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5화 〉 6. 존재 증명(13)
* * *
질주 속에서 풍광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어차피 압축된 실선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은, 오직 내딛는 발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촉뿐이었다.
그만큼이나 전력을 다한 달음박질이었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목적지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시야는 모래먼지로 잠식되고 있었다.
흐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바람을 타고 비명 소리가 전해져 왔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 내 뇌리는 이내 누군가의 모습으로 가득 차 버렸다.
리아 페르쿠스, 내 여동생이 저곳에 머물고 있었다.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지옥구멍들이 끊임없이 산성액을 토해댔다. 짙은 녹색의 액체를 뒤집어 쓴 성기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뭉근히 녹아내린 인간의 모습은 빈말로도 볼 만한 꼴이 아니었다.
자리를 비운 지는 단 몇 시간, 그동안 군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전장을 앞두고 헐떡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내 등 뒤에 업혀 있던 사내가 살포시 땅을 밟았다.
레이놀드 씨였다.
마법사는 검사 이상으로 빠르게 달릴 수 없다. 비행 마법 등으로 속력을 높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력 있는 검사가 전력으로 내달리는 속도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레이놀드 씨는 굳이 내 등에 업히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대규모 혼전에서 유능한 마법사의 존재는 대체가 불가능하므로.
그는 내 조급한 기색을 읽었는지, 담담한 음색으로 말했다.
“어서 사돈 아가씨를 찾으러 가보게.”
“하지만…….”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긴 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차마 떠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황은 이미 난전으로 돌입한 뒤였다. 당장 부상을 입고 후퇴하는 성기사들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 앞에서, 어찌 내 이기심만을 앞세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레이놀드 씨의 낯빛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일지 않았다.
“이곳은 내가 책임지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레이놀드 씨는 검지를 치켜세워 슬쩍 내저었다. 그 궤적을 따라 새파란 전하의 선이 도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대기가 비명을 내지르며 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폭음이 터져 나오며 지표면을 마구잡이로 들어냈다. 지옥구멍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어야 했다.
“마법사다! 마법사의 지원이 왔다!”
“반격, 반격해! 부상자들을 지켜라!”
영창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손가락을 몇 번 놀렸을 뿐, 레이놀드 씨의 손짓이 불러올 결과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엘시 선배의 ‘질풍신뢰’에 버금가는 위력이었다.
나는 새삼 레이놀드 씨의 호칭을 다시금 떠올렸다.
‘대마법사’, 과연 격이 다른 솜씨였다. 엘시 선배가 어째서 레이놀드 씨를 두려워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는 재차 내게 강권했다.
“가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무력행사까지 하며 안심을 시켜 주었는데, 이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질주가 재개됐다.
걱정하던 대로, 전장의 혼란은 군영 내부까지 전이되어 있었다. 밀어닥치는 부상자들을 돌보러 사제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했고, 상인들과 비전투 인력들은 헐레벌떡 짐을 정리하던 도중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내 잇새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곳곳에 지옥구멍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땅 밑을 파고 들어와 기습을 감행한 모양이었다. 이러니 다들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려 들 수밖에.
가슴이 바짝바짝 타는 느낌이었다. 어서 리아를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리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대신 내 눈에 들어오는 이가 하나 있었다. 이곳에서 그나마 면식이 있는 사내였다.
나를 호위하겠다고 나서던 성기사 둘.
그들은 신음을 애써 삼키며 분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이내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막무가내로 리아의 행적을 쫓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차라리 리아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 만한 인물들을 찾아보는 편이 나았다.
저 둘이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나와 레이놀드 씨를 호위하라는 지시를 받은 이들이었다. 당연히 우리의 일행인 리아에 대한 관리까지 일임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그 이전에 내가 저 둘을 두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침 지하로부터 울려 퍼지는 진동이 내 직감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손에서 은빛 섬광이 쏘아졌다.
“피해!”
내 말은 경어조차 이루지 못할 만큼 짧았다. 그만큼이나 급박한 상황이었던 탓이었다.
성기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면서도 재빨리 몸을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파공성을 일으키며, 대기를 찢고 그 자리에 내리꽂히는 손도끼가 하나.
그리고 땅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케에에에에에에엑!
