉은 자리에서도 거의 펄쩍 뛰듯 하는 것을 보니,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이 또한 성장통의 일종이리라.
“미안, 리아. 앞으로는 널 어린애처럼 대하지 않을게. 무섭다고 함께 자주거나, 귀엽다고 볼에 뽀뽀를 하거나…….”
“왜,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데?!”
리아는 발악처럼 내게 반문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소녀의 초조한 심정을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슬픈 다짐을 이어갔다.
“어른이니까 당연하지. 어떻게 다 큰 여동생한테 그러겠어?”
“무, 무슨 소리야… 오빠, 그러니까 되게 낯설다? 오빠 원래 그렇게 정상인 아니었잖아.”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도 내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자, 리아는 이제 제 손톱을 잘근잘근 씹을 정도가 되었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리아는 이내 슬쩍 내 팔에 몸을 기대왔다. 탄력 있는 감촉이 느껴졌으나, 나는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몇 초 전에 리아를 떠나보내겠다고 결심한 참이었다. 이제 와서 흔들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리아는 누구보다 내 약점을 많이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곧 연약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오, 오빠아…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나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아.”
“몸은 다 컸다며.”
“다 커도 쓸모는 없는걸? 아니면…….”
소녀의 눈매가 간드러지는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오빠가 어른으로 만들어 줄래?”
쏟아지는 달빛과 모닥불, 어둠 속에서는 한창 때의 남녀가 단 둘만 남아있었다.
창백한 피부가 돋보이는 조명이었다. 나는 그 달싹이는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아야, 아야, 아야야야야야! 꼬, 꼬집어?! 지금 다 큰 여자애의 볼을 꼬집었겠다?!”
“아까는 아직 덜 컸다며.”
코웃음을 치며, 리아의 볼을 꼬집어 당겼다.
여전히 보드라운 피부였다. 이럴 때 보면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말이지.
여자는 잠깐 눈을 떼면 너무 많이 자라 있어서, 나는 은근히 흔들렸던 내 마음을 자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아는 내 여동생이었다. 서로 피가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으니까.
등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남매끼리 사이가 무척 좋아 보이는군.”
기척조차 없이 다가온 인형에 나는 경기라도 이는 양 펄쩍 몸을 일으켰다.
그곳에는 예상했던 대로 장신의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레이놀드 라이넬라, 나와 여동생의 오붓한 여행에 함께하는 불청객이었다.
어디를 나갔다 왔는지, 그의 손에는 토끼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레이놀드 씨는 여전히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연인이라고 오해하겠어.”
“당치도 않은 말씀을… 리아는 제 여동생입니다.”
내 황급한 변명에 리아가 입술을 삐쭉 내미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작 레이놀드 씨는 내 변명에도 나와 리아를 번갈아 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내 뇌리 속에는 그가 페르쿠스 영지에서 보여주었던 신위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무심해 보이지만, 레아놀드 씨는 조카를 끔찍히 아낀다고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애초에 엘시 선배를 돕겠다고 하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이상한 오해를 사서, 내가 엘시 선배를 두고 여동생과 금단의 관계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면?
두 귀를 잡힌 채 대롱대롱 흔들리는 토끼의 모습에 내가 겹쳐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근접전은 내가 이기겠지만, 불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레이놀드 씨는 더는 우리 관계를 추궁하지 않았다.
“가족끼리 사이가 좋은 건 바람직한 일이지. 엘시, 그 아이도 가족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을 텐데… 조카 사위, 그리고 사돈 아가씨. 우리 엘시도 잘 부탁하네.”
그 당부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리아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레이놀드 씨의 말만 듣자 하면 이미 약혼은 확정이었다.
어차피 이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긴 했다. 다만 질투심 많은 리아 앞에서 입에 담기에는 적절한 사안이 아니라서, 나는 일부러 말머리를 돌렸다.
“안줏거리라도 찾아오신 겁니까? 식량은 많이 남아 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젊은 시절의 맛이 그리워지더군.”
그러면서 레이놀드 씨는 넓적한 바위 위에 토끼를 올려놓았다. 아직 다리가 바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였다.
혹은 아직 죽지 않았거나.
레이놀드 씨는 대마법사였다. 죽지 않을 만큼만 전류를 흘려보내 기절시키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그러더니 품에서 단검을 꺼내 토끼의 목을 꿰뚫기까지.
핏물이 튀기고, 동물 특유의 누린내가 올라왔다. 고귀한 귀족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작업이었다.
일례로 리아도 그 장면을 보며 윽, 하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지 않은가. 못 볼 꼴을 본다는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레이놀드 씨는 담담해 보이기만 했다. 손놀림 또한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예전에 말했던 적이 있지 않았나? 한때 용병 생활을 했다고… 그때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지. 이 주변도 마찬가지였네. 당시에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었지.”
“평화로운 곳에 용병이 머무를 때가 있나요?”
“아니.”
가죽을 벗기고, 피를 빼고자 다리에 매듭을 묶으면서, 중년의 사내는 묵직한 음색을 내뱉었다.
“평화는 곧 깨지고 말았어. 마수들이 나타났거든.”
마수들의 대량 발생.
나는 문득 그 현상에 대해 떠올렸다.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했던가.
“난 아직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 듯하네.”
섣부른 위로의 말 따위는 던지지 않았다.
과거로 침잠하는 중년의 눈동자가 구슬픈 심도를 더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단지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다.
레이놀드 씨의 동행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이미 이 지역에 관련된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서 강한 흥미를 느꼈다.
직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내 다음 행보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다음날 저녁, 마차는 무사히 성기사단 주둔지에 도착했다.
성기사단의 책임자는 리아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리아 또한 예의 바른 응대로 그 호의에 부응해 주었다.
마수의 시체와 부상자들의 신음이 가득한 장소였다. 그 사이에서도 리아의 외모는 빛이 났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경. 그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임마누엘! 별 말씀을 하시는군요. 마침 마수의 시체가 너무 쌓여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마수의 시체는 꾸준히 마기를 내뿜어서 주위를 오염시키거든요. 다만…….”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성기사는, 리아의 어깨 너머를 흘깃거리며 쳐다보았다. 나와 레이놀드 씨가 서 있는 장소였다.
그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지.
성기사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혹시, 저 두 분은 어떤 분이신지……?”
그러자 리아의 눈이 흘깃 등 뒤를 향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은 듯했다.
이 또한 그럴 만했다.
왜냐하면, 나와 레이놀드 씨는 평소와 다른 차림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드를 푹 눌러쓴 두 사내의 모습은 영락없이 수상한 행인의 전형을 하고 있었다.
“아, 인사가 늦었네요. 제 호위를 맡아주신 용병 분들이십니다. 실력은 확실하신데,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시죠. 이곳에 머무는 이틀 동안 마수들의 서식지도 점검할 예정입니다.”
“그곳은 위험 구역이라, 허가가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
나는 늘 품에 넣어놓고 다니던 도장을 하나 보여주었다. 용 문양이 새겨진 인장, 세상에 단 하나의 가문만이 쓸 수 있는 상징이었다.
침묵하던 성기사는 이내 탁, 하고 손바닥을 이마에 얹었다.
“……상부에 보고해 보겠습니다.”
제국 황실의 권위는 무적이었다.
설령 이곳이 타지라 하더라도.
오랜만에 수수께끼를 파헤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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