비명과 함께 주름이 자글자글한 원통형의 몸체가 솟구쳤다. 직전까지 흙을 잔뜩 머금었을 그 아가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암녹색의 산성 독액이 핏물과 뒤섞여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도끼는 괴물의 아가리 상단을 반쯤 파고든 채였다.
나는 무심코 쯧, 하고 혀를 차고 말았다. 단숨에 끝장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하에서 솟구치다 보니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내게 한정된 이야기였다.
지옥구멍의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성기사들은 잔뜩 놀란 눈치였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황망히 내 낯가죽을 훑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내 눈이 일순 의혹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한창 전투를 거치며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가 벗겨졌다는 사실을.
성기사들은 내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나를 낯설다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내가 던진 손도끼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었던 듯했다.
“호, 혹시… 이안 경이십니까?”
두 성기사 중 젊은 쪽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누가 보아도 동경에 물든 시선이었다.
몇 시간 전에 보았을 때는 분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더욱 극적인 반응을 보인 쪽은 중년의 성기사였다.
내게 팔이 꺾인 바 있던 그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직후, 사내의 얼굴에 드리웠던 먹구름은 금세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그는 환희에 가득 차 외쳤다.
“이안 페르쿠스 경이 오셨다! 우리를 구하러 오셨어!”
마력까지 담긴 쩌렁쩌렁한 고성이었다.
사위가 고요에 잠겼고, 나는 그 느닷없는 선언에 깜짝 놀라 그를 만류하러 들었다.
사방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인류의 영웅이 왔다!”
“마수 따위는 우리 상대가 되지 못해!”
“명예를 원한다면 검을 휘둘러라!”
결국 내 입에서는 허허, 하고 허탈한 웃음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진위 여부 따위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안 페르쿠스인지, 혹은 이안 페르쿠스를 사칭하는 누구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환호하고 있었다.
믿고 싶기 때문이겠지.
난데없이 마수의 대군이 쳐들어온 상황이다. 객관적으로 절망적인 조건이고, 이 와중에 승리를 위한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처음으로 나타난 희망이 바로 나였다.
일종의 자기세뇌라 해도 좋았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내게 그 세뇌를 현실로 만들 의무가 있다는 점뿐이었다. 나는 곧장 되돌아 온 손도끼를 내던지고, 검을 땅에 깊숙이 꽂았다.
우르르, 하고 대지가 떤다.
귓가에 잡히는 소리를 따라 검을 쥔 손에 온힘을 쏟아 부었다. 마력이 담길수록 검신이 진동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하얗고, 하얀 오러가 지반을 가르고 있었다.
투둑, 툭. 어디선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혈관인지, 혹은 힘줄인지.
다만 이를 악문 내 눈동자의 핏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끝내 마력을 전소한 내 입에서 질긴 신음이 흘러 나왔다.
제발 이대로 끝내자.
그 바람이 끝난 찰나, 세상이 빛으로 물들었다.
콰콰쾅, 맹렬한 폭음과 함께 지반이 터져 올랐다. 흙무더기와 함께 지옥구멍들의 비명이 들려 왔다. 내가 검을 꽂은 자리를 중심으로 대지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미줄 같은 틈새로 솟구치는 핏물들.
비틀, 비틀. 힘이 빠진 지옥구멍들이 땅 밖으로 가까스로 얼굴을 내밀다 힘이 빠져 엎어졌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였다. 땅속을 파고든 오러에 난자당한 결과였다.
땅 밑에서 느껴지던 진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다급히 중년의 성기사에게 다가갔다.
“리아는 어디 있습니까?”
“지, 진짜 이안 경이셨군요…….”
정작 중년의 성기사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희미한 불신을 담은 그 눈빛에 나는 허탈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제 여동생은…….”
“최후방에 위치한 천막에 계십니다.”
대답이 돌아온 곳은 젊은 성기사 쪽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습격이 시작되자마자 그곳으로 대피시켰습니다. 귀빈이신 만큼…….”
“감사합니다.”
나는 짤막한 인사만을 남기고 허겁지겁 땅을 박찼다. 젊은 성기사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달리기를 얼마쯤, 내 시야에 얼핏 봐도 고급스러운 천막이 잡혔다.
저곳이구나.
내가 반색하려던 찰나, 천막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줘… 오빠!”
명실상부 내 여동생의 목소리.
내 뇌리가 곧바로 새하얗게 물들었다.
망막 위로 낯선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